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296
#닥터 플레이어 296화
스승이란 작자가 이딴 걸 설명이라고 하다니!
물론 사제간의 배움에 왈가불가하는 건 대단한 실례였지만, 그녀를 일평생 사랑하던 이로써 그녀의 아들이 이딴 형편 없는 가르침을 받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스승이 되어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리겠어!’
한편, 라이프도 그런 나헬의 기색을 읽고 비웃었다.
‘내 제자의 천재성을 못 알아보다니. 그래놓고 욕심만 많군. 내 제자는 쓸데없는 설명 따위 필요 없는 하늘이 내린 천재다.’
그래, 레이몬드 같은 천재에게는 구질구질한 설명이 필요 없는 법이다.
‘무릇 천재는 그 천재성을 이해하는 이가 가르쳐야 하는 법.’
라이프는 자신이야말로 레이몬드에게 최고로 적합한 스승이라고 확신했고, 분노한 나헬과 다시금 눈빛을 허공에서 파지직거렸다.
레이몬드는 그런 둘의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지로 향하는 것 같아 가뜩이나 심란한데 더욱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황당한 가르침이 지금 상황에서 무슨 도움이 될 리가…….’
하지만 그 순간, 생각지 않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초 검술’ 교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체력, 감각 스탯이 ‘기초 검술’의 습득 기준을 초과하였습니다!] [200점의 스킬 포인트를 사용해 ‘힐러의 기초 검술’을 습득 가능합니다!] [힐러의 기초 검술]종류 : 호신 스킬
등급 : 일반
숙련도 : D
-검술의 기초 동작을 사용 가능합니다!
-숙련도가 오를 시 더욱더 완벽하게 기초 동작을 펼칩니다!
“…….”
이건 뭔가.
레이몬드는 잠시 침묵했다.
“……어쨌든 도착한 것 같습니다.”
산속 깊은 곳.
놈들의 비밀 근거지가 보였다.
‘일행들은?’
상황을 살핀 레이몬드의 눈이 일순 커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마물들이?’
하급 마물들이 벌 떼같이 몰려 일행을 공격하고 있었다.
문제는 일행이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숫자가 많아서 그런가? 하지만 저들 중 한 명만 나서도 쓸어버릴 수 있는 수준의 하급 마물들인데?’
본슬론 백작, 엘무드, 미엔 모두 상태가 심각했고, 마탑의 마법사들은 손도 못 쓰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살피던 라이프가 말했다.
“뭔가 마나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네?”
“다들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엘무드도, 본슬론 백작도 그저 생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 오러 블레이드도, 마나 블레이드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도 굉장히 둔했다. 몸에 납을 달고 억지로 움직이는 듯한 동작이었다.
‘다들 마나 유저 수준만도 못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잖아?’
심지어 마법사들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마법은커녕 마물들에게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결계인 것 같습니다. 돔 모양의 희미한 회색빛이 보입니까?”
레이몬드는 눈에 힘을 주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보일 듯 말 듯 흐릿한 막이 보였다.
옆의 나헬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속이 뒤집힐 것 같군요. 마나 홀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마나 홀은 기사들이 마나를 모으는 하단전을 뜻한다.
라이프 공작도 다소 괴로운 얼굴이었다.
“아마 마나를 담는 그릇, ‘마나 홀’과 ‘마나 하트’에 영향을 주는 결계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결계를 구현했는지 모르겠군요. 저건 고대인들의 유적에나 등장하는 결계인데요.”
“유적이요?”
“네, 알펜서 왕국의 ‘마법사의 시련’ 유적과 몇몇 유적에서 저런 결계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이 강대한 마물이나 마스터를 상대할 때 사용하던 결계로 알려졌는데…… 도대체 놈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저런 물건을?”
레이몬드는 침음을 삼켰다.
‘강자들에게 특화한 함정. 우리가 이렇게 나설 거로 예상하고 함정을 판 거야.’
일반 병사, 기사들에게 저런 결계는 별반 효과가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 레이몬드의 일행처럼 소수의 강자에게는 딱 맞춤인 함정이었다.
“큰일이군요. 문헌에 따르면 저 고대의 결계는 마나의 그릇이 클수록 더욱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그래서 저기 본슬론 경과 엘무드 경 등이 더욱 맥을 못 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쩌지?’
그때, 나헬이 의아한 듯 말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네?”
“속이 끓어 오르거나 진탕되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네? 전혀?”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라이프, 나헬 모두 굉장히 괴로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 명과 다르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왜? 마나 양이 적어서 그런가?’
아니었다.
이제 그의 마나 스탯은 80 이상.
힐러로 치면 A+급. 기사로 쳐도 어지간한 익스퍼트 이상의 수준이었다.
‘아! 난 마나를 담는 그릇이 없지.’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중단전, 하단전 같은 ‘그릇’에 마나를 축적하는 게 아닌 ‘혈맥’에 마나를 ‘퍼뜨린다’.
그러니 ‘그릇’을 진탕하게 하는 원리의 결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거다.
‘……그러면 설마 내 능력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결계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저 마물들 천지에 들어가 함정을 파훼하라는 것이다!
‘어, 엄청 위험해 보이는데?’
결계가 발현된 위치는 딱 봐도 명확해 보였다.
가짜 천문 술사 놈.
그놈이 들고 있는 정체불명의 스톤 형태의 마도구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레이몬드는 울상을 지었다.
‘……저 밑의 마물 군단을 물리치고 이번 일의 원흉인 가짜 천문 술사 놈까지 때려잡아야 가능한 일이잖아.’
상황을 보니 함께 온 두 소드 마스터도 큰 도움이 안 될 확률이 높았다.
결국, 그가 다 해야 하는 거다.
‘으아아. 그런 게 어디 있어. 못 해, 못 한다고! 난 돈 벌고 싶은 일개 속물 힐러일 뿐인데!’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슈퍼 리치가 되어 마음 편히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데, 왜 맨날 이딴 일을 마주한단 말인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라이프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천무지체. 고대인의 결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이 몸도 가만히 있을 수 없군요.”
“네?”
“사실 전하의 안전을 생각해 퇴각을 고려했으나…… 전하가 따를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스승인 제가 전하의 길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나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 따르지 않겠지. 저분은 그녀의 성품을 그대로 빼다 닮았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지켜내어야 했다.
“전하의 길. 제가 지키겠습니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동시에 말한 둘은 다시 흠칫 서로를 노려보았다.
레이몬드는 심란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몰라.’
결국, 이를 악물고 결계에 진입했다.
결계 안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라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전하!”
“도망가십시오!”
“냐옹!”
피투성이가 된 이들이 레이몬드를 걱정해 외쳤다.
반면, 가짜 천문 술사, ‘검은 사제’는 시커멓게 웃었다.
“역시 왔군. 우리의 정체가 드러날 걸 감수하고 무리해서 ‘아카네의 돌’을 사용한 보람이 있었어.”
아카네의 돌.
이 결계를 발현한 고대의 마도구 이름인 듯했다.
라이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말 그게 아카네의 돌이라고? 그렇다면 너희의 정체는 설마?”
“후후.”
검은 사제는 대답 대신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영광으로 알도록. 이 아카네의 돌은 우리가 정말 중요한 순간에나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던 비장의 패였는데. 레이몬드, 네놈을 잡는 데 사용하게 되었으니.”
그래, 아카네의 돌을 사용한 건 ‘마에스트로’로서도 어마어마하게 무리한 일이었다.
일회용이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일로 ‘마에스트로’의 정체가 모두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고대의 마도구인 아카네의 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수 있었으니까.
그만큼 마에스트로는 레이몬드 놈을 제거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뭐, 정체를 드러낼 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여버리면 정체가 퍼질 일도 없을 테니까.’
검은 사제는 시커멓게 웃었다.
무리한 만큼 이번에 확실히 레이몬드 놈을 잡아야 했다.
“제 발로 걸어오다니. 이곳이 네놈의 무덤…….”
그렇게 말하던 검은 사제는 멈칫하였다.
레이몬드의 상태가 지나치게 멀쩡했던 것이다.
함께 온 라이프와 나헬은 핼쑥한 안색인 데 반해서 말이다.
‘설마 SS급?’
검은 사제는 흠칫하였다.
아카네의 돌은 고대인들이 강력한 마물이나 마스터를 제압할 때 사용하던 마도구였다.
하지만 당연히 한계는 있었다.
이검 격, 혹은 이현 격 이상의 초월자(SS급)면 강대한 마나 제어력으로 아카네의 돌의 압력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니야. 저놈이 SS급의 마스터일 리가 없어.’
검은 사제는 부정했다.
그들은 레이몬드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하지만 놈이 그런 강자라는 이야기는……
‘천무지체, 선천 마법사란 소문은 있었지만. 혹시?’
검은 사제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아카네의 돌의 압력을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예외가 있었다.
바로 천무지체. 혹은 선천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다!
그들은 타고난 마나의 그릇이 어마어마하게 단단해 아카네의 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마, 말도 안 돼! 저놈이 정말 그런 괴물일 리가!’
한편 장내의 다른 마스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아아, 그레이트! 전하는 정말 선천 마법사가 확실했던 거야! 저분께 마법을 가르치는 건 이 라이나에게 주어진 고귀한 운명……!’
‘역시 내 제자는 천무지체! 자랑스럽구나!’
순간, 그들은 동시에 같은 해결책을 내었다.
자신들의 몸을 바쳐 천무지체(선천 마법사) 레이몬드가 활약할 무대를 마련하겠다고!
“전하, 가십시오!”
“마물들은 우리가 상대하겠습니다!”
물론 레이몬드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마스터가 많은데, 왜 힐러인 내가 제일 앞장서서 나서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맨날 이런 식이었다.
하늘이 일부러 그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난 그냥 제일 뒤에서 안전히 있고 싶다고!’
한편, 일행들은 레이몬드가 머뭇거리는 걸 그들을 걱정(?)해서라고 오해했다.
감동해 버럭 외쳤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가십시오, 전하!”
“우리 걱정은 할 필요 없습니다!”
“마물은 저희가 상대할 테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아카네의 돌을 부수십시오!”
‘재촉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