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마지막 전쟁의 시작
인류연합과의 대화를 위한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유지하는 단 한 명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
바로 리처드 번스타인 전 대통령이었다.
전 대통령이 특사 역할을 하는 것은 그리 희귀한 사례는 아니지만 매킨리 전 대통령은 거절당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였다.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전후 번스타인의 역할에 대해 예측하기 바빴다.
―외교관이나 고위 관료도 아니고 전 대통령, 그것도 특정인만 받아들였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앞으로는 번스타인이 미국의 창구가 되는 건가? 어쩌면 전후 그의 역할이 커질 수도 있겠다.
―이번 사태로 현 대통령이 실각당한다면, 번스타인이 그 후임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번스타인은 권한대행으로 볼드윈의 잔여 임기를 수행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대우도 달라지겠지만, 하여튼 사람들은 그의 행보에 주목했다.
일부는 그가 전쟁을 멈춰 주기를 기대했지만 그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청와대를 방문한 번스타인은 유지하에게서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이번은 마지막 전쟁입니다.”
“마지막 전쟁이라고 하면…….”
“인류연합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수의 국가와 전쟁을 치렀죠. 북한부터 미국까지… 이제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 없습니다.”
지구에서 전쟁을 없애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유지하는 철저히 인류연합과 메가시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아프리카나 중동의 정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만큼 영향력이 커지고 힘도 강해지면 지하드를 외치는 중동을 눌러줄 유혹을 느낄 텐데도.
이는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구의 지배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우주에서 온 괴물, 플레이그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인류연합이니 메가시티니 하는 것도 놈들에게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미국을 무시할 순 없었고 갈등까지 빚어졌으니 이제 전쟁으로 완전히 마무리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우리와의 전쟁을 끝으로 세계를 반으로 나누겠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미국은 내게 협력하게 될 거고 많은 국가들도 그 뒤를 따를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곳이 있겠죠. 나는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중동이 있다.
하지만 미국까지 무릎 꿇린 인류연합이 두 곳에 신경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세계를 나누고 바꾼다… 그건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문화나 금융 시스템을 모조리 해체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플레이그와의 전쟁엔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단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는 비싼 집이 많습니다. 내가 알기로 1억 달러가 넘어가는 곳도 상당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게 비싼 곳이죠.”
“정확하게 말한다면 비싼 곳이었죠. 이번 사태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니까요.”
번스타인은 유지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플레이그의 위협 앞에선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비싼 건 이해합니다. 초강대국의 금융 중심부이니 그만큼 수요가 많겠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플레이그와 싸우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는, 총력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모든 자원을 끌어 모아서 소모하는 거죠. 기존의 시스템은 필요가 없습니다.”
번스타인은 문득 물었다.
“인류연합의 금융 시스템이 약한 것도 그 때문입니까?”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금융이 플레이그와의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자원과 인력은 결국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걸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서 플레이그와 싸우는 겁니다.”
“…….”
생각해 보면 유지하는 플레이그의 위험성에 대해서 언제나 강조하고 있었다.
그걸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다가 호되게 당한 건 기존의 국가들이었다.
이젠 미국도 바뀔 때가 왔다.
물론 번스타인은 유지하의 방식이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평만 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인류연합은 눈부시게 발전하며 플레이그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데 최소 보조라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해체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단 이번 전쟁이 끝난 후의 얘기지만.
“전쟁은 어디까지 진행할 계획입니까?”
“미국이 완전히 무릎을 꿇어야 하니 최소 절반의 전력은 상실해야겠죠. 항공모함 전단과 수백 대의 스텔스기, 그리고 인공위성을 포함해서입니다.”
“인류 최강의 군대가 사라지는군요… 엄청난 돈이 들었는데…….”
“앞으로는 유지비만 퍼먹을 텐데 내 손에 박살 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번스타인이 쓴웃음을 짓자 유지하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 전쟁의 키포인트는 어스 플릿의 전진입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로 미 대륙을 향해 전진할 겁니다. 그걸 미국이 막지 못하면 인류연합의 승리입니다.”
1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을 분쇄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과 전쟁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그 전쟁에서 최대한 효율적이고 빠르게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번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인공위성이 파괴되고 미국이 자랑하는 군대가 박살나 대도시까지 전쟁의 참화가 미친다면 미국인들도 바뀌겠죠. 미국이 바뀌면 세계가 바뀝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미군이 가만히 있진 않을 겁니다.”
“테라섬 혹은 한반도로 몰려오겠죠. 그 외의 지역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 테니까요. 큰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
유지하가 말한 이상 허세로 볼 순 없었다.
그가 책상에 놓인 스위치를 누르자 달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공개적인 회담이다.
“인류연합은 번스타인 전 대통령의 협상 제안을 거절합니다. 전쟁을 멈출 방법은 하나, 미국의 무조건 항복입니다…….”
번스타인의 의례적인 발언이 이어졌고 짧은 회담이 끝났다.
결국 전쟁을 중단시키려는 세계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공격이 시작되지 않은 것을 보곤 궁금해했다.
―이상하다. 중국과 일본을 상대할 땐 선전포고가 끝나자마자 공격했었는데 시간을 주는 느낌이네.
―지금 각지에 나가 있던 미군이 본토로 복귀하고 있는데. 시간을 주면 줄수록 미군이 강해진단 말이지.
―그걸 다 격파할 자신이 있는 건가?
실제로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항공모함 전단은 물론이고 여타 함대까지 본토로 속속들이 복귀하고 있었다.
덕분에 파나마 운하에서 미 함대와 화물선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만들어 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인류연합이 공습을 개시했다면 적어도 미 해군의 30%는 궤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민간 상선과 섞여 있다는 것도 인류연합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 * *
대부분의 국가는 미사일을 적성 국가에 발사하는 것으로 전쟁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레일건이나 레이저가 미사일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순항미사일이 전쟁의 신호탄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특히 미국은 미리 파견된 구축함이나 잠수함 등에서 수백, 수천 발의 순항 미사일을 발사해 적의 군사시설을 무력화시키는 전법을 주로 써왔다.
그래서 다들 인류연합도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어떤 미사일을 선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주목했다.
인류연합의 기술력이면 사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미국도 그런 점에 유념하여 수십 대의 정찰위성을 동원해 테라섬과 한반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우주에서 시작되었다.
저궤도에서 촬영을 위해 자세를 바꾸던 미국의 정찰위성 몇 대가 폭죽처럼 터졌다.
시비리2 전투 지원 위성이 위력을 약화시킨 이온 캐논을 사방에 발사한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미국이 소유한 위성들이 성대한 불꽃놀이를 만들어 냈다.
극비리에 제조된 스텔스 정찰위성도 똑같은 신세가 되어 파편을 대기권에 뿌려댔다.
순식간에 수십 대의 인공위성이 박살나자 이를 운용하던 미국의 국가정찰국에 비상이 걸렸다.
“다수의 위성이 셧다운 되었습니다! 데이터 노드 붕괴!”
“한반도와 테라섬을 관측하려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대체 어쩌려고 위성을 요격했지? 파편이나 연료 누출은 신경도 안 쓰는 건가?”
국가정찰국에선 인류연합이 미사일이나 레이저를 동원해 위성을 파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외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공위성 요격 시스템은 미국도 가지고 있었고 성공률도 매우 높았다.
탄도탄도 요격하는 데 저궤도에서 파악하기 쉬운 움직임을 보이는 위성을 요격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미국이 그걸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잔해를 처리하기가 까다로워서였다.
저궤도를 도는 위성을 한 방에 증발시키지 못하면 잔해가 지구를 덮치게 되고 그게 어디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칫 하이드라진을 비롯한 독성 연료가 대도시에 낙하하면 그건 화학공격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국가정찰국의 국장은 즉각 이 정보를 다른 기관에 알리는 한편 백악관에 보고했다.
제임스 대통령은 위성이 다수 격추되었다는 보고에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지만 그 피해가 우려되자 주먹을 꾹 쥐었다.
“민간인 피해가 생기면 놈들을 몰아세울 수 있겠군!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놈들이라고 말이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세틀러호와 평양함이 돌아다니면서 중력 크레인 기능으로 파편을 빨아들인 것이다.
저궤도 정찰위성의 위치는 대개 한정되어 있어서 처리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개의 위성이 깔끔하게 사라지고 나자 두 대의 시비리 위성이 연계작전을 시작했다.
수십 개의 리플렉터 비트가 사출되더니 사방으로 이온 캐논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리플렉터 비트에 반사된 수십 줄기의 이온 캐논이 여러 궤도와 각도에 위치한 미국의 군사위성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얼마나 폭발이 많았는지 맑은 하늘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상공에선 성대한 불꽃놀이를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펜타곤과 백악관에 잇따라 급보가 날아들었다.
“USA 111부터 193까지 몽땅 신호가 끊어졌습니다!”
“스텔스 위성에서 충격 감지! 놀랍게도 파편을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은밀히 배치한 미스티 9는 대표적인 스텔스 위성이었다.
어지간한 출력의 레이더로는 이를 파악할 수 없었고 미국은 아주 요긴하게 써왔다.
하지만 미스티 9 위성은 최후의 영상데이터를 정찰국에 보내고 장렬히 산화했다.
제임스 대통령은 보좌진과 함께 위성의 최후를 지켜봤다.
영상에는 황금색 빛줄기가 정확히 위성을 꿰뚫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에테르 레이저인가 하는 그건가?”
“아닙니다. 레이저는 저렇게 굵지 않습니다. 아이언 빔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류연합은 신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접촉면이 급속도로 붕괴되는 것으로 봐서 열병기에 가깝습니다. 아마 하전입자포…….”
“하전입자포?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방금 수백억 달러가 날아간 걸 보셨잖습니까.”
제임스에 대한 악감정 때문인지 보좌관의 말투는 시큰둥했다.
램버트 안보보좌관은 티비를 끄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인류연합이 우주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대책은 전무하고요.”
“대체 뭘로 공격한 건가?”
“아마 전투위성으로 판단됩니다.”
“자네들 인류연합의 위성은 전부 정지궤도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순간 보좌관들은 짜증 섞인 시선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뭐 이렇게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이 있단 말인가?
“인공위성은 연료만 있다면 궤도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수명이 대폭 단축되지만, 이온 추진기를 달면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이온 추진기는 모든 환경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효율도 기존의 로켓 연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죠. 충분히 저궤도까지 내려와서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정지궤도에서 직접 공격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인류연합은 사거리가 3만km에 달하는 무기를 실전배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주니까 질량체는 관성운동으로 계속 나아가지만 그게 에너지 무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류가 개발한 레이저는 회절 현상 때문에 사거리가 크게 제한되는데 인류연합은 그걸 극복한 것이다.
제임스는 당황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거 문제군. 어떻게 하지?”
“방법은 없습니다. 항복하는 수밖에요.”
“그건 안 돼.”
“그럼 이대로 두들겨 맞아야죠. 다행히도 GPS 위성은 건드리지 않는군요.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서일까요?”
아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류연합은 정찰위성 모두를 파괴하진 않고 테라섬 상공을 지나가는 오래된 키홀-11 위성 1대만은 남겨 두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명백했지만 제임스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램버트 보좌관이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지금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막아라.”
“막으라고? 뭘 막으란 말인가?”
“그건 이제부터 구경할 수 있겠죠. 그런데 파편이 안 떨어지는군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정찰위성은 생각보다 덩치가 큰 물건이고 그만큼 파괴되었을 때의 파편도 많다.
일부는 대기와의 마찰로 타버리지만 대부분의 부품은 지상에 낙하한다.
이를 제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관측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상의 관측수단으로도 탐지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국가정찰국에서 새로운 정보가 날아들었다.
정찰국에서 파견된 요원이 영상의 내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인류연합은 에테르 역장을 응용하여 파괴와 동시에 파편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으로?”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다른 위성인지… 혹은 우주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인류연합은 우리의 시야를 완전히 가릴 수 있다는 말이군요.”
“대통령이 감금시설을 탈출했을 때의 정황을 분석해 보면 전파도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우리는 눈과 귀를 가린 채 인류연합과 싸워야 합니다.”
사이버전은 강인공지능이 있는 이상 불가능하다.
섣불리 시도했다간 이쪽의 암호체계가 탈탈 털릴 위험이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제임스는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테라섬을 점령할 수만 있다면 끝이잖나.”
원래 이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보좌진은 그게 왜 불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대신 의회에 연락했다.
“예, 의원님. 아무래도 제임스의 권한을 정지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전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런 자에게 미군의 지휘권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락을 받은 의회는 곧장 행정부의 관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권한정지가 시도되었다.
제임스 대통령은 오로지 전쟁에만 빠져 있는 탓에 이런 움직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펜타곤은 부통령을 권한대행으로 확정짓고 그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 * *
“정찰위성군이 파괴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류연합의 움직임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대처법은… 있을 리 없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전력을 모아서 대항하느냐, 아니면 항복하느냐군요.”
다행히 새로 임명된 에반스 부통령은 매우 상식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해야 전후 협상에서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정치인들의 판단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전쟁 수행이지요.”
“그래서 가능성은 있습니까?”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분명 전쟁 전까지는 이기지는 못해도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건 정찰위성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울함이 서울에 있는데도 그렇게 됐다는 건 인류연합이 다른 무기체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마 정지궤도에 위치한 전투위성이겠지.
콘래드 합참의장이 펜타곤 중앙사령실을 방문한 에반스 부통령에게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인류연합은 이번 전쟁을 제한전으로 치를 생각입니다. 제한전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막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상황실의 주 모니터에 해저기지에서 나오는 음파신호가 표시되었다.
“우리는 소형 무인잠수정을 동원해 테라섬의 해저에 소나를 다수 설치했습니다. 이게 판독 결과입니다.”
“벌써 30척 넘게 해저기지를 빠져나갔단 말인가…….”
“인류연합의 생산력은 기술력에 비해 다소 낮게 잡는 편이었습니다만, 이제는 그 시선을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연합은 하루도 되지 않아 2만 톤이 넘어가는 군함을 찍어 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도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다.
리버티급 수송선이 그 예로 4일 15시간 만에 1척을 건조한 기록이 존재했다.
이는 당시에도 말도 안 되는 속도였고 현대에 들어선 완전히 불가능했다.
각종 전자장비와 설비를 설치하고 적용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연합은 그 미친 짓을 지금 저지르고 있었다.
콘래드 합참의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정보를 알아냈다는 걸 인류연합이 안다는 겁니다. 아마 무인잠수정을 투입한 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
“…대놓고 덤비라는 거군요.”
“예. 해저기지에서 빠져나간 수십 척의 함선이 곧 부상할 겁니다. 목표는 당연히 우리겠지요.”
“하프늄2 탄두를 써서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프늄2 탄두는 인류연합이 원조입니다. 만약 그걸 쓴다면, 그들도 똑같이 쓸 겁니다.”
“블랙메탈을 파괴하려면 그 방법밖엔 없지요. 핵전력을 가동하진 않더라도 하프늄2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평범한 하프늄2 탄두라도 전술핵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졌다.
방사능이 없으니 마음껏 쓸 수 있으며 미군은 이미 타격함대에 이를 배치한 상태였다.
최소 펀치력 면에서는 인류연합에 크게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물론 이는 화성에서 실험한 신형 반입자탄은 제외한 것이다.
만약 인류연합이 핵전쟁을 각오하고 달려들면 방법이 없었다.
에반스 부통령은 상황실을 훑어보며 물었다.
“군의 사기는 어떻습니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한번 붙어 보자는 기류가 강합니다.”
“우리에겐 11개의 항모전단과 수백 대의 스텔스 전투기, 그리고 미사일 전력이 있습니다. 이걸 놔두고 항복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해봅시다. 인류연합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 줍시다.”
얼마 후 낡은 키홀 정찰위성이 테라 섬 근처의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이를 확인한 펜타곤에선 곧바로 공중급유를 하며 대기하고 있던 SR-72 정찰기를 인근에 투입했다.
비록 정찰기는 격추되었지만 선명한 사진 몇 장을 펜타곤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콘래드 합참의장은 사진을 보며 신음했다.
배수량 2만 톤이 가볍게 넘어갈 법한 배 수십 척이 바다 위에 도열해 있었다.
무엇보다 선두에 있는 배가 눈에 띄었다.
얼핏 서울급 전투순양함 같긴 한데 덩치가 거의 두 배는 되었다.
“항모보다 훨씬 더 크군…….”
화성에 우주선 건조 기지가 있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미국의 감시망을 회피하면서.
전투사령관들을 호출하자 다들 사진을 보고는 이마에 주름을 만들어 냈다.
“분명히 우주선일 텐데 바다에 내려왔다는 건 대놓고 붙어 보자는 거군요.”
“이로서 인류연합의 의도는 명백해졌습니다. 테라섬에서 일직선으로 북미 대륙까지 전진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병력을 분쇄하겠다는 거지요.”
“전진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하겠죠.”
사령관들의 의견이 일치했고 이제 합참의장의 결단만 남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2차 세계대전 때에나 했던 함대결전을 2034년에 하게 될 줄이야. 태평양 함대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으니 모두 불러모으게.”
하와이의 인도-태평양 사령부에 미합중국 해군의 11개 항모전단을 포함한 수십 개의 함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