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만년 대령과 딩고
유지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지만 세틀러호와 어설트 아머는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이제 어설트 아머에 드리운 커튼을 치울 때가 왔다.
플레이그 스웜을 처리하기 위해선 이게 꼭 필요했고 지금이 공개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세틀러호는 끝까지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지자의 고향으로 가야 한다.
“어설트 아머입니다. 인류연합이 플레이그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 낸 무기 중 하나죠.”
배성민은 고개를 들어 거대한 로봇을 쳐다봤다.
전체적인 외형은 새와 닮았는데 유선형의 동체와 여섯 개의 날개가 특징적이었다.
“여기에 사람이 타는 겁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사이커의 능력을 가진 훈련된 파일럿만이 탈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타면 움직이지도 않죠.”
유지하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인류연합의 군인이라고.
당시엔 우주선에 타서 전투를 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이런 로봇을 조종한다니 뜻밖이었다.
“덩치가 좀 크긴 한데 꽤 귀엽게 생긴 녀석이군요.”
“인류가 플레이그와 싸우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개량한 결과가 이겁니다. 원래는 전투기 형태였죠.”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성능은 굉장히 흉악한 모양이다.
놀란 청와대 직원들이 나와 어설트 아머를 구경했다.
유지하의 곁에서 일하는 만큼 어지간한 것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지만 어설트 아머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 하는 로봇인지 짐작도 안 가네…….”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좀 약해 보이지 않아요?”
“쉿, 대통령님이 들어요. 귀 엄청 밝으시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유지하는 윗옷을 벗으며 말했다.
“이 녀석의 역할은 지금으로 따지면… 오토바이입니다. 플레이그로 가득한 우주공간에 반응탄을 배달하는 역할을 하죠.”
“…오토바이요?”
그럼 그 오토바이에 타는 파일럿은 뭐란 말인가?
유지하는 배성민이 내민 팔에 윗옷을 걸쳐주며 말했다.
“그래서 나 같은 파일럿에게 붙은 별명이 배달부였습니다. 반응탄을 배달하는 역할을 하니 뭐 틀린 말은 아니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것쯤은 배성민도 약간이나마 알고 있었다.
프랑스와 미국을 공격한 플레이그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무수한 군인이 죽어나갔고 도시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그런 괴물조차 상위 등급에 비하면 병졸에 불과하다니 말 다한 것이다.
그리고 공개되진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그런 괴물 수백, 수천 마리의 공격에서 살아남아야 한단다.
배성민은 그게 어떤 수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비서실장이라 관리국의 어지간한 사업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거기엔 신라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는 게임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우주 맵을 구현한 메타버스 게임 말이다.
워낙 어려워서 대부분의 게이머에겐 잊힌 모양이지만 그는 좋은 성과를 낸 극소수의 게이머들이 메가시티에 초대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파일럿 후보생이겠지…….’
머지않아 이 어설트 아머에 타게 될까?
스마트 팩토리에선 뭐든지 찍혀 나오니 이 로봇이 양산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2180 인류의 멸망 게임은 미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군.’
그 게임으로 플레이그와 현 상황을 추측하지 못한 것은 상당한 어레인지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플레이그는 이름만 같을 뿐 외형이 완전히 달랐고 어설트 아머도 이 모습이 아니었다.
게임을 만든 목적이 파일럿을 선별하기 위함이었을 테니 세세한 부분까진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하여튼 그 게임에 나오는 인류연합의 우버 파일럿은 유지하 대통령이 확실했다.
게이머들은 그의 기록을 보곤 아무리 가상의 인물이라고 해도 좀 심했다며 혀를 찼다.
―40년 동안 수백 번을 싸우면서 피격된 적이 거의 없다고? 뻥을 쳐도 좀 적당하게 쳐야지.
―이 인물은 일종의 신화 같은 거야.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전설상의 영웅 뭐 그런 거지. 그 성과를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노력은 해보라 뭐 그런 의미야.
하지만 아니었다.
유지하는 진짜 미래에서 온 인류연합의 군인이었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타는 거니까 저 어설트 아머란 것도 특별하겠지…….
그에게 물었지만 뜻밖의 답변이 날아왔다.
“아닙니다. 이건 4세대 어설트 아머로 양산형입니다.”
“양산형이라면 다른 파일럿도 같은 것을 탄다는 말씀이십니까?”
“외형이나 콕핏의 구성이 약간 달라질 수는 있지만 성능은 완전히 같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동체 여기저기에 스크래치가 있는 등 낡은 티가 났다.
미래의 기술로도 세월의 풍파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 시대에 와서 오버홀을 못 받았나?’
어쨌거나 미래의 인류연합이 만든, 플레이그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를 가까이에서 보니 신기했다.
청와대 직원들도 눈치를 보며 가까이 와서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이게 전투기 비슷한 거죠?”
“대통령님 이런 걸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셨나 보네… 멋지다…….”
“멋진 게 아니라 엄청 위험한 거잖아요. 게임 보니까 무슨 레이저가 비처럼 쏟아지던데.”
“저도 그 게임 해봤는데 머리 뒤에도 눈이 있어야 그나마 할 만하겠더라고요.”
유지하는 리플렉터 비트를 분리시켜 발판으로 삼아 콕핏에 탑승했다.
쭈뼛거리며 안을 들여다본 배성민 비서실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계급장에 문양이 세 개… 중장이셨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계급일 수도 있었다.
머뭇거리며 물어보니 대령이란다.
“예? 최종계급이 대령이셨단 말씀이십니까?”
“20년 넘게 대령이었죠.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거지만 강등당한 건 아닙니다. 파일럿은 대령까지라는 군 규정이 있었거든요.”
그거야 고치면 될 텐데 인류연합 수뇌부도 유지하도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절멸의 위기에 몰려 있는데 그깟 계급장이 중요할까.
유지하가 헬멧을 쓰자 콕핏 내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기화율이 94.95%에서 안정화 되었습니다.」
이건 아르마의 목소리인데?
배성민이 당황하는데 유지하가 팔뚝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이번에 연구를 좀 했는데 나 자신이 사이필드 차단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원거리에서 작동시키는 건 어려우니 코쿤이 낙하한 장소에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지간한 것은 아르마가 통제하겠지만 나머지 민원은 비서실장이 신경 좀 써주세요.”
유지하가 없으면 그가 대통령 대리가 된다.
실제로 직위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온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지하는 리플렉터 비트를 컨트롤해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어머어머.”
“사이커는 저런 것도 되나 봐요.”
“누가 그러던데요. 우리 대통령님이 세계 최강의 사이커라고.”
이윽고 해치가 닫히고 콕핏이 사라졌다.
어설트 아머가 천천히 올라가는데 기체 구석에 한 단어가 보였다.
「DINGO」
“딩고……?”
기체의 이름인가?
에테르 역장이 펼쳐지더니 만년 대령이 탑승한 어설트 아머 딩고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배성민 비서실장은 직원들에게 훠이훠이 손을 흔들고는 본관으로 들어왔다.
오늘 본 것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 * *
오호츠크해 상공에 유지하의 어설트 아머가 둥둥 떠 있었다.
이곳은 플레이그 코쿤이 가장 많이 낙하한 곳으로, 거의 15개가 존재했다.
유지하는 코쿤에게서 느껴지는 사이필드 농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곧 코쿤이 열리겠군.’
사실 그는 플레이그 스웜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우주기지에서 기동훈련을 받던 도중에 공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당한 인류연합은 본격적으로 블랙메탈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전투함과 어설트 아머를 이용한 전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플레이그 스웜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었다.
「포드의 비산 방향을 예측하겠습니다. 정확도는 93%입니다…….」
각지의 코쿤에서 수백 개의 선이 도시를 향해 뻗어나갔다.
지구 전체가 선으로 뒤덮이기까진 불과 30분 남짓했다.
즉 저 포드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어스 플릿보다 더 빠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생체이온 추진기가 너무 성능이 좋아.”
「별다른 전투력이 필요하지 않아서 모든 에테르를 추진력에 몰아넣은 것 같네요.」
“역시 에테르 기술의 원조란 말이지.”
반응탄을 만들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아르마가 최적화된 요격 시퀀스 데이터를 바이오칩을 통해 전송했다.
유지하의 시야가 어지러워지며 뇌에 정보가 입력되었다.
“67%… 역시 전부 요격하는 건 불가능하군.”
「마스터의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딩고와 에테르 수신기 등 하드웨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술을 받았음에도 완전하게 에테르를 소화하지 못하는 이 몸이 문제였다.
최상의 상황에서, 그러니까 세틀러호의 에테르 융합로에 과부하를 걸고 유지하도 부상을 각오한다고 치자.
그러면 딩고는 초속 2만 킬로미터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이는 평균적으로 화성까지 2시간 만에 도달하는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그건 원래의 몸을 쓴다는 가정하에서고 제대로 된 개조를 받지 않은 이 몸으로는 10%도 내기 어려웠다.
‘역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겠어.’
앞으로 인류연합은 최고평의회와 아르마에게 맡기고 군인이자 파일럿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를 아는 사람들도 사망할 테고 더미를 써서 대신하게 해도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각국은 준비를 잘 하고 있을까?
아르마에게 물어보니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날아왔다.
「최종적으로 마스터의 제안에 완전히 따르기로 한 국가는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미국의 일부 주에 불과합니다.」
“프랑스는 나름 나에 대한 평가가 반전된 것으로 알았는데.”
「이미지는 좋아졌지만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 거부감이 큽니다. 그만한 시간도 인력도 없고요.」
“죽는다고 경고했는데도 그런 반응을 보인단 말이지?”
「강한 어조로 재차 경고했음에도 최종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완전히 끝장나겠군.”
파리 같은 고도제한이 엄격하게 걸려 있는 도시는 그나마 좀 낫다.
진짜 위험한 건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한 현대적인 도시였다.
철사병이 퍼지면 건물의 철골은 물론이고 콘크리트 안의 철근까지 모래처럼 바스라진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이다.
물론 각국에선 방공망을 100% 가동하는 등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최소 수백만 명이 사망하겠어.’
이재민 등 피해자는 수억 명에 달할지도 모른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 정도라면 플레이그가 본격적으로 공습하면 어떤 피해가 날지 아찔해졌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을 썼어야 했나?
‘차라리 세계를 정복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 경우는 다른 부작용이 터졌을 것이다.
미래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험을 할 순 없었다.
유지하는 상념을 떨쳐버리고 해저 깊숙이 자리 잡은 코쿤을 주시했다.
사이필드 농도가 짙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아르마, 얼마 안 남았어.”
「마지막으로 각국 정부에 경고하겠습니다.」
“전 세계의 전파망을… 아니, 됐어. 그냥 놔둬.”
여기까지 했는데 말을 안 듣겠다면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어설트 아머가 오호츠크해의 상공에 떠 있을 때 바하마 앞바다에 낙하한 코쿤에 균열이 일었다.
미국 해안경비대가 이를 감지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빠져나오면 하프늄2 탄두를 먹여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그 스웜엔 지능은 물론이고 강한 전투력도 없단다.
메탈 데스인가 하는 이상한 현상을 일으킬 뿐이니 그 전에 파괴하면 된다는 게 해안경비대의 주장이었다.
번스타인 대통령은 지지기반이 취약한 데다 메가시티에 신경을 쓰고 있어 동해안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대피시키지 못했다.
그게 어떤 재앙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수면 위로 거품이 올라오자 경비함들이 일제히 하프늄2 폭뢰를 투하하고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 * *
플레이그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지만 일부 개체에 한해 지능이 없는 경우가 있다.
스웜이 그런 경우로 연구기관에서는 개체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스웜이 무생물이냐고 묻는다면 동의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녀석들에겐 지능은 없지만 본능에 가까운 알고리즘은 존재한다.
어떻게 행동하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지구에 낙하한 50개의 코쿤들은 동시에 폭발함으로서 요격하려는 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바하마 앞바다에서 폭발한 코쿤은 수백 개의 포드를 플로리다 주로 날려 보냈다.
「포드가 마이애미로 향합니다. 초속 25km, 현재고도 5km.」
20초도 되지 않아 마이애미 상공에 포드가 도착했다.
에테르 역장 따위의 배려는 없었는지라 충격파가 도시를 갈랐고 고층건물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이런 씨발!”
“흐아아악!”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시 여기저기에 설치된 대공포가 가동되었지만 레이더로 포착하기도 전에 포드가 폭발했다.
펑.
다소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수의 스웜이 도시를 뒤엎었다.
여기저기에 달라붙은 플레이그 스웜들은 입자파를 내뿜어 금속원소를 분해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마이애미 업무지구의 빌딩들이 불길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어?”
“이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동안 입자파는 빠르게 콘크리트를 관통해 철골을 모래로 바꿔 놓았다.
하중을 지탱하는 철골이 무용지물이 되자 건물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았다.
건물 중간의 콘크리트에 균열이 가더니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주르르 미끄러졌다.
그 결과는 붕괴였다.
쿠르르릉―
막대한 양의 분진이 일어나며 건물 일부가 바닥을 향해 쇄도했다.
무슨 소린가 해서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으아아아악!”
“신이시여!”
그러나 도망갈 곳은 없었다.
도시 곳곳에서 하중을 이기지 못한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어 가로등과 차량들이 모래알이 되어 부서졌고 비행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필 포드가 터질 때 인근 상공을 날고 있었던 여객기 한 대가 공중에서 분해되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뿌렸다.
낙하산도 가지지 못한 채 떨어진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져 즉사했다.
그리고 한 남자는 자동차에 탑승해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 나뒹구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가 차량을 핥는 느낌이 나더니 그대로 모래성처럼 부서진 것이다.
그는 핸들만 잡은 채로 황당해했다.
“씨발 이건 대체 뭐야?”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거대한 소음과 진동이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낮은 건물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피해에서 완전히 무관할 순 없었다.
포크부터 냉장고까지 집안의 금속이란 금속은 모조리 박살 났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고 이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목적지에 도착한 포드가 일제히 스웜을 뿌렸고 마이애미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한 항구도시에 정박해 있던 크루즈선이 통째로 분해되어 수백 명의 승객을 바다에 빠트리는 한편.
중국의 한 동물원에서는 우리가 증발하는 바람에 관광객들이 호랑이 떼에 습격당하기도 했다.
바로 그때 유지하의 어설트 아머가 움직였다.
「에테르 펌프 가동, 융합로 최대출력.」
세틀러호에서 보낸 에테르가 수신기를 통해 어설트 아머로 전달되었다.
에테르가 부스터에서 뿜어져 나가자 어설트 아머가 황금빛으로 감싸인 채 잔상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현재속도 초속 70km, 고도 2km.」
유지하는 눈을 감은 채 아르마가 보내주는 정보를 느끼고 있었다.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정보를 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뇌와 연동된 바이오칩으로 느껴야 했다.
‘따라잡았다.’
바로 위에 수십 개의 포드가 대열을 형성하고 비행하고 있었다.
「사출 위치 계산, 에테르 차단기 작동.」
녀석들이 어설트 아머를 감지하고 스웜을 퍼트리기 직전 하프늄2 탄두가 정확한 위치에서 사출되었다.
쿠쿵!
거대한 폭발에 바닷물이 쫙 갈라지며 포드가 증발했다.
하지만 어설트 아머는 진작 폭발반경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다음.’
유지하의 시선이 먼 바다를 가리키자 어설트 아머가 급히 방향을 꺾었다.
에테르 역장 안에선 대부분의 물리법칙이 무시되지만 관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유지하는 전신이 찌그러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어설트 아머의 방향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부스터 최대출력, 현재속도 초속 250km.」
‘큭!’
순간 피가 몰려 시야가 아득해졌다.
개조된 심장이 역 펌프질로 피를 반대쪽으로 보내자 극심한 통증이 몰려들었다.
유지하는 온몸이 박살 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아르마가 보내 주는 이미지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그건 수십 년간 플레이그와 싸워온 우버 파일럿만이 보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출」
포드 한 무리가 하프늄2의 폭발에 증발했고 어설트 아머는 이미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있었다.
유지하의 시야에 서울의 이미지가 뿌려지더니 곧바로 흐려지고 상하이로 바뀌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형체 대신 황금색 선만 보일 뿐이었다.
배성민 비서실장은 오호츠크해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벙커에서 나왔다.
하늘에 황금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저건 설마…….”
그때 헤드셋을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비, 비서실장님! 중국 상하이 근처에서 대폭발이… 아, 아니, 동남아시아에서…….”
배성민은 한숨을 내쉬며 헤드셋을 벗어 던졌다.
누가 폭발을 일으키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지하 대통령.
그가 어설트 아머를 타고 지구의 하늘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인류연합은 철사병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각국의 대도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벙커로 들어오자 인공위성이 촬영한 영상이 수십 대의 모니터를 점령했다.
그 처참한 몰골에 직원들이 하나같이 신음성을 삼켰다.
인류의 파멸이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