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6
“여러 말 할 것 없다. 내일 당장 주식 매각 준비해라. 그리고 그놈과는 연 끊고!”
―할아버지···
“어허!”
대화는 여기에서 끝났다.
엿듣고 있던 유지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만의 왕국을 꾸릴 날이 머지않았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 2
신하윤은 몇 번이고 연락한 끝에야 유지하와 통화하는데 성공했다.
옆에서 그녀의 할아버지가 폰을 낚아챘다.
“나 하윤이 할아비 되는 사람일세.”
―신주호 회장님이셨군요. 저희는 현재 국내외의 사업제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시시한 제안이 아니야. 이 건을 놓치면 자네는 분명 후회할 걸.”
―지금 근무 중이라서 저녁에 뵙죠. 장소를 말씀해주시면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이것 봐라?
한성그룹의 명예회장을 저녁까지 기다리게 한다고?
신주호는 장소를 정한 후 통화를 끊었다.
“그때 내 앞에서 고개 푹 숙이고 있던 못난 놈이 맞는 게냐?”
“그때도 얼굴은 괜찮았잖아요.”
“사내놈이 얼굴만 뺀질뺀질했었지. 이번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면 되겠군.”
그는 이미 유지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까지 끝낸 상태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과연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라졌다.
얼굴만 좀 반반하던,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던 쓰레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신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는 기업가가 등장했다.
‘블랙메탈 개발권을 선취한 것만 봐도 절대 보통 놈이 아니야.’
가상화폐 투자 건은 또 어떤가?
한성그룹의 내로라하는 계열사들도 손절하고 나온 가상화폐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한 걸 보면 간이 몇 개인지 의심스럽다.
‘하긴 그런 놈이어야 만날 가치가 있지.’
처음 계획은 스마트폰용 배터리를 납품받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신주호는 진심으로 그라는 인간을 만나고 싶어졌다.
저녁이 되어 연희동의 저택에 도착한 유지하는 안내를 받아 정원에 발을 디뎠다.
가운데 정자에서 한복을 입은 신주호 회장과 신하윤이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게.”
신주호 회장은 그를 본 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전의 그 눈치만 보던 못난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여기가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듯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나무의자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유지하라고 합니다. 제안을 들어보기로 하죠.”
“이 사람아, 차도 안 나왔네. 뭐가 그렇게 급한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그러니까 시원찮은 제안을 하면 바로 일어날 거라는 말이 되겠다.
묵묵한 분위기에서 차가 나왔고 신 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개발한 그 신형 배터리, 우리에게 공급해주게.”
“우리라면, 전자 쪽입니까?”
“분석해보니까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적용하면 시너지가 굉장할 것 같더란 말이지. 넥시노스 칩이 풀로 돌아가면 M3 칩에도 뒤지지 않을 거야.”
분석한 게 아니고 미튜브 영상을 본 결과겠지만 유지하는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그건 애플도 마찬가지겠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희는 애플의 제안도 받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해보게. 최대한 맞춰주지.”
“이상한데요.”
“뭐가 말인가?”
유지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이 자리를 마련한 분은 회장님이시잖습니까? 저울추를 맞추셔야죠.”
“이거면 어떤가? 자네가 바라던 신라에너지의 주식을 넘겨주지.”
이 대목에서 신하윤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정작 유지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설마 자진 상장폐지를 계획하고 있던 게 아니란 말인가?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경영권 강화를 위해서지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경영권 강화치고는 보유주식이 너무 많지 않나? 그리고 명의 분산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내가 명동에 알아봤지만 소유주를 밝혀내지 못했을 정도니.”
“요즘 세상에 차명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신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순진한 척 하지 말게. 아무튼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이건가? 배터리 가지고 너무 유세를 떨어도 안 좋아.”
“그걸 그냥 배터리로 보셨습니까? 이거 실망인데요.”
“어차피 전기차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게 전부겠지.”
“원재료가 블랙메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죠. 산업현장의 각종 특수공구 수요가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그건 인정하네만 수요가 생각 외로 대단치가 않아.”
“잠수함은 어떻습니까. 블랙메탈 배터리로 축전지를 만들면 잠항시간이 몇 배로 늘어납니다. 방음, 방진에 신경을 덜 써도 되니 건조비도 줄어들겠죠.”
“으음···”
“육군도 난리를 치겠죠. 전차포의 철갑탄 탄자 일부분을 블랙메탈로 교체하기만 해도 엄청난 관통력을 자랑할 겁니다. 또 말씀드릴까요?”
“아니, 됐네.”
신 회장은 이쯤에서 백기를 들기로 했다.
애초에 급한 것이 유지하가 아니기 때문에 기세에서 지고 들어가는 면이 있었다.
또 병환에서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보 분석이 미흡했다.
“결론을 말하게. 뭘 더 얹어줘야 되겠나?”
“정 배터리를 원하신다면···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십시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되기 시작하는구만.”
“회장님의 간단한 지시 하나면 바로 이뤄질 겁니다. 계열사 중 하나가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하실 수 있겠죠.”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 전자나 반도체 쪽인가? 그건 절대 안 되네.”
“도둑놈도 아니고 그런 걸 원하겠습니까. 100억 남짓한 소소한 겁니다.”
“100억이 소소하다···사업이란 건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천시할 수 없는 거라네. 아무튼 핵심 계열사는 아니라 이거지?”
“예. 나중에 말씀드리면 겨우 이런 거였냐며 허탈해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들어보면 알겠지. 또 있나?”
“하나 더 있습니다만 그건 회장님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늙은이 앞에서 선문답 흉내 내는 게 아닐세.”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유지하는 신하윤이 따라준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일어났다.
그 매정한 뒷모습에서 신 회장은 그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아챘다.
‘내 손녀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거군.’
하윤이가 신라에너지의 지분 3%를 가지고 뭘 어떻게 했을지는 능히 짐작이 갔다.
어미를 닮은 그 성격에 난리를 쳐댔겠지.
‘참 아까운 놈이야···’
오늘 신 회장은 파혼 얘기를 없었던 걸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을 생각이었지만 곧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녀석이 하윤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거도 한 사이에 저리도 매정하다는 것은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뜻.
지금까지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던 하윤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 마음에 달렸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으응? 별 거 아니다. 넌 이 길로 집에 가 있거라. 내 나중에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네, 알겠습니다···”
신 회장은 비서와 함께 문을 나서는 손녀의 뒷모습을 보며 전화를 들었다.
“나다. 미국 지사에 자리 하나 있지? 없으면 만들어서 하윤이 거기로 보내. 뭐? 지금 내가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말이 말로 안 들리는 게냐? 그래···그래야지.”
유지하는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신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네 말대로 미국에 보냈네.
―전 미국에 보내라고 한 적이 없는데요. 하여튼 감사합니다. 플래그십에 넣는 배터리만큼은 공급해드리죠.
―참, 명함을 줘야 했는데 내가 깜빡했네. 다음에 차나 한 잔 하면서 주면 어떻겠나?
능구렁이 같은 할아범 같으니라고.
유지하는 웃으며 메시지를 써내려갔다.
.
.
.
유지하는 신라오토 임상현 사장에게 연락하려다가 멈칫했다.
다짜고짜 연락할 수 없으니 비서실을 거쳐야 하는데 귀찮았던 것이다.
“이래서 비서가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붙여준 김 과장은 속초로 보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그때 아르마가 넌지시 보고해왔다.
「마스터, 제 의체 관련해서 일단 프레임과 외형 설계가 끝났습니다」
“한 번 보지.”
곧이어 시야에 안드로이드 프레임과 금발을 가진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예전 심층의식에서 만난 아르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175cm는 될 법한 큰 키에 크림색의 머리카락과 단정한 외모가 매력적이었다.
안경을 낀 것은 멘탈 모델인 루시아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그러고 보니 루시아는 얼마든지 시력을 교정할 수 있음에도 안경을 고집했었지···
“흉부가 너무 크지 않나? 사람들이 다 거기만 쳐다보겠는데.”
「조금 줄여볼까요?」
“절반 이하로 줄여. 그리고 너무 예쁘니까 적당히 주름도 넣고. 키도 조금 줄이는 게 좋겠어.”
「마스터」
“왜?”
「허락해주신다면, 이 모습 그대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바꾸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뭐 안드로이드의 외형이 아주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까···
“알았어, 마음대로 해. 그러면 의체 제작은 언제 시작되지?”
「합성피질 제작과 동력, 무장 시스템에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900시간 정도입니다」
세틀러호가 정상이었다면 몇 시간 안에 완료될 작업이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자재가 부족해서 그런지 오래 걸리는군. 다른 안드로이드도 준비되는 대로 제작해. 참, 그쪽은 전부 남성형으로 하고.”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설정을 짜야겠는데. 갑자기 금발의 여성을 비서랍시고 데리고 다니면 어머니가 기절하실 테니까.”
「마스터께선 대학 시절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신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만난 것으로 하면 될까요?」
“그때 신하윤을 만났었나···이젠 미국 가버렸으니 상관없겠지. 적당히 앞뒤가 맞는 스토리를 짜서 알려줘.”
잠시 후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유지하는 신라오토 본관으로 가서 임상현 사장을 만났다.
“아이고···이게 누구신가 했더니.”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상당히 곤혹스런 표정이 묻어나는 것은 주먹다짐을 한 과거 때문이겠지.
이쪽은 기록으로만 전해 들었지만 임상현 사장은 주먹질을 한 장본인이니까.
“사장님 주먹이 너무 매워서 3년 동안 누워있었지 뭡니까.”
“하하···”
유지하는 너스레를 떨며 손을 내밀자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잡았다.
“그때는 제가 좀 미쳤었나 봅니다. 사장님께서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다소 굳었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아닙니다···나도 당시엔 스트레스 때문에 좀 욱하는 게 있었죠. 일단 앉읍시다.”
소파에 앉은 후 유지하가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차가 잘 안 팔리죠?”
“하하···이것 참. 뭐 회사 사정이야 잘 알고 오셨을 테니까···맞습니다. 매출이 매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차 자체는 괜찮던데요? 특히 디자인 쪽이.”
“지금 윈드러너를 타고 다니시죠? 그거 제가 디자인한 겁니다.”
“그 공로로 승진하셨군요?”
“뭐 그렇죠. 그런데 매출이 이래서야 회장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하하···”
그의 자조에선 계약 연장이 어려울 거란 체념이 숨겨져 있었다.
물론 신라오토의 전기차가 팔리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사장이라면 그런 상황까지 책임져야 하겠지만 누가 와도 해결하게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만···제가 배터리를 공급하겠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거요.”
임상현 사장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블랙메탈 배터리를 말입니까?”
“예.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개발할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탑재한다는 조건입니다.”
한껏 달아올랐던 흥분이 팍 가라앉았다.
현재 신라오토는 자회사 오토트론에서 자율주행 SOC를 공급받고 있었다.
비록 모듈을 들여와 조립만 한다는 비판을 듣긴 하지만 몇 안 되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까지 설계가 가능한 회사였다.
그런 회사조차 레벨 2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 이하라면 탑재할 가치가 없었다.
‘분명 유 사장의 전공은 알고리즘이었지···’
그가 알고리즘을 공부하던 시절은 이미 몇 년 전이다.
몇 개월만 뒤쳐져도 현업에선 못 써먹는 일이 허다한데 3년을 누워서 보낸 그가 제대로 된 알고리즘을 짜는 것은 불가능했다.
임상현 사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받아들일 수가 없겠습니다.”
“검증은 제대로 받을 테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사내 테스트부터 시작하시죠.”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지하가 제대로 된 물건만 만들어 오고 검증을 받는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 가능성이 0에 가까워서 문제지.
“만약 그 제안을 제가 받아들인다면···”
“윈드러너 차량에 한해서 블랙메탈 배터리를 공급하겠습니다. 전량.”
임상현 사장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시연회를 보며 얼마나 침을 흘렸던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유지하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결국 눈물을 삼키고 포기했다.
국내외 유수의 제조사들도 납품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신라오토에 돌아갈 물량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나 과거 주먹다짐으로 좋지 않은 과거가 있는 마당에.
그는 벌떡 일어서며 지하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엔 알고리즘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유지하는 사무실로 돌아와 지시했다.
“아르마, 서울 도로상황과 트래픽 시뮬레이션 가능하지?”
「알고리즘까지 이미 짜뒀습니다. 즉시 적용 가능합니다」
“신라오토 전기차에 탑재하는 모듈만으로 되는 거야?”
「물론입니다, 마스터」
구석에 철재 서랍장으로 위장하고 있던 워커 한 대가 벽면에 영상을 비추었다.
이 영상은 서울의 출근길 도로와 트래픽을 통째로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택시나 화물차, 배달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무단횡단자까지 전부 구현되어 있었다.
아르마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적용된 차량이 도로를 달렸다.
유지하는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너무 운전이 거친데?”
「서울에선 이 정도 운전은 기본이랍니다. 다른 차량이 끼워주질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끼어드는 꼼수는 너무하지 않나 싶다.
그 외에도 알고리즘은 다른 차량에 발맞춰 정지선을 위반하고 합류차선에 끼어들기 위해 머리부터 들이미는 행태를 보였다.
“조금 부드럽게 해봐.”
알고리즘의 공격성이 낮아지자 그제야 봐줄만한 주행이 나왔다.
아르마가 설계한 만큼 레벨5 자율주행도 가능하지만 아직은 하드웨어가 부족했다.
“그런 건 신라오토를 인수한 다음에 시작하자고.”
모빌리티 시스템에 있어서 유지하가 원하는 바는 메가시티를 구현하는 것이다.
메가시티는 인구수 1억을 감당하는 계획도시로, 대부분의 모빌리티는 지하의 언더시티에서 돌아다니게 된다.
즉 22세기에서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다만 이 메가시티를 21세기에 구현하려면 상당한 난관이 존재했다.
기존에 깔린 낡은 인프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아르마는 이 문제에 대해 몇 개의 솔루션을 제공했고 그 중의 하나가 완전히 새로운 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위치는 몇 곳의 후보지가 존재했지만 유지하의 마음에 드는 곳은 단 하나뿐이었다.
북태평양.
유지하의 눈이 미드웨이 환초 옆의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이웨이
1월 중순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 기업인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오찬의 특징이라면 각 그룹의 거목들은 거의 초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론들은 재벌 회장들이 서른 초반의 젊은 기업인과 겸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21세기 한국에 공식적인 계급은 없지만 격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재벌 회장들에게 있어서 유지하란 운 좋게 특수한 능력을 타고난 애송이에 불과했다.
유경석 회장도 아니고 그 아들인 유지하는 재벌 회장들과 동석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비서관들이 조율한 끝에 각 그룹의 실세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아르마가 시야에 자세한 정보를 표시해주었다.
「한성전자의 사장 신영준입니다. 얼마 전에 만나신 신주호 회장의 막내아들이죠」
「글로벌 케미컬의 대표이사입니다」
유지하는 일렬로 서서 차례대로 대통령과 악수하고 테이블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지나치게 평화로워서 이런 요식행위가 발전한 건가?’
그의 입장에서 의전이란 전혀 쓸모없는 행위일 뿐이었다.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류연합의 시민 대부분이 그런 인식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