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72)
32. 정면 돌파 (4)
김현성은 조사를 받을 때.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계획이 너희의 뜻처럼 되지는 않을 거야. 박민철이 아무리 나에 대해 증언한다고 한들, 천일에서 박민철을 경험했던 동급생들이. 그리고 천일의 선생들이. 박민철을 비롯한 증인들의 증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지를 증명할 테니까. 만약 이번 사건이 어중간하게 끝나 버린다면, 다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를 매도하지는 못하겠지.”
담담했다.
골든 서클의 계획을 듣고도, 그들이 자신을 학교 밖으로 내쫓은 다음 무엇을 하려는지를 알고도.
김현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의도적인 압박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박민철의 멘탈을 흔들고, 이후 벌어질 ‘특별한 계획’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우습다는 듯이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박민철에게는 지금과 같은 협박이 먹힐지 몰라도, 그가 판단한 김현성의 상황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경찰이 웃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이럴 때는 아직 현실 물정을 모른다니까. 이번 사건에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목숨줄이 달린 녀석들밖에 없어. 그렇다면 네 동급생이라는 녀석들은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몸을 사릴 거고, 결국에는 네 뒤를 봐주었던 오대환과 김영철 정도가 고군분투를 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과연 그 선생들의 증언이 효력이 있다고 생각해? 네가 박민철을 비롯한 증인들의 증언을 매도하려고 한 것처럼, 우리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을 리가 없잖아.”
고개를 들이밀었다.
김현성을 잡아먹을 듯, 적의가 들끓는 눈빛을 보였다.
“너 정말, 세상을 만만히 보는구나?”
상대는 알까.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아득바득 발악해 왔는지.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기 위해 수도 없이 계획을 갈아치우며, 방심은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음을.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상대의 악의를, 김현성은 온전히 받아들였다.
* * *
김현성과 통화를 끊고.
오대환은 안절부절못하며 복도를 배회했다.
옆에서 다그치는 김영철의 목소리를 흘려듣던 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교무실로 향했다.
“잠깐 따로 얘기 좀 나누시죠.”
감사과 사람을 불러냈다.
아무도 없는 상담실로 자리를 옮기더니, 당당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울상인 표정으로 말했다.
“항복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김현성에 관한 불리한 증언이 필요하다면, 천일의 교장으로서 적극적으로 증언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천일의 명문화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한데, 제가 이렇게 주저앉는다면 천일의 미래도 끝입니다. 한 번만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백기를 내걸었다.
김현성에게 버림을 받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김현성을 팔아먹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사과 직원은 오히려 이죽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뭔가 크게 착각하나 본데. 당신과 명진건설은 달라. 명진건설은 김현성에게 실질적인 힘을 부여하기에 포섭 대상이 되었지만, 너와 김영철은. 김현성이 전학을 가 버린 지금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희의 혐의는 사실상 ‘김현성’을 매도할 살아 있는 증거나 다름없어. 너희가 김현성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증언해 주는 것보다, 김현성에게 뒷돈을 받아먹었다는 증거가 김현성을 무너트릴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겠지. 그런데 너희를 왜 살려 주겠어?”
“제, 제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겠지. 문제는 윗선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김현성을 경계하라고.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반격해 오는 그의 행보를 보았을 때, 고등학생이라고 만만히 보았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너, 방금. 김현성과 전화를 하고 왔지? 그게 만약 김현성과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의도적으로 항복한 것이라면, 너희로 인한 위험을 우리가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잖아. 단 1%라도 위험을 안고 얻는 이득보다 너희를 죽이고 얻는 이득이 더욱 큰데 말이야.”
김현성의 발언.
조사실에서 했던 언행이 문제가 되었다.
경찰의 입을 통해서 윗선에 전해졌고, 다시 감사실까지 내려오는 동안 김현성이 어쩌면 천일 고등학교의 공격을 대비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거론되었다. 그렇다면 오대환과 김영철을 포섭할 이유가 있을까? 명진건설만큼의 가치가 없는 그들은, 완전히 짓밟음으로써 위험을 배제한 확실한 이득이 될 것이다.
고로.
“그냥 죽으라고, 이 양반아.”
외통수.
오대환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 * *
지옥 같았던 조사가 모두 끝났다.
김영철은 수업에도 배제되고 일찍 퇴근했지만, 해가 저물도록 집에는 돌아가지 못했다.
집 근처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서, 김영철은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물었다.
“하아.”
정말이지.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수십 년간 다닌 직장을 잃었다.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연금도 간당간당했고, 그동안 받아먹은 돈을 전부 벌금으로 토해 내면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동안 가정을 위해서 더럽게 살았다고 호소라도 할 수 있지만, 불륜은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이민영과의 불륜.
모두가 알아 버렸다.
와이프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그걸 해명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빈털터리가 된 지금. 와이프랑 이혼까지 하면 완전히 끝이야. 이민영, 그년도 지 남편에게 해명할 생각에 나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자고도 했고. 어떻게 하지?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지?’
툭.
필터까지 빨아들인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이미 발밑에는 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김영철은 병에 걸린 사람처럼 다음 담배를 물었다.
“김현성, 그 개새끼가 문제야. 감사과 애들을 막아 줬으면 애초에 이런 문제도 없었을 텐데.”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김현성.
그와의 인연이 행운인 줄 알았다.
명진건설에서 뒷돈을 받고 매일같이 가라오케를 들락거릴 때만 하더라도, 지금이 김영철 인생 최대의 전성기라고 확신했다. 지금은 끈 떨어진 연에 불과했다. 창백한 얼굴로 상담실을 나서는 오대환의 모습에,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진실을 물은 김영철에게 오대환은 이렇게 반응했다.
“형님. 어떻게…….”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꺼져, 이 새끼야!”
끝났다.
지금 살아남을 방법은.
어떻게든 해명하는 것밖에 없었다.
마지막 담배를 버렸다.
김영철은 숨을 고르고는, 그럴듯하게 구상한 변명을 수차례 되새기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문을 열었을 때.
“여보…….”
“이런 미친 새끼가 감히 바람을 피워?”
짜악!
곧바로 뺨이 날아갔다.
* * *
뺨이 얼얼했다.
평소라면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어야 할 상황이지만, 잘못한 게 있는 김영철로서는 황급히 와이프를 제지했다.
“여보, 여보! 제발 내 말 좀 들어 줘!”
“지금 네가 할 말이 있다고?”
“그래, 진짜 나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니까?”
와이프의 눈이 돌아갔다.
김영철을 수차례 가격하던 그녀가, 숨을 고르며 사나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디 말해 봐. 어떤 개소리를 하는지 한번 지켜나 보자.”
겨우 진정시켰다.
마지막 기회였다.
김영철은 침착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말했다.
“이건 모함이야.”
“모함? 어떤 미친놈이 이딴 모함을 해!”
“그래, 그게 상식적인 생각이겠지. 내가 여보 입장이었어도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여기에는 정말 복잡한 문제들이 있어. 골든 서클이라고, 이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있거든? 그 녀석들이 우리 학생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기에 내가 타협하지 않고 맞섰더니, 이런 모함으로 나를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어. 내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충분히 해명할 수 있어. 골든 서클이 어떤 집단이고, 이런 모함을 할 수 있는 나쁜 녀석들이라는 걸.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오대환 교장의 목도 날아갔다니까? 아아, 명진건설! 명진건설 사건도 모두 다 골든 서클의 소행이야.”
최대의 변명이었다.
발뺌하는 것.
이것밖에 없었다.
사실을 인정한다면,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작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네가 선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다가 음해를 당했다? 불륜 같은 건 저지른 적도 없고?”
“그렇다니까!”
“너 진짜 안 될 새끼구나.”
와이프가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실 한편에 놓인 상자를 들고 오더니, 김영철에게 보란 듯이 와르르 쏟아 냈다.
촤르르.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 이건……?”
김영철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수많은 사진이었다.
한두 장이 아니라, 족히 수백 장은 넘어 보이는 사진.
그곳에는 김영철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이민영과 각기 다른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
술집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여자를 끼고 노는 사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수백 장의 사진이 공통적으로 불륜을 말하는데,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얼어 있는 김영철에게 와이프가 소리쳤다.
“웬만해서는 널 용서하고 싶었어. 그런데 한두 번이라야지. 이딴 사진들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대체 어떻게 너랑 같이 살 수 있겠어? 당장 이혼 준비해.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내뱉은 네 주둥이가 가증스러워서라도 반드시 이혼할 거고, 네게 십 원 한 장 남기지 않고 위자료로 전부 뜯어 갈 거야.”
“여보!”
“어디서 여보래!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이 개새끼야!”
* * *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가정마저 잃어버린 지금, 김영철은 분노에 차오른 얼굴로 어디론가 향했다.
대산의 한 술집.
들어서자마자 김영철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전부 나와, 나오라고!”
콰앙!
우당탕!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을 걷어찼다.
의자를 내던지고 병을 깨부수며, 눈이 돌아가서 미친 듯이 행패를 부렸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대체 왜 그러세요?”
직원들이 황급히 달려 나와 막았다.
한창 영업 중이었는지 머리를 빼꼼히 내미는 손님들과 발을 동동 구르는 여직원들. 평소라면 선생으로서의 평판을 생각했을 김영철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든 걸 잃어버렸다. 직장도, 재산도, 가정도. 지금의 그에게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누군가’를 향한 거대한 분노밖에 없었다.
콱.
종업원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눈앞에 사진을 흔들었다.
“왜 그러냐고? 씨발,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사진이었다.
김영철이 술집에서 노는 사진.
“이 사진이 대체 어떻게 우리 마누라 수중에서 나와? 이 씨발놈들아. 상식적으로 술집 안에서 누군가 촬영하지 않고서는, 이런 사진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해명해 보라고. 이 술집 다 때려 부수기 전에 해명하라고!”
모텔로 들어간 사진?
그건 그럴 수 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따라붙은 누군가가 촬영했다면, 이민영과의 불륜은 증거를 남길 만한 상황이 많았다.
그런데 술집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 촬영한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상황을 준비한 배후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 악의에 열이 받았다. 대체 누구기에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단 말인가. 이미 다 끝나 버린 인생이라면, 그 누군가에게라도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내가 고소할 거야. 내 가정을 망친 대가로…….”
“김영철 씨. 전화 좀 받으시죠.”
그때였다.
한창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술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유선 전화기를 건넸다.
의아했다.
대체 누가?
그것도 가게로?
의문스럽다는 눈빛에, 남자가 설명했다.
“그쪽이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이걸 받으면 지금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순간.
눈빛이 변했다.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
그가 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철이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내뱉으려는데, 전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핸드폰을 받지 않으세요.]“너 설마…….”
눈을 부릅떴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예, 맞아요. 아내분께 불륜 증거를 보낸 사람이 바로 저예요.]전화기 너머의 상대.
그는 바로 김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