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90)
34. 고대하고 고대했던 순간 (10)
윤현민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식물인간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절대 김현성 본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김현성은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알았어. 김판호, 강동철로 저격하고, 내부자를 내세워 네 죄를 폭로해도 결국에는 복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거든. 마지막으로 목숨을 끊어 낼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도 너는 다시 일어나겠지. 그게 바로 권력자들의 삶이야. 그들이 움켜쥔 돈과 권력은 단순히 그들이 많은 것을 누리느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실패가 완벽한 파멸로 끝나지 않는 기회의 무한함을 뜻하지.”
상상 속.
번번이 계획에 실패했다.
상식의 영역에서 윤현민을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말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등에 업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결국에는 살아남고 말았다.
지금도 그랬다.
웬만한 권력자들의 숨통을 끊을 만큼 충분히 몰아붙였고, 내부자 폭로는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경철이 대신 모든 것을 떠안았다. 검찰과 언론은 합을 맞춘 것처럼 이경철의 문제로 끝내 버렸고, 눈앞에 존재하는 윤현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증명했다.
“그래서 사실 정말 간편한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어. 널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어떨까. 뒤에 있는 경호원을 믿고 나를 마주하는 그 안일함을 이용해, 그냥 사지를 쑤셔 버리면 어떨까. 그럼 정말 편하게 복수할 수 있을 텐데.”
“이 새끼가!”
슥.
경호원들이 발끈했다.
윤현민은 굳은 얼굴로 그들을 제지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복수가 아니야. 너무 간편하잖아. 죽음으로 안식을 찾는다면 그건 불공평하잖아. 무려 10년이야. 억겁(億劫)의 굴레에 갇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던 고통. 난 네가 그만한 고통을 겪길 바라. 지금 네가 이경철의 죽음으로 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 정도로 끝내 주었기 때문이야. 난 아직 전부를 보여 주지 않았거든. 널 죽이지 않고도 네게 복수할 정말 좋은 계획이 떠올랐거든.”
활짝, 웃었다.
악마를 바라보며 웃었던 것처럼.
김현성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참 다행이야. 네가 밑바닥을 경험해 보지 못한 가진 사람이라는 게. 곧 보여 줄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그런 삶을.”
* * *
김현성이 떠났다.
그를 붙잡지는 않았다.
경호원들이 당장에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윤현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 처리하면.
흔적이 남는다.
김현성의 말처럼, 애초에 그럴 의도였다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김현성의 정체는 대체 뭐야?’
비현실적이었다.
김현성이 미친 사람처럼 떠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숨이 막힐 듯이 진득하게 풍겨 오는 살의(殺意).
사실 굳이 김현성을 만나러 찾아온 이유는, 일련의 상황에 절망하고 있을 김현성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불안함이었다. 김현성을 상대로 매번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난생처음으로 위기라는 것을 경험했다. 김현성을 협박하고 그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한 심장이 진정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김현성이 내뱉은 이야기는, 서늘한 감각을 풍기며 숨통을 조였다.
식물인간 이야기가 본인의 경험이라고 말한 것은 믿지 않았다.
김현성은 살아온 행적이 명확하기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다만.
김현성 주변에 그런 사연을 지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골든 서클의 악행은 켜켜이 쌓였고, 갑작스럽게 그런 사연이 튀어나온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수많은 의뢰, 수많은 피해자. 그 결과를 모르고 지금껏 일을 벌여 온 건 아니었다.
‘김현성은 위험한 녀석이야. 무엇을 계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본인이 의도한 바가 실패한다면 본인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날 죽이려고 하겠지. 살인이야말로 가장 간편하게 복수하는 방법이지만,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망설이지 않을 악의를 나는 봤어.’
의문이 해소되었다.
그동안 고등학생을 상대로 궁지에 몰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김현성이 분출하는 집념에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의 파멸을 저 정도로 열망한다면. 결과가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현민의 패착은, 김현성을 지금껏 ‘상식적인 범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윤현민이 말했다.
“그래, 김현성은 살려 둘 수 없겠어. 저 녀석이 죽고 내가 어떤 음모에 휩싸이든, 그건 반드시 필요한 희생이야.”
“바로 쫓아갈까요?”
“아니.”
고개를 저었다.
김현성은 목숨을 걸었다.
스스로를 희생해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말이, 단순한 위협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딱 일주일. 일주일만 지나면 그냥 죽여 버려.”
이제는 인정했다.
김현성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존재였다.
* * *
김현성은 오랜만에 대산으로 내려갔다.
혼자서 움직였고, 버스로 이동하는 길에 저물어 가는 해가 보였다.
천일 고등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날은 밝았으나 학생들은 이미 모두 하교한 상태였다.
걸음을 옮겼다.
경비와는 이미 얘기가 되었기에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괴롭힘이 시작되었던, 그리고 회귀의 시작점.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었다.
김현성은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며 이정민을 도와주었던 선택을 수도 없이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정민을 괴롭히던 박민철 패거리. 그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들의 배후인 골든 서클이 문제인 것이다. 친구들의 괴롭힘에 지옥을 경험했을 이정민은, 설령 자신을 도와준 친구를 외면했다고 해도 그 선택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피해자였으니까.
피해자의 비겁함은 생존의 본능일 뿐이지, 가해자와 동일 선상으로 놓을 만큼 잘못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해했다.
이정민의 상황을.
이정민의 감정을.
김현성을 제외한 모두가 학교 폭력을 방관했던 것처럼, 이정민은 본인이 방관자로 물러날 수 있는 상황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을 뿐이다.
참 역겨운 세상이었다.
미성년자는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본인의 폭력이 상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 재밌자고 때리고 괴롭히는 일이. 피해자가 성인이 되고서도 십수 년이 지나도록, 폭력의 기억에 갇혀서 어긋난 삶을 살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사회가 그를 바로잡아야 하고, 어른들이 나서야 하건만, 천일 고등학교를 비롯한 이 세상은 글러 먹었다.
모두의 잘못이었다.
골든 서클이 무럭무럭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윤현민이라는 원인과 사회의 방관 때문이었다.
‘골든 서클이 처음 세력을 형성하기 전에, 단순한 학교 폭력이 아니라 큰 문제로 여기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윤현민은 분명히 이 사업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겠지. 적은 노력으로도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는 구조로 인해, 지금의 골든 서클은 괴물이 되었어.’
걸음을 옮겼다.
1학년 1반을 지나.
교무실을 보았다.
김영철, 오대환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계단을 올랐고, 2학년을 지나 3학년 교실에 도달했다.
신영민을 들이받겠다고 처음 3학년 교실을 찾아올 때만 하더라도, 불확실한 계획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목숨을 걸고 얻은 기회이기에. 물러나는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김현성을 상대하는 적들은 항상 목숨을 거는 집념이 단순한 독기라고 생각했지만, 김현성은 매번 진심이었다. 신영민을 창문으로 밀었다가 같이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아무리 계획을 구상했다고 한들, 가상의 세계에서 만든 그 계획은 집념으로 부족함을 메워야 했다.
그렇게 걷다가.
끼익-
옥상에 도달했다.
난간에 다가갔다.
떨어지면 사람이 충분히 죽을 만한 높이에, 김현성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한 달 전.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물감처럼 번져 나갔다.
* * *
수능을 앞둔 어느 날.
학생들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김현성은 모자를 푹 눌러쓴 상태로 천일 고등학교 옥상에 올랐다.
스스스-
바람이 불었다.
어두운 기운의 그것은, 무형의 존재가 있음을 알렸다.
[왜 아직도 복수를 끝내지 않았지? 오늘 너는 약속을 이행해야 할 텐데.]오늘이었다.
김현성이 옥상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었던 날이.
악마와의 계약대로라면 김현성은 지금 투신해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복수라는 일념 하나로 나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골든 서클의 피해자들은 항상 삶이 무너져 있었어요. 복수를 이룬다고 한들 회복할 수 없는 그들의 아픔은, 결국에 그들이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짐인 거겠죠. 그 사실에 진심으로 화가 났어요. 그 사람들은, 그리고 저는.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에요. 복수를 이룬다고 한들 승자가 없는 싸움이라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복수라고 할 수 없겠죠.”
복수를 위해.
죽음을 결심했다.
하지만 죽지 않고도 복수를 이룬다면,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현진이도, 김시우도.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제 복수는 윤현민을 죽이는 게 아니에요. 그를 무너트리고, 제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 왔던 삶. 할머니와 동생과 친구들과 남들처럼 똑같이 일상적으로 어울려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삶. 피해자도 행복할 자격이 있잖아요. 가해자로 인해 피해자가 같이 파멸해야 한다면, 그건 복수가 아닌 공멸이라고 표현해야겠죠. 그리고 당신과의 계약은 제 복수가 끝나야 이행하는 조건이었으니, 완벽한 복수를 이루어 내지 못한 지금 계약을 이행할 이유는 없어요.”
[그건 모순이다.]“알아요, 모순인 거. 그런데 애초에 제게 죽음을 강요할 수 있었다면.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존재였다면. 회귀라는 번거로운 방법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겠죠. 계약이 강제적으로 이행되기를 바란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 주세요. 당장에라도 윤현민을 죽여서 마지막 후회라도 남기지 않을 테니까.”
모르겠다.
이 논리가 통할지를.
김현성은 그저 살고 싶어 발악할 뿐이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초월적인 존재.
그것은 신의 뜻을 따를 뿐이었다.
정적을 뚫고, 공명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네가 죽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네 의지도. 모두 운명의 일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휘잉.
바람이 불었다.
검은 바람은, 그대로 난간 너머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난 이번에도. 운명처럼 네 죽음을 강제하지 못했다. 이번 삶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 *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날이 있던 이후로 한 달이 지났다.
자신은 죽지 않았다.
계약의 이행은 강제되지 않았고, 모순덩어리였던 주장은 삶을 연명할 기회를 주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진행하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제 희망이 있어.’
목숨을 걸고.
이 모든 것을 끝냈을 때.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
숨을 크게 들이켰다.
예전에는 옥상이 떠올리기도 싫은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머릿속에서 지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그런 기억들이 있었기에 김현성은 과거를 이겨 낼 수 있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공멸이라는 가해자가 기뻐할 결말이 아니라, 일방적인 파멸이라는 이상적인 결말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정말 마지막이야.’
걸음을 돌렸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