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명왕성 주역 전투
태양계 명왕성 주역.
원래 두 개의 왜행성이 존재했을 이곳은 거대한 구조물 형태의 둥지와 주위를 둘러싼 플레이그 군단, 그리고 배경의 붉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명왕성과 카론을 침식한 덕분에 둥지는 더 크고 험악하게 변했고 플레이그 군단의 숫자도 늘어났다.
하지만 플레이그 퀸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더 많은 무기물이 필요하다. 거점을 옮겨야겠다.
근처에 소행성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군단을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역시 군단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외행성대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플레이그 퀸은 본격적으로 둥지를 움직이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나 곧 중단했다.
머나먼 우주공간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흥미롭군. 우리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출 수 있다니.
시간을 거스른 덕분에 준비를 꽤 많이 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는 전력은 이쪽을 상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님을 왜 모를까?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
최후까지 저항한 작은 인간이 시간을 거스르고 빠르게 저항할 준비를 갖췄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플레이그 퀸은 단일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당장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할지는 몰라도 최후의 전투에선 패배할 것이다.
운 좋게 선지자의 땅으로 간다 해도 그들이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였다.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 도처에 널린 동족과 싸우며 수십 년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플레이그 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새겨졌다.
―와라. 선지자의 아이를 자처하는 자들아.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55억 킬로미터를 항해한 군단타격함대가 명왕성 주역에 진입했다.
「중력 브레이크, 감속 최대로.」
급히 속도를 줄이자 함대 전체에 거대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에테르 역장으로 대부분의 충격은 감쇄했으나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히 함대의 전 병력은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피해는 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어설트 아머를 정비하고 있던 정비관 몇 명이 나가떨어져 기절한 게 피해의 전부였다.
각 전함의 메인 브릿지 스크린에 레드 클라우드와 둥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크군…….”
“명왕성과 카론을 완전히 부쉈군요.”
“덕분에 플레이그 군단의 규모는 두 배로 커졌습니다.”
오퍼레이터들이 즉시 전장 파악에 나섰다.
“현재 약 6,520마리의 플레이그가 둥지 주변에 포진해 있습니다. 레비아탄급 32, 베헤모스급 150…….”
“퀸의 위치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둥지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력자 레이더에 무수한 광점이 출현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 공격을 시작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둥지는 명왕성과 카론의 중력 균형점에 고정되어 있으니 이쪽이 움직여야 한다.
인공지능이 함대 전체를 전진시켰다.
「함대 미속 전진. 1급 전투태세.」
통상 인류연합의 함대와 플레이그 군단의 전투는 초장거리 포격전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거기에 에너지 소모 외의 의미가 없다는 건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블랙메탈을 사용하면 수리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피해를 복구하니 자잘한 타격은 의미가 없었고 결국 어설트 아머를 통한 반응탄 배달이 결정타가 된다.
1기가 톤을 상회하는 반응탄이 폭발하면 레비아탄급도 일격에 박살나니 복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폭발을 연쇄적으로 일으켜 함대 전체를 박살내는 게 인류연합의 주요 전법이었다.
플레이그도 바보가 아니라서 그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어설트 아머의 기동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에테르 역장 감지, 5등급 트랜스폼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공지능의 보고에 이어 오퍼레이터들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전방의 레비아탄급 다수가 대구경 레일건 포신 형성! 최소 500포대를 넘습니다!”
“피탄 될 경우 플라즈마 실드는 물론이고 함체가 위험합니다!”
과연 블랙메탈 기술의 원조인 만큼 화끈한 물량으로 밀어붙이려는 모양이다.
인류연합의 함대엔 에너지 병기를 막아낼 방어책이 있지만 물리적인 타격은 한계선이 있었다.
대구경의 레일건을 펑펑 쏴대면 피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이 해법을 제시했다.
「함대 산개, 방어벽 형성.」
함대의 진형이 넓게 벌어지며 개함별로 방어벽이 형성되었다.
선수의 형상이 바뀌더니 순식간에 방패를 만들어 냈다.
곧이어 플레이그 함대가 일제사격을 시작하자 탄자가 우주공간을 뒤덮었다.
「에테르 역장 최대, 중력 크레인 가동.」
탄자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중력 크레인으로 완전히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단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착탄까지 10, 9. 8… 대 충격 방어.」
무수한 탄자가 함대를 덮쳤다.
우주라는 바다를 뚫고 나가던 함대는 갑자기 몰려온 파도에 휩쓸리는 신세가 되었다.
방패로 내세운 블랙메탈 방어벽은 금방 박살이 났고 에테르 역장과 플라즈마 실드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지만 모든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몇 척의 전투함이 피격되었고 급히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바이칼, 충주, 빅토리아 피탄. 피탄구역 봉쇄, 대미지 컨트롤 개시.」
“3A-5구역으로 전투사관 파견하세요! 블랙메탈로 일단 외벽을 막아요!”
플레이그 군단이 수차례 사격하는 사이 함대는 더 전진했다.
이때 양측의 거리는 약 15만 킬로미터로 충분히 어설트 아머를 운용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에게서 지시가 내려졌다.
「어설트 아머 사출 준비. 파일럿들은 즉시 탑승하세요.」
유진은 편대원들과 함께 어설트 아머에 탑승했다.
동기화가 끝나자 99.99라는 숫자가 콘솔에 표시되었다.
전성기에 비하면 아주 약간 딜레이가 생기긴 했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알파 포, 출격 준비 완료.”
그가 보고를 보내자 로스엔젤레스함의 메인 브릿지 전체가 웅성거렸다.
“동기화율이 99.99%라고? 가능한 숫자인가?”
“전성기의 대통령도 저 정도는 아니었어.”
“저 정도면 어설트 아머가 거의 자기 몸처럼 느껴지겠네요.”
“그가 돌파구를 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출격시켜.”
어설트 아머 편대의 임무는 함대가 적을 교란하고 공격을 막아내고 있을 때 재빨리 침투해 반응탄을 배달하는 것이다.
전황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실전이 처음인 파일럿이 많고 둥지가 가까이에 있어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랐다.
다들 플레이그 퀸은커녕 레비아탄과 조우하는 것도 처음이었던 것이다.
훈련이야 실컷 받았지만 그게 실전과 연결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건 배달부들밖에 없다. 준비가 되는 대로 사출. 각 함은 어설트 아머를 엄호하라.”
어설트 아머의 투입 지시가 내려지자 함대 전체가 공격을 개시했다.
무수한 에테르 레이저와 이온 캐논이 우주공간을 뚫고 뻗어나갔다.
전열에 버티고 있던 골리앗급들이 중장갑을 형성해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알파 편대가 사출되었다.
“윽!”
소냐는 시커먼 바다에 내팽개쳐졌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닥쳐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의 주위로 황금색의 빛줄기들이 어지럽게 그어지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어설트 아머가 증발할 테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와 어설트 아머를 이끄는 이 사이필드 때문일까?
로저스 대위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알파 원에서 각기에. 사이필드에 저항하지 마라. 우리는 그가 이끄는 대로 간다.”
그란 바로 유진 중위를 말하는 것이다.
일개 편대원임에도 그의 실력과 능력은 평범한 파일럿을 한참 초월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는데, 수뇌부에서도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냐는 처음엔 그를 질시했지만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벽이 너무 높아서 그냥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 포에서 각기에. 우리는 군단의 전열과 싸우지 않습니다. 둥지에 직접 진입합니다.”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로저스 대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나세르 소위가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소냐 중위는 그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하긴 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죠. 에테르 수신기 동기화를 제안합니다. 고통이 좀 심할 겁니다.”
4대의 수신기를 클러스터링하면 편대를 마치 하나의 어설트 아머처럼 다룰 수 있다.
파일럿들은 한계치를 넘어선 에테르에 고통스럽겠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로저스 대위가 될 대로 되라는 듯 승낙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왕 엉덩이는 구경하고 가야지. 동기화 시작해.”
「에테르 수신기 클러스터링 시작.」
순간 넷의 에테르 회로가 겹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냐와 다른 파일럿들은 유진의 에테르 회로가 가진 무지막지한 용량에 경악했다.
‘엄청나다…….’
마치 바다에 빠진 듯한 느낌이 지나가고 엄청난 고통이 닥쳐왔다.
세 명의 파일럿들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고 유진은 침착하게 어설트 아머의 추력을 조절했다.
“갑시다.”
어설트 아머 네 대가 거의 동시에 플라즈마를 길게 뿜어냈다.
그들은 황금빛의 긴 꼬리를 늘어뜨리더니 곧장 플레이그 군단의 전열을 파고들었다.
“화력 집중! 전열을 부숴라!”
함대사령관의 지시에 모든 전투함이 화력을 집중시켰다.
* * *
알파 편대가 출격한 시점부터, 군단타격함대의 전 병력은 이번 임무가 그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4대의 어설트 아머가 마치 하나처럼 판단했고 움직였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마 후미에 있는 유진 중위이리라.
어떻게 보면 넷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플레이그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체 말이다.
“화력 집중!”
어설트 아머의 주변으로 에테르 레이저와 이온 캐논이 쏟아졌지만 피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저들은 플레이그 군단에서 쏟아지는 공격도 수월하게 피해냈다.
마치 사전에 약속된 것처럼.
그 기동을 목격한 함대 수뇌부에선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저들은 인간의 한계를 명백히 초월하고 있었다.
0.1초마다 수십 발의 공격이 쏟아지고 또 그에 대한 예측 데이터가 날아든다.
그것을 정확히 분석해 부스터와 윙팩의 추력을 제어하고 기체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어설트 아머는 블랙메탈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포화를 견뎌낼 정도는 아니었다.
딱 한 대라도 맞는 순간 종잇장처럼 찢어져 증발할 것이다.
하지만 유진 중위가 컨트롤하는 4대의 어설트 아머는 마치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를 누비는 나비처럼 위태롭게 날고 있었다.
“아름답군.”
“예… 한 대라도 맞는 순간 나비의 날개는 찢어집니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야겠지. 저들은 인류의 희망이니까 말일세.”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플렉터 비트가 사출되더니 사방으로 에테르 레이저를 반사했다.
알파 편대로 접근하던 수십 마리의 플레이그가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수십 개의 리플렉터 비트는 마치 하나처럼 원래 자리에 장착되었다.
그리고 반응탄이 터지면서 알파 편대는 둥지 깊숙한 곳까지 진입했다.
파일럿 셋의 의식이 유진이 만든 공간 속에서 만났다.
‘이거 혹시 우주선 아니야? 아무리 봐도 Hulk(폐선)처럼 보이는데?
‘대위님, 제발 잡담은 그만 좀.’
‘저도 동의합니다. 플레이그 퀸은 폐선을 둥지로 쓰고 있었던 걸까요?
‘직경이 천 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우주선이라니, 어마어마하구만. 플레이그 여왕의 엉덩이를 받아들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겠지.’
‘제발. 유진 중위가 신경 쓰여서 비행이나 하겠어요?’
‘대체 뭐가 문제야? 알아서 잘 하고 있잖아?’
한편 유진은 둥지에 접어들면서 직접적인 공격 대신 플레이그 퀸의 사념파에 노출되었다.
―실력이 녹슬었구나.
‘그래? 아직은 뜨거운 맛을 못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조금만 기다려.’
―확실히 너희가 만든 무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게 너희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위력이 약해서인가 보지. 걱정 말라고. 이번에 선물할 녀석은 5개를 묶은 거니까.’
도합 20기가 톤짜리 반응탄을 둥지 가장 깊은 곳에서 터트릴 예정이었다.
플레이그 퀸이고 나발이고 한 방에 박살낼 수 있도록.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왜, 분함대를 지구에 보내놔서 안심이 되나?’
―알고 있었구나.
그게 그가 바라는 거니까.
일부 사이커들이 플레이그 퀸과 접촉했다는 것은 유진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방관하는 것은 그런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록 시민들의 의식을 고취시키진 못했지만 완전히 실패하진 않았다.
‘다른 건 상관없어. 너만 족치면 돼.’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날까? 아니,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너희들에겐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자격이 더 필요하다는 거지? 우리에게 자격이 없었다면 선지자가 선물을 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후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맞아. 난 뭘 몰라. 그리고 넌 아무것도 모르는 미개한 종족에게 박살날 처지에 놓였고.’
―장담하건대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군. 그것까지 포함해서 끝장내도록 하지.’
―그 패기만큼은 훌륭하구나. 인정하겠다. 너는 우리가 만난 종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다.
‘종족 중에서?’
플레이그 퀸과 싸운 게 인류 외에도 더 있다는 뜻일까?
눈을 감은 유진의 머릿속에 둥지 최심부가 그려지듯 나타났다.
중력자 데이터와 에테르가 그에게 둥지 내부의 상황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퀸이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던 친위대 플레이그가 달려들었다.
‘융합로 최대 출력.’
「융합로 최대 출력. 조심하세요, 마스터.」
루시아의 염려와 함께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막대한 에테르가 수신기를 통해 유진에게 몰려들었다.
그는 몸이 타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에테르 레이저를 내보내려 애썼다.
하지만 어설트 아머에서 뿜어진 건 레이저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검이었다.
‘이건 뭐지?’
‘어, 어, 부딪힌다!’
로저스 대위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 검은 주변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온갖 파편을 증발시키고 이쪽을 향해 돌진하는 친위대를 박살내기에 이르렀다.
육중한 중장갑을 가진 크라켄 여러 마리가 에테르에 노출되어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검은 그걸로 모자라 공간을 압축하여 여왕에게까지 뻗어나갔다.
순간 그녀의 사념이 유진에게 전달되었다.
―너라면 혹시…….
하지만 검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황금빛의 거대한 검이 플레이그 퀸을 무자비하게 갈랐다.
블랙메탈로 이루어진 육체가 에테르 속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알파 편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응탄을 분리시킨 뒤 그대로 이탈했다.
얼마 후 둥지 최심부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 * *
인류와 플레이그의 전투는 명왕성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지구 근처에서 에테르 폭풍이 불어 닥치더니 별안간 수백 마리의 플레이그 골리앗이 나타났다.
이 녀석들은 특별한 명령을 받고 있었는지라 곧장 형태를 원추형으로 바꾸고 지구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지구주역 기동함대가 있었지만 대응하기엔 너무 늦었다.
「경고, 플레이그가 대기권에 진입을 시도합니다.」
“어설트 아머를 내보내기엔 늦었다! 반응탄을 발사해라!”
사령관의 지시하에 각 전투함에서 십여 발의 반응탄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으로 통제되는 반응탄의 움직임은 플레이그를 요격하기엔 너무 느리고 정직했다.
수십 마리의 골리앗이 후미를 틀어막더니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 반응탄의 기폭을 유도했다.
그들은 대폭발에 휩쓸려 즉사했지만 대부분의 골리앗이 살아남았다.
오히려 반응탄의 폭발이 그들의 대기권 진입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충격파가 그들을 밀어낸 것이다.
「플레이그 골리앗 349마리가 대기권에 진입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북태평양에 위치한 메가시티 퍼시픽이었다.
곧장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었지만 현재의 메가시티는 상당히 불안정했다.
인공지능에 문제가 생겼는지 전력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때로는 입구가 제멋대로 열리기도 했다.
시민들이 불안에 떠는 가운데 방어 시스템을 돌파한 골리앗이 구조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쾅!
엄청난 운동에너지에 상부 구조물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처참한 몰골로 변했다.
자동으로 복구가 이루어졌지만 골리앗이 낙하하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몇 마리의 골리앗이 기어코 메가시티 상부 구조물을 뚫고 안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속도는 상당히 줄었지만 특유의 파괴력은 여전해서 메가시티 퍼시픽의 중심구역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놓았다.
“저기 또 온다!”
“씨발 튀어!”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가운데 본체에 타격이 갔는지 메가시티의 상당수 일부 차단되었다.
상공에 정체불명의 수송기 편대가 날아들었다.
근처에서 문제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성전기사단이었다.
개인화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들은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내부로 진입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을 목격했다.
“뭐야? 뭐 하는 놈들이야?”
“설마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가?”
시민들이 도망가려는 찰나 착지한 기사단원들이 외쳤다.
“우리는 해방자입니다! 시민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 흉한 꼴을 보십시오! 대통령이 그렇게 자랑한 메가시티는 어디 갔습니까?”
“대통령은 명백히 직무유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격은 더 심해질 거고, 우리는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대통령을 잡아 플레이그 퀸과 교섭하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시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자유를 찾을 수 있게끔!”
평범한 시기였다면 동조하는 시민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신뢰를 잃고 메가시티가 박살나다 보니 시민들의 원망이 한꺼번에 쏠렸다.
모든 관리를 위임한 결과가 이거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민들은 성전기사단을 모른 체하거나 심지어 도와주기 시작했다.
중심구역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안내하고 반드시 대통령을 잡으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원래 그들을 막아섰어야 할 드론과 안드로이드 등은 오류가 생겼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성전기사단은 곧장 중심 구역으로 진입해 목적지로 달렸다.
한편 황금궁전에서는 아르마와 배성민 의원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때나마 저들에게 권력을 양도해야 한다는 게 짜증나는군요.”
“어쩔 수 없죠. 마스터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워야 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플레이그 퀸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습니다.”
간단한 대답에 배성민 의원은 당황했다.
“그, 정말 죽었습니까?”
“본체와 둥지 전체가 박살났습니다. 우리 함대에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승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그가 궤멸당한 것은 아니었다.
여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플레이그 군단이 곧장 녹스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유진은 행방불명을 가장하고 세틀러호와 함께 그들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배성민은 거기까진 몰랐지만 수십 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아르마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의원님, 앞으로 인류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당황해 마주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