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49
53. 기만자들 (4)
노엘에게 기초적인 권장법을 가르쳐 주던 유진은 그의 끔찍한 운동신경과 산만한 태도에 절망했다.
“나는 내가 최고의 무공 사부라 자신했는데, 당신을 보면서 재능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 정도인가? 하하하하…….”
“좋아하는 겁니까?”
“천하의 무사부를 당황하게 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군.”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수가 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 수단으로 무공은 좋은 선택이고요.”
“그렇게 하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했어, 무사부.”
노엘의 수업을 끝낸 유진은 하늘에 떠 있는 지니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쁘게 생긴 정령이 머리 위를 돌아다니는 게 그리 좋진 않았다.
지니가 말을 걸었다.
[언제 갈 거냐?]“밥 먹고.”
[당장 가야지.]“오늘은 짜장면이 나옵니다.”
노엘은 이번 토벌을 위해 보급물자를 풍부하게 준비했고, 그 덕에 식사의 질이 훌륭했다. 온갖 국적으로 구성된 토벌대의 무인들을 위해 다양한 메뉴가 나왔다.
오늘은 유진과 박유원을 위해 특별히 짜장면을 조리했다.
두 명뿐인 한국인을 위해 한국식 중국요리를 준비해 주니, 유진으로서는 그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걸 안 먹으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곧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무인들이 식판을 들고 배식대에 줄을 섰다. 유진 또한 식판을 들었다.
유진의 뒤에 선 박유원이 말했다.
“짜장면이라니, 기대되네요. 탕수육도 나온다던데요?”
“제대로 준비했군.”
유진과 박유원은 바닥에 대충 주저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대량으로 조리했기 때문에 퀄리티가 아주 훌륭하진 않았지만, 판타리아에서 맛보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그때 스테이시가 다가왔다.
“유진, 줄리앙이 심문의 결과를 알려왔어요.”
“결과는요?”
“몇 가지 정보를 알게 됐어요.”
“정말입니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다. 유진이 쳐다보자, 스테이시가 미소를 지었다.
“네, 줄리앙이 정말로 심문에 자질이 있었나 봐요.”
“정보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유진의 질문에 그녀가 기막을 펼쳐 주위와 소리를 차단했다.
그러자 지니가 남몰래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유진의 눈빛을 받고 찔끔 뒤로 물러났다.
스테이시가 유진과 박유원에게 말했다.
“유진이 추측한 대로, 이 안에는 혈마인들의 기지가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혈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요.”
“혈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뭡니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어요.”
혈마인을 심문한 줄리앙은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우선, 벽을 넘어야 들어설 수 있는 이 땅에 혈마인들이 지은 기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의 경비가 엄청나게 삼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정신에 금제가 가해진 듯, 그 이상을 말하게 하자 혈마인이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유진은 문득, 기막 바깥에 있는 지니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실실거리고 있었다.
저 지니를 따라 바다로이라는 엘프를 만나면, 그가 답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유해 줘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유진은 중요한 인물인데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유진은 스테이시에게 물었다.
“노엘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까지 온 이유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판타리아를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미리 탐험을 하는 거죠. 탐험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판타리아에 대해 잘 알아야 테라포밍도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유진이 알다시피 노엘은 평범하지 않잖아요?”
“그렇군요.”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진에게는 부족했다.
혈마인들이 이 판타리아 깊은 곳에 기지까지 짓게 만든 중요한 물건은 대체 무엇일까.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스테이시가 기막을 풀었다. 바깥의 소리가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짜장면과 탕수육의 맛을 알게 된 무인들이 남는 음식을 추가로 배식받기 위해 다시 줄을 서고 있었다.
스테이시가 떠나고 나자 박유원이 말했다.
“형님, 저는 혈마인들이 왜 여기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유진이 그를 쳐다보았다. 박유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설이나 만화 좀 본 저는 다 짐작할 수 있지요.”
“왜 여기 있는데?”
“보통 악당들이 험한 땅에 와서 찾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마지막 남은 탕수육을 씹으면서 박유원이 말했다.
“바로 마왕입니다.”
유진은 미간을 모으고 그를 쳐다보았다. 박유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 마왕이 봉인되어 있고, 그걸 깨우려고 하는 거죠. 판타리아 깊은 곳에 봉인된, 깨어나서는 안 되는 마왕을 깨우기 위해 혈마인들이 저렇게 애쓰는 겁니다!”
“그렇군.”
“오르크들의 정체도 분명 마왕의 졸개들일 거고요.”
“유원아. 그럼 우리가 용사 역할이겠느냐?”
“원래 이런 초창기 원정은 실패하기 마련이죠. 우리는 인트로에 등장했다가 마왕군에 의해 쓸려나가는 엑스트라…….”
“참 기분 좋은 말이로구나.”
“하하하, 형님과 저는 살아 나가야죠.”
***
모두가 잠든 자정이 되자, 기다리고 있던 지니가 유진에게 다가왔다.
[이제 가자. 바다로이가 기다린다.]지니의 주인인 엘프를 만날 때였다.
유진은 기감을 펼쳐 주변을 확인했다. 딱히 위험한 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은 천막을 벗어나 지니를 따라갔다.
진지 바깥에 경계를 서는 무인들은 유진을 찾지 못했다.
유진은 초원을 지나, 나무들이 자라 숲이 시작되는 곳으로 갔다.
저 멀리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저게 바다로이다.]유진이 여태 본 엘프들은 모두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다로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벼워 보이는 체형에, 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눈빛은 오만했다.
유진이 다가오자 바다로이가 말했다.
[네가 우리에 대해 아는 인간인가.]라이예나와 소슬레오가 그랬듯, 엘프의 언어는 낯설었으나 유진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실시간 통역기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습니다. 바다로이. 만나서 반갑습니다.”
[흐음…….]바다로이의 태도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유진은 놀라지 않았다. 소슬레오 또한 비슷했다. 당시 유진 일행이 혈교에 잡혀 있던 그를 구해 주었기에 그나마 누그러졌으나, 그럼에도 묘한 우월감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바다로이가 유진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어떻게 우릴 알게 됐지?]“예전에 엘프를 만났습니다.”
[우연히?]“상대가 날 불렀습니다.”
[그 엘프가 누구지?]마치 심문을 하는 듯한 태도였다. 유진은 개의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바다로이를 제압할 수 있으니 섣불리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유진은 그가 처음으로 만나 엘프에 대해 말했다.
“라이예나였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그러자 바다로이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불신의 빛을 품고 유진을 쳐다보았다.
“예.”
[그분을 어떻게 만났지?]반응이 소슬레오 때와 비슷했다.
라이예나를 만났다고 하니, 의심스럽다는 듯 캐물으면서 그녀를 ‘그분’이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라이예나는 엘프들 사이에서 지위가 높은 듯했다.
“라이예나 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진이 물었다. 유진은 내심 라이예나가 그에게 실프를 붙여준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바다로이가 노기를 드러냈다.
[그분을 만나고 싶다니, 허튼 생각하지 마라. 다신 못 만날 것이다. 그분을 한 번 만난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해라.]“혹시 소슬레오는 아십니까?”
[소슬레오? 그분은 또 어떻게 알지?]유진은 그 대답에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바다로이는 소슬레오보다 더 라이예나에게 공손했고, 또한 소슬레오에게도 ‘그분’이라는 호칭을 썼다.
엘프들 사이에 계급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마경을 살피는 파수꾼들 사이에 계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사람 사이에 상하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 그러면.”
유진은 틴케이스를 꺼냈다. 그걸 본 지니가 화들짝 물러나 바다로이 뒤로 갔다.
“이것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유진은 촉수를 꺼내어 바다로이에게 훅 들이밀었다.
바다로이가 움찔했다.
그는 지니가 그러했듯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지는 않았지만, 그 자세 그대로 굳은 채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두렵지 않은 척하려고 몸에 힘을 주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건, 잡지 않는 게 좋을 거다.]“왜 그렇습니까?”
[너도, 침식될 수 있으니까.]바다로이는 유진이 맨손으로 들고 있는 촉수를 향해 혐오의 시선을 보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알겠다.]바다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예나 님, 그리고 소슬레오 님과 아는 인간이니 내가 조언을 해 주지. 잘 새겨듣도록 해라.]“예.”
[일단 그것을 치워라.]유진이 촉수를 다시 틴케이스에 넣었다.
[그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사악한 생물이다.]“사악한 생물?”
[그래. 곰팡이처럼 보이지 않는 포자를 퍼뜨려서 인간의 육체를 침식하지. 그것은 마음의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간다. 마음이 약해진 인간들을 조심해라.]“나와 함께 온 사람들은 다들 괜찮았습니다만.”
[우리가 친 결계 때문에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이지. 게다가 네가 데려온 인간들은 다들 강한 무인들이더군. 그 정도의 힘이라면 최소한의 면역이 있겠지.]“그 벽이 결계입니까?”
[그래.]바다로이의 설명에 따르면 그 결계는 바깥으로 이 촉수의 포자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내부에서는 촉수의 힘이 약해지도록 억제하는 힘이 있었다.
[그 생물의 포자가 일찍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 자리 잡으면, 거대하게 증식한다. 마치 버섯처럼.]바다로이가 문득 눈길을 돌려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 혈마인들의 기지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다로이가 말했다.
[그것은 아주 끔찍한 존재지. 하지만 욕망에 취한 인간들은 그것이 가진 위험성을 간과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더군. 그것이 증식한 군집에 터를 잡고, 그것을 채취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유진이 침음을 흘렸다. 바다로이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희 인간들은 정말 대담해. 그걸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말야.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유진의 뇌리로, 촉수를 품고 있던 수많은 혈마인들의 모습이 지나갔다.
이제야 납득이 갔다.
혈교는 판타리아에서 촉수를 채취해 혈마인들을 강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이 생각에 잠겨 있으니 바다로이가 웃었다.
[이미 본 적 있나 보군. 그래, 놈들은 그걸 자신들에게 주입한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그 생물에 담긴 힘을 이용한다고 여기지만, 전부 착각이다. 결국은 본인들이 집어삼켜지게 되지.]“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에게 전신을 잠식당해 거대한 촉수 덩어리가 될 뿐이다.]유진은 혈교주를 떠올렸다. 그 미치광이는 판타리아에 존재하는 위험한 생물을 이용해서 지구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이다.
유진이 물었다.
“왜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겁니까?”
“그건 그렇군요.”
[나는 너희 인간들을 동정하고 있다.]바다로이가 유진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미약하게나마 진심이 어려 있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저 존재가 만약 지구에 퍼지면, 지옥도가 펼쳐지겠지. 그리고 그 미래가 이미 보이는 듯하다. 부디 너희들이 혈마인이라는 것들을 이겨내길 바라겠다.]“우리를 동정한다면, 우릴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유진이 경험한 바,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도와주면, 혈마인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로이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혈마인들을 내버려 두면 당신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묘한 대답이었다.
바다로이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지켜보는 것뿐이다.]그리고 그는 더 말을 섞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여기까지 하겠다. 마경을 탐험하기 위해 왔으니, 부디 즐기도록.]“바다로이, 고마웠습니다. 혹시 라이예나를 만나면 안부 전해주십시오.”
바다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지니와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유진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의심스럽군.”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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