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
그녀는 침상에 누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중얼거렸다.
“지하야···이제 눈 뜰 때도 안 됐니? 일어나기만 하면 엄마가 다 해줄 수 있는데···”
“이제 잔소리 같은 거 안 할 테니까···응?”
애달픈 목소리에선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고 그녀는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혼자 민망해하며 아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이윽고 1인실의 창문에 정찰용 마이크로드론 한 기가 달라붙었다.
「피험체의 생물학적 어머니입니다. 코마7단계가 된 아들을 3년 동안 돌보고 있죠」
―3년이나? 시간낭비군.
「이 시대의 여성들은 직접 아이를 낳으니까요. 애착이 매우 강합니다」
―애착이라···
유지하는 바이오백에서 태어나 메가시티의 보육시설에서 자랐다.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했으나 누군지 몰랐기에 혈육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도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펴주는 어머니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면 슬퍼하겠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그나저나 왠지 어지럽군.
「데이터 업데이트 중입니다. 5분 후에 완료됩니다」
현재 유지하의 의식은 영혼교환기에 저장된 상태였다.
지금 피험체의 뇌에 업로드 해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아르마가 수집한 정보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유지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곤혹스러워했다.
키는 그럭저럭 큰데 몸이 너무 앙상해서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다.
―코마 상태로 지내서 그런가? 너무 연약해 보이는군.
「과거의 기록을 찾아보니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군요. 입이 상당히 짧았던 것 같습니다. 동양인이라 그런 것도 있고요」
그에 반해 인류연합의 시민들은 대개 덩치가 컸고 유지하 대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195cm에 달하는 키에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덕분에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깨어나면 운동을 좀 해야겠어.
「현재 육체 강화제를 준비 중입니다. 건강만 회복하면 곧바로 투여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런데 이 남자···한국인 유지하는 어떤 인물이었지?
「말씀드리자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어차피 업데이트도 해야 하니 상관없겠지. 앞으로 익숙해져야 하니 말해봐.
아르마는 한국인 유지하에 대해 요약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신라그룹의 후계자입니다. 흔히 말하는 재벌 3세죠. 여기서 재벌은 혈연으로 조직된 기업 지배집단을 말합니다」
「어렸을 땐 천재로 불리며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벽에 부딪쳤고,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죠.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다양한 연구를 맡았으나 좀처럼 성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약혼녀가 달콤하게 유혹합니다. 술과 마약, 여자에 빠졌죠」
―자신이 대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 좌절하는 부류가 있지. 성격은 어떤가?
「주위에서는 쉬쉬했지만 독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마약 사건과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뒤에는 신라그룹 망나니란 타이틀이 붙었고요」
―이 꼴이 된 계기가 있나?
「당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술에 취해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습니다. 혼자 사고를 낸 게 다행일까요」
유지하 대령의 평은 간단했다.
―멍청한 놈.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한국인 최초의 과학부분 노벨상···뛰어난 업적을 거둔 사람, 혹은 단체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그 상을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천재성이 사그라지자 언론의 관심이 식었습니다. 정치인, 과학자들도 더는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요」
―세상이 자기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절망했겠군.
「그에 관련해서 자해 흔적도 몇 군데 있습니다. 어머니의 설득으로 자살소동은 관둔 것 같지만, 대신 향락에 빠지게 됐죠」
말 그대로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홀로 짊어진 것 같은 녀석이었다.
15세에 군인으로 임관해 수없이 사선을 넘었던 유지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평화로운 시대의 좋은 가문에서 출중한 머리를 갖고 태어났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은 해야 한다.
이제부터 그의 삶을 자신이 이어갈 테니.
아르마가 보고했다.
「의식 업로드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저 여성이 자리를 비우면 제가 합성 화면을 전송할 겁니다」
―이 치료시설의 관계자들은 시술 장면 대신 합성 화면을 보게 되는 거군.
「다만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아슬아슬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주변의 교통신호에 노이즈를 넣어서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큰 소란이 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네」
.
.
.
“우리 지하, 잘 좀 부탁해요.”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정혜원 여사는 간호사들에게 신신당부하며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떠났다.
사실 신라그룹의 안주인인 그녀의 위치라면 간병인쯤이야 얼마든지 들일 수 있다.
하지만 2년 전 간병인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정혜원 여사는 자신이 아들을 돌보기를 극구 희망했다.
귀한 아들이 낯선 간병인에게 희롱을 당하는 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가요.”
“네, 사모님.”
그녀는 언제나처럼 차 뒷좌석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아들이 저렇게 된지 벌써 3년이나 지났건만 차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치의는 언제 깨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만 하고 매일이 지옥이었다.
“후우···”
그만큼 엄마를 애타게 했으면 눈이라도 떠줄 법도 할 텐데.
예전과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평생 침대에서 산다고 해도 뒷바라지 해줄 자신이 있었다.
깨어나기만 한다면···
정혜원은 서글픈 눈으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출발한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양재대로도 아니라니.
“···오늘 좀 늦네요?”
“이럴 시간대가 아닌데 신호가 많이 밀리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김기사가 죄송할 게 뭐 있어요. 하여튼 조심해서 가 주세요.”
“예.”
그녀가 한남동 자택에 도착한 것은 평소보다 30분이나 늦어진 시각이었다.
이 저택은 재벌가 치고는 인테리어가 소박했고 고용인도 없었다.
집은 가족이 편안하게 사는 공간이라는 그녀의 철학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집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불도 켜지 않은 집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남편이 또 술을 퍼마시고 있나 보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정혜원은 오늘따라 왠지 짜증이 났다.
누구는 아들 돌보다 옷 갈아입으러 왔는데 술이나 퍼마시고 있다니.
그녀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당신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아들은 저렇게 누워 있는데!”
남편이자 유지하의 아버지인 유경석이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그만해.”
“그만은 무슨 그만요. 목구멍에 술이 넘어가요? 지하가 왜 그렇게 됐는지 뻔히 아는 사람이!”
유경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부의 아들인 유지하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어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은 아무래도 아버지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질책이 너를 안 낳았어야 했다는 류의 독설이라면 더더욱.
“···그냥 정신 차리라고 한 말이었어. 당신도 알잖아. 그놈이 무슨 짓 하고 다녔는지.”
당시 유지하는 구치소를 제 집처럼 들락날락했다.
하도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그룹의 주가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그가 구속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신라그룹의 돈 덕분이었다.
유경석은 경영자로서, 또 아버지로서 아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질책의 수위가 다소 과했다는 건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심한 우울증으로 치료까지 받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기름을 부어버렸으니.
하지만 정혜원은 그런 것들을 고려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에겐 아들만이 중요했다.
“정신 차리라고 그렇게 심한 말을 해요? 차라리 나가죽으라고 하지 그랬어요.”
“이거 왜 이래. 그런 마음이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
“모르겠는데요. 아, 이거 하나는 알겠네요. 당신이 지하한테 크게 실망했다는 거. 어렸을 때 머리 좋던 지하만 아들인가요? 다 커서 조금 엇나가는 모습 보니까 내 아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다다다 쏘아대는 말투에 유경석은 울컥해서 일어섰다.
“말 다했어?”
“다 안 했으면 어쩔 건데요?”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늘 이런 식이었다.
유지하가 엇나갈 때만 해도 사이가 이렇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식물인간이 되면서 부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아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분위기가 회사 경영에까지 이어졌는지 최근 신라그룹은 큰 위기를 맞았다.
오늘 유경석이 집에서 술을 마신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여튼 이놈의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
유경석은 밖으로 나가버렸고 남은 정혜원은 침대에 쓰러져 울었다.
분명히 비극이지만 이를 기뻐하는 사람, 아니 존재도 있었다.
아르마.
그녀는 마이크로드론을 컨트롤해 정혜원의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배선을 끊었다.
물론 이 집에 차가 한두 대는 아니지만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조치 완료. 시술 개시」
워커 한 대가 기괴하게 변형되어 유지하가 누워 있는 병실 안으로 진입했다.
.
.
.
「마스터, 정신이 드십니까?」
유지하는 심층의식 안에서 뭔가를 만났다.
크림색의 머리카락에, 날씬한 체격을 가진 묘령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공손하게 상체를 숙였다.
「마스터의 언어회로에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추가했습니다. 당분간은 한국어만 쓰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발음은 망막에 나타나는 걸 그대로 읊으시면 됩니다」
벌써 시술이 끝난 건가?
사실 유지하는 아르마가 시술을 시작하겠다는 보고를 들은 뒤 곧장 정신을 잃었다.
그가 떨떠름해 하며 물었다.
―시술은···성공적인가?
「그것부터 말씀드려야 했는데 죄송하네요. 시술은 성공적이었고 마스터는 현재 원본의 몸에 들어가 계십니다. 아직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진 않았고요」
―다행이군···하지만 이대로 일어날 수는 없는데. 지식이 부족해.
그가 한국인 유지하로서 연기할 수 있는 상식 전반과 가족관계에 대한 지식이다.
새로운 몸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 지식까지 자연적으로 얻는 건 아니니까.
다행스럽게도 아르마는 대책까지 세심하게 마련해 둔 모양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유지하의 시야에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집한 한국인 유지하에 대한 정보를 영화처럼 구성해 보여주는 것이다.
덕분에 유지하는 생전의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성격 고약한 놈이었군. 치안기관에 자주 들락거린 걸 보면.
「어지간히 애를 썩혔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그런지 감싸고 돌았고요」
―이거 깨어나도 욕을 먹겠는데?
「마스터께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시면 평가는 반전될 겁니다. 저 망나니가 개과천선했구나, 하고」
―갑자기 어려운 한국어 쓰지 마.
이렇게 의식을 교환하는 동안에도 유지하는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국인 유지하의 평소 말투부터 습관, 가족에게 대하는 태도까지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 모든 것을 바로 받아들여 써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분명히 어색한 모습을 보일 텐데, 어떻게 하지?
「괜찮을 겁니다. 식물인간이었던 사람에게 엄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부분적 기억상실이라는 전가의 보도도 있답니다」
―어려운 말 쓰지 말라니까. 전가의 보도는 또 뭐야?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해결책을 뜻합니다. 식물인간이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마스터께서 평소처럼 행동해도 주변 사람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 사람은 큰 사고를 겪고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하여튼 나로서는 잘 된 일이군.
그때 낯뜨거운 영상이 재생되었다.
원본 유지하가 어떤 여성과 섹스하는 영상이었다.
대화에서 둘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약혼녀입니다. 원본이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 데에는 이 여성의 책임이 꽤 큽니다. 공부밖에 모르던 남자에게 여자의 몸과 마약의 쾌락을 알려줬거든요」
―그건 자멸이야. 정신이 똑바로 박힌 놈이면 그런 유혹도 이겨냈어야지.
「아무래도 원본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졌던 걸로 보입니다. 절망하고 상처 입은 그에게 여자가 육체와 마약의 쾌락을 보여주니 완전히 무너진 거죠」
―그래서 여자는 뭐하는 사람이지?
「정보가 부족해 수집 중입니다. 다만 원본에 맞먹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약혼녀라니 재벌이겠지만 이상하지 않나? 재벌이라면 네가 모를 리 없는데.
아르마는 초대량의 데이터 처리와 연산에 특화된 인공지능이다.
지금쯤은 재벌에 관련된 신문기사를 모조리 데이터화했을 텐데 거기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뭔가 사정이 있다는 뜻.
「사생아일 가능성이···현재 통신사에 침투해 둘의 통화 데이터를 찾는 중입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약혼은 물거품이 되었을 테니까.
식물인간이 된 남자와 약혼을 이어갈 수 있는 여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유지하는 한참 동안 영상을 본 뒤 원본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몸만 큰 어린애군.
「그렇기에 마스터께서 조금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철이 들었구나 하면서 평가가 올라갈 겁니다」
―나를 의심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해야겠어. 이런 게 전가의 보도인가?
「한국인 다 되셨군요. 참, 마스터의 어머니께서 차에 탔습니다. 이제 최대 1시간 안에 이쪽에 도착할 겁니다」
유지하와 아르마는 1시간 동안 쑥덕거리며 캐릭터의 조형을 끝냈다.
그리고 정혜원 여사가 병실에 들어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후우···아들 미안. 엄마가 아빠하고 좀 싸우고 왔어.”
그녀는 언제나처럼 침대 옆에 앉아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마이크로드론으로 그걸 보고 있던 아르마가 신호했다.
「슬슬 몸을 깨우겠습니다, 마스터」
―준비됐어. 시작해.
「각성제 투여합니다···」
체내에 캡슐 상태로 존재해 있던 각성제가 몸을 깨웠다.
유지하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정혜원 여사는 그걸 봤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말단이 움직이는 반응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치의가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3년 동안 그녀의 아들은 손가락 외에도 많은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앙상한 아들의 손을 잡으니 오늘따라 심장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리게 할 거니···”
그때 유지하가 눈을 떴다.
눈동자가 움직였고 그걸 확인한 정혜원은 입을 크게 벌렸다.
“서, 설마···”
“어머···니···”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3년 동안 식물인간이었던 유지하가 지금 깨어났다.
망나니 깨어나다
강남 한성병원 601호는 담당 간호사들에게 꽤 유명했다.
환자가 그 악명 높은 재벌 3세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3년 전만 해도 전 국민이 그를 씹고 뜯고 맛봤을 정도였다.
마약, 섹스 스캔들로 일간지 1면을 장식하는 위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망나니임에도 간호사들은 그의 실물을 본 순간 안타까움을 느꼈다.
워낙 잘생겨서였다.
중상을 입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순정만화를 찢고 튀어나온 왕자님 그 자체였다.
일부 간호사들은 은근히 그의 병실에 배정되는 것을 바라기도 했다.
환자인 재벌 3세와 간호사의 썸씽은 흔한 로맨스 드라마 아닌가.
하지만 그가 식물인간 판정을 받으며 관심은 급속도로 식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병원의 일부분이 되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기껏 받는 관심이라곤 언제 일어날까, 하는 내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10월의 어느 날 밤, 갑자기 스테이션의 콜벨이 울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수화기를 든 간호사는 다급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여기 601호 좀 빨리 와주세요! 아들이 일어났어요!”
“601호요···?”
거기 재벌 3세 환자가 있는 곳 아닌가?
식물인간이 일어났다는 건 무슨 뜻이지?
간호사는 멍하니 수화기만 들고 있다가 당직의를 호출하고 병실로 달려갔다.
문을 여니 중년의 여성이 비쩍 마른 환자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자는 눈을 뜬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