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협상이 아닌 통보
이번 동아시아 3국 전쟁은 여러모로 특이한 구석이 많았다.
글로벌 GDP 랭킹에서 6위 정도인 한국이 2, 3위와 양면전쟁을 했다는 점.
각국의 체급에도 불구하고 전쟁 자체는 비교적 빨리 끝났고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그렇게 크진 않았다는 점.
현대전을 뿌리부터 흔들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한국은 거대한 7군단을 베이징 코앞에 밀어 넣는데 성공했고 이는 중국 수뇌부의 조바심을 불러왔다.
또한 일본에는 소규모의 컴뱃 워커 부대를 투입해 파괴 공작을 벌임으로서 전쟁 역량을 효과적으로 소모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전쟁사에서 소수의 특수한 무기를 동원하는 것은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지하는 그런 전례를 깨버렸다.
―무엇보다 각국의 블랙메탈 연구 성과가 형편없다는 게 드러났다. 다들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한국산 무기는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전쟁은 3국의 전쟁이 아니라 유지하와 중국, 일본의 전쟁이다.
전후 협상도 상당히 특이했다.
원래 이런 협상에는 패전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제 3의 장소를 빌리게 된다.
동남아시아가 유력했는데 그중에서도 싱가포르는 자국의 호텔을 협상 장소로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협상단이 쓰는 비용도 그렇지만 홍보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지하의 한마디로 싱가포르의 그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협상은 12월 7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합니다. 시간은 아침 10시. 대단한 인원 필요 없으니까 수장이 직접 오십시오.”
3국의 수장이 모여 담판을 짓겠다는 말이다.
왕쉬안 상장과 아카기 관방장관은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패전국은 승전국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거추장스러운 의전이 모조리 생략되었고 양국의 수장은 최소한의 관료와 수행원만 대동한 채 한국을 찾았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료들이 옵저버로 참석한 자리에서 유지하는 벽에 걸린 동아시아 지도에 마커로 선을 죽죽 그었다.
꼭 어린애 장난 같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중국에 대한 조건은 이렇습니다.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영구히 한국에 양도한다. 내몽골 자치구를 100년 동안 한국에 조차한다.”
“일본은 규슈 아래의 섬 전체를 영구적으로 한국에 양도한다. 향후 10년 간 매년 100조 원을 한국에 지급한다. 이상입니다.”
“…….”
“그…….”
왕쉬안 상장과 아카기 관방장관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유지하의 성격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을 지배하면서 내뱉은 발언 중 유명한 게 하나 있다.
“경고하는데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두 번은 없을 테니까.”
이번 협상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베이징과 도쿄엔 한국군 7군단과 상륙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협상에 불복하고 일어서면 전쟁이 계속될 것이다.
유지하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보통이라면 UN이나 미국이 중재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러시아 측 관료들은 말 그대로 옵저버로서 기록만 충실히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티나 게레로 안보보좌관이 손을 들었다.
“한마디 해도 될까요.”
유지하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미국은 옵저버입니다.”
“압니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기억하십시오. 가혹한 배상은 증오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건 미국이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게레로 보좌관은 신기한 눈으로 유지하를 바라봤다.
보통 이런 협정을 맺을 땐 평화를 위한다는 구절도 명목상 집어넣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철저히 땅과 돈만 원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국력을 회복한 양국이 이를 갈며 재무장을 시도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도 승리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걸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녀는 입을 다물었고 유지하가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지금 바로 말하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카기 관방장관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유지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겠죠.”
아카기 장관은 그의 무뚝뚝한 표정에서 절대 타협이란 없을 것임을 짐작했다.
이건 협상이 아니라 통보였다.
슬픈 것은 일본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전쟁을 시작해 봐야 컴뱃 워커와 어스 플릿의 대응책이 없는 이상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을 뿐이었다.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왕쉬안 상장은 모처에 구금되어 있다가 안드로이드 부대에 의해 구출된 입장이라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유지하 대통령이 지지해 준다면 주석이 될 수 있다…….’
다 뜯기고 남은 거라곤 반쪽이지만 핵심은 자치구가 아니라 한족의 땅이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유지하에게 붙어 조국을 배신하는 것뿐이었다.
다만 여기에서 걸리는 게 있다면 주일미군이었다.
규슈 아래의 섬을 전부 양도하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미군의 처우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철수에 관해서는 미 의회가 권한을 쥐고 있었다.
한국이 오키나와를 집어삼킨다면 상당한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주일미군이 주한미군으로 변신할 수도 있으니까.
마침 유지하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주일미군은 당연히 철수하리라 믿습니다.”
“옵저버라서 말씀드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 백악관에 가서 전하십시오. 우리가 본격적인 행정 절차를 취하기 전에 병력 빼라고.”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의회와 이야기가…….”
“뭐 버텨 봐야 제 발로 나가게 될 테니 상관없겠군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게레로 보좌관이 그의 내심을 짐작하려 애쓰는데 유지하가 두 수장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서명하면 협상은 끝납니다. 세부적인 국경선 조정과 배상금 지급 일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있어야겠지만 큰 틀에서는 이게 끝입니다.”
무슨 놈의 전후 협상이 이렇게 빨리 끝난단 말인가?
두 수장은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서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
만찬까진 아니더라도 연회 정도는 기대했던 두 수장은 더 할 거 있느냐는 유지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해야 했다.
그리고 언론과의 대담에서 이번 협상의 주요 내용이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이 뒤집어졌다.
* * *
자국 땅을 내준다는 협상은 어느 시기건 환영받지 못한다.
그게 오랫동안 갈등을 쌓아올린 옆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우익들은 배상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규슈 아래의 섬을 모조리 한국에 넘긴다는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거기엔 오키나와도 포함되어 있다! 아카기 이 멍청이가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이번 협상은 총리가 한 게 아니므로 원천 무효다!
하지만 그들은 목소리를 충분히 낮추어야 했다.
한국 상륙군이 지금도 황거 주위에 떡하니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와 공안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불복해 봐야 의미 없는 일이었다.
여러 티브이 채널에서는 이번 협상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지만 그래서 다시 전쟁하자는 거냐는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UN이나 미국의 중재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요?”
“유지하 대통령은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마무리된 전쟁이므로 다른 곳의 개입은 허가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버렸다니 믿을 수 없네…….”
“그럼 오키나와의 미군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게 최대의 문제였다.
사실 우익들의 반발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부가 하기로 한 이상 이렇게라도 관계를 회복하면 좋다고 주장하는 친한파를 등에 업고 우익을 배척하면 되는 일이었다.
군부의 강경한 주장은 패전하면서 쑥 들어갔고 재계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어지간한 거 다 내줘도 좋다. 우리는 최소 독일 정도의 위치는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대립하는 바람에 러시아와 동급은 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유지하는 각국과의 우호도를 점수로 매기진 않았지만 세계에선 러시아를 1티어, 독일과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2티어로 분류하고 있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1티어였으나 최근에는 2티어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적절한 협상과 대가를 치러야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그게 싫어서 반도체로 압박했지만 오히려 자국의 기업들이 유지하의 목줄에 매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 분류표에 의하면 EU와 중국, 일본은 아예 논외였다.
워낙 갈등이 깊어서 이렇다 할 계기가 있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꽉 막힌 가운데 일본은 한국과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비록 패전국으로서의 협상이지만 그게 어딘가.
배상금 일정을 의논하기 위해 게이단렌의 인사들이 방한해 유지하를 만났다.
“요약하면 우리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민간에 한해서는 터치하지 않겠습니다.”
게이단렌 인사들의 눈이 커졌다.
“그 뜻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도입을 의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독일처럼은 안 되겠고 비용을 지불해야겠죠.”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따로 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분명히 악조건이지만 말도 붙여 보지 못하던 이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사실 일본 재계는 자국의 하이퍼맨과 에테르 연구소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폭동 직전이라는 흉흉한 소문과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보고서였다.
정부 입장에선 타산이 맞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에테르 기술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은 효율이 제일 중요했다.
일본 내에서 블랙메탈 배터리를 만들고 공급해 봐야 어디까지나 내수용이었다.
품질이 떨어져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이단렌 인사들은 유지하와 만나 대화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생각보다 친절하다. 일본인 자체에 큰 유감은 없는 것 같다.
―평소 스시도 즐기고 일본 문화를 상당히 존중하고 관심이 있다는 걸 느꼈다.
―방일의향을 물어봤는데,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당장은 어렵다고 한다. 나중에라도 추진하고 싶다.
만약 유지하가 일본을 방문한다면 두 번째가 된다.
처음엔 창고로 쓰던 곳에서 방치되었지만 두 번째는 좀 다를 것이다.
재계가 이렇듯 희망과 꿈에 부풀어 있는데 비해 양도의 대상이 된 오키나와 주민들은 황당한 입장이었다.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
―우리 의향을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해? 이래도 되는 거야?
사실 오키나와는 여러모로 일본 본토와는 이질적인 곳이었다.
문화도 다르고 소득 수준도 가장 낮아 반쯤 농담으로 외국 취급을 받기도 했다.
독립하자는 주장도 잊을 만하면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탓에 흐지부지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 땅이 되어 버렸으니 우려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젊은 주민들이었다.
―우리 대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현지사가 한국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는 중이다. 생각보다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일단 바뀌는 건 별로 없다고 한다. 제주도처럼 자치권을 주고, 일본어도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일자리는? 혹시 한국에 가서 일할 수 있는 건가?
―어렵지 않다고 들었다. 루시아가 있으면 통역이 가능하니까.
젊은 주민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한국을 하이테크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초기술이 도입되어 22세기 같다는 말이 자주 나왔고 일자리도 많다고 하니 기대할 수밖에.
실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안드로이드를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등 이국적인 건 확실했다.
유지하는 오키나와 현지사를 접견한 후 오키나와에 대한 처우를 확정지었다.
“오키나와는 특별자치도가 됩니다. 행정과 사법 등은 바뀌겠지만 일본어는 그대로 써도 되며 문화도 바뀌지 않습니다.”
단지 한국의 도가 되는 것뿐이다.
이렇게 대우하는 것은 유지하가 오키나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원을 수급하고 초공동열차를 운영할 바다였지 섬이 아니었다.
그래도 갑작스레 국적이 바뀐 오키나와 주민들을 달랠 뭔가가 필요했는데 핵융합 플랜트와 이온 생산시설의 유치가 발표되었다.
“앞으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전기 요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저렴한 가격에 이온 추진기를 어선에 장착할 수 있으며, 연료 또한 낮은 비용으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오키나와의 주 산업 중 하나가 어업이라 주민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매스 드라이버 도입까지 발표되자 오키나와 내에선 한국도 괜찮지 않나? 하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행정적인 절차가 남았고 주일미군 또한 뚜렷한 의향을 밝히지 않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주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반대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일본의 푸대접에 비하면 한국이 훨씬 낫다고 인정했다.
이렇듯 일본이 협상에 대해 그럭저럭 넘어간 반면 중국은 지옥처럼 타올랐다.
동북 3성에 내몽골 자치구가 포함되면 인구수가 1억을 가볍게 넘었다.
이들은 중국인이라는 것 자체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한국인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나섰다.
각지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곧이어 폭동으로 번졌다.
중국 본토의 반발도 장난이 아니었으나 군권을 틀어쥔 왕쉬안 상장이 지독하게 찍어 눌렀다.
그는 주석의 자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유지하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동아시아가 전후협상으로 불타오르는 가운데 미국이 오키나와 주일미군의 철수 문제로 협상을 요구해 왔다.
* * *
볼드윈 대통령은 시작부터 미 의회의 요구사항이라며 뻔뻔하게 나왔다.
“우리가 주일미군을 뺀다면 유 대통령은 뭘 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해 줘야 하는 사안입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비록 병력 규모가 30%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만 명을 넘습니다. 공군기지에 훈련장, 캠프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재원이 투입되었죠. 이걸 넘기는 대신 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겁니까?”
“내 입장에선 지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참고로 말하는데 내년부터는 분담금도 없습니다.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거 만만치 않군.
하지만 볼드윈 대통령도 이 사안에서는 물러날 수 없었다.
국내에 처리할 현안들이 산더미 같은데 의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행정명령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행정명령의 남발은 언론과 의회의 많은 비판을 받는다.
공화당이라면 모를까 그는 엄연히 민주당 출신 아닌가.
“유감입니다. 이번 사안에서는 물러날 수 없겠군요.”
“상관없습니다. 곧 자진 철수하게 될 테니까요.”
게레로 보좌관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이 자신감의 근원은 대체 뭘까?
볼드윈 대통령은 측근들과 회의한 끝에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좁히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딱 하나만 알려달라고 하십시오. 아이언 빔의 집속렌즈로 쓰이는 그 보석 말입니다.”
“좋아. 그것만 있으면 우리 방공망이 해결되겠군.”
미국이 동아시아 전쟁에서 큰 감명을 받은 게 있다면 바로 아이언 빔의 성능이었다.
이온 추진기야 국내 연구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고 레일건의 성능도 한국제의 85%까지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아이언 빔만큼은 도무지 그 출력을 낼 수가 없었다.
알고리즘이야 둘째치더라도 아무리 전력을 동원해도 사거리 10km를 넘어가는 레이저를 형성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여러 대학 연구소에선 집속렌즈가 매우 특수하다고 보고했다.
―크리스탈의 일종인 것 같은데 결정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경도도 상당히 높아서 다이아몬드에 필적합니다.
―아이언 빔을 역설계한 결과 이 집속렌즈가 성능을 좌우합니다. 알고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이게 핵심입니다.
심지어 지구의 보석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여튼 볼드윈 대통령은 이거 하나만 요구하기로 했다.
“아이언 빔에 들어가는 집속렌즈의 제조법을 알려 주면 주일미군을 다 빼겠습니다.”
“분명 봉인씰을 붙였던 것 같은데 다 뗐군요?”
모든 아이언 빔에는 봉인씰이 붙여져 있다.
이걸 떼면 기록이 남으며 바로 신라그룹의 서버에 통보가 간다.
유지하는 이걸 진작 알고 있었으나 여태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볼드윈 대통령은 뻔뻔하게 나왔다.
“한국도 미국의 무기를 자주 뜯어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어김없이 접근을 통제당했죠. 가끔은 의회가 수출을 막기도 했고요. 그걸 원합니까?”
“…….”
이렇게 깐깐하게 나올 줄은…….
한국은 전쟁에서 승전한 뒤 노골적으로 미국을 동아시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볼드윈 대통령도 부분적으로는 그 주장에 동의했지만 적당한 대가가 있다는 전제하에서였다.
“다시 제안하지요. 아이언 빔의 집속렌즈 제조법을 알려 주면 바로 주일미군을 철수시키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각종 현안에서 한국을 지지하겠습니다.”
“당연한 걸 선심 쓰듯 말하는 재주가 있군요. 거절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반 협박에 유지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국이 기술을 달라고 요구했고, 나는 거절했습니다. 단지 협상이 결렬된 것뿐인데 화를 낼 이유가 있습니까?”
“미국의 안보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죠.”
“그렇다면 주일미군도 뺄 수 없겠습니다.”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통화가 종료되고 볼드윈 대통령은 주일미군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정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숱한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현실성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푸틴 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뿐인데 사망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상황이 반전되긴 어려워 보였다.
“분담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티겠지만 우리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네. 중요한 건 아이언 빔이야.”
그게 있다면 미국은 더 이상 방공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레이저 무기를 전력화할 수도 있었다.
만약 무인기에 아이언 빔을 달 수 있다면 어떨까?
전력이 문제겠지만 전차에 레일건을 단 걸 보면 언젠가 해결될 것으로 그는 믿었다.
이렇듯 오키나와 주일미군을 두고 미국과 한국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을 무렵 러시아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푸틴 대통령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