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문명의 파괴자
“플레이그는 강한 생명체입니다. 가장 약한 개체조차도 어지간한 화력에는 꿈쩍도 하지 않죠. 하지만 모든 개체가 물리적으로 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유지하는 러시아, 미국, 독일의 수장과 24시간 내내 연결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양자통신 위성을 통해 연결되는 것으로 전파방해나 EMP 충격파 등에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유지하가 이 통신수단을 사용할 일이 없었기에 각 정상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그의 발언을 경청했다.
이번에 유지하가 각 정상들을 호출한 것은 플레이그 코쿤이 50개나 태양계에 진입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종류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접한 비스트급과 나이트급은 확실히 강했지만 핵무기나 반응탄으로 박살 낼 수 있었죠. 하지만 지구를 향하고 있는 이 녀석들은 조금 다릅니다.”
유지하의 얼굴이 구석으로 내려갔고 대신 광활한 우주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코쿤의 모습이 보였다.
미하일로프 대통령이 급히 물었다.
“이건 직접 촬영한 겁니까?”
“마침 화성 L3 포인트를 지나가더군요. 무인기지라 플레이그의 이목을 끌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플레이그는 인류가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는다는 얘기가 된다.
정상들은 유지하가 있기에 괴물이 우주로 온다는 음모론을 떠올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플레이그란 생명체는 아주 발달된 사이코키네시스 필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도 발현할 수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의미가 없을 뿐이죠.”
“이 사이필드는 동족끼리 통신을 할 때도 사용되고 적을 공격할 때도 쓰입니다. 그리고 먼 우주에서 동족을 찾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 코쿤들은 어떤 존재의 의도하에 태양계에 진입한 후 지구에서 느껴지는 사이필드를 탐지하고 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없다면 우주괴물도 안 온다는 말은 틀린 겁니다.”
유지하가 없더라도 다른 사이커를 탐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면 사이커를 모조리 죽이면 우주괴물은 오지 않는가?
이론적으로는 맞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커가 태어나고 있기에 의미가 없을 뿐.
지구에 묻힌 에테르코어를 다 파내고 블랙메탈을 전부 없앤다면 당분간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시 지구에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무튼 저 코쿤들은 크기로 봐서 정규 병종이 아닙니다. 특수한 병종임이 확실한데 그건 코쿤이 지구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듣고 있던 번스타인 대통령이 물었다.
“인류연합은 우주에서 저 코쿤을 요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렵지 않죠. 하지만 한꺼번에 50개의 코쿤을 박살내지 못하면, 살아남은 개체가 사이필드로 본대에 신호를 보냅니다.”
“본대라고 하시면…….”
“우주 어딘가에 수천, 수만 마리 이상의 플레이그 군단이 있습니다. 사이필드를 차단하지 못하면 그들이 지구로 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좋은 목적은 아니겠죠.”
“…….”
충격적인 정보에 번스타인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지구는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갑자기 유지하의 사상과 메가시티의 자유 억압에 대해 외쳐대는 선동가들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들은 이걸 알고 있을까?
유지하가 이 정보를 알리지 않은 건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일 것이다.
80억이 메가시티로 몰려들거나 음모론을 퍼트리는 걸 감당하느니 모르는 체하는 것이 나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유지하는 예지능력을 가졌으면서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다고 온갖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번스타인도 그 부류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유지하의 고심이 이해가 되었다.
플레이그라는 강적에게서 인류를 보존해야 하는 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유지하는 차단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래의 인류연합은 막바지에 사이필드를 차단하는 장비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서 현재는 어스 플릿에서 운용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 차단기를 쓰지 않고 플레이그를 죽이면 사이필드라는 통신을 통해 본대에 신호를 보낸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전쟁 중이라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겠죠. 어차피 위치를 아니까요. 하지만 지금 본대에 알려진다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가 보내는 것이라면 안심하겠지만.”
선지자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은 수장들이 곤혹스러워 했다.
“우주괴물을 보내는 것이 선지자냐, 플레이그냐… 50% 확률이라고 해도 섣불리 선택할 수가 없겠군요.”
다들 현재 상황과 인류연합의 입장에 대해서는 이해했다.
남은 것은 플레이그의 병종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지구에 낙하한 후 비로소 정보가 나왔다.
아르마가 미리 낙하지점에 설치한 분석 장비를 통해 병종을 알아냈다.
「플레이그 스웜입니다. 그중에서도 메탈 데스를 일으키는 종입니다.」
유지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젠장, 잘못 걸렸군.”
“메탈 데스? 굉장히 요란할 것 같은 이름인데 어떻습니까?”
“비정규 병종 중에서는 가장 골치 아픈 녀석들 중 하나입니다. 이놈들은 메탈 데스… 그러니까 철사병을 일으킵니다. 광범위한 범위의 금속을 모래알처럼 무너뜨리죠.”
다들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금속이라고 하면 주기율표에 있는 그 금속을 말하는 건가?
“혹시 철이나 금 같은 원소도 포함되는 겁니까?”
발터 독일 총리가 물었고 유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은 같은 경우만 빼고 어지간하면 다 통용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입자선을 내뿜어 금속원소의 결합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리죠. 인간은 큰 피해가 없지만 대신 문명이 박살납니다. 영상을 같이 확인하시죠.”
아르마가 틀어 준 영상에는 코쿤이 개방되며 사방으로 튀어나간 플레이그 스웜이 각국 도시에서 폭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각각의 개체는 도시에 착상해 입자선을 내뿜어 금속을 완전히 파괴한다.
투과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폭발이 일어난 지 1분도 되지 않아 가로등이 와장창 무너지고 지나가는 차량이 모래성처럼 폭삭 주저앉았다.
그래도 운전자가 바닥에 나뒹구는 것까진 묘사할 필요가 없지 싶었다.
하여튼 다들 영상을 보면서도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의심했고 유지하가 추가 설명을 해야 했다.
“미래의 인류연합도 이 플레이그 스웜에 호되게 당한 후 메가시티를 건설했습니다. 방어체계가 완성된 후에는 플레이그도 다른 방법을 쓰기 시작했지요. 아무래도 전면전에선 못 써먹으니까.”
그러니까 플레이그와 인류연합의 80년 동안의 전쟁은 창과 방패의 발달사라고 할 수 있었다.
각국의 수장들은 과연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미래의 인류연합도 결국 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도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본 번스타인 대통령이 신음을 삼켰다.
“으음… 우리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기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합니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르마, 계획을 설명해 줘.”
「현재 플레이그 코쿤 50개는 이 위치에 낙하했습니다. 크기가 작아서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세계지도에 밝은 점 50여 개가 나타났다.
육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다였다.
「이 코쿤 안에는 수백 개의 포드가 수납되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포드에는 생체이온 추진기가 장착되어 있어 매우 빠릅니다.」
세틀러호나 어설트 아머보단 느리지만 전자는 기민한 대응이 어려웠고 후자는 반드시 유지하가 탑승해야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있었다.
「코쿤이 열리는 시점을 포착하고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켜야 할 곳을 미리 선정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건설한 메가시티와 후보지가 드러났다.
“그 외의 도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대도시에서 폭발하면 엄청난 재난이 될 텐데…….”
현대문명은 금속으로 이뤄진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사병은 그 문명을 근본부터 무너뜨릴 수 있었다.
“대신 말하자면 완벽히 방어하지는 못합니다. 차단기가 부족해서인데 당장 개발할 수도 없으니 선택하고 집중해야죠.”
수장들은 왜 메가시티가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방주인지 새삼 가슴에 새겼다.
아무래도 인류연합과의 통합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세계 각국은 코쿤의 동태를 주시했다.
수많은 조사대가 파견되어 코쿤 주위를 맴돌았고 어떤 낙후된 국가에선 사람들이 몰려들어 만져 보기도 했다.
UN에선 전 지구적인 플레이그 대책위원회를 소집했지만 주요 강대국이 빠진 시점에선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인류연합과 여러 국가는 착실하게 통합의 길을 걷고 있었고 UN은 이제 몰락해 가는 국제기구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일부 국가에선 플레이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장이 없다고 투덜거렸으나 유지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논의는 무슨 논의. 내가 통보하면 그대로 시행하면 되는 거지.”
그 시행에는 도시를 버리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진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쨌든 새로운 형태의 플레이그 코쿤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중 아르마가 보고를 올렸다.
「마스터,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이필드 차단을 위한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마스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아르마라고 해도 에테르 관련 기술은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사이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게 사이필드 차단에 관한 것이라면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확인해 보자고.”
* * *
「파티마 님의 시술 중 가상기관의 유력한 존재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오른쪽 가슴에 위치합니다.」
아르마는 파티마가 성인이 되어 받은 미스릴 이식 수술을 보여 주었다.
미스릴 자체는 인체에 무해하지만 시술을 받으면 피부에 약간의 흔적이 남게 된다.
얼핏 문신으로 보이는데 일부 사이커들 사이에선 인류연합이 인정해 준 증거라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일정 레벨 이하의 사이커에겐 아예 시술 제안조차 가지 않기 때문.
파티마의 경우는 워낙 레벨이 높았던 터라 얼마 전 시술을 받았고 그 자료를 아르마가 계속 분석하고 있었다.
유지하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저건 심장인가?”
에테르 수신기를 통해 에테르가 회로를 돌 때마다 가슴에 뚜렷한 심장 문양이 나타나고 있었다.
피부의 표면이 아니라 안에서 간헐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상하군. 피부 투과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을 텐데.”
「피부 표본을 분석해도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건 아마 미스릴로 형성된 에테르 회로겠죠.」
“에테르 회로를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유지하는 미스릴 이식조차 필요 없는 오메가 레벨 사이커였지만 에테르 회로를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가 아는 많은 사이커, 심지어 인류연합의 사이커란 사이커는 모조리 연구한 루시아도 에테르 회로는 보지 못했다.
애초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희귀한 멘탈리스트라서 그런가? 아니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멘탈리스트가 있었어.”
어쩌면 파티마가 특이 케이스인지도 모르겠다.
유지하는 문득 화성에서 흡수한 선지자의 유물을 떠올렸다.
유물을 흡수한 다음 때때로 오른쪽 가슴에 통증이 찾아온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이커가 되면 오른쪽 가슴에 가상의 생체기관이 생기는 건가…….”
에테르 회로는 단지 사이커가 에테르를 발현시키는 과정을 간략화한 것이었는데 그게 실제 기관으로 발달할 줄은 몰랐다.
아르마가 자료를 넘겼다.
「파티마 님을 재운 후 약간의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놀랍게도 주변의 사이필드를 인위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단, 자신보다 강한 개체에겐 통용되지 않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한다는 건가. 뭐 당연한 말이군.”
적어도 플레이그에 있어서는 당연할 것이다.
유지하는 자료를 보다가 문득 저 케이스가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떠올렸다.
“나도 저걸 할 수 있나?”
「파티마님의 데이터를 응용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좋아. 당장 실험해 보지.”
그날 밤 유지하는 세틀러호에 탑승한 후 바이오백에 들어갔다.
아르마가 뽑아낸 자료대로 사이필드를 펼치자 놀랍게도 그의 가슴팍에서도 뚜렷한 심장 모양이 드러났다.
파티마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에 선명한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엄청난 에테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사이필드가 퍼져나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테라섬의 사이커들이 대거 기절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마스터께서 사이커들의 사이필드를 강제로 차단하는 바람에 에테르가 역류해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일단 병원으로 후송해 안식을 취하게 하겠습니다.」
유지하는 메가시티 퍼시픽이 시끄러운 것을 확인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사이커 주위에서 함부로 쓰면 안 되겠군.”
능력을 더 발전시키면 특정한 개체에 한정해서 사이필드를 차단하는 것도 가능할까?
예를 들면 플레이그 퀸처럼…….
그녀의 사이필드는 거의 사념파 수준이라 유지하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하긴 그 많은 플레이그를 통제하니 당연하겠지만.
“아르마, 세틀러호를 잠깐 옮겨서 정확한 범위를 테스트 해보자고. 얼마나 차단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이번 플레이그 스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세틀러호는 남태평양의 상공으로 이동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성능 좋은 사이필드 차단기가 생겼다.
* * *
50개의 플레이그 코쿤은 지구에 낙하한 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 국가에선 그 크기에 용기라도 얻었는지 하프늄2 탄두를 폭발시키기도 했으나 코쿤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다들 유지하가 뭐라고 한마디 해주기를 기다렸고 그는 배성민 비서실장을 통해 각국의 수장들에게 대책을 전달했다.
이번에 온 녀석들이 플레이그 스웜인 만큼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대응책이 필요했다.
그건 도시를 버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시를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플레이그 스웜이 도시에 뿌려지면 모든 금속이 결합구조를 잃고 모래알처럼 부서진다.
투과력이 워낙 강해서 어지간한 건축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도시의 수많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배관, 가로등을 포함한 기반시설이 무너진다.
실질적으로 도시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니 인명 피해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최대한 멀어지라는 게 유지하의 제안이었다.
인류연합엔 차단기가 두 개나 있지만 모든 플레이그 스웜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각국은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라니 말은 참 쉽다. 그런데 런던 광역권의 인구가 얼만지는 아나?
―유지하는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미국에 이겼다고 도시를 떠나라는 등의 강압적인 요구를 한다면 누가 따르겠는가?
―일단 제대로 된 설명을 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유지하에게 설명을 할 의무는 없었다.
플레이그 스웜과 차단기 등에 얽힌 이야기가 복잡한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각국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정보 제공은 없다. 이후로는 알아서 판단하라.
플레이그 스웜과 철사병, 그리고 차단기의 부족 등이 각국의 정부에 전달되었다.
아르마는 제공한 정보의 유출 가능성에 대해 염려했고 그게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의 한 관계자가 정보를 빼돌려 언론에 제보한 것이다.
하필 황색언론이 그걸 과장해서 보도하는 바람에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도시가 무너진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무슨 흑사병도 아니고 금속이 모래알처럼 변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건 유지하의 음모다! 우리를 몰아내고 도시를 차지하려는 수법이다!
잠잠해져 있던 반유지하 감정이 다시금 폭발했다.
대도시를 행진하며 헤이트 깃발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정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상관없습니다. 피해를 입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모든 메가시티는 이미 플레이그 스웜의 대비책을 끝마쳤다.
완벽하게 방어할 순 없지만 블랙메탈로 주요 부위를 덮고 차단기를 동원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도시는?
“코쿤의 사이필드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내로 열릴 겁니다. 사이필드를 차단하고 최대한 처리하겠지만 장담할 순 없습니다.”
“어떤 도시가 위험한지 사전에 선정은 되겠습니까?”
“개체수가 워낙 많아서 어렵습니다.”
50개의 코쿤 안에는 수백 개의 포드가 숨겨져 있다.
포드 하나로 작은 도시 정도를 커버할 수 있으니 전 세계의 도시가 영향권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드가 향하는 방향은 경향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사이커가 많은 쪽이 사이필드 농도가 높으니까요.”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포드가 가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그걸로 특정할 수도 있는 거군요. 하지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를 텐데 어스 플릿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나설 겁니다.”
번스타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설 것인지 묻고 싶었으나 말을 아꼈다.
하여튼 이번 정보 유출 때문에 유지하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
자칭 예언자라며 지나치게 숨기는 게 많다는 것이다.
―시원하게 말해 주지 왜 혼자만 알고 있는 거냐? 차우더나 끓여먹으려고?
―보나마나 이득 챙기려는 거겠지. 찔끔찔끔 정보 풀면 계속 돈 내놔야 되잖아.
―이번에 돈 많이 벌었겠네.
당연하지만 유지하는 돈 한 푼 받은 적 없었다.
워낙 악명이 높아서 선의를 베풀어도 사람들이 비꼬아서 보는 것이다.
덕분에 도시에서 도망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류연합과 러시아, 독일의 시민들을 빼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배성민 비서실장이 지친 기색으로 집무실에 노크하고 들어왔다.
“시민 수용 계획이 준비되었습니다. 경보가 울리면 곧장 방공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방공호라고 해봐야 제대로 된 곳은 많지 않았지만 이번에 B클래스 블랙메탈을 대거 동원해 새로이 건설했다.
2,000만에 가까운 시민이 도시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가시티로 인해 기존 도시들이 황량해진 게 눈에 띄었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 메가시티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유지하는 보고서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의 준비는 했군요. 어차피 대부분의 포드는 메가시티로 날아갈 거니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법인지… 개인용 우주선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매우 빠르게 비산하는 포드를 어떻게 따라잡아서 차단기를 작동시키냐는 것이다.
소수라면 어스 플릿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많지 않은가?
“별거 아닙니다. 플레이그가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듯, 우리도 여러 무기를 만들었죠. 이건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어떤 무기를 말씀하시는지…….”
“지금 오고 있습니다.”
잠시 후 청와대 정원이 온통 빛으로 물들었다.
1층이 시끄러워졌고 배성민은 창문 밖을 쳐다봤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전 처음 보는 기계가 하늘에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