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많은 생각을 했기에 과감할 수 있었다.
방주 앞에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무림에 검도관을 건립하기 위해 온갖 부귀영화를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왔다.’
그런 용하를 기다리는 건 그토록 용하를 신뢰해 준 용두방주도, 창의부흥원 원장 자리도, 아낌없이 애정을 주었던 소희 낭자도 아니었다. 오직 살벌하고 잔악해 보이는 방주와 감시의 눈뿐이었다.
‘예전의 부귀영화가 그리워 21세기를 떠나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 않은가. 오직 무림에다 검도관을 건립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확실한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용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예측 불가한 어떤 모략이 숨겨져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받아 두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대인.”
“선물을 받았으니, 나 또한 무엇인가 베풀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이 좋겠는가?”
지금까지 들어온 방주의 목소리 가운데 가장 온화했다.
‘저렇게 따듯한 목소리를 가졌으면서 왜 그동안 억지로 목소리를 거칠게 냈던 걸까?’
헤아릴 수 없는 궁금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확인이라도 한번 해볼까?’
용하는 굳게 다문 입술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리려다가 닫아버렸다. 확인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마당에 저 사람 목소리가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지는 알아서 뭣에 쓰게.’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가?”
방주의 말에 용하는 찔끔했다.
‘뭐지, 혹시 독심법의 술수라도 쓴다는 건가?’
방주의 경지가 의심스러웠다. 진짜 방주가 독심술의 경지라면 그와 대화하는 것,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 등 차단해야 할 게 많아진다. 독심법으로 공격해 오는 상대를 막을 길은 오로지 차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 베일이 문제다.’
용하는 형형한 눈으로 베일을 바라보았다.
‘나는 베일에 가려진 상대를 볼 수 없지만, 베일 안에서 나를 보면 얼마나 잘 보일까?’
뒤늦게 가능성을 열어 놓은 용하는 최대한 작은 움직임으로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눈동자뿐 아니라 눈동자를 둘러싼 근육들의 움직임조차도 노출해서는 안 된다.’
말수도 최대한 줄였다.
“내가 너무 호의적이었는가?”
“네, 갑자기 그 무슨.”
용하는 평소 습관대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인가. 내게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하라.”
‘아차,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군. 최대한 침착하자.’
하나, 둘, 셋…….
속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숫자를 세었다.
“어허,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귀에 거슬리는 방주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거의 동시에 용하의 대답도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약간의 자유를 주십시오.”
“자유? …그 말은 지금까지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냐?”
“네, 사실 좀 그랬습니다. 아니,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무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개방의 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방주님께 이렇게 소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방주님은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꼬리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방주는 용하의 속내를 헤아렸던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백의개가 누리는 자유 그 이상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너희들에게는 특별히 선처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조금 전 방주의 궁을 나온 용하는 무사의 뒤를 따라 거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보시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말해 보시오. 내가 알고 있는 건 대답해 주리다.”
“방주의 궁은 저쪽에 있지 않았소?”
“예전이 개방에 와본 적이 있는 것이오?”
“아, 와 본 건 아니고 말로만 들었소.”
“전 방주였던 용주방주가 머물던 궁이 그곳에 있었다오.”
무사의 대답에 용하가 무엇인가 또 물으려고 입을 벌렸을 때였다.
“더는 묻지 마시오. 더 알려고 들었다간 그쪽도 나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오.”
“알겠소. 다만 한 가지는 대답해 주시오. 그리 위험한 질문은 아닌 듯하니 말이오.”
무사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곧.
“말해 보시오.”
“예전 방주의 궁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었다고 들었소. 여기 중원에서 그보다 큰 나무는 없을 거라고 했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무사를 흘깃 바라보았다.
“있었다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말이오.”
마지못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사라졌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그렇게 쉽게 사라질 나무가 아니었소.”
“맞는 말이오. 하지만 힘 가진 사람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뭔들 못하겠소.”
“그렇다면 혹시…….”
그 순간 가늘게 뜬 용하의 두 눈이 무사를 직시했고, 무사는 그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왜 대답하기를 꺼렸는지 알 것 같소.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 주시오.”
외면하고 있던 무사의 시선이 살짝 용하 쪽으로 돌아왔다.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소?”
“간략하게 말해 줄 것이니,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하시오.”
“알겠소.”
“전대 개방의 주인이셨던 용두방주의 영령을 모셔두었다오.”
용하는 처연하게 눈을 감았다.
처소에 도착한 용하는 장설에게 은밀하게 대화를 청했다.
“형님. 제가 그동안 개방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을 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며칠이나 있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처소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용하의 두 눈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예전의 용두방주는 죽음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나이에 워낙 많았으니 여태 살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그 나이에 그런 큰일까지 당했으니.”
웬일인지 말을 아낀 채 혀를 끌끌 찼다.
“그 이후 다음 방주는 용두방주의 궁을 허물고 당시 중앙 정원에 세워져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전대 방주의 영령을 모시는 봉안당을 지은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 전대 방주를 모셨을지는 알 수 없는 일.”
“그리고 지금의 방주는 예전 창의부흥원으로 방주의 궁을 옮겼습니다.”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왜일까요?”
간결하지만 숨통을 조이는 듯한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그 대답을 듣고 싶어서라면.’
이미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고 던진 질문이란 걸 모를 리 없었다.
용하는 자기가 던진 질문에 자기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제가 접한 정황을 근거로 추론한 결과, 남은 건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적잖이 긴장된 목소리였다.
“현재 개방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방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하지만 용하가 던진 질문은 그보다 더 숨 막혔다.
“거의 다 온 것 같구나. 혹 다 된 일을 그르칠 생각이 없다면, 앞으로는 입을 조심하거라.”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용하는 곧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개방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궁금해하지 말아라.”
“네, 형님.”
“하다못해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묻지 말라.”
분명 대답을 망설일 거로 생각했는데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장설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형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용하의 표정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동안 세웠던 계획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번에도 정적만 흐르는가 싶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계획대로 해 나가야지.”
“그러려면 형님께서 지금까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을 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겠지. 그래서 말이다. 지금부터는 우리 셋이 철저하게 자기 일을 분담해야 한다.”
“자기 일을 분담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신분과 나이 그리고 때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언제 하는 말이냐에 따라 그 말이 타당할 수도 있고 의심을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용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장설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는 의미였다.
“될 수 있으면 우리 셋이 같이 있을 때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누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중복된 질문으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용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인공, 자네도 명심하게!”
웬일인지 장설은 더욱 단호히 말했다.
“아, 형님! 제게도 용하한테처럼 조곤조곤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자네에게는 조곤조곤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냐?”
“그럼요. 저한테는 무슨 주워다 기른 애한테 말하듯 했습니다.”
“열등감이 발동한 모양이로구나.”
“열등감이라고요? 제가 뭐가 부족해서요.”
“모든 사람에게는 열등감이 존재하거늘. 그 크기와 모양과 종류가 다 다를 뿐.”
“좀 알아듣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 말이 어렵게 들리느냐?”
“글쎄요. 형님 얘기를 듣고 있자면, 맞는 말인가 싶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고, 알 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뭐, 대충 그렇습니다.”
“횡설수설하지 말고 무슨 말을 하려거든 생각부터 하도록 하여라.”
인공은 못마땅했지만 억지로 대답했다.
“네, 형님.”
“물었으면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말을 듣도록 하라.”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네 녀석은 무엇을 물을 때 대답을 짐작하고 듣는 버릇이 있어.”
찔끔했다. 그동안 상대의 말을 예상하고 들은 탓에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었으면 상대의 말을 진솔하게 들어야 하거늘, 자네는 선입관을 가지고 들으니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은 걸러 버리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종종 있었을 걸세.”
새겨듣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당부하자꾸나.”
“네, 말씀하십시오. 하지 말란다고 안 하실 양반도 아니고.”
“어허!”
장설의 헛기침에 구시렁거리던 인공의 입이 쑥 들어갔다.
“항상 생각은 많이, 행동은 과감하게 하라!”
“네, 형님.”
그날 이후 세 사람은 더 긴밀하게 각자의 생각을 공유했다.
그리고 용하와 인공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형님! 그리고 말입니다. 개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자유롭게 생활하다니.”
“제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고마움의 뜻으로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고 하셔서 자유를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리하라고 하더냐?”
“네, 그러라고 했습니다.”
“백의개는 3년 동안 최소한의 자유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자유 이외에 더 많은 자유를 누리라고 하더냐?”
“그렇지 않아도 방주께서 그 말씀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어요. 여기저기 다닐 수 있게 해주고, 남 눈치 안 보고 아무하고 자유롭게 대화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들어주었단 말이냐?”
“네, 형님.”
“믿을 수 없구나. 네 녀석이 요구한 조건이 무엇인지는 알고 한 것이냐?”
“그럼요. 제가 요구한 건 적어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입니다.”
“이곳은 개방이 아니더냐. 개방에서 그쯤 자유로워지려면 개목을 넘어 분타주 정도는 돼야 할 텐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개목은 뭐고 분타주는 또 뭡니까?”
“개목은 매듭이 한 개 또는 두 개, 분타주는 세 개!”
장설의 말에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인공이 불쑥 끼어들었다.
“형님! 그럼 방주가 우리를 분타주로 인정한다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예나 지금이나 용하 저 녀석에게는 규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잘해준다는 걸세.”
“그러게요. 예전에도 용하 녀석을 창의부흥원 원장 자리에 앉혔잖아요. 그럼 분타주는 어느 정도 위치입니까?”
“하나의 동네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일세.”
용하와 인공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거의 동시에 감탄사를 토했다.
“동네 하나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요?”
그리고 곧 용하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공 형님. 동네 하나를 지휘할 수 있다는 건 동장이라는 거잖아요?”
용하의 물음에 무슨 대답인가 해야 했지만, 인공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을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장설 또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타주가 되려면 10년 걸린다는 사실을.
“아무튼 용하 저 녀석이 억세게도 운이 좋은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