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08
207화 부유대륙에 있는 것
“이름은?”
―지갈레온… 이다.
“나이는?”
―너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숫자를… 자, 잠깐! 최소 700살 이상은 된 것 같다!
어설트 아머의 암 유닛이 내려가자 지갈레온은 노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대체 뭘 쏘는 건지 드래곤 체통에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팠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저게 골리앗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슬쩍 트루아이를 통해 관찰한 결과 녀석의 외형은 새를 닮았다.
그리고 그는 마법을 쓴 대가로 정체불명의 공격을 또 당해야 했다.
이상한 골리앗에 탄 검은 머리카락의 이상한 인간은 그에게 경고했다.
“한번만 더 마법을 쓰면 아까의 뜨거운 경험을 다시 느끼게 해주겠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공격은 최소치였어.”
―최, 최소치라고?
“그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이면 네 육체가 보존될지는 장담 못해.”
지갈레온은 호기롭게 해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워낙 소심한 터라 그렇게 하진 못했다.
대신 비겁하다며 투덜거리다가 레일건을 얻어맞아야 했다.
―그, 그만! 그만둬!
“너는 나를 공격했다. 그러므로 너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다. 이 점을 잊지 말도록.”
그 후로는 거의 1시간 동안 심문을 당했고 그의 지식이 낱낱이 유출되었다.
이름부터 나이, 마법의 경지부터 그가 가진 고대의 기억과 지식까지.
당연하지만 이런 심문이 부드럽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레오볼드는 대답이 시원찮다 싶으면 가차 없이 레일건 탄자를 쏟아부었다.
지갈레온은 방어막을 펼쳐 그걸 막다가 지쳤는지 구석에 처박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맞은 데 또 때리다니! 엘프도 이렇게 지독하진 않았어!
“200년 동안 부유대륙에 숨어 지낸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아무튼 네가 아는 모든 걸 말해라. 드래곤 전쟁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까 나와 싸울 땐 대륙을 공포에 물들였던 운운했잖아?”
―그, 그냥 해본 말이었어. 애초에 나는 동족이 강요하는 대의가 마음에 안 들어서 숨어 다녔으니까…….
“그 대의란 뭐지?”
지갈레온은 또 눈알을 굴리다가 레일건 탄자를 몇 대 맞고서야 순순히 주둥이를 열었다.
―우리가 아스테라를 지배하는 거야.
“드래곤쯤 되어서 단순히 과시욕은 아닌 것 같고, 뭔가 목적이 있나?”
―대륙의 지배자가 되어서 모든 분쟁을 종식시키는 거였지. 그게 마음에 든 드래곤들도 있었지만 나는 말이 안 된다고 느꼈어.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분쟁이라. 혹시 알테마란 드래곤은 뭘 했는지 알 수 있나?”
―알테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미친… 아니, 열광적으로 대의를 추종했다고 해두지.
“왜?”
―왜라니?
“그렇게 열광적으로 대의를 추종한 이유가 있었을 게 아닌가? 단순히 미친 드래곤이 아닌 바에야.
―글쎄, 나라도 거기까진 알 수가 없지.
“얼마나 강했지? 너와 비교하면.”
지갈레온은 코웃음을 쳤다가 이게 단순한 질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높게 잡으면 세계를 파괴할 뻔했던 그녀를 낮게 평가하게 되고, 낮게 잡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음… 평균에서 살짝…….
“그렇다면 상당수의 드래곤이 너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나? 그리 대단하진 않은 종족이었군 그래.”
레오볼드의 눈빛에선 드래곤이란 종 자체에 대한 멸시가 묻어났다.
하긴 공격은 제대로 먹히지도 않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심문을 당하는 처지이니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지갈레온은 울컥했다.
자신은 몰라도 동족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전쟁에 직접 뛰어들진 않았지만 알테마나 발라카스 등의 드래곤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들어 알고 있었다.
―젠장, 난 하위권이었어! 그것도 나보다 아래 서열은 찾기가 힘들 정도로!
레오볼드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래서 요약하면 너는 200년 전 드래곤 전쟁에서 별 활약을 못했을뿐더러 부유대륙에서 숨어 지냈다 이건가? 전쟁이 끝났는데도 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뭐지?”
―혹시 살아남은 동족이 있을까 봐서…….
“너보다 강한 개체가 대의를 들이밀까 두려웠던 거군.”
―그런 의미에서 물어보는 건데… 넌 인간인가?
“무슨 의미지?”
―아까 그 에테르도 그렇고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하긴 레오볼드는 플레이그의 전함급과 맞먹는 에테르 감응력을 가졌다.
원래 육체와는 에테르 회로가 달라서 100% 힘을 발휘하진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랐을 것이다.
“마음대로 생각해.”
―쳇, 협박까지 해가면서 내 정보를 빼간 주제에 조금도 알려 주지 않으려 하는군.
“내가 이겼으니까.”
레오볼드가 블루 드래곤의 큰 머리 앞으로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이겼음에도 자비심을 발휘했기 때문에 네놈이 살아 있는 거다. 그 점을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
지갈레온은 그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드래곤을 압박하는 이 기운은 대체 뭐지?
혹시 선조 중에 챔피언이 있나?
아니면 드래곤의 혈통인가?
온갖 상상이 이어지는 동안 레오볼드가 인심 쓴다는 듯 말했다.
“레오볼드 반다스. 그게 내 이름이다.”
―레오볼드라고?
“왜,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나?”
―아니, 내 이름과 비슷해서 왠지 친근감이 느껴져서 말이야. 지갈레온, 레오볼드… 비슷하지 않나?
순간 레오볼드는 녀석의 거대한 머리통을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겁 많고 멍청한 드래곤 같으니라고.’
모든 드래곤이 이 녀석 같다면 그들과 결전을 벌였다는 신이란 존재도 별 볼 일 없을 것 같았다.
정황상 이 개체는 드래곤 중에서도 상당히 떨어지는 게 확실하지만.
그 후로도 심문이 길게 이어졌지만 새로 나온 정보는 별로 없었다.
이 빌어먹을 드래곤이 200년 동안 부유대륙에 처박혀 왕 노릇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드래곤의 전투력 등 얻어낸 정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위해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다.
그는 눈치를 보는 지갈레온 앞에서 선언했다.
“부유대륙의 왕을 자처했었나? 미안하지만 이제 이 땅은 내 것이다.”
* * *
지갈레온의 얼굴이 확 변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유일한 주인은 내게 굴복했으니 이제 내 땅이란 거지. 어차피 다른 종족은 여기 못 오니까.”
―지긴 했지만 굴복하진…….
지갈레온은 거기까지 말했다가 주둥이를 다물고 말았다.
한 번 더 그 빛기둥에 직격당하느니 죽는 게 나았다.
그렇다고 그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부유대륙은 아스테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미지의 땅으로, 엘프나 인간에게서 안전한 쉼터였다.
더 이상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가 초조해하자 레오볼드가 선심을 쓰듯 제안했다.
“네가 곤란한 걸 모르는 건 아냐. 해서 제안 하나 하겠다.”
―어, 어떤 거지?
“나와 계약을 맺자. 그래도 드래곤이고 한때 아스테라를 지배했던 종족이니 최소한의 대우는 해주겠다.”
체면을 세워주겠다는 말에 지갈레온은 솔깃해졌다.
잘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의 판단력은 결코 높지 않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눈앞의 인간이 무지막지하게 행동하게 될 거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어찌 된 인간이 엘프보다 더 폭력적인가!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한탄을 늘어놓아 봐야 변하는 건 없고 그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조건을 들어는 봐야지.
―사, 상세한 내용을 듣고 싶다.
“날 도와주면 네가 원하는 걸 주겠다. 이 부유대륙엔 상당한 자원이 존재하지만 에테르석은 부족하더군. 그걸 주지.”
어느새 이런 조사까지 끝낸 걸까?
지갈레온은 에테르석을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다.
―어, 얼마나?
“네가 필요로 하는 만큼.”
드래곤은 보통 탄소 기반 생명체는 아니었다.
만약 그 거대한 덩치가 내키는 대로 동물을 잡아먹었다면 부유대륙의 생태계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지갈레온은 자신이 섭식을 하는 게 아니라 에테르석을 먹는다는 걸 고백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에테르석에 저장된 에테르를 흡수하는 것이지만.
드래곤은 덩치만큼이나 에테르석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부유대륙엔 그게 상당히 부족했다.
덕분에 그는 에테르석을 구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땅꾼 흉내를 내곤 했다.
지상에 내려갔다면 쉽게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엘프들의 스토킹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지갈레온은 짐짓 덩치를 부풀렸다.
―내가 에테르석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정도면 되겠나?”
레오볼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골렘이 레어로 들어오더니 에테르석을 바닥에 와르르 쏟아놓고 갔다.
녀석의 정체는 골렘이 아니라 워커지만 지갈레온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영롱한 에테르석에 꽂혀 있었다.
“만약 네가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인다면 저걸 매달 공급하도록 하지. 보면 알겠지만 순도도 대단히 높아. 시중의 얼치기 마법사들이 만든 에테르석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자부하지.”
에테르석은 세틀러호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걸 내다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수요를 개척해야 하니 아직은 무리였다.
이렇게 설득을 하는 이유는 드래곤을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녀석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레오볼드 본연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윽박질러서 반항심을 갖게 하는 것보다는 살살 꼬드겨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나았다.
어째 길거리 동물을 유혹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지갈레온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저 정도의 순도 높은 에테르석을 매달 공급한다라… 내가 해줘야 하는 건 뭐지?
“부유대륙에 대한 내 지배력을 인정하고 다른 세력을 배제할 것. 만약 엘프나 다른 인간들이 올라올 것 같으면 쫓아내라는 뜻이야.”
―어렵지 않은 조건이군. 또 있나?
“내가 원할 때 내 영지로 와서 힘을 보탤 것. 참고로 말한다면 내 영지는 대륙 서쪽 해안가에 있다.”
―귀족인가 보군. 내가 이 모습을 드러내면 인간들이 동요할 텐데?
“당연히 인간 모습으로 지내야지. 내가 원하는 건 네 빈약한 전투력이 아니라 마법적 능력이야.”
지갈레온은 발끈했으나 골리앗을 흘깃 쳐다보곤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인간으로 변하는 걸 보고 싶군.”
―후… 폴리모프라고 하지. 인간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이니 영광으로… 아아, 알았어. 빨리 할 테니까.
잠시 후 거대한 블루 드래곤의 모습이 사라지고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볼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고 있어도 못 믿겠군. 2,500톤의 질량은 어디로 간 거지?’
「허수공간… 그러니까 이곳에서 아공간으로 말하는 차원에 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력자도 사라졌습니다.」
‘그럼 폴리모프가 아니라 육체 소환 마법이잖아.’
그는 지갈레온에게 저벅저벅 다가가 머리카락을 하나 떼어 워커에게 넘겨주었다.
“아뜨! 뭐 하는 거야!”
“흐음… 일단 인간 같긴 한데…….”
지갈레온은 여러모로 심문을 당하다가 간신히 그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 무엄하다! 감히 드래곤의 육체를 만질 생각을 하다니!”
“나도 남자 몸 만지는 건 짜증나니까 입 다물어. 그나저나 이 상태에선 섭식이 필요한 건가?”
“이 육체를 유지하려면 먹어야 하지. 난 취향이 까다로우니까 제대로 된 요리를 준비해야 할 거야.”
“시끄럽고 주는 대로 먹어. 외모가 눈에 띄니까 외국의 귀족이라고 하면 될 거야. 당분간 내 영지에서 신세를 진다고 해.”
“후… 어쩔 수 없군.”
지갈레온은 거울을 꺼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반강제로 200년 만에 지상으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인간이 공급해 주는 에테르석을 먹고 지내라니 처지가 서글프게 되었군…….’
뭐 부유대륙에 있으면 땅이나 파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지갈레온이 레어를 정리하기 시작하자 레오볼드가 옆에 와서 눈을 빛냈다.
“200년 동안 열심히 광석을 모았군.”
“여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컬렉션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 컬렉션은 레오볼드가 보기에도 대단했다.
부유대륙에 이렇게 다채로운 보석이 매장되어 있었나 생각될 정도였다.
그는 보석에는 큰 흥미가 없었지만 그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레어에 쓸 만한 게 꽤 많이 있군. 나한테 전부 넘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게 다 얼마인 줄은 알아?”
지갈레온은 방방 뛰다가 레오볼드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래의 네 모습을 떠올려 봐. 아무도 떠받들어 주는 이 없는 부유대륙에서 몬스터의 왕으로 만족할지 영지의 수호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인가는 너한테 달렸어.”
인간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말에 지갈레온의 눈이 번뜩 뜨였다.
“네 영지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들었는데…….”
“지금이야 그렇지. 내 영지는 부유대륙의 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할 거야. 그리고 비행선이 여길 우연히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여기에 자원이 있는 걸 알고 있었어. 드래곤을 물리칠 만한 힘도 있고.”
정말 놀랄만한 일이지만 하여튼 틀린 건 없었다.
이제 지갈레온은 빠르게 발전하는 영지의 모습을 멍하니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수많은 인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했다.
200년 동안 홀로 지낸 그에게 있어선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흠, 뭐 나쁘지는 않군…….”
“그 영지가 국가가 되고 제국으로 발전할지도 모르지. 거기에 네 도움이 필요해.”
“제국의 수호자라…….”
이제 거의 넘어온 느낌이었다.
“나도 네 이미지 구축에 신경을 쓸 테니까 잘 해보자고.”
은둔형 드래곤은 이제 없다.
수많은 제국 신민에게 추앙을 받는 황제의 맹우이자 수호룡이 고개를 들었다.
“…좋아. 네 말에 따르도록 하지.”
“잘 선택했어.”
레오볼드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르마가 시야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존재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팔아먹은 느낌이네요.」
‘쉿.’
그는 모른 체하곤 지갈레온을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기절해 있는 그랜든 휘하 선원들을 깨워서 자원을 채굴하는 것만 남았다.
* * *
“으…….”
그랜든은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행선 갑판이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햄튼 휘하 선원들을 깨웠다.
“일어나, 일어나게!”
“음… 헉!”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비행선이 착륙한 곳은 황량한 대지였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그랜든과 햄튼은 난간에 기대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혹시 여긴 부유대륙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도저히 믿기진 않지만…….”
푸른 날개를 가진 그 드래곤의 공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추락하던 비행선이 이렇게 멀쩡한 이유도.
선원들이 기관과 여러 설비를 점검한 끝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보고해 왔다.
“지금 날 수 있나?”
“예! 부유력도 충분합니다! 언제라도 시동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지시를 내리려던 햄튼을 그랜든이 저지했다.
그는 기사 특유의 시야로 저 멀리 풍경을 보고 있었다.
“놀랍군…….”
“뭐가 놀랍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사님, 기사님!”
그랜든은 뭔가에 홀린 듯 배에서 내려 대지를 걸었다.
얼마 후 그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노란색의 예쁜 돌멩이였다.
뒤따라온 햄튼 선장이 그걸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사님 그건 설마…….”
“난 광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건 아무래도 금인 것 같지 않소?”
“어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노란 빛이 섞인 돌멩이에 잇자국이 나자 햄튼의 손이 벌벌 떨렸다.
“금, 이건 확실히 금입니다. 세상에, 금이 땅에서 그냥 굴러다니다니…….”
“여긴 엘브랑데에 있는 노천금광과 비슷한 곳인가 보오.”
아스테라에 금광은 많지만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 부어 바위를 깨야 간신히 금맥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엘브랑데에는 노천금광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그것을 공개했고 거기에 가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말 그대로 땅에 금덩어리가 굴러다닌다는 것이다.
금덩어리의 크기는 작았지만 큰 노동력을 들이지 않고 채굴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부러운 일이었다.
모든 국가가 그 노천금광에 군침을 흘렸지만 엘브랑데 영토에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여기에 금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대단한 노동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근처를 걸어다니며 돌멩이를 줍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비한다면 소문의 엘브랑데 노천금광도 초라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거 가져가도 되는 걸까요? 여기엔 그, 드래곤이 있잖습니까.”
햄튼의 목소리는 벌벌 떨려서 누가 들어도 두려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랜든도 그랬다.
그 거대한 생명체 앞에서 기사라는 존재는 한없이 무력했다.
골리앗이라도 있다면 얼마간 반항을 해볼지도 모르겠으나 그걸 싣고 올 순 없었다.
그는 햄튼의 어깨를 붙잡고 당부했다.
“우선 선원들을 추스르고 금을 모읍시다. 배에 선적하기 전에 무게를 잴 거니 빼돌리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오.”
“당연한 일입죠. 그런데 드래곤은 어떻게 할까요?”
“…나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오. 최대한 빨리 금을 싣고 여길 떠나는 수밖에.”
“속도가 관건이겠군요. 어어이! 너희! 여기로 내려와라!”
햄튼이 크게 소리쳤을 때였다.
허공에서 거친 바람이 일더니 푸른 날개를 지닌 생명체가 대지에 착륙했다.
그랜든은 반사적으로 검을 빼들었으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말로만 듣던 드래곤이다.
200년 전 대전쟁 때 멸종한 줄 알았던 드래곤이 그의 앞에서 노란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젠장, 여기서 죽겠군.’
죽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건강한 에일리를 보지 못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굳건히 쥐자 지갈레온은 대본대로 연기하기 시작했다.
―흐음… 오랜만의 인간들이로군. 최초로 나의 영토에 발을 디딘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겠다. 나 블루 드래곤 지갈레온의 선물이니 감사히 여기도록.
그랜든은 긴장한 상태에서도 지갈레온이라는 이름만큼은 똑똑히 기억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전설 속의 종족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오직 너희들에게만 부유대륙의 자원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겠다.
“허,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 가서 알려라! 오로지 너희들만이 부유대륙의 자원을 캘 수 있다고! 나 지갈레온이 부유대륙의 주인이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날개가 사납게 움직이며 대기가 요동쳤다.
마법이라도 썼는지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랜든은 이를 악물고 상공으로 날아가는 블루 드래곤을 노려봤다.
옆에서 털썩 소리가 나더니 햄튼이 쓰러졌다.
“드, 드래곤 앞에서 살아남았군요…….”
“그런 것 같소.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드래곤에게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곳의 자원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이다.
일회성인지 장기적인 약속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이 금을 영지로 가져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햄튼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힘든 건 알지만 움직입시다. 드래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금을 싣고 떠나야 하오.”
“기사님은 강하시군요. 저는 아직도 손발이 떨려서…….”
사실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선원들에게 떨리는 손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선원들이 금이 섞인 돌멩이를 줍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던 선창에 금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