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157
56. 망령 (2)
갑자기 나타난 유진이 복부를 꿰뚫었을 때, 장광은 지독한 기시감을 느꼈다.
파사의 기운이 그의 기맥을 지지고 있었으나, 고통보다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먼저 일어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고, 얼굴이 다르다.
체형이 다르며, 목소리가 다르다.
무공 또한 모자라다.
그런데, 왜.
‘쥐새끼 같은 것, 어디까지 도망칠 생각이냐.’
이 새파란 놈에게서, 그 공포스러운 상대가 겹쳐 보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쥐새끼라고 부르는 자가 오로지 그뿐이었기 때문일까.
쥐새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장광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정말로 지독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찌른 상대가 단소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공포 대신에 다른 감정이 그를 채웠다.
분노였다.
“하찮은 것이!”
장광은 주먹을 휘둘러 상대의 얼굴을 뭉개려 했다. 그러자 상대는 그의 가슴을 박차고 반발력을 이용해 멀리 떠나갔다. 장광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 짧은 헛손질의 순간.
하북팽가 출신의 팽제원이라는 놈이, 그의 가슴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검상이 남아 있는 복부에 검기를 쑤셔 박았다.
장광은 이를 악물고 호신강기를 펼쳤다.
하지만 이미 생긴 상처에 적의 검기가 재차 침입하면서 그의 기혈이 비틀렸다.
장광은 전신이 감전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제기랄!”
하북팽가, 무림에 있을 때는 감히 그에게 범접하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빌어먹을…….”
장광은 팽제원을 밀치고 고개를 들었다.
무림인들이 생각보다 강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혈교가 패퇴하고 떠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림 전체가 강해졌다. 마치 그놈처럼 무공을 사용했다.
전 무림에 자신의 무공을 알려주기라도 했나.
무림인이, 무공에 미쳐 사는 무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이 모든 게 그 때문이다.
이름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존재, 단소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끔찍한 심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자라났다. 저 촉수를 관리하게 되면서 계속해서 신경증처럼 그를 괴롭히던 그 심상이었다.
죽고 죽이고 죽고 죽이고 죽고 죽이고…….
“제기라아알!”
장광은 머리에 자라나는 지옥 같은 이미지를 잠재우려 애썼다.
전투 속에서 그의 정신은 더욱 혼란해지고 있었다. 더 불길한 것은, 정신이 흔들릴수록 그의 내부에 있는 광증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광은 점차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손에서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던 그때부터?
혈교주의 얼굴에 당혹과 동요가 떠오르던 그때부터?
아니면, 마지막 조우에서 그놈이 선사한 악몽을 목격했을 때부터?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모르겠다…….
그는 그냥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장광의 정신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빈틈에서, 사악한 존재가 심은 광기가 싹을 틔웠다.
“그래, 그래…….”
장광이 눈을 떴다. 시야가 온통 붉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은, 적의 눈동자에 되비치는 자신의 모습마저 감지할 수 있었다.
눈이 시뻘게지고, 전신에 핏줄이 튀어 오르기 시작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 장광은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결국 이리될 운명이었나.
전부, 그놈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에는 그놈을 닮은 젊은 청년이 자신을 향해 서 있다.
새삼 그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장광은 간신히 붙들고 있던 끈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좋다.
장광이 두 팔을 펼쳤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일대를 휘감았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를 취하며 쌓은 혈기와, 저 사악한 촉수를 부양하면서 빨아들인 광기가 유형화된 기운으로 화했다.
급류가 몰아쳤다.
***
혈교와 싸울 때에는 유진도 한창이었다.
무사부로서 제자들을 거느릴 때보다 더 저돌적이고 치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진은 장광을 보자 예전의 호승심이 일어났다.
그가 수없이 숨통을 끊을 뻔했으나, 장광은 끝까지 도주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치명상을 입은 혈교주와 혈교의 잔당들이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침내 저 쥐새끼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러니, 예전의 그가 부르던 호칭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죽어라, 쥐새끼.”
그리고 그의 검이 장광의 복부를 꿰뚫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그래서 그 어떤 한 수보다도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유진의 혼원기는 파사의 기운을 머금고 그의 기맥을 갈가리 찢었다.
유진은, 순간적으로 장광의 눈에 공포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하찮은 것이!”
그의 눈에 차올랐던 공포가 이내 분노로 갈음되는 것을 보면서, 유진은 웃고 말았다.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으려나.
그가 장광이라는 쥐새끼를 잊지 않았듯, 쥐새끼 또한 자신의 천적을 잊지 못한 듯했다.
장광의 주먹을 피해 유진은 그의 가슴팍을 박차고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팽제원이 장광의 복부를 갈랐다.
장광의 몸이 흔들렸다.
절호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제기랄!”
장광은 뒤로 물러나면서 혼자 고함을 쳤다. 상처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허공에서 몇 번 고개를 내젓더니,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제기라아알!”
유진은 검을 들었다. 장광이 무방비가 된 지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유진의 본능이, 장광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경보를 울렸다.
장광은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그래, 그래…….”
마침내 장광이 다시 눈을 들었다. 그의 눈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또한 검붉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유진은 한 단어를 떠올렸다.
변이(變異).
혈교의 장로이자 혈마인이었던 장광은 지금 이 순간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이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그의 육신에서 두꺼운 핏줄이 올라왔다.
혈기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를 기운이 격류처럼 휘몰아쳤다.
유진은 검을 든 채 혼원기를 일으켜 자신을 보호했다.
“크윽…….”
혈기에 다른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저건…….”
장광을 보고 있던 유진은 소름끼치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몸에서 일어난 핏줄들은 실은 핏줄이 아니었다.
몸에 가득 차올라 있던 촉수가 피부 아래에서 팽창한 것이다.
장광의 전신에서 촉수의 윤곽이 꿈틀거렸다.
역겨웠다.
유진은 거대한 촉수를 바라보았다. 저것은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장광은 저 촉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크아아악!”
“으아아아아아!”
“끄아악!”
이어서, 사방에서 혈바인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부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장광이 입을 벌리고 무어라 말했다.
그가 내는 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땅이 무너지면서 나는 울림 같았다.
오오오오오오…….
일대가 뒤흔들렸다.
내게 와라…….
그러자, 혈마인들이 홀린 듯이 장광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진은 혈마인들을 베려고 했으나 장광이 뿜어내는 사악한 기운이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유진은 압박을 이겨내고자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팽제원과 종천대조차 굳어 있었다.
낭패였다.
이윽고, 장광의 아래에 좀비 떼처럼 모인 혈마인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장광의 몸이 터졌다.
정확히는, 그의 피부가 터지면서 촉수가 드러나 아래로 뻗어 내려왔다. 그의 몸뚱이에 가두어져 있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촉수들이 아래로 내려와 두 손을 뻗은 혈마인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혈마인들은 환희하는 얼굴로, 장광의 촉수에게 자신의 생명력과 영혼을 바쳤다.
유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늘이여…….”
이 순간, 이 공간 자체가 역천(逆天)과 불경(不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런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저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저 광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유진은 내부에서 사악하고 불길한 무언가가 피어나려 하는 것을 느꼈다.
천기가 어그러지고 있었다.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혼원기를 일으키고, 눈을 깜빡였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턱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소리를 냈다.
“끄으으으…….”
여기서 가장 강한 팽제원마저 눈을 부릅뜬 채 굳어 있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무공이 더 강하다고 견뎌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가 해야 한다.
저 사악한 것이 더 크기를 불리기 전에.
유진은 눈을 감았다. 전신을 찌르는 혐오스러운 기운을 잊고, 자신의 내부에서 차오르는 사악한 심상을 잊고, 내면에 집중했다.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그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서 있었다.
하늘과 바다.
그 사이에서 검을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의 손에는 아직 검이 쥐여 있고, 머리 위에는 언제나처럼 하늘이 있다.
…….
유진이 눈을 떴다.
그리고 걸음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째에, 그것이 유진을 인지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유진은 그것에게 얽매여 있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단소천이 아니고, 품고 있는 힘 또한 미력하지만.
하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은 없다.
유진의 눈에 푸른빛이 스쳤다.
천라(天羅).
백천귀해(百川歸海).
하늘과 바다의 색이 세상을 덮었다.
***
찰나와 찰나가 분리되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기적을,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심신이 마비되어 있는 가운데 푸른빛이 비쳤던 것 같기도 했으나, 그게 무엇이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이후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진이 소리쳤다.
“전부 도망치세요!”
공포에 질려 있던 토벌대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네오리우와 오르크들 또한 등을 보이고 달아났다.
하지만 스테이시와 박유원, 줄리앙 같은 이들은 도리어 유진에게 달려왔다.
“형님!”
“유진!”
그들을 마주한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가세요. 여러분은 오히려 먹이가 될 뿐입니다. 있어 봐야 방해가 됩니다.”
아직도 장광은, 아니, 장광이었던 것은 혈마인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혈마인들은 미라처럼 홀쭉해지다가 이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장광의 몸뚱이에 흡수당한 혈마인들의 얼굴 같은 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역겹고도 끔찍했다.
“형님, 같이 가요!”
박유원이 유진의 소매를 잡았다.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더 강해질 거다. 저게 지구에 떨어지면 어떻겠느냐?”
“하지만…….”
“설마 내가 질 것 같으냐?”
“솔직히 쪼금…….”
유진은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라. 나는 무사부다.”
“형님…….”
“내가 질 것 같다니 유원이가 많이 건방져졌구나. 무관으로 돌아가면 특훈이다.”
박유원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나중에 그 특훈 꼭 시켜주시는 겁니다.”
“그래.”
유진은 스테이시를 보았다.
“스테이시, 노엘과 다른 토벌대를 데리고 도망치세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 나중에 노엘에게 잘 말해서 인센티브나 많이 받게 해 주세요.”
“그야 물론입니다만…….”
잠시 망설이던 스테이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줄리앙에게 말했다.
“줄리앙, 스테이시를 잘 도와주십시오.”
“자네…….”
줄리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에도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꼭, 꼭 다시 보자고.”
“영화 찍습니까?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닙니다.”
“제길, 쪽팔리니까 나중에 꼭 돌아오라고.”
“예.”
유진은 피식 웃었다.
“어서 가세요. 늦습니다.”
이내 그들까지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유진, 그리고 팽제원과 종천대뿐이었다.
팽제원은 유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이 몸을 풀며 말했다.
“자, 제대로 싸울 준비 됐습니까?”
팽제원은 소리 없이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신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있는 장광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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