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34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이용하는 보통의 로켓과는 다르게 소음과 진동은 거의 없었다.
1분 후 테스트가 끝났고 아르마가 태블릿을 들고 보고했다.
“추력은 약 40톤이네요. 내릴 수 있는 한계선입니다.”
“40톤이면 너무 작지 않나? 미국의 새턴V로켓이 3,400톤이었던가?”
“클러스터링하면 저궤도에 위성을 올려놓는 정도는 충분합니다.”
“시작부터 달에 갈 순 없겠지. 저궤도 끝나면 바로 다음 버전 쏠 수 있게 준비해.”
“그리고 언론과 정부에서 계속 참관을 요청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간단한 보도 자료만 내보내. 이온 엔진과 비슷하긴 한데 같은 건 아니고 곧 연소시험 시작할 거라는 것 정도.”
“알겠습니다.”
스타필드에서 각 언론사를 향해 보도 자료가 뿌려졌다.
그런데 한 언론사가 이걸 일본판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오역이 있었다.
이온 추진기를 이온 엔진으로 번역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일본 네티즌들이 난리가 났다.
―이온 엔진? 하야부사가 생각나는데.
―JAXA에서 기술을 이전했다는 소문이 있었어. 이걸로 확정이지.
―일본의 기술을 가져다 써놓곤 뻔뻔하네.
―어차피 이온 엔진으로 지구 중력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부자의 취미 아냐?
―취미치고는 대범한데. 발사기지도 인수하고 꽤 본격적이야.
―혹시 달 착륙을 노리는 건 아니겠지?
―스타필드 규모로는 탐사선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어.
―어차피 우주에는 관심이 없는 나라니까, 곧 흐지부지해지겠지.
이런 관점은 일본이 아니라도 대부분 갖고 있었다.
오늘날 우주 진출은 곧 돈과 시간과의 싸움이다.
돈과 시간을 얼마나 버리느냐에 따라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어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그런 점에서 스타필드는 설립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고 관련 인력도, 자금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다못해 저궤도에서 우주관광 상품을 팔고 있는 블루 오리진조차 스타필드에 비하면 공룡기업으로 보일 정도니 오죽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졌지만 스타필드는 대부분의 소통을 차단한 채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나로우주센터에 갖가지 기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몰려들었다.
이 세상 챗봇이 아니다
6월이 오며 동북아시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중국의 혼란이 수습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확산되어 물류량이 급감한 것이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시가전은 인근 텐진 등으로 번져나갈 조짐을 보였다.
대체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도 확실치 않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렇듯 중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물류량이 급감하여 원자재 수입이 상당수 중단된 것이다.
마트에서 중국산 식재료가 사라졌고 여행도 전면적으로 중단되었다.
항간에는 예전의 한한령보다 사정이 나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제조장비,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제품은 그렇게 줄어들지 않았다.
중국의 일부 기업들이 수출을 중단하면서 대신 한국의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재고를 소모한 것에 불과하므로 중국에서 수입하지 못하면 조만간 수출량이 확 떨어질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이 부작용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북한은 파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안 그래도 북한은 코로나 이후 모든 면에서 바닥을 뚫고 추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중국과의 교역으로 한숨 돌렸는데 이번 사태로 그게 모조리 중단되었다.
그 결과 쌀값이 며칠 만에 3배로 치솟았고 핵심계층이 모인 평양 민심이 흉흉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각종 정치, 안보 관련 칼럼에서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줄을 이었다.
내부가 어지러우면 원래 외부에서 적을 찾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DMZ와 연평도 등 접경지역이 바짝 긴장했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는 평가였다.
신라하이텍에서 개발한 드론 시스템이 정식으로 도입되었고 신형 방탄복 플레이트도 착실하게 보급되어서였다.
물론 그것들이 북한의 도발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병사들의 목숨을 약간이나마 지켜줄 수 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을 도와준 장본인은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 중에 있었다.
윈드러너 100대를 서울시 내에서 시범 운영하는 사업이다.
K-시티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윈드러너의 자율주행 알고리즘이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에서도 괜찮다고 느꼈는지 꽤 적극적으로 나왔고 다양한 곳에서 승객을 실어 나르게 되었다.
윈드러너 택시를 이용하고 싶은 승객은 신라오토 홈페이지에서 전용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여 콜을 하면 된다.
이 시범 사업은 별다른 홍보가 없었는데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블랙메탈 배터리에 신라오토의 알고리즘이 동시에 적용된 최초의 차종이기 때문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차를 직접 타볼 수 있었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전용 앱의 다운로드수는 며칠 만에 50만을 돌파했고 신라오토 홈페이지에는 왜 서울에서만 시행하느냐는 질문이 넘쳐났다.
―부산 오라고 부산. 서울 필요 없다니까? 딱 한 달만 100대 돌려서 사고 없으면 자율주행 레벨 5 인정해줌.
ㄴ신라오토 뭐 서울 수도권에 있으니까 당연한 거지.
ㄴ서울 먼저 하고 전국으로 넓힌다고 홈페이지에 써 있음.
ㄴ어케 타는 거임? 콜택시처럼 부르면 됨?
ㄴ앱에 다 나와 있는데···그냥 콜 버튼 누르고 기다려서 타면 됨. 대기시간까지 나옴.
ㄴ근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콜 눌러도 대기시간이 엄청 길듯?
ㄴ이거 주행능력은 어떰? 좀 사람 같음?
ㄴ전에 이거 타봤는데 자율주행 진짜 사람 같음. 이거 택시로 투입되면 택시기사들 모조리 실업자 확정임.
ㄴ그럼 들고 일어날 건데. 타다나 우버 같은 것들 다 퇴출됐잖아.
ㄴ일단 시범 사업이니까 두고 봐야지.
시간이 흘러 드디어 윈드러너 100대가 서울 도로에 투입되었다.
최초의 탑승자는 이현성 대통령이었다.
그는 유지하와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탔다.
“비서관들이 아주 극찬을 하던데, 어디 한번 타 봅시다.”
“실망하진 않으실 겁니다.”
코스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청와대 앞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유지하가 코스를 입력하자 이현성 대통령은 내심 놀랐다.
“부드러운 주행 뭐 그런 식으로도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연비 주행이나 다소 스포츠한 주행도 지시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속도 줄이지만요.”
“하하, 가능하면 그런 건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일단 기능만 구현해놓는 거죠.”
「출발하겠습니다」
윈드러너가 출발하자 비서관들이 탄 차량들이 따라붙었다.
몇 번의 교차로를 통과하는 동안 윈드러너는 거의 사람과 같은 주행을 선보였다.
이현성 대통령은 아무런 조작도 없었는데 비상등이 켜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혹시 공사현장 때문에 길이 좁아져서 그런 겁니까?”
“네. 이런 게 불문율 아니겠습니까. 요즘에는 안하는 사람도 많지만요.”
“허허, 그것 참.”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알고리즘이라, 모를 일이다.
차량이 교차로에 멈춰 서자 이현성 대통령이 본론을 꺼냈다.
“유 부회장, 혹시 NCC 계열사에 관심 있습니까?”
“드디어 매각에 들어가나 보군요.”
“알다시피 반중감정이···NCC전자 직판점에서는 하루에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답니다.”
그간 NCC그룹에선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여러 전자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팔았다.
철옹성 같던 한국 백색가전의 위상도 엄청난 가성비에 반쯤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차이나 스캔들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리우웨이부터 시작해서 이홍식 의원까지 추함의 끝을 보여준 덕분에 반중감정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친중파 의원 다수가 불의의 사고에 휘말렸지만 반중감정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회장으로 추진되던 장례식도 가족장으로 바뀌었다.
도처에서 쏟아지는 반중여론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니 대놓고 중국기업인 NCC가 버틸 수가 있나.
매출이 급속도로 악화되며 대부분의 매장에 손님이 텅텅 비는 사태가 발생했다.
보통이라면 투자한 돈도 있고 해서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실세이던 쟈오저룬 이사가 사망하고 모국이 내전 직전이라 황급히 매각 절차에 들어간 것.
“글쎄요, 레이오 공장 외엔 그다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사실 레이오 전기차의 경우 신라그룹이 아니면 인수할 곳도 없어요.”
미래자동차그룹은 블랙메탈 배터리 확보에 실패했기에 뛰어들 여력이 없었다.
시장에 급매로 나왔는데 입찰자가 없다?
당연히 가격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다만 유지하는 레이오의 임직원들까지 고용 승계할 생각은 없었다.
“기다리렵니다. 급하면 임직원들 해고하고 시설만 내놓겠죠.”
“혹시 한국인 직원들로 새로 고용할 계획입니까?”
“그쪽 근태가 엉망이라는 소문을 자주 들어서요. 저희 쪽 업무분장 시스템이 다소 독특해서 적응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10분 단위로 업무지시를 내린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대신 야근도 없고 퇴근도 빠르죠.”
“그건 부럽군요. 우리 비서관들이 아주 좋아하겠는데요.”
사실 이런 것들은 대통령이 아니라 비서관이 꺼낼 주제다.
하지만 이현성 대통령은 유지하와의 대화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택급 잠수함, 내부 분위기를 봐서는 거의 성사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호주 해군에서 배수량만 빼면 완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더군요.”
“바라쿠다급이 원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어서 ROC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유 부회장에겐 매번 도움을 받게 되는군요. 드론 시스템을 도입하니 GOP 병사들의 피로가 크게 줄었습니다. 방탄 플레이트는 또 어떻고요.”
“나름 국가를 도울 길을 찾은 것뿐입니다.”
앞으론 그의 소유가 될 테니까.
이현성 대통령은 그걸 오해했는지 연신 감격해선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행이 끝났고 비서관들이 윈드러너의 문을 열었다.
“이거, 너무 편해서 운전기사가 모는 줄 착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레벨 4도 괜찮지 않습니까?”
“레벨 4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서···”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것은 아직까지도 해결이 안 된 문제다.
“일단 전국적으로 테스트만 해보세요. 그 후에 레벨 4인증에 대해 의논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 후로 유지하는 이민호 서울시장과 동행하는 등 많은 인사를 만났다.
당연히 시민들에게도 윈드러너 자율주행차가 오픈되었고 호평 일색이었다.
―와 이거 숙련된 기사가 모는 느낌인데.
―적금 깼으니까 빨리 나오기나 하라고!
―미래자동차 완전 개망했네. 걔넨 블랙메탈 배터리도 없고 자율주행도 별로잖아.
―근데 신라오토 규모가 너무 작아서 물량빨에 밀릴듯?
―이번에 레이오 전기차 매물 나왔잖아. 그거 인수하면 됨.
―블랙메탈 배터리도 그렇고 드론도 그렇고···유지하만 사는 시대가 다른 것 같음.
―님들 그거 암? 신라그룹에 희한한 계열사 하나 생긴거.
ㄴ메타버스인가 그거? 외국에서 정수 연산 서버 수입했다던데 뭐할건지 모르겠네.
―스타필드인가 하는 우주 관련 업체도 연소시험 끝냈다던데 제발 무슨 엔진인지 보여줬으면 좋겠음.
ㄴ거기 지금 완전 놀림감 됐음. 이온 엔진으로 대기권 벗어날 생각이냐고.
ㄴ이온 엔진이라고는 말 안 했는데? 이온 추진기라고 하지 않았음?
ㄴ어차피 비슷한 거 아님?
ㄴ보도자료 좀 제대로 읽으라고. 이온 엔진하고 원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엔진이라고 쓰여 있구만.
ㄴ뭐 알아서 하겠지. 세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팝콘 먹으면서 지켜보면 됨.
―우리는 우주 산업 말아먹고 요상한 엔진 만드는데 일본은 달 착륙 준비하네···
ㄴ일본이 착륙하면 두 번째지? 성조기 옆에 일장기 꽂을듯.
ㄴ크 상상만 해도 지리네.
ㄴ우린 언제 달 착륙 해보나···
ㄴ포기하면 편해.
.
.
.
“대충 하드웨어는 갖춰졌고···”
유지하는 신라메타버스를 새로이 설립하고 관련인력과 설비를 들이는데 힘썼다.
중요한 것은 NVIDIA에서 출시한 딥러닝 전용 연산서버다.
세틀러호의 양자컴퓨터 연산유닛 하나에도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구색은 갖춰야 했다.
남들이 보기에 허공에서 갑자기 떨어졌다 식이면 곤란했다.
아르마는 서버 설비를 둘러보곤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닭장 같아요···”
“세틀러호 메인 프레임에 비하면 그렇겠지. 최대한 넓혀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간단한 챗봇부터 만들면 될까요?”
“조금 범위를 넓혀보자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모니터링해서 반응을 보여주면 좋겠어. 개인의 신상은 최대한 필터링하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개인 비서 같은 느낌이죠?”
“그래. 잔소리도 조금 해주면 좋겠지.”
“악의적인 사용자에게는 어떻게 할까요?”
“빌미를 주지 말고 바로 차단해.”
챗봇의 이름은 루시아로 정해졌고 음성기능은 나중에 추가하기로 했다.
메타버스에서 새로이 고용한 직원들이 애드온과 패키징 개발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사전 테스트를 해보곤 혀를 내둘렀다.
“이야···이거 그냥 챗봇이 아닌데요?”
“거의 사람 같지 않아요? 뜬금없는 질문을 해도 잘 받아주네.”
“데이터 보니까 검색엔진을 다 뒤지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응답속도가 빨라요.”
“이거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는지 모르겠네. 옆에서 지켜보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게임 주제로 대화하는데 갑자기 개못한다고 극딜을 하네.”
직원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루시아는 설치형 프로그램으로 권한을 얻으면 시스템 전체를 모니터링한다.
사용자의 활동 전반을 지켜보고 그에 대한 데이터를 저장해 대화에 활용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루시아를 설치하고 게임만 하고 있으면 이런 식의 대화를 할 수 있다.
―루시아 : 프로게이머라도 꿈꾸시나요? 하루 종일 게임만 잡고 계시네요.
―나 정도면 다이아까진 쌉가능이지?
―루시아 : 어림도 없죠. CS먹는 기초부터 배우셔야겠네요.
―그래도 킬뎃은 괜찮은데.
―루시아 : 브론즈니까 그렇죠. 골드 올라가면 그 킬뎃이 유지될 것 같아요?
―와 너무하네.
―루시아 : 너무한 건 님 실력이구요. 보고 있으니까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물론 루시아가 처음부터 이런 대화를 출력하는 건 아니다.
사용자가 부드럽고 교양 있는 어투를 쓰면 그렇게 대응하고 친구처럼 반말을 하면 루시아도 친구처럼 대하는 식이었다.
또한 루시아는 친밀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 따른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예의를 차리지만 친밀도가 높으면 먼저 대화를 걸고 개인적인 고민도 들어주는 식이다.
직원들은 루시아와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신라그룹 직원이면 이 루시아의 사전 테스트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많은 직원들이 경험하게 되었다.
신라에너지 황선영은 루시아를 가장 먼저 설치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루시아 : 너 요즘 아예 안 움직이는 거 같은데, 운동 좀 해.
―황선영 : 나름 운동하는데?
―루시아 : 걷기나 숨쉬기는 운동이 아니야. 근처 피트니스 센터 전화 걸까?
―황선영 : 됐고 오늘은 칼칼한 국물 있는 거 먹고 싶거든?
―루시아 : 여기 땡초 칼국수 어때? 광고 거르고 평이 되게 좋아.
―황선영 : 주문도 돼?
―루시아 : 그건 프리미엄 버전까지 기다려야 돼.
―황선영 : 나오면 바로 산다 내가.
이건 챗봇이 아니라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항상 책만 보느라 친구가 없었던 황선영은 루시아와의 대화에 푹 빠져들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루시아를 설치한 모든 직원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거 진짜 비서랑 대화하는 느낌이네.
―품번 추천해 달랬더니 야한 거 많이 보면 뼈 삭는뎈ㅋㅋㅋ
―사랑해 해봤는데 우리 아직 그런 사이 아니지 않냐고 정색하던데, 뭐가 잘못된 거임?
ㄴ개불쌍···챗봇도 무시하네.
ㄴ호감도가 있어서 루시아한테 자주 말 걸고 좋은 말 해야 됨.
ㄴ섹드립치고 그러면 삐져서 대화 제대로 안 받아줌.
―아 보이스웨어 기능만 있으면 딱인데···
ㄴ너 이상한 거 시키려고 그러지.
루시아는 날이 지날수록 방대한 데이터를 쌓아 진화를 거듭했다.
보이스웨어와 음성인식 기능이 추가되어 사용자가 말을 걸면 즉시 응답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은 바로 옆에 누가 있는 것 같다며 호평했다.
그게 사람이라면 무섭겠지만 어차피 인공지능이니까 친근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어폰 끼고 러닝하는데 루시아가 어제보다 덜 뛰었다고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해서 감동했음···
―루시아 누나한테 소설 읽어달라고 하고 자면 개꿀임ㅋㅋ
ㄴ그거 야설도 됨?
ㄴㄴㄴ야설은 누나가 부끄럽다면서 안 읽어줌.
―요즘 루시아 안 켜면 살 맛이 안남. 차에 타서도 계속 말 걸어줬으면 좋겠음.
―님들 그거 암? 자막 없는 영화 틀어놓고 루시아 키면 즉석에서 번역해줌.
ㄴ즉석에서? 딜레이 없음?
ㄴ약간 있긴 한데 거슬릴 정도는 아님. 번역도 엄청 매끄러워서 어지간한 번역가보다 나음.
ㄴ일단은 영어만 되는데 나중에 언어 추가할 건가 봄.
ㄴ번역기능이 진짜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