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우리 이혼해
전쟁이 끝난 후 승자인 인류연합은 미국에 생각보다 심각한 조치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양국의 우호를 저해한 일부 의원들과 관계자들을 우주감옥에 보내고 향후 긴밀한 협력을 해나간다 정도가 전부였다.
배상금도 전혀 요구하지 않는 등 여러모로 기존의 국가와는 대우가 달랐다.
막대한 보상을 해야 했던 중국과 일본은 짜증이 났지만 뭐라고 하진 못했다.
일본은 슬슬 인류연합의 패권을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였고 중국은 겁을 먹은 것에 가까웠다.
―하루 만에 군함을 찍어내는데 어떻게 상대하란 말이야? 이제는 적수가 없어.
―심지어 미국 본토에서 깽판을 치고서도 멀쩡했지… 미친 군사력이야.
―미국의 핵전력 운운하는 인간들은 제발 이걸 설명해라. 인류연합의 반입자탄은 어떻게 할 거냐? 끝까지 갔으면 인류연합은 몰라도 미국은 1700년으로 돌아가는 거야.
어쨌든 인류연합은 미국을 꺾은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가지게 되었다.
후유증도 상당했다.
미국이 패배함에 따라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으로 돈을 불리는 시스템 자체에 회의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불어온 실물경제 중시 풍조와도 관련이 있었다.
―아무리 금융망에 많은 숫자가 쓰여 있으면 뭐 하나, 재난 한 방에 증발하는데.
―요즘에는 이 증발한 게 복구되지도 않는다. 세계적으로 금융 시스템이 신뢰를 잃고 있다.
―가상화폐는 진정한 종이쪼가리가 되었고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다. 실물이 우대받는 세상이 왔다.
그 실물이 있는 한 금융 시스템도 영원하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존재했다.
하지만 미국을 꺾은 인류연합이 금융을 배제하면서 전 세계 증시는 회복되기는커녕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인류연합에 금융 시스템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코스피 등이 있었고 실물을 기반으로 한 각종 금융상품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단 메가시티에선 이 시스템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관리국 내부의 서버엔 존재하지만 일반인이 이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볼 수도 없었다.
이렇듯 메가시티가 폐쇄적인 경제블록을 형성하자 급해진 건 전 세계의 투자자였다.
이들은 미국의 몰락을 목격하고 투자금을 빼내 인류연합을 기웃거렸으나 거기에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몇몇 대형 투자회사의 CEO들은 간신히 유지하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켰으나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번에 손실을 많이 보셨다고요.”
“저희는 인류연합에 베팅을 하려 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투자처가 없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빠진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면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사례라… 한 1조 달러쯤 줄 수 있습니까? 전함 만드는 데 필요한데.”
CEO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농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유지하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
“하나 물어봅시다. 당신들이 취급하는 금융상품을 도입하면 메가시티 시민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거기까진 어려울지 모르나 다수의 투자자에게 확실한 이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 투자자들은 부자가 되겠군요.”
“저희는 고객과 함께 성장합니다. 대통령님의 자금을 맡겨 주신다면, 업계 최고의 이익을 약속드립니다. 보안은 기본이고요.”
이들은 인류연합에의 진입을 꿈꾸는 한편 유지하의 비자금을 예치하는 것을 기대했다.
생각해 보라.
유지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다.
모든 메가시티가 그의 재산이며 초기술에서 파생되는 유형 무형의 이익은 얼마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신라그룹조차 메가시티의 일부에 불과하다 보니 산유국의 왕가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되었다.
그런 유지하이다 보니 엄청난 돈을 축재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지하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돈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한 320억 정도인데 그걸 맡겨도 됩니까?”
“320억 달러겠죠?”
“아뇨, 원입니다.”
그 소소한 숫자에 CEO들이 싱긋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유지하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인류연합이 내 통제하에 있는 건 사실입니다. 온갖 초기술과 우주선들, 메가시티를 합치면 어마어마한 재산이겠죠. 하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인류 전체의 것이죠.”
유지하의 개인적인 재산이라고 하면 세틀러호와 그 안에 실린 장비, 설계도, 기타 자원인데 그건 선지자의 고향에 갈 때까지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므로 유지하의 대외적인 재산은 여기에 온 후로 착실하게 예금한 것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것마저 아르마가 관리하고 있어서 당장 빼내 쓸 순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 농담이 아님을 알아차린 CEO들이 당황했다.
초강대국 인류연합을 소유한 독재자의 재산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그는 상체를 기울이고 말했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고 온 모양인데 아쉽겠군요. 하지만 내 개인적인 재산은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시스템을 메가시티에 들여서 얻는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많을 것 같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희의 시스템은 대단히 정교합니다. 물론 강인공지능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대단히 정교한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수익을…….”
유지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플레이그와 싸울 때 어떤 도움이 됩니까?”
갑자기 말문이 헉 막혔다.
그 우주괴물과 싸울 때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시스템은 사장되어야 할 것이다.
CEO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유지하가 먼저 발언을 이어갔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은 천문학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직접적인 돈도 돈이지만 신뢰를 잃은 것이 큽니다. 그에 반해 인류연합은 큰 이익을 얻지는 못했죠.”
“외부에서의 투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안정적인 겁니다. 외부의 영향력에 상관없이 물가는 꾸준하고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같죠.”
이제 CEO들은 유지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인류연합을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
드론을 통한 감시 체제는 누구에게나 비판받았지만 메가시티의 인구밀도가 엄청나게 높은 것이 드러남에 따라 일부에선 재평가가 되기도 했다.
―인구밀도가 저렇게 높으면 범죄도 폭등해야 하는데 메가시티의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시민들의 수준도 제법 높지만 드론과 안드로이드를 곳곳에 배치해서 범죄를 저지를 의욕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 크다.
―왜 히틀러 소리를 들으면서 드론과 시민 포인트를 도입했는지 알겠다. 세계에서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그들을 통제할 수단은 그것뿐이다.
물론 감시 체제를 질색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까진 부정하진 못했다.
유지하는 이어 말했다.
“메가시티는 현 상태에서 완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아직도 멀었습니다만 기반은 잡혀 있죠. 거기에 당신들의 시스템이 들어오면 어지러워질 뿐입니다. 나는 그런 혼란을 바라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류연합의 시스템상 돈보다는 자원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할 뿐이었다.
온갖 어려운 단어와 첨단 금융기법을 꺼내도 자원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아르마가 잘 관리하고 있는 요리에 무리하게 조미료를 쳤다간 맛 자체가 변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CEO들이 낙담하자 유지하는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건 플레이그를 완전히 박멸할 때까지입니다. 그 후는 여러분의 의향대로 선진 금융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겠죠.”
유지하는 태양계를 떠난 상태일 테니 남겨진 인류가 무엇을 하든 큰 상관은 없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그게 얼마 뒤입니까?”
“확실하진 않습니다. 앞당겨질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류가 플레이그에 패배하면 그런 시스템도 없어질 테니까요.”
인류가 플레이그에게 패배한다?
CEO들은 자체 분석팀의 보고서도 많이 접했지만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에 대해 더 듣고 싶었지만 접견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유지하는 흘깃 시계를 보곤 일어섰다.
“여기까지 합시다. 참, 메가시티에 입주 신청을 넣으셨던데 재산을 크레딧과 교환할 순 없습니다. 아, 기부는 환영합니다.”
그래도 돈은 중요한 거지.
CEO들이 떨떠름해하며 일어섰다.
* * *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사는 미국의 상황이었다.
인류연합의 스탠스야 변함이 없을 테니 상대적으로 미국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실제로 인류연합이 큰 변화를 겪지 않은 것에 비해 미국은 엄청난 굴곡을 겪고 있었다.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들에 대한 보상안이 속속들이 발표되었고 경제 재건안이 설립되었다.
그것을 컨트롤하는 것은 이전 행정부가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번스타인을 비롯한 신진 관료진이었다.
이들은 등장부터 유지하의 입김이 닿아 있다는 평을 받았다.
―워싱턴 물을 먹은 관료들치고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빠르다. 상이군인 보상안이 3일 만에 끝난다는 게 말이 되나?
―무엇보다 미군을 재건하지 않기로 한 점이 의심스럽다. 인류연합이 미국을 거세하기로 한 것 아닌가?
번스타인은 이런 의심을 받으면서도 미국의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전체를 바꿀 순 없으니 반으로 갈라서 하나를 인류연합과 합친다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시민들의 동의도 그 어떤 논의도 없었지만 그는 미국이 살기 위해선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 추진력이 결단력으로 포장되어 2월에 있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정치인들이 대거 하야하거나 우주감옥에 끌려간 마당에 멀쩡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유지하와의 친분을 자주 과시했다.
평소라면 지탄을 받았을 태도지만 현재의 미국은 유지하의 도움이 없으면 망할지도 모르는 국가였다.
재정 담당자들은 당장 내년에 쓸 예산이 없다며 비명을 질렀다.
“당장 달러를 찍어내지 않으면 내년에는 공무원들을 대거 해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찍어내도 문제인 것이, 세계가 더 이상 달러를 원하지 않습니다. 인류연합의 크레딧을 얻으려고 혈안이 됐어요.”
재무 분석가들은 미국이 입은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달러 패권을 잃은 등의 간접적인 피해가 훨씬 더 크다고 봤다.
달러는 그간 인류연합과 마찰을 빚으면서 꾸준히 수요가 줄었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해 입지가 상당히 떨어졌다.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건 아니지만 각국은 달러 대신 크레딧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양적완화를 했다간 초인플레이션이 들이닥칠지도 몰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가 도마에 올랐다.
재무 담당자들은 부채한도를 조정하지 않으면 디폴트에 빠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간은 의회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정부에 경고하는 그림이 나왔지만 이번은 다르다.”
“부채한도를 높이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물론이고 주정부까지 디폴트다. 그러나 부채한도를 높일 수는 없다.”
세계가 더 이상 달러를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거래대금으로 크레딧을 찾는 와중에 달러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덕분에 미국의 재정 당국은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파산을 의미한다.
예전 같으면 미국의 엄살 등으로 치부했을 학자들도 이번에는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고 있는 것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마저 크레딧을 석유 결제 대금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인류연합은 크레딧을 기축통화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강인공지능이 관리하는 폐쇄적인 경제블록을 만들었고 외부의 영향력을 거의 차단했다.
―이 상황에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다면 미국이 인류연합과 통합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미국이 인류연합과 통합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유지하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그라지긴 했지만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유지하와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진 것은 사실이고 번스타인 행정부의 활동도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2034년 2월 첫째 주, 번스타인 대통령은 인류연합과의 느슨한 연합을 구성하는 구상안을 발표했다.
이 구상안에는 인류연합과의 인력 교환은 물론이고 광범위한 범위의 자원 공급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류연합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것이어서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당장 번스타인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전쟁에서 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나갈 필요가 있나?
―인류연합이 미국보다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폐쇄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렇게 크진 않다. 재정적자만 해결하면 인류연합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다.
―그 재정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달러를 찍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인류연합과 느슨한 연합을 하면 뭐가 달라지느냐는 비판이 일어났다.
―만약 달라진다고 하면 그것은 미국을 쪼개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경고하는데, 우리는 미국을 분리할 그 어떤 가능성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위협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미군이 와해된 와중에 인류연합의 군대와 드론을 막아낼 수 있나?
그게 최대의 문제였다.
이제 미국엔 인류연합을 막을 힘이 없었다.
유지하가 미국을 분리하겠다는데 누가 나서서 그걸 막을 것인가?
또한 이 분리안은 의외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놀랍게도 유지하의 지지층과 반대층 둘 다 은근한 찬성을 표한 것이다.
―현 미국의 시스템은 플레이그에 아무런 대응책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유지하에 의하면 수십 년 이내로 플레이그의 대대적인 공습이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니 지금 통합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은 유지하 같은 사회주의자를 인정할 수 없다. 물론 인류연합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드론은 혐오스럽고 안드로이드는 더 그렇다.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이를 봉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이참에 갈라서자는 말도 나왔다.
―미국은 원래부터 연방이었다. 각 주별로 투표를 해서 인류연합에 소속될지 말지를 정하자.
―웃기지 마라. 미국 땅은 1에이커도 내줄 수 없으니 연합을 얘기할 거면 너희들이 나가라.
그런 주장과는 별개로 유지하는 인류연합의 완전한 통합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중 하나가 최고평의회였다.
“앞으로 인류연합의 정책은 최고평의회에서 결정합니다. 당분간은 나와 인공지능이 운영하겠지만, 점차 권한을 이양할 겁니다.”
그 대상은 바로 완전시민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권력을 분배한다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못 내려놓는 독재자가 대부분인데?
―그것 봐라. 유지하의 진짜 목적은 독재가 아니라 인류의 보존을 위한 관리다. 워낙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드론이나 CP 같은 극단적인 제도가 필요해진 것뿐이다.
―완전시민 중에서 평의회 의원을 뽑는 거라면 우리도 가능성이 있지 않나?
―글쎄, 보통 사람은 어렵지.
메가시티의 시민들은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완전시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다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실히 일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류연합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인공지능이 판단하도록 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완전시민이 된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사이커나 과학자 등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실질적인 계급제를 의미하는 것이라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겐 참정권을 안 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이거야말로 충격적이다.
―최고평의회 의원의 후원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조항을 보면 아예 배제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류연합은 독재국가다. 시민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건 유지하가 권력을 내려놓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최고평의회가 구성되면 우리가 정책을 수정할 수도 있지 않나?
사람들은 인류연합에 들어가 내부를 바꿀 수 있다는 데에 큰 관심을 가졌다.
덕분에 미국의 분리주의자들이 힘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메가시티 아메리카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유지하가 메가시티 아메리카와 도이치의 건설을 확정지었다.
“후보지는 선정되었으며 곧 건설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메가시티도 기존과 조건은 같습니다.”
즉,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입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아예 통합을 준비하는 중이니 그렇다 쳐도 미국과 독일이 거기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상당한 반향이 일었다.
―메가시티를 건설하려면 관리권한을 인공지능에 위임해야 한다. 전쟁에서 진 미국은 그렇다 쳐도 별 탈이 없던 독일이 왜 나서는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들 아닌가? 메가시티 외에 방법은 없다는 답을 도출한 것 같다.
―원래 군인 같은 사람들이니 인공지능이 관리하기도 편할 것이다.
실제 독일 내부에선 이번 발표를 차분히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치인들은 인류연합에 단시간에 완전히 통합되는 것은 어렵지만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은 이득이라고 판단했는지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국민들도 메가시티의 구조와 생활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예상대로 격렬한 반대에 휩싸였다.
―신성한 미국 땅에 메가시티 같은 빨간 것을 들일 순 없다!
하지만 이런 반발은 유지하의 한마디에 찌그러졌다.
“경고하는데, 메가시티 건설을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놓고 박살내겠다는데 누가 반발할 수 있을까?
대신 미국인들 사이에선 분리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가시티 찬성파가 나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하가 좋고 메가시티가 마음에 들면 나가라. 더 이상 미국을 시끄럽게 하지 말고.
―미국은 결코 분리될 수 없지만 당신들이 나간다면 굳이 반대하진 않겠다.
인류연합에 들어가기 위해선 보유 중인 부동산과 재산은 두고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재산을 크레딧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를까 메가시티 관리국은 허용하지 않았다.
금이나 달러로 바꿀 수는 있지만 정작 크레딧으로 환전할 방법이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인류연합의 결제수단은 오로지 크레딧뿐이며 그 전체를 인공지능이 관리하므로 다른 화폐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시티 아메리카에 입주 신청을 넣는 미국인들은 차고 넘쳤다.
기존의 메가시티는 상당히 멀어서 꺼려졌지만 캘리포니아주는 얘기가 다른 것이다.
―경제 망했고 일자리도 없는데 메가시티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무엇보다 인류연합의 초기술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
―지금이야 메가시티를 사회주의 어쩌고 비난하지만, 플레이그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들어오지 못해서 난리일 거야.
그렇게 신청한 사람들이 3월 한 달 동안 수백만 명이 넘었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상위 1% 엘리트들이 대거 포함되어서 미국 내에선 진지하게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재학생 중 무려 74%가 메가시티 입주를 신청했다는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는 절대 이를 좌시해선 안 된다.
―지식인층이 대거 인류연합에 합류하고 있다. 남은 사람들이 미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나?
그걸 확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확실한 건 미국이 반으로 쪼개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여러 국가도 인류연합과 연합을 구성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큰 반발이 있었고 어떤 국가는 내전에 가까운 소요사태를 겪기도 했다.
CNN에선 이 상황을 부부싸움에 이은 이혼으로 정의했다.
―그간 사람들은 의견이 맞지 않아도 함부로 이민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가서 생존을 보장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가시티 입주권을 얻으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고 성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와 결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지식인층이 많다. 각국의 과학과 산업을 이끄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탈이 기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눈여겨볼 만하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 분할은 일단 기존 사회에 남은 사람들이 우세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메가시티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재산 대부분을 그대로 두거나 저렴하게 내놓아 금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2034년 가을, 무려 50여 개의 플레이그 코쿤이 태양계에 진입했다.
인류연합에서 일제히 경보를 울렸고 사람들은 대기를 불태우며 낙하하는 코쿤을 올려다봤다.
이혼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분할한 재산이 박살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