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백작령에서 일어난 일
레오볼드가 란티스 백작령을 점령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영주성을 부수는 것이었다.
인근 란티스시에 관저를 포함한 간이 관공서가 뚝딱 만들어지더니 골렘과 골리앗의 합동 작업에 의해 성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란티스시의 사람들은 그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영주성은 란티스 백작령의 상징이자 역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대전쟁에도 굳건히 버텼던 란티스 가문의 상징이…….
―옛 문헌에 따르면 저 성을 건축하는 데 든 시간만 15년이고 엄청난 자재와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걸 한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건 좀 그렇다.
―골리앗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큰 성인데 너무 아쉽지 않나?
당연하지만 이런 의견은 영지 내의 극소수 유력자들인 준귀족과 부유한 상인, 혹은 관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란티스란 이름은 바그란 왕국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기에 새로운 영주의 조치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레오볼드가 영주성을 부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야. 거인도 아니고 그런 성에 들어가서 살 이유가 없지.”
외형이 유려해서 보존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필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너무 큰 면적을 낭비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영주 집무실에서 내다본 풍경이 좋기는 하지만…….”
넓고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잔잔히 흐르는 오브강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그가 모든 일을 끝낸 뒤 쉴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레오볼드에겐 감성보다는 란티스시의 효율적인 확장이 더 중요했다.
“여기에 세계적인 식량 기업이 들어서야지 웬 낡은 성 따위가 있으면 안 돼.”
그의 영지가 보유한 곡창지대는 대륙 전체로 따지면 작긴 하지만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1만 5천㎢에 달하는 면적 대부분이 평야이고 옥토라서 식량을 재배하는 데 알맞았다.
거기에 인근의 오하멜시에서 나는 석재, 철광석과 석탄 등이 합쳐지면 초기산업을 일구는 데에는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화학비료가 없어서 식량의 대량 생산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은 금방 해결될 것이라 레오볼드는 화끈하게 밀어 버리는 쪽을 택했고 현재는 터만 남았다.
골렘들이 잔해를 깨끗이 치웠고 아르마의 지휘하에 란티스시의 관료와 장인들이 모여 도시의 확장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분리된 시가지를 하나로 잇는다굽쇼?”
“시를 그렇게 확장하면 영주님의 공간이 보장이 안 됩니다요.”
장인들은 하나같이 영주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려했다.
이 계획도에는 관저와 다른 건물이 너무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귀족이 평민과 같은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바그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기에 해당되었다.
에테르 혈통은 그에 걸맞은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었고 성이나 저택을 지어대는 게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르마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이것은 영주님께서 최종적으로 검토하신 사항입니다.”
“영주님께서 직접…….”
“화, 확실히 반다스 남… 아니, 백작님께서는 뭔가 다르시군요.”
사실 이쪽 사람들은 그간 레오볼드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과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영지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보면 일단 귀족다운 오만함이 없는 소탈한 성격인 것 같은데 진짜 그런지 궁금했던 것이다.
란티스 백작령을 접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한 면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태도에서 바그란 귀족 특유의 오만함과 선민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저가 임시로 지어졌기에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는 항상 평민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처음엔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려 했던 사람들도 그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먹는 것도 별 다른 게 없었다.
가끔 반다스 마을에서 나는 갑각류나 해산물을 요리한 것 외에는 평민들이 먹는 것과 거의 같았다.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백작님은 뭔가 좀 다른 것 같다. 같은 공간에서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잔다.
―영지를 점령했으면 그간의 관례에 따라 특별 세금과 부역을 지게 하는 게 우선일 텐데 하나도 없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반다스 마을과 똑같은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우린 서자일 줄 알았는데…….
현재 레오볼드가 지배하는 땅엔 반다스 마을과 오하멜시, 그리고 란티스시와 아직 편입되지 않은 몇몇 영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란티스시는 홀대를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시계탑이 곳곳에 세워졌고 하수도관과 관개시설, 기타 목욕탕과 시민 편의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돈이 풀린 만큼 란티스시에 활기가 돌았고 자연스레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돈은 사람을 웃게 하는 법이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란티스 백작은 깔끔히 사라졌다.
이제 바그란 동부를 지배하는 자는 란티스가 아니라 레오볼드였다.
그는 시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회사 설립이었다.
유지하 컴퍼니.
반다스 마을에 있었던 협동조합이 발전한 것으로 아르마의 통제하에 반다스 백작령의 모든 물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게 된다.
레오볼드는 이름을 들은 후 난감해했지만 아스테라의 사람들에겐 이국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안 후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지구의 다국적 기업이란 것도 창시자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았기 때문.
아무튼 유지하 컴퍼니는 소금과 해산물은 물론이고 석탄이나 철광석, 밀 같은 자원과 앞으로 반다스 백작령이 만들어내는 모든 물품과 가치까지 거래하게 된다.
주요 인원은 로한 상단에 소속되어 있던 상인들로 란티스 백작과 연계하여 갈리스토에 밀을 팔아먹은 죄목을 가졌다.
레오볼드가 나서서 루아드 왕자에게 탄원을 요청하는 대신 직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요구한 건 딱 하나였다.
“그대들이 누구이고 과거에 뭘 했는가는 관심 없소. 내가 원하는 건 투명한 장부와 이익이오. 열심히 일하되 보고만 제때 하시오. 그럼 책임은 묻지 않겠소.”
살려준다는데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재산까지 보전해 주고 죄를 묻지도 않으니 상인들의 선택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유지하 컴퍼니가 구성되었고 에테르 연구소나 공방 등의 조직도 이관되었다.
지온이나 불토른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들을 통제할 시스템이 필요했다.
전자는 그냥 미친놈이고 후자는 연구에 미친 공돌이라 돈을 물 쓰듯 하는데 거기에 제동이 걸렸다.
둘은 투덜투덜했지만 모든 조직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레오볼드의 지침은 어기지 못했다.
시민들은 이런 변화를 보며 어지러워했다.
―20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시설이 늘어난 건 좋은데 잘 운영될지 의문이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
―그래도 도시가 활기찬 건 좋다. 언제 전쟁이 일어났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원래 전쟁은 귀족들의 것이라서 평민들의 체감은 크지 않았지만 워낙 수습을 잘 했기에 더더욱 여파가 작았다.
이런 외적인 변화 외에 내적인 변화도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바로 에테르에 대한 연구였다.
* * *
에테르 기초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에테르석이다.
평범한 에테르석이 아니라 순도 높은 수정에 최소 몇 달, 혹은 몇 년 이상 집진 마법진을 통해 에테르를 모아 만드는 거대한 것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에테르석에 모인 에테르의 순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많을수록 연구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균열과 기포가 없는 투명한 수정을 구하는 것도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힘들고 다년간에 걸쳐 에테르를 모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 스테피나는 처음엔 반다스 영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주가 돈이 많은 건 알겠는데 에테르에 대한 지식 수준이나 관심도가 크게 높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온과 루시아를 만나면서, 그리고 무제한으로 퍼부어지는 자금과 재료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흐음… 자료가 별로 없고 영주님이 관심을 안 가진다는 걸 빼면 괜찮은 곳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뭘 모르는구만. 영주가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아니라 일단 놔두는 거야. 시간이 지나도 성과가 안 나오면 그때부턴 달달 볶기 시작할걸.”
“그런가요?”
그녀의 눈에 먼저 연구소에 들어온 지온이나 루시아는 매우 신기한 존재였다.
루시아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요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온은 묘하게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마법을 연구할 때면 뛰어난 현자 같기도 하다가도 일상생활에선 너무 멍청한 모습을 보여서 과연 같은 인간이 맞는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과 함께하는 연구소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지온은 최고의 마법사들에겐 최대의 에테르석이 필요하다며 영주에게 지원을 요구했다.
“아스테라 전체를 뒤져서 가장 크고 순수한 수정을 내놔. 그렇다면 연구에 임해주지.”
“지온,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지 않겠어요? 그런 수정이 길가에 떨어져 있는 건 아니라구요.”
“아직도 영주란 놈을 모르는 모양이군. 저놈은 뭘 내놓으라고 하면 그 이상을 던져주는 마법지팡이 같은 놈이야. 뭘 가져올지 기대하라고.”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루시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분명히 거대한 수정을 가져올 거야.
뭐 가져오면 좋은 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연구에 전념하고 있던 스테피나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레오볼드가 정말로 거대한 수정을 건네주고 간 것이다.
거의 성인의 머리통만 한 수정이었는데 여태껏 수많은 수정을 봐온 스테피나로선 입이 딱 벌어질 만한 크기였다.
거기에 약간의 균열도 흠집도 없는 완벽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크다…….”
“흐흐, 내가 뭐랬어? 레오볼드는 이런 놈이야. 자, 연구 시작하자고.”
그때부터 에테르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레오볼드가 요구한 과제가 에테르의 본질을 밝히라는 것이었기에 그만큼 순수하고 농도가 짙은 에테르가 필요했고 그건 시간과 큰 관련이 있었다.
지온과 스테피나, 루시아는 물론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에테르석이 워낙 크다 보니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셋은 밤잠도 줄이며 집진 마법진을 펼쳤다.
한번 펼쳐 두면 끝인 게 아니라서 보수가 필요하고 에테르를 보다 많이 모으기 위해 다중으로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펼쳐둔 집진 마법진이 수십 개나 되다 보니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지온과 루시아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라는 게 드러났다.
어지간한 마법사도 3, 4개 이상은 동시에 보수하지 못하는데 둘은 10개 이상을 감당해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끼리 싸우며 잔소리를 퍼부으니 스테피나로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바쁜데 마을에 놀러갈 시간이 있는 거야? 이 허약한 도마뱀 같은 인간!
“네가 영주 어깨에 앉아서 아양 떨 시간만 줄여도 벌써 에테르석이 완성되었겠다! 이 악마 같은 요정아!”
묘하게 핀트가 빗나간 것처럼 들리지만 진실을 품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스테피나가 보기에 에테르석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완성되고 있었다.
“에테르가 모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흠흠, 분명히 내가 펼쳐준 집진 마법진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웃기네. 요 몇 주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손대지도 않았으면서.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나는 마스터의 지시를 받고 간 거야. 내가 땅속에서 뭘 보고 있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그게 뭔데?”
―안 가르쳐줌.
사실 에테르가 이렇게 빨리 모이는 이유는 아르마가 별도로 설치한 에테르 수신기 덕분이었다.
연구소 밑에 설치된 이 장치는 에테르석을 채우고도 모자라 세 마법사들에게 엄청난 에테르를 선물해주었다.
스테피나는 마치 자신이 대마법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왜 여기만 오면 에테르가 넘쳐나는지 이해가 안 돼요. 터가 좋은가?”
“이 정도로 에테르가 많으면 엘브랑데 놈들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을 텐데. 뭐 영주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떠드는 사이에 에테르석이 완성되었다.
다들 최소 5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걸린 시간은 고작 3개월이었다.
이것도 연구 주제로 충분하겠지만 영주가 요구하는 주제가 워낙 많고 다양해서 건드릴 시간이 없었다.
지온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제일 먼저 에테르석에 손을 대었다.
“정말이지 엄청난 에테르군… 이걸 흡수하면 나는 알테마를 능가하는 최고의 드래곤이 될 수 있을… 끄아아악!”
그는 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을 느끼고 털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대체 무슨 개소린가 하며 들어온 루시아도 에테르석에 손을 대곤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아아아악!
스테피나는 가장 마지막에 들어왔고 에테르석에 손을 대지도 않았지만 연구소에 가득한 순도 높은 에테르에 기절하는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그리하여 레오볼드가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에는 셋 다 사이좋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자알 한다.”
같이 지내다 보면 지능이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 거대한 에테르는 레오볼드가 보기에 상당히 위험했다.
별다른 자극이 없는 이상 폭발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존재만으로도 여러 이상 현상을 불러올 수 있었다.
“아르마, 어때?”
「다른 사람에겐 위험하겠지만 마스터에겐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거는?”
「마스터께선 워프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테르도 감당할 만한 영혼을 가지셨으니까요. 단지 우리가 만든 에테르 하트가 아직 미완성이고 쓰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죠.」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거군. 좋아. 기껏해야 기절하는 정도겠지.”
그가 봉인마법진을 지우고 에테르석에 손을 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정에 가득하던 에테르가 출렁이더니 그의 손을 통해 쭈욱 빨려 들어갔다.
아르마가 급속도로 높아지는 체내의 에테르 농도에 경고했다.
「에테르 하트가 최대 레벨로 작동합니다. 전신에 에테르가 퍼져나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는 레오볼드조차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신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처럼 뜨거웠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여기는 연구소가 아니다.’
시야가 크게 확대되더니 지금까지 세틀러호가 항해한 여정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하더니 기어코 행성 녹스와 워프게이트가 보였다.
‘이건 50년 전의 기억인가.’
그리고 지구가 나타났다.
레오볼드가 손을 뻗자 에테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르마가 놀란 목소리로 경고했다.
「에테르 폭풍 감지. 워프게이트가 열립니다.」
그가 깜짝 놀라 손을 움츠리자 워프게이트가 닫히며 에테르 폭풍이 사그라졌다.
휘몰아치던 바람조차 증발했고 남은 것은 에테르석과 바닥에 쓰러진 세 명뿐이었다.
“…뭐지?”
「축하드립니다. 마스터께선 방금 지구로 통하는 워프게이트를 여셨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50년을 거친 여정이 헛수고였다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아요. 방금 워프게이트를 연 것으로 그동안 모은 에테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완전히 열린 것도 아니었고 크기도 아주 작았죠.」
굳이 말하자면 단독으로 워프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살짝 맛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레오볼드는 다시 에테르석에 손을 대었지만 텅 비었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모은 에테르가 전부 소모된 건가…….”
「걱정 마세요, 마스터.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마법사 없이 집진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건 다행이군.”
에테르 연구가 본격화되었다는 얘기이기도 했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대가 다를 수도 있고 선지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레오볼드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셋을 깨우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스테피나가 그동안 작성한 논문을 보고했다.
사실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아르마가 이미 알고 있었고 논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정보는 습득한 후였다.
그러나 에테르 사용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었기에 직접 보고를 듣는 편이 나았다.
“어, 음… 그러니까 에테르란 이 에너지는 매우 안정되어 있어서 한 곳에 머무르기가 쉽지 않다는 게 개론의 요지예요.”
“하지만 기사나 마법사는 에테르를 쉽게 이용하잖소. 특히 기사는 에테르 하트에 저장하기도 하고.”
“그건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흐름을 느리게 할 수 있을 뿐이죠.”
“흐름을 느리게 한다고?”
스테피나는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 란티스 시에 만들어지고 있는 기차역을 예로 들어보면 되겠네요. 기차가 멈추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면, 승객이 내리고 화물을 옮겨 싣는 것도 가능하긴 하겠죠?”
“…그렇겠지.”
“에테르도 마찬가지예요. 기사들이 조금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어서 에테르를 저장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건 흐름을 느리게 해서 빠져나가는 에테르를 최소화하는 것뿐이에요.”
다만 그녀의 말도 확실한 건 아니었다.
레오볼드는 분명히 체내에 에테르를 저장하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
그게 체내인지 영혼인지 에테르 하트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그는 에테르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여러 능력을 선보인 바 있다.
“결국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는 건 에테르석뿐이라는 말이군.”
“하나 더 있어요. 엘드그라실의 가지인데, 정말 엄청난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다나 봐요. 수정과는 비교도 안 된다던데.”
레오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드그라실의 경우 지상에 거대한 본체가 존재하지만 부유대륙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가지가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고 그건 엘브랑데의 소유가 아니므로 조만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 하나만 물어봅시다. 만약 신과 드래곤 같은 존재가 있다면, 차원문을 여는 것도 가능하오? 공간을 완전히 초월해서 말이오.”
“가능하죠. 200년 전의 전쟁에서도 챔피언이 텔레포트를 썼다는 말은 자주 나왔거든요. 당시 누군가가 썼던 에테르 블레이드 때문에 차원이 깨졌다는 소리도 있고요.”
레오볼드는 그녀의 말에서 불안한 무언가를 느꼈다.
플레이그 퀸을 처치할 때 썼던 초대형 에테르 블레이드.
만약 그것이 퀸을 죽인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린 것이라면 어떨까?
그녀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 거기에서 힘을 키워 다시 지구로 온다면?
지구의 전력은 충분하지만 혼란에 빠졌을 것이므로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유지하가 없었다.
‘51년이 지났으니 다 끝났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그가 본 지구는 여전히 푸르렀고 성녀는 유지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많다고 했으니 모를 일이었다.
스테피나의 보고는 거기에서 끝났다.
그녀는 논문이 이만큼이나 남았다고 했지만 아르마가 확인했으므로 직접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번 연구 데이터를 통해 에테르를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곧 마스터께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측정이라면 나한텐 어떻게 보이지?”
「바이오칩을 통해 시야에 숫자로 표시될 겁니다. 아인종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중이라 당장은 어렵지만 골리앗은 이미 끝났습니다.」
아르마에 의하면 가장 성능이 낮은 편인 자간급이 약 100E의 출력을 낸다고 한다.
1E는 아르마가 임의로 도입한 단위로, 에테르가 특정 공간에서 가지는 에너지의 총량을 뜻한다.
그러니까 에테르를 많이 끌어다 쓸 수 있으면 E도 높아지는 식이다.
전투력과 직결되는 단위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사용자의 역량은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는 에테르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위였다.
아르마의 연구가 완성된다면 골리앗뿐만 아니라 기사나 마법사의 전투력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자간급의 출력을 100E로 본다면 라움급은 110E, 베파르급은 150E에 달합니다. 가장 높은 것은 벨리알급으로 180E를 넘어가네요.」
“벨리알이 엘븐 나이트의 전용기라고 그랬지? 대단하군.”
「그보다 더 높은 게 여기 있습니다. 루시아가 가져온 정보를 확인한 결과, 200년 전 쓰였던 고대의 골리앗이 확실합니다. 열쇠검으로 기동을 하는 바람에 위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들이 놀라 도망갔네요.」
레오볼드의 눈에 지진이라며 도망가는 병사들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진을 일으키는 건데. 뭐 지금이라도 꺼낼 수 있으니 됐지.”
「중력 크레인을 동원해서 꺼내겠습니다.」
세틀러호가 동원되어 근처의 땅을 부수고 고대의 골리앗을 끄집어 올렸다.
현존하는 모든 골리앗을 압도하는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