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징병제 폐지
그간 유지하의 기자회견은 많은 시선을 끌어왔다.
발표만 했다 하면 관련 업계가 뒤집어지니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극이 계속되면 면역이 된다고 하던가?
회견장에 착석한 기자들은 워낙 충격적인 발표를 많이 접했는지라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전술핵과 맞먹는 위력의 폭탄이나 화성까지 1개월 안에 주파하는 우주선 계획까지 들었는데 더 이상 놀랄 게 없지.”
“갑자기 대통령 그만둔다고 하면 조금 놀라긴 하겠네요.”
“야이,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끝장이잖아.”
한국을 벼르고 있는 국가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유지하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은 기자들이었지만 정작 유지하가 입을 열자 귀를 의심했다.
“오늘부로 징병제를 폐지합니다. 군은 더 이상 신병을 받지 않을 것이고 현재 훈련소에 입교한 인원의 복무는 단축됩니다.”
그 외에도 국방비 삭감 등 이슈가 있었지만 기자들의 뇌리에 떠오른 헤드라인은 하나뿐이었다.
―대한민국 징병제 드디어 폐지되나?
―수십 년 동안 한국 남자들을 울고 웃게 한 제도가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각계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지겠지만 유지하는 그런 싸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그가 발표를 했다는 건 모든 계산을 끝내 놓은 뒤라는 걸 배양육 사태에서 확인한 바 있지 않은가.
타타탁 타이핑 소리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몇 가지 조치가 더 발표되었다.
그동안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느라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안이 주류를 이뤘다.
“조국을 지키느라 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유지하가 연단에서 물러나 상체를 숙이자 기자회견장이 고요해졌다.
회견을 티비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잠시 숙연해졌다.
―독재자지만 최소한 고마움을 표시할 줄은 아는 사람이구나…….
―최소 한국의 징집률이 비정상적이었다 거 인정하긴 하네. 97.8%는 씨발 외계인이 쳐들어와도 이렇게는 못 모아.
―하, 군에 버렸던 내 인생 2년이 생각나네. 안드로이드 할인권 준다고 하니 참는다.
―정신 차려. 저런 것도 다 쇼야.
다양한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문이 떠올랐다.
징병제를 폐지한다 치고 그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현재 40만에 육박하는 국군 중에서 병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60%에 달한다.
병력 자원 자체가 줄어들어 간부 중심의 군을 꾸리겠다고 천명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지만 아직도 병사는 많았다.
물론 이 인원이 한꺼번에 제대하진 않겠지만 각종 훈련과 경계, 작전에 차질을 빚을 것은 명백해 보였다.
당장 서해 유전에선 한국 군함이 중국 해군과 대치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하고 국경선 마주하고 있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대책은 있는지 모르겠네.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 건 아니겠지?
―유지하가 그럴 사람임? 저 머릿속엔 구체적인 계획까지 다 들어 있을걸.
―유지하 머리가 아니라 메타버스 본사 지하에 있겠지.
―그나저나 징병제 폐지하면 감군을 한다는 건데 간부들도 많이 썰려 나가겠네.
―한국 정도의 체급에 40만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는데 이걸 축소하려고 하네. 인공지능으로 때울 생각인가?
―해전하고 공중전은 그렇다 쳐도 지상전은 어떻게 수행하지? 전쟁을 시작하는 건 포병이고 끝내는 건 보병이야.
―드론하고 안드로이드로 커버하고 모자라면 또 신무기 발표하겠지, 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컴뱃 워커가 발표되었다.
사람들은 기존의 워커조차 생소했는데 육중한 체형의 로봇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컴뱃 워커는 기존의 안드로이드와 달리 거칠고 급변하는 전투 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더 이상 로켓포 한 방에 무력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란에서 안드로이드가 로켓포 맞고 박살난 게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나 보다.
컴뱃 워커의 사이즈는 인간과 비슷했지만 프레임이 튼튼하고 출력이 높아서 다양한 무장을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40mm 구경의 K40 기관포를 단독으로 운용하는 장면입니다. 적어도 화력 면에선 부족할 일이 없겠죠.”
인간 사이즈에서 무게중심을 어떻게 바꿀 건가 하는 의혹이 피어올랐지만 다리 프레임이 넓게 변형되어 지지대를 만들었다.
기본이 워커라서 저렇게 변형해도 별 무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거대한 기관포를 든 컴뱃 워커는 퉁퉁 하며 신나게 포탄을 쏘아 댔다.
조준 시스템도 정확한지 2km 밖의 목표물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이거 실화냐고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터미네이터가 따로 없네.
―잠깐만, 저거 이온 추진기 아냐? 하늘을 날 수도 있는 거임?
―잠깐이라고 표현한 거 봐서 오래 비행하는 건 힘드나 봄.
―살짝 점프할 수만 있어도 전술 자체가 달라지지. 미래형 중장보병 진짜 죽이네.
―저거에 대응하려면 뭘 찍어 내야 되나? 전투장갑차?
―소형 레일건까지 장착하는데 전투장갑차로 대응이 될까 모르겠네.
―워낙 튼튼해서 잘 부서지지도 않고 트랜스폼으로 야전 수리도 간단하고… 대체 단점이 뭐냐?
―비싸다는 거?
―저기에 투입된 기술이 대체 몇 개냐… 남들은 하나라도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예산을 털어 넣는데 저 작은 사이즈에 집어넣었네.
블랙메탈 프레임에 배터리, 이온 추진기와 인공지능, 레일건까지 그야말로 신라그룹 기술력의 총체라고 할 수 있었다.
화룡점정은 소형 로켓으로, 하프늄2 탄두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탄두가 작긴 하지만 TNT 환산 10톤에 가깝다.
다른 나라가 폭격기 등을 동원해 운용하는 대형 폭탄을 일개 로봇이 뻥뻥 쏴 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등이 하프늄2 화약에 대한 성과를 거두고는 있지만 역시 한국을 따라가기엔 멀었다는 평이었다.
―이제부터 유지하를 건드리면 드론이나 안드로이드 대신 저게 날아오게 생겼음.
―약소국은 한 대만 떨궈도 바로 항복이야. 어떻게 대응하냐, 저거.
―전투헬기 호출해서 원거리에서 대전차미사일 발사하는 수밖에 없는 듯.
―건물 뒤에 숨어서 레일건만 내밀고 쏴 대면 상대편 입장에선 참 재미없겠네.
―답도 없는 괴물을 만들어 냈어.
한국 네티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외국에선 주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스펙이 너무 부풀려진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저 동체에 들어가는 배터리 사이즈로는 절대 저만한 출력을 내는 게 불가능해. 아무리 블랙메탈 배터리라도 불가능하다고.
―재밍 한 방이면 깡통 되겠는데. 전자전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되어 있나? 저 작은 사이즈에?
―하프늄2 폭약 생산 공정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하는데 저걸 상시 가지고 다닐 수는 없을 거야.
―여긴 앵무새들밖에 없나? 불가능하다는 말 말고 다른 말은 없어?
―갑자기 무서워지는데. 저런 걸 만들어 낸다는 건 누구와 싸울 거라는 뜻이잖아.
―글쎄, 징병제 폐지하고 국방비를 삭감할 계획이라는데?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인가 보지.
공백을 메우는 무기 체계치고는 화력이 과도하다는 평가가 주류였고 진짜 목적에 대해서는 유지하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표정으로 감군 계획까지 발표했다.
“현재 입대하는 장병들은 단축 복무의 적용을 받습니다. 1년 후에는 군에 병사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므로 감군이 필수적이겠죠.”
결과적으로 16만에 달하는 간부의 규모를 1년 후에는 30%까지 축소하고 2년 뒤에는 10%만 남긴다는 계획이었다.
이건 감군이 아니라 해체라고 표현해야 할 극단적인 조치였다.
현역 장교들을 포함해 퇴역 장성들, 군에 물자를 공급하는 군인공제회와 각종 기업, 군으로 먹고사는 지역까지 들고 일어났다.
* * *
―정말이지 너무한다. 징병제 폐지에 이어 해체 수준의 감군이라니.
―우리가 2차 한국전쟁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치렀나. 유지하 대통령이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 허용도 타격이 컸는데 징병제까지 폐지하면 우린 뭘 먹고 사나.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데 북한 지역 경계는 어떻게 하려고? 드론과 안드로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인가?
―항의하자. 단체로 몰려가면 우리 의견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나 단체는 없었다.
지금껏 유지하가 걸어온 행적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싸우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놓고 밀어붙일 뿐.
이런 극단적인 계획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는 건 대비책이 다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체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비역 장성들이었다.
이들은 후배들의 청에 하는 수 없이 청원을 넣어 유지하와 대면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지하의 질문 하나에 그들은 말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장군들의 일자리를 위해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까?”
“…….”
예비역 장군들은 눈치만 보다 미리 준비해 온 변명거리를 끄집어냈다.
이렇게 말하면 박살 날 것임을 뻔히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북한 지역의 치안을 유지해야 하므로 적정 규모의 병력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경계를 위해선 최소 30만은 있어야 합니다.”
“정말 그런지 한번 볼까요?”
유지하의 전매특허 데이터로 논리 박살 내기가 나왔다.
“우선 북한 지역의 치안은 경찰과 드론으로 대부분 해결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100만 대의 드론을 도입했음에도 경찰을 축소하지 않은 줄 압니까? 여기에 투입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북한 지역의 치안 유지 현황을 보여 주자 그 주장을 꺼낸 예비역은 침묵했다.
중국의 국경선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대부분의 병력은 전투부대에 몰려 있고 경계는 드론이 맡고 있기 때문.
“그 전투부대를 이제 컴뱃 워커로 대체할 겁니다. 하늘? 무인 전투기 캘리버 드론이 있죠. 바다는 어스 플릿의 구형 플랫폼을 가져올 겁니다. 또 꺼낼 게 있습니까?”
분위기가 이래서야 해병대나 특수부대를 꺼내도 안 먹힐 것 같았다.
전자는 국군 내부에서도 이제 필요성을 부정당하는 형편이었고 후자도 안드로이드의 출현으로 파이가 줄어들고 있었다.
당장 대테러 작전을 전담하는 안드로이드 부대가 창설된 판국에.
유지하는 거기에 더해 장군들의 명치에 치명타를 꽂았다.
“소장 한 명당 들어가는 비용은 1년에 5억 가까이 됩니다. 기본 연봉에 관용차에 관사에 비서에 운전병에… 나로서는 지출에 합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5억이면 컴뱃 워커 두 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이겠습니까?”
누가 봐도 컴뱃 워커 쪽이 효율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효율만이 다는 아니라고 말했다간 그야말로 박살이 난다.
적군을 죽이기 위한 목적 외에는 쓸모도 없는 게 군대인데 효율 이외에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유지하는 완전히 풀이 죽은 예비역들 앞에서 말했다.
“군 간부의 규모를 10%까지 감축하면 그 돈으로 훨씬 강력한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효율이고, 나에게는 선입니다. 연금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끝냅시다.”
연금까지 건드리려 했단 말인가?
예비역 장군들은 당황하는 한편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차피 그들 입장에선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역들이 안 나서는데 우리가 총대를 멜 필요는 없지 않나?’
‘연금은 안 건드린다고 공언했으니 이쯤에서 빠지는 게 모양새가…….’
그렇게 예비역 장군들의 항의는 와해되었다.
현역들은 특성상 불만이 있어도 항명으로 비쳐질까 봐 함부로 표현할 수 없었고 군인공제회는 입을 열려 했다가 유지하의 선제공격을 맞아야 했다.
“지난해 운용 자산이 10조가 넘지요? 거래하고 대출 내역 전부 제출하십시오. 그리고 산하 사업체 채용 내역까지 다 까 봅시다.”
루시아가 동원되면 평생 산에서 살아온 사람의 죄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언급했다는 건 이미 루시아가 움직였다는 얘기와 같았다.
며칠 지나지도 않아 여러 비리가 적발되었고 친척 채용 의혹도 새로이 드러났다.
군인공제회 간부들 중 돈을 안 받아먹은 사람이 없다는 게 밝혀지자 안 그래도 차가웠던 여론이 완전히 냉각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군인공제회 저것들도 완전 모기란 말이지. 그동안 군에 빨대 꽂고 잘 빨아 왔을 거야.
―납품하는 군용품도 하나같이 개판에 성능 이슈가 없었던 적이 없어. 이참에 뿌리부터 뽑았으면 좋겠네.
유지하는 뿌리를 뽑는 게 아니라 화단 자체를 부숴 버린다.
비리에 연관된 군인공제회 간부 전원이 테라 섬으로 끌려갔고 조직은 그대로 해체되었다.
운용 자금과 자산은 전부 국고에 귀속되어 앞으로 인공지능이 투자해 간부에 돌려줄 계획이었다.
이렇듯 군인공제회가 깔끔하게 사라지자 나머지 세력은 나설 생각조차 못 했다.
그나마 군부대가 위치한 지역에서 이대로는 굶어 죽는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네티즌들의 냉소만 받을 뿐이었다.
―수십 년 동안 군인들 피 빨아먹었으면 그만할 때도 됐지.
―부대 위수 지역 확대할 때도 징징, 스마트폰 허용했을 때도 징징, 마지막까지 징징이야?
―이젠 북한이 없으니 안보 핑계는 못 대겠네.
양심적으로 장사하던 업주들도 많지만 군인과 일반인을 차별한 사례가 넘쳐나 도저히 반박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기타 자잘한 불만은 유지하의 선언에 명분을 잃고 말았다.
“그간 우리 사회는 남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해 왔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끌고 가놓고 대우는 그야말로 처참했죠. 그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의 선언을 들은 많은 남자들이 공감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적지 않은 그림자가 군대에서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치솟는 자살률, 2년의 시간을 군대에서 보냄으로 인한 사회적 공백까지…….
유지하는 그 지긋지긋한 제도에 종말을 고했다.
“오늘로서 징병제뿐만이 아니라 예비군, 민방위까지 함께 끝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는 사회인으로서 활동하길 기대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났고 대한민국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군 입대를 앞둔 20대 남자들이 거리로 나와 유지하 만세를 외쳐 댔다.
“씨발, 군대 안 간다!”
“유지하 총통 만세에! 제발 계속 독재해 주세요!”
예비역들이야 안드로이드나 전기차 할인권을 받아서 만족했지만 현재 군에 들어가 있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단축 복무를 약속받았지만 최소 몇 개월은 군에서 굴러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최전방이 양구 철원이 아니라 북한 지역이었다.
“대통령님, 가을에 영하 10도는 선 넘은 거 아닙니까. 제발 꺼내 주세요…….”
“주말에 외출 나와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갈 데가 없습니다…….”
현재 북한 전역은 메가시티 노스를 중심으로 한창 재건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병사들이 놀 만한 곳이 없었다.
이에 유지하는 신라그룹에서 운용중인 수송기를 이용해 주말 외출을 나온 병사들을 빠르게 데려오기로 했다.
이렇듯 병사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현역 군 간부들만 남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특히 평생을 군에 몸담아 온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심했다.
군을 자신의 보금자리 삼아 일해 왔는데 갑자기 그게 사라지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들을 위로한 것은 일자리 상담 차 부대를 방문한 안드로이드였다.
“지금 동시베리아 자원 개발에 참여하세요. 연봉도 두둑할뿐더러 지낼 집까지 제공해 드립니다!”
“러시아어를 못하신다고요? 요즘 세상 좋잖아요. 루시아 프리미엄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실시간 번역 기능만 있으면 러시아 아가씨도 이미 당신의 포로!”
약간의 거짓말이 섞인 것 같지만 어쨌든 크게 틀린 건 없었다.
가족이 있는 간부들은 내키지 않아했지만 젊은 간부들은 꽤 솔깃했는지 줄을 서서 상담했다.
따지고 보면 서부 개척 시대와 같은 상황 아닌가?
몇 년만 고생하면 목돈을 만들 수 있고 어쩌면 대박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주말마다 비행기로 한국에 다녀올 수 있으니까 크게 외롭진 않을 겁니다.”
“이참에 러시아어나 배워 봐?”
나머지 인원은 장차 신라그룹에서 확장할 사업에 지원하면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렇듯 충격이 흡수되자 일부 간부를 제외하고 거부감은 극도로 줄어들었다.
감군위원회가 설립되어 전역원을 받았고 필요 없는 시설들은 철거의 대상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에 뿌리내린 부대를 철거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어서 한동안은 전국이 몸살을 앓을 예정이었다.
국방부를 비롯한 행정 조직에도 상당한 칼질이 가해졌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스마트 팩토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드론과 안드로이드, 그리고 컴뱃 워커였다.
이들은 군용 수송기와 열차 등에 실려 전국 각지에 흩어졌다.
또한 스타필드에서 본격적으로 위성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형 GPS를 내세웠지만 그 실체는 양자통신을 구현한 군사용 위성이었다.
태양동기궤도에 남은 자리가 별로 없었지만 이 위성군은 저궤도가 아니라 정지궤도에 위치한다.
양자통신 특성상 통신이 동시에 이루어지므로 정지궤도에서도 지연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굳이 정지궤도로 올라간 것은 다른 위성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요즘은 저궤도에 민간 위성이 너무 많아서 밤하늘이 어둡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렇듯 한국군이 양을 축소하고 질의 상승을 꾀하자 주변 국가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관심이 컸는데 전자가 조언과 거래 제안이라면 후자는 분노에 가까웠다.
―우리 해군과 황해에서 대치하는 상황인데도 감군을 한다고? 제정신인가?
―무인 플랫폼과 하프늄2 탄두를 믿고 저러는 모양인데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우리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스마트 팩토리가 있어도 단숨에 병력을 찍어 낼 순 없지 않은가? 병력 교체기인 지금이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만약 왕쉬안 상장이 황해에서 성과를 낸다면 그를 주석으로 추대해도 괜찮을 것이다.
다수의 공산당 국무위원이 그런 의향을 왕쉬안 상장에게 전했다.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중국은 지난 양안전쟁에서 크게 실패하고 국력 자체가 쇠퇴했지만 순수 군사력으로 따지면 아직 한국에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레일건함을 건조하고 아이언빔까지 역설계에 들어간 상태였다.
기습공격으로 적 함대를 무력화하고 핵전력으로 하프늄2 탄두를 상쇄한다면 한국을 억누를 수 있었다.
완전히 무릎 꿇리는 것은 미국이 아니면 어렵겠지만 유전에서 내쫓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왕쉬안 상장은 비로소 결심했다.
“한국이 확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 붙어야 할 상대라는 것은 명확합니다. 그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몇 명의 관료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