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64
일본 핵실험 실패의 후폭풍은 과연 장난이 아니었다.
각국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제재에 들어가는 한편 IAEA 사무총장이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사퇴했다.
이어서 IAEA 조사관들이 줄줄이 일본에 입국해 전방위적인 사찰을 벌였다.
태도가 너무 강압적이라 방송에서는 점령군 행세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했다.
하지만 핵개발 연구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데이터가 삭제되는 등 일본도 큰소리를 칠 입장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일본 전역이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오자와 총리에겐 명백히 이 혼란을 수습할 책임이 있지만 능력은 없었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의 언론들은 약간이나마 이 사태에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고 바다를 건넜다.
유지하는 그들을 만나 유감을 표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예전에 내건 3항이 있지 않습니까? 그 조건을 지금 받아들인다면···”
그는 정말로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 않습니까? 조건도 달라져야죠.”
“어느 정도나···”
“글쎄요, 최소한 10개 조항은 붙어야 할 겁니다.”
“동맹이 곤란한 와중에 뜯어먹겠다는 발상입니까!”
격분한 일본 기자가 항의하자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27년 발행한 방위백서엔 한국을 이웃나라, 그리고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을 동맹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표현을 쓸 수 없었겠죠.”
“···”
“평소 일본에서 혐한과 단교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참에 직접 실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왜 특정 아시아와 굳이 관련되려 하십니까.”
특정 아시아란 표현은 일본 우익들이 한국과 중국, 북한을 묶어서 비하할 때 주로 쓰던 표현이다.
한국에도 일본을 비하하는 표현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이 책으로 묶여 나오고 정치인들이 읊고 다니지는 않는다.
날선 반응이 나오자 일본 기자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인터뷰는 의외로 왜곡 없이 언론에 노출되었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말 잘했다. 저런 특아와는 빨리 단교하는 게 좋아.
―블랙메탈과 언옵테늄만으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어 묻혀버렸다.
아무튼 일본은 지금 유지하가 아니라 당장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몇몇 언론이 숨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계에서 사랑받는 일본이라는 망상이 와장창 깨져나간 것이다.
일부 우익들은 미국에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으나 그들이 주도하는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현 시점에서 일본의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순응하고 모든 제재를 받아들이거나, 다시 핵개발을 시도해 미국의 분노를 사거나.
당연하게도 오자와 정권은 전자를 택했다.
후자를 택한다는 건 일본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한편 이웃나라인 한국은 의외로 일본의 상황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인류연합의 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검문에서 도망간 저 배는 비행기임? 왜 갑자기 날개가 생김?
―날개가 검잖아. 블랙메탈이야.
―유럽 연구소들은 비싸게 블랙메탈 수입해서 겨우 연구하던데 저긴 날개가 통째로 블랙메탈이네.
―아아 저건 위그선이라는 거다. 지면효과를 이용해서 날아다니지.
―위그선이라고 하면 보통 비행기처럼 생겼는데 저건 그냥 배잖아···
―변침속도 장난 아니네. 거북이들 사이에서 갑자기 토끼가 튀어나온 거 같음.
―저러면 화물 다 쏟아질 텐데.
―알아서 고박해뒀겠지.
―근데 영상 보니까 무지 빠르게 날아다니던데 왜 배인 척 돌아다녔던 거임?
ㄴ저거 검문 유도하고 도망치려는 계획 아니냨ㅋㅋㅋ
ㄴ속 시원하긴 한데 유지하가 지시했다고 하니까 이미지가 좀···
ㄴ그게 아니라 일본 관련법이 이상해서 그럼. 일본에도 위그선이 있는데 형상을 정확히 규정해 놨거든. 그러니까 저건 위그선으로 등록할 수가 없음.
ㄴ아···
ㄴ위그선인데 등록은 배로 할 수밖에 없어서 일본 영해에선 배로 다녀야 한다는 거지?
ㄴ그러다가 급하니까 규정이고 뭐고 생까고 튀는 거지.
ㄴ배에서 갑자기 날개가 튀어나오니 기겁했겠네.
―그나저나 저거 덩치가 엄청 큰데 컨테이너선으로 쓰면 대박이겠다.
ㄴ너 컨테이너선 본적 없지? 저거보다 몇 배로 큼.
ㄴ맞긴 한데 덩치가 작은 만큼 속도가 압도적이잖아. 거의 비행기만큼 빠른 거 아님?
ㄴ잘 생각해보면 비행기와 배의 장점을 합친 플랫폼이네. 속도도 훌륭하고 적재량도 괜찮게 나오고.
ㄴ위그선 단점은 인공지능 설계로 커버한 건가? 그러면 대박인데.
ㄴ연료효율은 어느 정도 나오려나···
ㄴ이온 추진기 쓰니까 효율 대박일 거임. 김구급 시운전에서 이렇게 연료효율이 좋냐면서 해군 관계자들이 경악했다던데.
ㄴ아 김구급 몰면서 이거저거 다해봤겠지? 나도 레일건 순양함 타고 싶다···
ㄴ솔까 그 덩치로 구축함 주장하는 건 선 넘었지.
ㄴ뭐 어떰 줌왈트도 구축함이라 우기는데.
이러는 사이에도 일본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한국 정부에 물밑 접촉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형근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이 싫어서가 아니라 모든 신경이 북한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형근이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심을 말해버리는 바람에 파장이 커졌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북진입니다, 북진!”
한국이 발칵 뒤집혔고 유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핑계거리만 찾고 있는데 북한이 소극적으로 나오니 짜증이 난 것이리라.
다만 전쟁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하는데 야당은 미친놈 보듯 하는 분위기였고 여당마저 동조하지 않았다.
“다 좋다 이겁니다. 핵은 어떻게 할 겁니까. 최소 50기가 넘는데 그거 서울에 쏟아 부으면 감당이 돼요? 서울 인구 천만 중에 몇 명이나 죽일 생각입니까!”
“잘 처리돼서 밀고 올라간다 해도 문제죠. 난민 2천만 명이 생기는데 이거 누가 책임집니까? 청와대에서 먹이고 재워요?”
조형근 대통령은 다 해결책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북한 점령시의 계획이 있긴 하다.
괜히 이북 5도청이 있는 게 아니고 영토 수복 시에 통치방안이 존재한다.
하지만 계획이 제대로 돌아가리란 법도 없고 인구수 2천만이 넘는 북한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도 논의되지 않았다.
시험은 코앞에 다가왔는데 벼락치기도 안 되어 있는 수험생의 처지였던 것이다.
평소의 실력대로 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군사력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행정적인 면은 미지수였다.
이렇듯 한국이 불타오르자 새로운 골칫거리가 떠올랐다.
바로 북한의 대외채무 문제다.
과거 북한은 16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빌렸고 그게 악성 채권이 되었다.
현재는 액면가의 20% 정도 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이 북한을 병합하면 갚아줄 것이란 기대감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그걸 왜 갚아야 하느냐란 생각일지도 모르나 국제사회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하여튼 이 채권의 가격은 한국의 북진이 가시화되면서 급격히 오르고 있었다.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선 벌써 회의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채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여 한국 정부에 계산서를 들이밀려는 생각일 것이다.
정작 한국 정부는 이 모든 움직임을 무시하고 있었다.
괜히 호들갑을 떨며 채권을 사들이면 기대감에 더 오르기 때문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북한을 도발해서 북진할 핑계거리를 찾거나 국회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뿐이었다.
막말로 꺼리가 있어야지 아무 조짐도 없는데 밀고 올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청와대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조형근 대통령의 고함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핑계거리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총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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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유지하는 분당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의 출마가 알려지자 언론은 4선 중진이 있음에도 당선을 유력시했다.
판교에서, 아니 대한민국 전체에서 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나이만 찼으면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출마했어도 당선 확정이다.
―선거는 풀뿌리 조직력 싸움이지만 유지하 회장한테는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
저녁 뉴스에 유지하나 신라그룹이 나오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고 미튜브 썸네일에 유지하의 이름만 있으면 조회수가 폭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진지 오래다.
판교의 어떤 식당이 유지하에게는 모든 음식 공짜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바람에 그 거리 전체가 그렇게 변했다.
물론 유지하는 지금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에 거기에 갈 일은 없었다.
이렇듯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회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아버지인 유경석 전 회장이 잠시 그룹을 맡을 거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유지하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비서인 아르마에게 홀딩스의 대표이사 자리를 맡겼다.
미국 국적인 아르마가 신라그룹의 임시 회장이 된 것이다.
이에 언론에서는 부자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으나 당사자가 입을 다무니 알 방법이 없었다.
유경석 전 회장 부부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가 있었기에 인터뷰를 따지도 못했다.
하여튼 총선일이 다가왔고 유지하는 간단한 조직을 꾸려 선거에 임했다.
무소속임에도 그의 연설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다른 후보들은 찬밥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내건 인공지능과 미래라는 슬로건에 열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황된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득입니다. 그리고 그 이득은 인공지능 루시아가 여러분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여러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실히 일하는 시민들을 위한 직장이 마련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실직,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그룹은 더 많은 직장을 제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연설 중간에 여기저기에서 맞아요!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판교에서 신라그룹과 아예 관련이 없는 기업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유지하의 영향력은 막대했고 지금도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최근 동아시아는 매우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에 경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미래입니다. 인공지능과 핵융합, 그리고 우주개발이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저 유지하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비록 회장 자리를 내려놓았지만 진심으로 아르마가 회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유지하는 유세를 끝마쳤고 마침내 선거당일에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되었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이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초선 국회의원이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은 것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조형근 대통령은 무소속이라는 걸 아쉬워했으나 이해해주었다.
“연구하고 기업 경영하느라 바쁠 테니 의정활동은 어렵겠지요. 이해합니다. 대신 의원들하고 인사나 해두십시오. 나중에 가면 다 도움이 될 겁니다.”
앞으로 의원들과의 인맥은 소용이 없겠지만 최소한의 인사는 해두기로 했다.
그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몇몇 중진들은 그를 비판했다.
하지만 충분히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유지하의 위치는 어떻게 보면 대통령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지하는 대한민국의 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된 셈이군. 다음 페이즈로 진행하지.”
그건 바로 북한의 도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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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본격적인 춘궁기에 접어들자 북한은 파멸적인 식량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은 물론이고 평양에서도 아사자가 심심치 않게 나왔고 전연군단의 일부 부대가 해체될 정도였다.
외신이 수차례 북한의 실태에 대해 보도했고 각국에선 UN이나 민간단체를 통해 지원에 나섰다.
버티다 못한 북한은 드디어 한국 정부에 식량지원을 요청했다.
원래 이런 요청을 할 때는 중국을 통해 하는 것이 관례였고 직접 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화해의 장을 마련하자는 식으로 민간단체에 에둘러서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북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북한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청와대는 딱 잘라 거절했다.
―DMZ 침투를 사과하는 게 우선 아닌가? 추가적으로 핵도 포기해라. 그러면 식량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
지원하겠다도 아니고 용의가 있다는 발언에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간 대표적인 대남 강경론자로 널리 알려진 김여정이 나섰다.
―핵보유국인 공화국을 상대로 얼마 되지 않은 식량을 만지작거리니 정치적으로 얼마나 아둔한 얼뜨기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제 남조선과는 더 이상 어떠한 대화도 타협도 없을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마음대로 해라.
한국의 반응이 이처럼 간단하자 북한 측이 오히려 당황했는지 외무성이 나서서 추가 담화문을 발표했다.
만약 남조선이 전향적으로 나선다면 대화에 응할 수도 있다는, 당초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를 필두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야 하는데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 대한 국민감정이 예전과 달리 많이 바뀐 것도 있었다.
수십 차례의 도발을 겪고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도 듣다 보니 이젠 너희들을 믿지 않는다 식의 냉소적인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보루였던 중국이 전쟁 중인데다 러시아마저 예전 같지 않았다.
올해에만 김여정을 비롯한 외무성 간부들이 여러 번 크렘린을 찾았으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대외 환경과 북한 내부의 썩다 못해 곪아터진 경제가 합쳐져 아주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냄새를 취재한 외신과 국제기구에서는 이렇게 전했다.
―중국과의 무역이 아예 끊긴 것이 치명타다. 두만강에서는 탈북자가 너무 많아 감시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번에 한국이 전면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전연군단에서 최소 천 단위의 탈영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간 북한이 붕괴한다는 추측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인 것 같다.
북한 당국은 이런 추측을 결사적으로 부인하면서도 재차 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간 고난의 행군이라 칭할 위기는 많았지만 정권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평양에 주둔한 군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김씨 일가가 열심히 깔아 놓은 정치장교와 보위부원 사이에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니 말 다했지.
어쨌든 한국은 이 모든 요청을 무시했다.
조형근 대통령은 대 북한 담화에서 열심히 불을 질렀다.
“현재 북한이 처한 총체적 위기는 자처한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우선 김정은과 김여정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겁니다. 내가 이천시에 좋은 자리를 여럿 마련해 두었습니다. 극진하게 모시지요.”
경기도 이천에 있는 국군교도소를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결국 한국의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조롱에 북한은 격분했다.
최고존엄을 모욕했으니 남조선 영토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자는 극단적인 발언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국회에서는 제발 좀 자제하라고 거듭 요청했으나 조형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신라그룹에서 이미 NCM 전력을 완성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봉쇄된 이상 전혀 거칠 게 없었다.
이대로 7군단을 앞세워서 북진하면 북한은 그날로 끝이다.
그걸 위해서 계기가 있어야 했는데 북한은 교묘하게도 직접적인 도발은 삼갔다.
굶어죽게 생겼는데 전쟁을 벌일 여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형근 대통령은 마음이 맞는 유지하 의원을 불러다 놓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저놈들이 참 약삭빠르단 말이야. 요즘에는 GP도 전부 철수시켰어요. 혹여 미친 짓을 할까봐 그러는지.”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요즘에는 뭐 하나 잘못 걸리면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입니다.”
“어디 보자···마지막 전면전 위기가 2차 연평도 포격 사태 때인가? 그때는 우리 공군기가 폭격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미국이 확전을 자제하라고 하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1차 때도 그랬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조형근 대통령의 눈이 빛났다.
“미국은 더 이상 한반도에 예전 같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해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고. 우리와 북한의 다이다이만 남았다 이겁니다.”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이런 발언이라니.
그는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고 유지하는 적당히 받아넘겼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청와대 상공에서 포성이 울렸기 때문이다.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쿵, 하고 별실 전체가 은은히 진동했다.
“대통령님!”
비서진과 경호원들이 급히 들어왔고 유지하까지 지하벙커로 끌려가게 되었다.
5월 10일 밤, 갑작스런 북한의 방사포 사격이 서울을 울렸다.
「마스터, 시작했습니다」
황해남도 방사포여단에 침투한 안드로이드들이 핑계를 만들어냈다.
사과는 필요 없다
현대에 들어서 군대가 공세 의지를 보일 경우 드러나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군수물자의 이동, 무전 교신 폭증, 병력과 차량의 재배치 등이다.
이 외에도 징후는 많지만 정찰수단만 확실하다면 최소 몇 시간 전에는 공격을 알아낼 수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은 한반도에 전개된 정찰수단이 온전할 경우의 얘기였다.
현재 한반도는 주한미군이 상당수 빠져나간 상태였기에 정찰의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미군이 한국군에 자주 지적하는 사항도 바로 그것이었다.
―화력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데 그것을 전개할 정찰수단과 군수지원이 부족하다.
이는 한국군 장성들도 잘 알고 있었으나 해결은 난망했다.
원래 경제가 어려울 땐 국방예산부터 깎이는 경향이 있었고 최근 몇 년간 한국은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러니 국방예산이 사정없이 삭감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유지하의 등장으로 이를 만회할 만한 무기체계가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즉, 한국군은 잘 싸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으나 눈과 귀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다.
쿵, 쿵!
10일 밤 11시. 한강을 연한 김포와 고양 일대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이 시간에 무슨 전투기 훈련이냐며 넌더리를 냈다.
“아우 시끄러워.”
“전차에 장갑차에 전투기까지 난리네.”
“북진할 것도 아니고 작작 좀 하지.”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전방사단들이 꽤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많은 트럭들이 부대를 들락날락했고 경계가 강화되었다.
경기도 북쪽에서 기동 훈련하는 전차와 장갑차는 평소에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최근에는 횟수가 많이 늘었다.
마치 전쟁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지 않는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80년 가깝게 평화롭게 살다 보니 북한의 위협에도 무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