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50)
28. 홈그라운드 (5)
서울의 한 카페.
저가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강동철은 박종수를 만났다.
검사로서 변호사를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박종수는 절대 허튼일로 먼저 연락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목적이 있는 자리임을 알면서도 약속 장소에 나갔다.
박종수가 말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옛날에는 이 카페 커피를 달고 살았었는데. 그때는 신입이랍시고 일이 정말 많았잖아. 아, 사적인 얘기는 좀 그런가?”
“…….”
강동철이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곧바로 본론을 말하라는 의미에, 박종수는 멋쩍게 웃으며 자료를 주섬주섬 꺼냈다.
“예나 지금이나 정 없긴. 내가 널 보자고 한 이유는 바로 ‘골든 서클’이라는 단체 때문이야.”
슥.
자료를 넘겼다.
“이 안에 그동안 골든 서클이 저지른 범법 행위 중에, 충분히 증명이 가능한 일들을 기록해 놨어. 보면 알겠지만 참 극악무도한 집단이야. 아직 멋모르는 미성년자들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대가로, 권력자라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익을 나누는 부도덕한 집단. 최근에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서 터진 사건만 보더라도 이건 정상이 아니야. 수십 명이 병원에 실려 가고 한 학생이 칼까지 맞았는데 기사 한 줄은커녕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잖아. 골든 서클이 진실을 묻어 버렸다는 의미겠지.”
“개인적인 청탁인 건가?”
툭.
찻잔을 내려놓았다.
강동철의 날카로운 눈빛에, 박종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확히는 사회 고발. 너도 대충은 이런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 아냐.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이 사건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벗게 되겠지. 그래서 널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그동안의 검사 경력을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받아들일 사람이 너밖에 없거든.”
강동철은 담담했다.
박종수의 말처럼.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앙지검에 차장검사나 되는 사람이, 암세포처럼 번지는 ‘골든 서클’을 아예 모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한들.
이렇게 실존하는 증거 자료는 처음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박종수는 의도적으로 강동철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혹시라도 제대로 맡아 볼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 이 자료 중심에 존재하는 피해자. 김현성이 내 의뢰인이거든.”
* * *
정신없는 날이었다.
밀려드는 사건을 전부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강동철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자료 다발을 내려다보았다.
“……골든 서클이라.”
박종수의 예상처럼.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알았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 그들과 관련한 제보가 조금씩 접수되었다. 피해자들이 언급하는 정체불명의 집단, 골든 서클로부터 살려 달라는 요청들. 골든 서클은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지만 이미 균열은 시작되고 있었다. 김현성이 기억하는 먼 미래의 폭로는, 애초에 이런 균열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단이 커질수록.
이익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언젠가는 정체가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강동철이 인지하고 있는 골든 서클은, 지금의 이 시점에서는 겨우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슥.
자료를 확인했다.
사무실에서도 대충 훑어보았지만, 이 안에 담긴 내용은 진실이라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미 대한민국은 썩을 대로 썩어 버렸다는 의미겠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가진 것들이 많은 권력자들이 서로의 영역을 형성해서, 후대에까지 부와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강력한 체계를 형성한 것일 테니까. 만약 골든 서클의 방식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소수의 일도 불가능하게 되겠지. 학교에 한 명쯤은 존재할 수 있는 권력자로 인해 용은 날아 보기도 전에 날개가 꺾여 버릴 테니까.’
입맛이 씁쓸했다.
이건 시한폭탄이었다.
세력을 구분하지 않는 포괄적인 의미는, 권력자들 전부를 상대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을 의미했다.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자료의 중심적인 인물로 거론되는 김현성에 대해, 아내가 한번 언급했었던 적이 있었다.
‘민우의 과외를 도와주는 선생님이라고 했었지.’
그때.
아내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원래는 절대 선을 넘는 사람이 아닌데, 아들의 성적을 높여 보겠다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렇게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자세히 알아보니 김현성은 정말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걸 도와준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강동철이 아내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검사로서 조금의 빌미도 내어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일이었다.
과외 선생님의 일이었다.
트집을 잡으려는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부도덕한 일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컸다.
강동철이 지금의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조금의 문제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내가 말했던 부도덕한 상황이. 한 학생을 나락으로 몰아넣으려던 상황이. 이 자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골든 서클의 소행이라면. 나는 거대한 집단을 상대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쉬운 결단은 아니다.
하지만.
아내의 부탁을 거절했듯, 강동철은 본인의 삶을 관통하는 확고한 소신이 존재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
답은 명확했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검사로서, 이번 사건을 조사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강동철은 아직 정장을 벗지도 않은 채로, 테라스로 나가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사무장님. 강동철입니다. 내일 제 사무실에 들러 주시죠. 오랜만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자료가 진실인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박형준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대리인을 마주하는 지금, 그로서는 차마 얼굴을 들 면목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히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대산을 무너트리겠다는 계획.
완벽한 실패였다.
김현성의 가족은 털끝 하나 건드려 보지 못했고, 명진건설을 상대로 한 세무 조사도 흐지부지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국세청 정세훈의 말로는 명진건설이 대놓고 비리 사실을 전시했다고 했다. 어디 건드릴 수 있으면 건드려 보라는 메시지에, 눈먼 장인처럼 황급히 진실을 덮었다.
그뿐만이랴.
박종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현성의 사람들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골든 서클의 파상공세를 담담하게 버텨 냈다.
‘영악한 새끼.’
김현성.
확실히 보통 놈이 아니었다.
명진건설을 골든 서클조차 건드릴 수 없는 시한폭탄으로 만든 계획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과정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천상의 멤버들에게 돈을 먹였다는 의미는 사전에 정보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번 세무 조사로 압력을 넣은 사람들은 정찬수로서도 알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미리 돈을 먹였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그로 인해, 박형준은 석고대죄하듯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어떻게요?”
“그게…….”
“이미 김현성의 배경을 무너트리는 방법은 끝났습니다. 아무리 국세청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들, 한번 혐의를 벗겨 낸 기업에게 다시 한번 세무 조사를 강행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수년은 지나야 하는 일이지요.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한들, 고창범이나 변호사의 반응을 보았을 때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도 않고요. 참, 상황이 좀 그렇습니다. 괜히 성과도 얻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바람에 주인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합니다. 골든 서클, 특히 천상의 멤버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쿵!
머리를 박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리인이 차갑게 내려보았다.
만약 박형준을 처벌하고자 했다면, 애초에 이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목숨을 걸겠습니다!”
박형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간절한 눈빛에, 대리인이 웃었다.
“주인님께서는 일단 내부의 불신을 종식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산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골든 서클이 주목하고 있는 ‘김현성’부터 처리하시죠. 이번 1학기 중간고사. 김현성의 성적이 바닥으로 처박히든, 아니면 시험을 치르지 못해 실격 처리가 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골든 서클이 어떻게든 목적을 완수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십시오.”
마지막.
정말 마지막임을 알았다.
박형준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 자리를 빌려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제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 * *
그 시각.
김현성은 고창범의 연락을 받았다.
[국세청으로부터 이대로 종결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 우리의 협박이 먹힌 거겠지. 괜히 시한폭탄을 건드렸다가 본인들의 고객조차 휩쓸려 나가면, 그들로서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놓일 테니까.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나마 대산에서는 골든 서클의 계획을 어떻게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서울에 있는 너는 달라. 넌 지금 적진 한복판에 있는 거라고.]“……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정말 감사해요. 명진건설로서는 부담스러운 선택일 텐데, 저와의 약속을 지켜 주셔서.”
[내가 미련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전에 말했었잖아. 난 멍청해서, 앞으로 회사를 경영하려면 너 같은 브레인이 필요하다고. 이것도 나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네 안위부터 신경 쓰라고.]“알겠어요. 그럼 제가 연락할 때까지 대기하고 계세요.”
뚝.
연락을 끊었다.
고창범.
새로운 인생에서 얻은 새로운 인연.
고마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를 단순한 소모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김현성이 골든 서클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상대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관계를 외면하지 않았다.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만약에 고창범이 자신을 외면해 버렸다면, 대산의 가족들이 위험해져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슥.
시선을 돌렸다.
넓은 책상에는, 수많은 자료가 질서 없이 흩어져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천상의 정체. 그들을 완벽하게 밝혀내야만, 골든 서클의 주인에게 도달할 수 있겠지.”
추측에 불과하나.
천상의 멤버들은 미지의 주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골든 서클이 처음에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주인의 배경 덕분이었다. 믿음직한 인물이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신뢰를 보였다. 그렇다면 소수의 인물은 분명히 주인의 정체를 알고 있을 테고, 천상의 멤버들을 알아낸다면 연결 고리를 찾을 실마리를 얻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세무 조사는 의미가 있었다.
김현성은 미리 알고 있는 천상의 멤버들 말고, 의심되는 특정 인물들을 일부러 들쑤셨다.
그중.
슥.
한 자료를 확인했다.
[국회의원 이경철]여당의 핵심 인물.
고창범이 찔러 준 돈에, 해맑게 웃으며 돈을 받아먹던 인물.
그에게 협박 전화를 넣었을 때 골든 서클이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십 년 전부터 국회의원으로서 상당한 명성을 떨쳤던 그라면, 처음 골든 서클이 만들어졌을 때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 말인즉. 정찬수로서도 알지 못했던 주요한 인물을 특정했다는 의미였다. 그와 다른 천상의 멤버들을 같이 조사한다면, 미지의 주인과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였다.
김판호를 회유한 것은 그 자체의 권력도 있지만, 이경철과 같은 인물들에게 돈을 뿌리기 위해서도 있었다.
전생.
이경철은 골든 게이트가 발발했을 때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를 의심했기에, 김판호의 라인을 통해서 그에게 미리 돈을 먹일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렸다.
이경철뿐만 아니라.
이번 세무 조사에서 특별한 반응을 보였던 인물들.
그리고 미래투자증권 임형철 대표, 정찬수로부터 알아낸 천상의 멤버들, 박형준이 주고받은 연락처들, 그리고 대리인이라고 통용되는 인물의 동선 등등.
수많은 자료가 시선에 들어왔다.
이 안에.
분명히 접점이 존재했다.
이것들을 조합하고 만들어 낸다면, 반드시 골든 서클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어.’
눈이 충혈되었다.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던가.
자신의 진정한 복수는, 주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정체를 알아냈을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해가 저물었다.
창밖 너머로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았는데도, 김현성이 머무는 오피스텔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