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170
#닥터 플레이어 170화
라팔드 지방에서 저 멀리 떨어진 타국.
한 화려한 성에서 면사로 얼굴을 가린 고운 여인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라팔드 지방 보리슨 영지에서 마정석 채굴을 시작했다고요?”
“네, 그렇사옵니다.”
여인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은 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알아보라고 하시는지?”
타당한 의문이었다.
휴스톤 왕국의 라팔드 지방은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으니까.
“아닙니다. 수고하셨어요.”
“……?”
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
의심하기에는 눈앞의 여인은 너무나 고결한 이였으니까.
‘무언가 깊은 뜻이 있겠지.’
그렇게만 생각하였다.
기사가 물러간 후 여인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깊은 한숨 탓일까? 여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가 바람에 흔들리며 안의 모습이 드러났고, 믿을 수 없게도 충격적인 얼굴이 나타났다.
이전 베라드 대공을 독살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제 시작되었어. 끔찍한 재앙이 펼쳐지겠지.’
여인, ‘위선의 성녀’는 저릿한 얼굴을 하였다.
‘어째서 ‘그들’은 이런 끔찍한 일을?’
‘그들’.
그녀의 삶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자들.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없다.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집단이지, 어떤 자들인지,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심지어 이름조차 모른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끔찍한 악마 같은 자들이라는 것.
‘……내가 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도 그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악마가 되었으니까.’
여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녀도 악마였다.
칭송받는 겉모습과 다르게 그들의 손을 빌려 얼마나 추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는지 모른다.
이번에 라팔드 지방에서 벌인 일도 그러했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난 분명 최악의 지옥에 떨어지게 될 거야.’
그녀는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자격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구더기보다도 추악한, 최악의 죄인이 자신이었다.
‘혹시 레이몬드, 그자라면 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였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고대의 비술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불가능해. 이제 퍼질 괴질은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끔찍한 괴질이니까.’
그녀는 섬뜩한 생각을 하였다.
지금껏 세상에 없던 괴질!
지금 라팔드 지방에 퍼지는 전염병이 그러한 끔찍한 것이란 뜻이다.
‘더구나 마정석 채굴이 시작된 후, 한 달. 그 안에 모든 걸 막아야 해. 그 시간이 지나면 끝장이야.’
고작 한 달.
아니, 이제 채굴을 시작한 지 보름 이상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훨씬 촉박했다.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아무리 레이몬드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해결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비극이 발생할 거야. 아아.’
그렇게 위선의 성녀…… 아니, 더러운 구더기보다 못한 추악한 마녀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죄악에 몸을 떨었다.
* * *
도리안 자작은 위풍당당하게 괴질이 퍼지는 영지에 도착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님!”
“별말씀을요. 환자가 있는 곳에 힐러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주님들. 제가 환자들을 치료하겠습니다.”
자신 있는 음성에 두 영주는 크게 안도감을 느꼈다.
‘페닌 백작이 아니라도, 도리안 자작이면 이 괴질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도리안 자작은 왕국 내 2명밖에 없는 AA급의 힐러였으니까.
“자작님이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면, 페닌 백작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뻔했습니다.”
“하하, 잘하셨습니다. 괜히 잘못된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고생하는 법이니. 페닌 백작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건 앞으로도 삼가는 게 좋습니다.”
도리안 자작은 레이몬드를 폄훼하는 말을 하였다.
정통 힐러들이 레이몬드를 싫어하고 깔보는 건 아직도 여전한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최근에는 레이몬드의 명성이 크게 올라가 함부로 무시하는 말을 못 꺼냈지만, 그는 도리안 자작.
왕국 서열 2위의 힐러이니 힐러로서 레이몬드를 낮춰보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했다.
“저곳이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까?”
환자들은 영지 외진 곳에 모여 격리되어 있었다.
“네, 자작님.”
도리안 자작은 환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열에 숨이 넘어가고 있는 환자.
의식을 잃은 환자.
심지어 정체불명의 괴성을 지르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
‘뭐지? 이 괴질은?’
도리안 자작은 고심했다.
그는 지식도 뛰어났으나, 눈앞의 괴질과 닮은 질병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다.
어쨌든 상관은 없었다.
그의 강력한 힐을 받으면, 좋아질 테니까.
‘고열이 끓는 걸 봐서 감염증의 일종일 터. 더블 A급의 힐이면 대부분 좋아지게 할 수 있다.’
파아앗!
찬란하게 눈이 부신 화려한 빛이 도리안 자작의 손에서 터져 나왔다.
“오오!”
사람들은 감탄을 토했고, 그 빛이 성스러운 축복처럼 환자에게 닿는 순간.
“커어어어억!”
환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뿐이 아니라, 괴롭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
도리안 자작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지금껏 수 없는 환자를 치료했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힐을 받았는데 도리어 악화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파앗!
다시금 힐을 펼쳤는데, 그다음 반응은 더욱 극적이었다.
“크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환자가 목을 떨구었다.
죽은 것이다.
“…….”
“…….”
무거운 침묵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이, 이건……?”
영주들은 당혹한 얼굴을 했고, 도리안 자작도 마찬가지였다.
힐을 받았는데, 도리어 목숨을 잃다니?
“무, 무언가 환자한테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영주들은 어색하게 말했다.
힐은 위대한 축복의 힘!
그런 힐을 받고 도리어 상태가 악화해 죽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환자한테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게 합당했다.
“……다시 치료하겠습니다.”
파앗!
두 번째 환자에게 힐을 사용했다.
아까 일로 더욱 섬세히 공들인 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더욱 끔찍했다.
“크아아악!”
환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요동을 치더니 그대로 사망해 버린 것이다.
“…….”
“…….”
장내에 다시금 죽을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운 침묵이었다.
물론 힐은 만능의 힘이 아니다.
지금껏 봤듯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점이 있었고, 효과가 없는 질환도 많았다.
하지만 효과가 덜한 거지, 이렇게 상태가 악화하는 경우는 없었다.
마치 축복이 아니라, 죽음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이게 무슨…….”
누군가 꿀꺽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 괴질은 악마의 저주라도 된단 말인가?”
악마의 저주.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이 괴질이 보통의 전염병이 아니란 것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 * *
힐을 받았는데도 오히려 환자가 악화해 사망했다!
그 충격적인 사건에 영지민들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공포가 영지민들을 사로잡았다.
“이건 분명히 악마의 저주야!”
“악마의 저주가 영지에 내려왔어!”
도리안 자작 말고 다른 힐러들도 손을 걷고 나섰지만, 마찬가지였다.
환자들 모두 힐을 받고 증상이 악화하였다.
원래 인간은 미지의 존재에 더욱 큰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미증유의 괴질에 영지민들은 공황에 빠졌고, 더욱더 최악의 일이 일어났다.
환자가 스멀스멀 늘더니 다른 영지에까지 괴질이 퍼진 것이다.
총 3개의 영지에서 괴질이 발생하였다.
라팔드 지방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전염병의 유행이 명명백백해진 거다.
그것도 지금껏 본 적 없었던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다 죽을 거야!”
“살려줘!”
누누이 말하지만, 전염병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조금만 전염병이 의심되어도 불에 태워죽이는 일이 횡횡할 정도인데, 무려 3개의 영지에서 지금껏 본 적 없는 끔찍한 전염병이 생겼으니 그 공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옆의 이웃이 죽는 걸 목격한 영지민들은 패닉에 빠져서 들고일어섰다.
“이대로는 안 돼!”
“물러서거라, 이 휴스톤의 악마 놈들아!”
특히 영지민들이 분노한 이유가 있었다.
휴스톤 왕국이 점령한 이후 이런 전염병이 생겼다는 것.
물론 전혀 인과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공포에 질린 영지민들은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고, 전염병 발병의 책임을 새로운 영주들에게 돌렸다.
“네놈들 때문에 악마의 저주가 내려왔어!”
“놈들을 몰아내야 해!”
공포가 얼마나 심했느냐면, 심지어 무기를 들고 봉기하는 이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라팔드 지방에 최악의 위기가 발발하였다.
* * *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악마의 저주를 해결하라!](의술 퀘스트)
의술 등급 : 파이브 메스
난이도 : 상
퀘스트 설명 : 악마의 저주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병 중입니다. 힐러로서 전염병을 해결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전염병 해결
보상 : 보너스 레벨 업×4, 스킬 포인트 130점
특전 : 제후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갑자기 전염병이라니. 이게 무슨.’
생각지도 못했다.
무난히 복구를 끝내는가 했는데 이런 최악의 복병이 나타나다니.
특히 레이몬드는 난이도와 등급을 주목했다.
‘파이브 메스?’
그간 봐온바, 의술 등급은 질병이 어려울수록 올라간다.
레지던트급의 질병이면 원(1), 투(2) 메스 정도였고, 전문의가 되고 나서는 보통 ‘투 하프(2.5)’, 혹은 ‘쓰리(3)’ 정도였다.
그런데 파이브(5) 메스다.
심지어 난이도조차 ‘극상’이었다.
이런 난이도가 나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질환이기에?’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쨌든 반드시 해결해야 해. 이 전염병을 해결 못 하면, 전하와의 내기도 실패야.’
그는 퀘스트의 ‘특전’ 항목을 주목했다.
전염병을 해결 시 라팔드 지방의 제후로 임명될 것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실패 시 제후 임명도 물 건너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해.’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힐을 받고 악화하는 전염병이라니? 도대체 뭐지?’
전염병에 박식한 레이몬드이지만 그런 전염병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이곳 레이펜타이나에는 아인종과 몬스터의 존재 때문에 지구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전염병이 있지만 이런 유의 전염병은 처음 들어.’
힐이 무엇인가?
생명력을 촉진하는 힘이다. 따라서 힐을 받으면 어떤 전염병이라도 조금은 상태가 좋아져야 한다.
그런데 저주라도 받은 듯 상태가 악화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