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36
235화 과거의 기억
보통 골리앗은 인간의 형상을 띈다.
골렘의 발전형이기에 그렇게 된 거겠지만 레오볼드가 보기엔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병기에서 움직일 수 있는 파츠란 건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22세기의 기술력으로 만든 어설트 아머도 관절은 헤드유닛과 부스터 노즐, 그리고 윙팩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레오볼드가 골리앗에 타는 것도 아직 기반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아르마의 연구에 데이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것들이 충족되었다면 골리앗 대신 전투용 워커와 드론을 내보내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법진으로 가동되는 골리앗의 관절은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심지어 중력 크레인에 이끌려 상공으로 올라가는 고대의 골리앗에는 꼬리까지 존재했다.
수십 개의 관절을 고대의 기술로 어떻게 정비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외모도 대단히 흉악해서 거의 괴수를 연상케 했다.
“저게 골리앗이 맞나?”
「지온에게 물어보니 당시엔 저런 외형이 주류였다고 합니다. 신의 챔피언이 탑승하던 골리앗은 또 다르고요.」
“드래곤의 형상을 딴 건가…….”
다른 곳은 그렇다 쳐도 수십 개의 관절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챔피언이 드래곤에게서 힘을 받을 때 의식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챔피언은 유사 드래곤이 되는 거죠.」
“과연. 그 경우 전법이 드래곤과 흡사해지겠군.”
따로 무기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레오볼드는 얼마 후 셔틀을 타고 세틀러호에 진입했다.
구속 케이지에 수납되어 세척 작업을 거치고 있는 골리앗의 스펙 시트가 튀어나왔다.
「뿔까지 합하면 두부전고가 10미터를 넘어가며 중량은 190톤에 달합니다. 코어의 출력은 300E에 육박하고요.」
“그야말로 괴물이군.”
출력이 가장 낮은 자간급에 비해 3배밖에 높지 않지만 레오볼드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출력 격차가 1.5배밖에 나지 않는 자간급과 베파르급만 따져도 동등한 실력의 기사가 탔을 경우 손도 못 대볼 정도였다.
하물며 3배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탑승자인 기사의 에테르 하트 때문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골리앗의 코어가 기사의 에테르 하트와 동조되어 에테르를 증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곱연산으로 증폭되는 건 아닐 테고 뭔가 계수가 추가되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은 나를 버틸 수 있나?”
「현재 계산으로는 마스터의 100%는 무리입니다. 약 20% 정도가 한계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재 레오볼드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므로 실제로는 약 50~60%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당장 이 녀석을 타는 건 무리였다.
200년 동안이나 파묻혀 있어서 고장이 났는지 열쇠검이 꽂힌 상태인데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면 탑승자를 가리는 것이거나.
“혹시 우리가 건진 그 고대인이 이 골리앗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어.”
「현재 내부에서 DNA를 채취해 대조 중입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수고해 줘.”
레오볼드는 고대의 골리앗을 바라봤다.
200년 전의 존재를 끄집어 내봐야 지금 시점에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세틀러호에 다수 탑재된 어설트 아머 1기만 하더라도 이런 골리앗을 숫자 제한 없이 박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왠지 이 골리앗이 자신을 중요한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테마의 선수상과 닮았군.”
특히 두부 외형과 뿔이 거의 흡사했다.
그는 모니터를 통해 부유대륙에서 열심히 광물을 찾아다니고 있는 루시아의 본체를 쳐다봤다.
도망칠 수 있을 텐데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부유대륙에는 아무도 없어서 활동하기 편했기에 마구 부하를 불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수가 100 단위에 달해서 이제는 어지간한 국가는 박살낼 만한 전력이 되었다.
심지어 날아다니는 녀석도 존재했는데 희한하게도 덩치는 상당히 작았다.
아무래도 플레이그의 진화에는 광물 이외에도 뭔가가 더 필요한 것 같았다.
“덕분에 자원 걱정은 안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채굴선을 동원하면 자원을 캐는 것은 손쉽지만 대외적으로 보여 줄 것이 있어야 하므로 전초기지를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레오볼드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루시아와 부하들을 바라보며 격납고에서 나왔다.
부하들의 외형이 왠지 풍뎅이를 닮은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 * *
레오볼드가 백작이 되자 영지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바그란의 귀족, 왕족부터 비행선을 돌려받기 위해 애를 쓰는 갈리스토의 외교관, 그리고 자이움의 유력자들까지.
다들 인맥을 다지려 애썼고 뭔가를 얻어내려는 자도 있었다.
가장 필사적인 자들은 역시 갈리스토의 외교관이었다.
그들은 비행선을 파견한 것 자체가 불의의 사고였음을 피력하면서 어떻게든 돌려받으려 애썼다.
“이번 전쟁 자체가 란티스 백작… 실례했습니다. 란티스 전 백작이 폭주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끌려들어간 것밖에 안 되니 비행선을 돌려받아야겠습니다.”
“내가 왜 비행선을 돌려줘야 하지? 어찌되었든 내 영지에 들어와 전투했고, 직접 나포를 했는데.”
“백작님께서 비행선 3척을 나포하신 것까지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걸 소유하고 계시면 앞으로 많은 피가 흐를 겁니다.”
네까짓 놈이 갖고 있을 물건이 아니니 반환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자연스레 레오볼드의 태도가 퉁명스러워졌다.
“무슨 말을 해봐야 비행선을 돌려받진 못할 거요. 헛수고 하지 말고 돌아가시오.”
외교관은 답답해졌는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백작께서 포획한 비행선 3척의 건조가격은 무려 7만 골드가 넘어갑니다. 대단한 금액이지요. 전하를 비롯한 왕족들이 이걸 그냥 넘어가시리라 생각합니까?”
“뭐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요? 마음대로 해보시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전쟁조차 개의치 않는 발언에 외교관은 난감해졌다.
사실 갈리스토는 전쟁을 할 입장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고 바그란과 일전을 벌여 콧대를 꺾고 싶었지만 자이움에서 크로이츠 백작이 찾아와 으름장을 놓았다.
만약 한 번 더 바그란에 개입하면 누구 하나는 죽어 나갈 거라고 말이다.
그게 황제의 복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크로이츠 같은 제국의 대귀족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가진 힘은 단독으로도 갈리스토를 흔들 정도이니 오죽할까.
거기에 추종자 다수와 이번에 손을 잡은 듯한 프로작 후작 같은 거물까지 포함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비싼 비행선 3척을 포기할 순 없어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찾아온 것인데 반다스 백작은 반환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마음대로 면담을 종료해 버렸다.
“란티스 같은 배신자와 손을 잡고 바그란을 혼란시키려 했다가 실패했으면 적당히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소? 비행선 3척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수틀리면 갈리스토 본토로 쳐들어갈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외교관은 황당해하다가 쫓겨났다.
“언제고 분명히 후회할 날이 올 겁니다.”
“기다리겠소.”
그 외에도 특이한 손님이 있었는데 신성교국 팔마의 성녀 베로니카가 거기에 속했다.
대단한 위치에 있는 만큼 박대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중요한 대화를 나눌 것 같지는 않아 솔직히 귀찮았다.
왜냐하면 레오볼드는 그녀에 대한 경계심만 있을 뿐 원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붙은 헤르미나도 그렇고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쾌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신 주제에 일개 인간에게 붙은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정말 신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하여튼 굉장히 곤혹스러운 상대였다.
베로니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긋방긋 웃으며 그를 대했다.
“백작께서는 최근 도는 소문에 별 신경을 안 쓰시는군요.”
“란티스 같은 자도 제가 용사임을 알아차린 것 말입니까? 상관없습니다. 보나마나 교국 내의 누군가가 퍼트렸겠죠.”
“그게 바로 저랍니다.”
성녀가……?
“왜… 라고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신탁은 외부로 발설하면 안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 규칙은 없어요. 이제는 그런 암묵적인 룰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맞겠죠.”
“교국이 처한 상황 때문이군요.”
“정확하세요.”
현 팔마의 분위기는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스테라 판테온의 사망, 혹은 실종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신도들이 대량 이탈했다.
신도가 이탈한다는 건 돈이 떠나간다는 말과 같았다.
신성교국의 주요 세입원이 각국에서 보내오는 지원금과 신도들의 주머니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이었다.
심지어 신성기사단 중에서도 이탈자가 생기고 있었다.
기사단의 힘은 신성마법에서 오는데 신의 부재로 쓰지 못하게 되자 일반 기사와 뭐가 다르냐고 불만이 나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교국의 힘은 강력하지만 미래에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교황을 비롯한 성녀와 수뇌부가 다른 마음을 먹게 되었을 것이다… 라는 게 아르마의 추측이었다.
「과거 신성교국은 그람 제국과 맞먹는 성세를 자랑했죠. 지금은 갈리스토 왕국과도 비교되는 실정이랍니다. 그러니 세력 확대가 그들의 최우선 과제일 겁니다.」
성녀는 대놓고 레오볼드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하신 분이시군요. 이 손으로 아스테라에 평화를 가져오시길 바라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잠시 이쪽으로…….”
그녀는 레오볼드의 손을 자신의 이마로 이끌었다.
여러 이유로 성녀의 머리에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 아르마가 이 일대를 봉쇄할 것이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마에 손이 닿자 레오볼드의 의식이 희미해지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꿈을 꿀 때와 비슷하군.’
꿈과 환상, 악몽을 관장하는 헤르미나의 힘인가?
레오볼드는 하얀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뭔가를 만났다.
그의 고향 지구.
우연찮게 워프게이트를 열어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감개무량했다.
‘이건 어느 시간대의 지구인가…….’
정지궤도에 그가 쏘아 올릴 것을 지시한 우주기지가 보이는 걸로 봐서 21세기임이 확실했다.
의식이 대기권으로 빨려 들어갔고 어느 사이엔가 레오볼드는 메가시티로 보이는 한복판에 있었다.
아스테라인과는 확연히 다른 지구인들을 보니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레오볼드를 신경 쓰지 않고 한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메가시티 내부의 분위기는 절대 정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드론과 워커 등이 곳곳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할 레오볼드와 아르마가 떠났으니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혼란이 일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각 메가시티 간에 전쟁이 터진 건가?’
명왕성에서 돌아왔을 군단타격함대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일단은 배성민을 비롯한 최고평의회의 지시를 따르도록 되어 있을 텐데.
그의 의식이 어느 장소로 옮겨졌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쥐고 연설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배성민이었다.
젊을 때 모습이라 왠지 어색했지만 그도 안티에이징 시술을 받았으므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열심히 떠들고는 있는데 안 들리는군.’
옆에 소냐를 비롯한 파일럿들과 관료들, 황선영까지 있는 걸 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인 듯싶었다.
사람들은 배성민이 뭐라고 소리치자 손을 휘젓고 함성을 내질렀다.
무대가 시끄러운 가운데 갑자기 레오볼드의, 그러니까 유지하의 사진을 단 깃발이 등장했다.
‘갑자기 나는 왜?’
시간대를 알고 싶어 누군가가 찬 좋은 시계를 보자 2048년 1월이었다.
‘내가 플레이그 퀸을 처치하고 녹스로 떠난 직후군.’
군단타격함대가 지구로 귀환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이 지경이 되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났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레오볼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르마는 절대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그와 동행하기로 결정된 이상 이런 미래는 확정적이었다.
남은 것은 그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얼마나 잘 수습하는가인데 이 분위기로 보면 썩 잘 된 것 같지가 않았다.
배성민이 뭐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그의 사진을 단 깃발을 흔들어댔다.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는 건 이걸 말하는 거였군.’
레오볼드는 지구인들이 그를 잊기를 바랐다.
그라는 독재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되찾고 진정한 의미에서 자립하길 바랐다.
비록 인공지능은 없지만 군단타격함대와 메가시티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생각하면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내가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한 상징일 뿐인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더니 시야가 회복되었다.
레오볼드는 성녀의 이마에서 손가락을 떼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제가 꾼 꿈이랍니다. 아마 용사님의 과거 기억이겠군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런 걸 보여주시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숨길 생각이신가요? 이제 그만 저희와 손을 잡는 게 어떤가요? 신성교국은 용사님의 발판이 되어드릴 용의가 있답니다.”
“나는 용사가 아닙니다.”
“헤르미나 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백작님이 용사라고요. 아스테라를 구원하실 신의 대리인이라고요.”
“…….”
이로서 성녀에게 신이 붙어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런 애매모호한 존재가 있는 이상 그녀와 협력할 일은 없었다.
“유감입니다. 성녀님.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죠.”
태도가 너무 단호해 베로니카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왔을 때는 부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녀가 신성기사단과 떠난 뒤 레오볼드는 곧장 아르마를 호출했다.
“지금부터 성녀를 24시간 감시해. 만약 방어막 등으로 못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행적이라도 기록해두고.”
「납치하는 게 어떨까요? 신성교국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서 흔적을 지우면 우리를 눈치채진 못할 겁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레오볼드가 본색을 드러내는 시점은 최소한 국가급의 기반을 마련한 후여야 했다.
그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정복사업을 시작할 테니 반발이야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성녀에게 붙은 헤르미나라는 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신이 반응탄 세례에도 버틸 것 같진 않지만, 실체가 없다는 점이 레오볼드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계속 과거 기억을 끄집어내서 나를 혼란시킬 생각인가 보군. 그래서 최종적으로 원하는 게 뭘까?”
「신성교국의 목표는 교세 확대지만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교국 내부의 여러 땅을 파헤치는 중입니다.」
“설마 엘브랑데처럼 드래곤 뼈를 찾는 건 아니겠지?”
「드래곤 뼈까지는 아니지만 대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여러 아티팩트… 신의 유물을 캘 가능성은 있습니다.」
“전부 감시해. 수틀리면 날려버릴 수 있도록.”
아직까지는 간섭이 심하지 않아 놔두고 있지만 더 심해진다면 조용히 날려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신전에서 시끄럽게 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계속 귀찮게 한다면 주먹이 나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영지 밖으로 나가는 성녀 베로니카를 바라보는데 아르마가 급히 보고했다.
「마스터, 캡슐에 들어간 고대인이 눈을 떴습니다. 코마 상태에서 회복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 있나?”
「네. 입모양을 확인했을 때 대륙공용어와 크게 다른 건 없었습니다.」
“데려와. 좀 물어볼 게 있어.”
* * *
남자는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몸을 웅크리고 경계 자세를 취했다.
약기운이 채 사라지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굉장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레오볼드는 아르마와 함께 뒤로 물러나 적대적이지 않음을 표시했다.
“이제 일어났군. 당신을 해롭게 할 생각은 없소.”
그는 둘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말했다.
“지금은 어느 시대요? 누가 아스테라를 지배하고 있소?”
“엘브랑데와 자이움. 두 제국이 아스테라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소.”
“그람 제국은?”
“그람 제국이 사라진지 200년이 지났소. 지금은 그람 왕국이 명맥을 잇고 있지.”
“이런 젠장.”
남자는 알아듣지도 못할 거친 어투의 말을 쏟아내더니 한 가지를 부탁했다.
“물 있으면 좀 주시오. 목이 타는군.”
아르마가 물을 가져다주자 벌컥벌컥 마시더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흐… 이제 좀 살겠군. 그나저나 당신들이 나를 구해준 사람이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소?”
“우리는 당신이 알테마의 챔피언이라고 추측하고 있소. 이름은 모르지만.”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편하겠군. 내 이름은 발가드 그람. 알테마의 힘을 받은 챔피언이자 그람 황가의 일원이오.”
“성이 그람이라… 현 그람 왕국에 당신의 후손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레오볼드 반다스요. 이쪽은 아르마로 내 전속하녀이고.”
아르마가 고개를 숙였지만 발가드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나를 어디서 발견했소? 깨운 이유는 뭐고?”
“우연히 발견했다는 말이 맞겠지. 당신은 해저의 신전에서 발견되었소.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관에 있었지. 대체 무슨 최후를 맞았기에 거기에 있었던 거요?”
“난… 난…….”
발가드는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오.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말할 수 없소. 그건 알테마와 한 맹세요.”
“알테마는 죽었소. 대전쟁이 끝나고 200년이 흘렀는데 당시 맹세에 무슨 의미가 있소?”
“내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의미가 있소. 그리고 내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생은 내가 구해줬기에 의미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하는군.”
발가드는 잠시 레오볼드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죽고 싶은가? 내가 드래곤의 챔피언이란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고?”
“남들은 두려워할지 모르나 나는 아니야.”
“그거 대단하군.”
침대에 앉아 있던 발가드가 일어서자 마치 산이 가로막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레오볼드가 이 정도인데 평범한 사람은 두려움에 빠지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가슴팍의 봉인마법진을 문질러 지웠다.
에테르 하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발가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힘은…….”
“뭘 할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앉아라. 나는 너의 아래가 아니니까.”
“서, 설마… 드래곤이십니까?”
“드래곤이라면 나를 도와주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긴 하지. 알테마 정도는 아니지만.”
“드래곤도 아닌데 어떻게 이 정도의 에테르를…….”
“거기 서 있지 말고 앉지 그래? 정신 사나우니까.”
“…….”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으르렁대며 일어났던 발가드는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며 앉았다.
이제 대화를 좀 해볼 수 있겠군.
레오볼드는 깍지를 끼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