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올 것이 왔다
배성민 비서실장은 복도를 걸어오는 유지하 대통령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군…….’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만 피했다.
만약 유지하가 사망하거나 미국의 의도대로 끌려 다녔더라면 인류연합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인공지능 루시아가 어떤 계획을 추진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능력으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인지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통령을 구출하는 건 어렵다는 뜻이고 그건 인류연합의 종말을 뜻한다.
현재의 인류연합은 독재국가의 특성상 유지하 한 명에게 과도하게 기대고 있었다.
그가 없어진다면 인류연합의 미래도 사라진다.
‘하지만 차악이 괜찮다는 건 아니다…….’
유지하가 복귀했다.
납치 기간은 하루 정도지만 미국이 용납하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는 건 명백했다.
이제 미국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 최소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초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 무거운 현실이 배성민 비서실장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집무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
“백악관에서 별일 없었습니까?”
“예, 간단한 심문 후 풀려났습니다. 쫓겨났다는 편이 정확하겠죠.”
대통령 내외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모르는 비서실장을 잡아둬 봐야 뭐하겠는가.
제임스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였다.
“아무튼 됐습니다. 이제 내가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처리한다…….
그 무엇보다 든든하면서도 심장 떨리는 발언이었다.
이제부터 전쟁 선언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배성민 비서실장은 고갯짓을 하는 대통령을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 명이 업무를 보기에 과도하게 넓은 이 공간에 방송 장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의 연락을 받고 비서실에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
사실 그가 어떻게 탈출했고 복귀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유지하는 연단 앞에 서서 사인을 받고 입을 열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은 내가 왜 이 자리에 섰으며 왜 분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미국을 믿고 기꺼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미국의 대통령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듯, 그들도 그러리라 믿었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배신했습니다.”
유독 배신이라는 글자가 강조되는 것은 배성민이 잘못 들어서가 아닐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진지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이는 이란과 파키스탄에 테러를 당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하긴 미국이 납치를 저지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유지하는 번스타인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 선지자의 유물까지 주었는데 말이다.
‘자작극 가능성은… 잊어버리기로 하자.’
자신부터 속여야 누가 물어봤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법이다.
배성민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나는 메릴랜드 주의 한 감금시설에 갇혀 있었습니다. 물론 내 부인도 함께였죠. 미국이 나를 잡아가둔 목적은 분명합니다. 내게서 기술을 빼앗고, 인류연합을 멋대로 통제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자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와 내 부인을 납치한 행위 어디에 미국의 긍정적인 가치가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유지하의 분노 섞인 발표는 세계 인구의 1/4가량이 시청하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인해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이 모두의 가슴을 내리눌렀다.
유지하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용서는 필요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항복할 때까지.”
이건 선전포고였다.
요즘 시대에 제대로 된 선전포고 따윈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유지하는 최소한의 관례는 지켰다.
협상을 위한 조건도 명확히 제시했다.
하지만 그건 제시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다.
무조건 항복은 미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바로 지금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연합과 미국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각국의 수장들은 유지하가 일체의 대화나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 데에 놀랐다.
이렇게 물러날 곳을 없애 버리면 출구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을 텐데?
―화가 난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과 붙기엔 인류연합의 종합적인 국력도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전투순양함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전쟁에 투입될 준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스 플릿은 미국이라면 어느 정도 대처법이 있을 것이다.
―반입자탄이 문제인데, 그걸 쓰면 미국도 1만 발에 육박하는 핵미사일을 아낌없이 퍼부을 것이다. 그 경우 공멸이다.
인류연합의 영토가 매우 넓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드넓은 만주와 동시베리아는 법적으로는 인류연합의 영토이지만 완벽히 흡수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주에 사는 조선족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형편인데.
다들 유지하가 미치광이 전략을 펴는 것이라 분석했다.
일단 질러놓고 좋은 조건으로 협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하일로프 대통령만큼은 유지하가 진지하게 전쟁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러시아가 도와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떤 경우든 인류연합을 지지한다고 발표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솔직히 말해 러시아가 나서기는 힘들었다.
러시아가 유럽에서나 강하지 대외로 전력을 투사할 형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핵전력만큼은 미국과 대등하지만 아이언 빔 때문에 상쇄되는 게 문제였다.
아무튼 미하일로프 대통령은 유지하가 돌아왔다는 것을 기뻐했다.
다른 국가의 수장들도 유지하가 복귀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으나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설득에 나섰다.
어떻게든 두 초강대국의 전쟁만큼은 막아 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 * *
유지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을 때부터 백악관 관료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실제 발표도 그랬다.
그는 담담하게 미국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토해냈고 마지막으로는 전쟁을 선포했다.
납치에 비하면 상당히 스마트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백악관은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선전포고를 받아들여 전쟁 준비를 할 것인가, 어떻게든 특사를 파견해 회피할 것인가?
당연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항상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는 더 그런데,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미군의 규모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으며 인류연합 때문에 영향력마저도 축소되었다.
미 해군 내부에서는 진지하게 항모전단 숫자를 7개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플레이그와의 전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무기 체계가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니고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11개의 항모전단은 미군의 상징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오벌 오피스엔 탄식이 흘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그의 탈출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볼살을 부들부들 떨더니 격정을 토해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감금시설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저기에 있는가 말이야!”
도망쳤으니까 그렇겠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은 대뜸 펜타곤을 의심했다.
“이놈들이 도주를 도와준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 만에 도망칠 수가 없어! 그렇지 않나?”
“…….”
사실 백악관 관료들도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지하가 초기술을 갖고 있다 해도 백악관의 이목을 끌지 않고 도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았다는 게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다들 콘래드 합참의장을 떠올렸고 그건 제임스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콘래드가 문제였군. 나한테 풀어줘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부터 수상쩍었는데. 당장 그를 쫓아내야겠어.”
관료들은 반쯤은 포기 상태였지만 그를 경질하겠다는 발언에는 기겁했다.
“대통령님, 그건 안 됩니다.”
“국방부 장관도 없는데 합참의장을 경질하면 누가 전쟁을 이끌겠습니까?”
“전쟁을 병사들이 하지 장군들이 하나? 이번 일에 관련된 놈들을 몽땅 쳐내야 돼. 내부의 적이라고!”
보좌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차라리 대통령을 무시하고 인류연합에 특사를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지하 대통령이 특사를 받아 줄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무조건 항복을 내세웠으니 쉽게 받아주진 않겠지. 일단 인류연합에 연락이나 해봅시다.”
이 시점에서 제임스 대통령의 의중은 완전히 무시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를 탄핵하는 방안도 고려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지휘하고 책임을 질 사람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변한 것이다.
급히 백악관을 찾은 장성들이나 의원들도 제임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행정부의 요인만 찾았다.
펜타곤의 장성들은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그 참혹성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우린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막대한 국방비를 쓰는 입장에서 이런 의견을 드리기가 참으로 민망합니다. 하지만 인류연합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군요.”
“인류연합은 명백히 군의 규모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어스 플릿을 몇 번이나 찍어내고도 남았을 텐데 한 함대만 존재한다는 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들은 우주에서 우릴 공격할 겁니다. 군사 전문가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백악관과 의회, 펜타곤을 완벽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진지하게 질 수도 있다는 낭패감이 백악관을 감쌌다.
민주당의 초강경파들은 1조 달러나 되는 국방비를 어디다 쓰느냐고 힐난했고, 장성들은 해명하기 바빴다.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입니다. 우리 병력은 주 방위군까지 합쳐 150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는 항공모함과 수상함을 비롯해 많은 장비를 가졌지만, 아쉽게도 이번 전쟁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인류연합이 대단히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지켜야 하는 땅은 그리 넓진 않았다.
몇 개의 메가시티와 한반도가 전부인데 대부분의 방어시설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메가시티의 방어시설은 어지간한 장성들도 고개를 흔들 정도의 난공불락이었다.
“테라섬의 메가시티 퍼시픽을 예로 들어 보면 평시에는 별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난 감마 사태 때 메가시티가 변형된 것을 기초로 방어시설을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진에 드러난 레일건만 100 개소를 가볍게 넘겼다.
핵융합로를 쓰기에 포신의 직경도 상당히 커서 거의 150mm를 넘길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사거리가 천 킬로미터는 가볍게 넘죠. 우리의 극초음속 대함미사일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탄자를 쏟아 부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이 대공포대는 기존의 에테르 레이저는 아니라고 분석되었습니다. 정체에 대해서는 직접 상대해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보통의 물건은 아닐 겁니다.”
부정적인 분석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의 초강경파 의원들은 테라섬을 함락시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나마 미국이 이길 가능성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펜타곤의 장성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방어시설도 그렇지만 테라섬 자체가 외부의 진입을 차단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지난 감마 사태 때 메가시티가 변형된 형상입니다. 수십 미터 높이의 쓰나미를 완벽히 막아낼 정도입니다.”
“유사시엔 메가시티 전체가 하나의 방공호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걸 돌파하려면 메가톤급 핵무기를 써야 합니다.”
“선제 핵 공격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메가시티에 핵 공격을 해야 한다는 발언에 의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방법을 썼다간 연방 전역에 반응탄이 떨어질 것이다.
메가시티는 어떻게 될지 모르나 미국의 몰락은 확정적이었다.
한 의원이 의회에 출석한 콘래드 합참의장의 보고를 받고는 빈정댔다.
“공격도 안 된다, 방어도 안 된다. 우리에게 남은 건 강아지처럼 배를 까고 항복하는 것뿐입니까?”
“아니면 시간을 끄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통합우주군의 전력은 대단합니다만 결코 대규모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가 한정적이란 의미입니다.”
“음… 반입자탄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쓸 생각이었다면 진작 썼을 겁니다.”
현 시점에선 미국이나 인류연합이나 전략무기를 쓸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분노하진 않았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자작극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단지 콘래드 합참의장의 입장에선 대통령의 재가 없이 구출 작전을 시도했기에 그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상처를 후벼 팔 이유는 없잖은가.
상원의원들이 고심에 들어가 있는 동안 콘래드 합참의장은 백악관의 호출을 받았다.
제임스 대통령은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구출 작전을 시도했다고 들었소만.”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합의된 게 아니고? 당신은 지금 적을 풀어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 합참의장.”
“그렇다면 저를 구속하십시오.”
“…내가 못할 것 같소?”
“인류연합과 싸우는 의미 없는 짓을 하느니 구속되는 게 더 낫습니다. 최소한 패전 책임은 지지 않을 테니까요.”
제복군인 서열 1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임스 대통령은 타이폰 약물의 부작용으로 흥분 상태였기에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전쟁을 준비하시오. 책임은 전쟁이 끝난 후에 묻겠소.”
“현 상황에서 전쟁은 우리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대통령님.”
“젠장, 놈이 원하는 걸 들었잖소! 무조건 항복을 어떻게 받아들인다는 거요?”
“협상에 따라서는 최소한의 타격만 입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장군의 희망이겠지. 잘 들으시오. 미국은 다시 위대해져야 하오. 그걸 위해선 어떻게든 인류연합을 꺾는 길밖엔 없소.”
콘래드 합참의장도 그건 알고 있었다.
불가능해서 문제지.
정 인류연합을 꺾고 싶었다면 몇 년 전이어야 했다.
지금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지만 제임스 대통령은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인류연합과 한판 붙는 거요.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를 가리는 거지. 물론 우리도 타격을 입겠지만 인류연합도 무사하진 못할 거요. 그렇다면 전쟁의 향방은 회복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소. 우리가 무엇보다 잘하는 것이지.”
미국 특유의 생산력은 세계의 절반과 맞먹는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정보기관은 인류연합도 그에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생산력을 가졌다고 보고했다.
통합우주군의 유일한 함대인 어스 플릿을 확충하지 않는 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연합은 필요성에 따라 군의 규모를 유기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인간이 없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힘이 빠진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로 어스 플릿이면 충분했다는 얘기가 되고 결론적으로도 그게 맞았다. 하지만 우리를 상대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물량을 찍어내면 어떻게 될까?
콘래드 합참의장은 그게 두려웠다.
* * *
유지하가 선전포고하자 미국 전역이 시끄러워짐과 동시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인류연합은 핵전력을 제외하면 미 본토에 직접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그간 미국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왔지만 인류연합의 기술력 앞에선 모래벽에 불과했다.
어스 플릿은 1시간 안에 태평양을 돌파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건 미 본토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당장 그들이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행동이 시작될 것임은 누구나 깨닫고 있었다.
각지에서 사재기가 발생했으며 대도시에서 빠져나가려는 차량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 미국을 떠나 캐나다나 영국으로 도피하는 사람들까지 존재했다.
내심 인류연합과의 전쟁을 바랐던 일부 미국인들도 이런 분위기에는 당황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은 미 해군이 일방적으로 적을 두들겨 패는 것이었지 본토가 전쟁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이 분위기는 뭐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었어?
―핵은 못 쓴다고? 그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동원해서 방어시설 타격해야지. 아이언 빔에도 한계가 있잖아.
―항모전단이 상륙전단을 호위해서 테라섬을 점령하면 그만 아닌가? 인류연합은 방어에 급급할 텐데.
이런 인식은 대부분 인류연합의 군사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
군사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인류연합은 예전의 소련이나 중국과도 완전히 달라. 그들은 우주에서 직접 공격을 할 수 있어.
―왜 우리에게 메가시티 방어시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줄 알아? 접근이 어려워서 그래. 이놈들은 잠수함도 금방 찾아낼 수 있다고.
―상륙전? 쓰나미 때 순식간에 메가시티 외벽이 세워진 거 안 봤냐? 대체 어떻게 상륙하겠다는 거야? 수십 미터를 기어올라서?
―전쟁을 바란 놈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왔던 거야. 한 10년 전쯤에서 뇌의 업데이트가 멈춘 거지.
심지어 블랙메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 대배기량 내연엔진을 장착한 픽업트럭을 몰고 농사를 짓다 보면 유지하의 기술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세계가 바뀐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이 전통적인 삶에 집착하며 표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안 메가시티와 인류연합은 SF 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서로 신경을 안 쓴다면 모를까 갈등을 빚다가 마침내 전쟁이 터졌다.
이제 누구의 길이 옳았는지 드러날 때가 왔다.
소수의 정치학자들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진출을 떠올리기도 했다.
―당시 콩키스타도르는 강력한 기술, 총기와 강철 검, 그리고 선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남미 원주민에겐 흑요석 무기와 많은 인구밖에 없었다.
―인류연합은 반응탄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우주를 항해할 수 있는 배, 그리고 그 외에 알 수 없는 여러 무기체계를 가졌다. 미국이 우위인 건 핵전력과 규모뿐이다.
―혹자는 미국이 그렇게 약하진 않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다른 국가가 상대였다면 그 말이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연합과 비교하게 되면 차이는 그 이상이다.
―무조건 항복은 미국의 입장 상 어려울 테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전쟁을 멈추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더 어려워 보였다.
인류연합은 UN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대화 제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이 본격적으로 물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메가시티 안쪽에 위치한 수십 개의 스마트 팩토리가 100% 가동되었고 해저기지에선 무인 전투함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남은 건 한쪽이 처참하게 박살 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