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16
#닥터 플레이어 416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건이 당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니.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스태프를 통해 당시 있었던 일의 증거를 얻을 방법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스태프를 제가 볼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아직 폐위된 상태가 아니니, 카트린느도 그 정도 권한은 있었다.
스태프는 황실 근위 기사단에 보관 중이었다.
이번 사건 수사의 총책임자라는 근위 기사단장이 딱딱한 얼굴로 레이몬드에게 말하였다.
“만지거나 하는 건 안 됩니다, 전하. 눈으로 보기만 하십시오.”
레이몬드는 그 강경한 어투에 기사단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어스 왕국 일파라고 하였지.’
“하나만 묻겠습니다. 사건 이후, 스태프를 이곳 보관 장소로 가지고 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혹시 어떻게 가져왔는지요? 손으로 직접 들고 온 건가요?”
기사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황제 폐하의 상징물을 그렇게 다룰 수는 없지요. 상징물에 함부로 손을 대는 건 황실 모독죄에 속하는 중죄이니 천으로 싸서 가져왔습니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눈빛을 빛냈다.
“그러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이 스태프를 만진 이는 아무도 없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기사단장은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한 얼굴을 하였다.
레이몬드는 설명 대신 또 하나의 중요한 물음을 하였다.
“그러면 최초 목격자인 근위 기사도 이 스태프를 만지진 않았겠군요.”
“네, 최초 목격자는 방에 들어가 피해자가 쓰러져 죽어 있는 걸 확인만 했을 뿐, 스태프는 물론 피해자의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이지요?”
기사단장은 눈썹을 꿈틀하였다.
“네, 이미 다 조사한 사항입니다. 아니면, 직접 대질하게 해드릴까요?”
불손한 말투였다.
아마, 다 된 빵에 재를 뿌리려는 듯한 레이몬드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레이몬드는 상대의 불온한 모습보다 다른 점에 주목했다.
‘천만다행이야. 범행을 은폐하려는 근위 기사단의 수작 덕에 중요한 기회를 잡게 되었어.’
근위 기사단과 범행을 일으킨 이는 모두 한통속이었다.
따라서 심문은 하는 둥 마는 둥 형식적으로만 하였을 거고, 범행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주장으로만 일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
‘최초 목격자가 스태프를 휘둘렀다는 증거만 확보하면 사건을 반전시킬 수 있어.’
최초 목격자는 피해자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태프도 만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스태프를 휘두른 증거가 나온다면?
그러면 놈을 살인범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건데.’
누구도 목격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놈이 스태프를 휘둘렀다는 사실을 증명한단 말인가?
답은 스태프에 있었다.
스태프에 남은 단서를 통해 증거를 얻어야 한다.
‘지문은 안 돼. 시간도 많이 지났고, 보존 과정 중에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을 거야.’
레이몬드는 일단 스태프를 살펴보았다.
“만지면 안 됩니다. 보기만 하십시오.”
기사단장은 딱딱한 얼굴로 재차 경고했다.
레이몬드는 별다른 대답 없이 집중하여 스태프를 관찰했다.
‘전형적인 예식 상징물이야.’
예식 상징물.
실용적인 목적 없는 장식물을 말한다.
실제로 스태프는 온갖 지팡이의 목적보다는 예술품으로 온갖 보석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 압권은 머리 부분이다.
십자가 모양에 십국의 국기가 보석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아름다운 장식과 다르게 그 부분으로 머리를 가격한 건지, 피에 젖어 있었다.
‘그래도 가벼운 재질이라 둔기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스태프로 머리를 가격해 사망하게 하려면, 아주 강하게 전력을 다해 휘둘러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타격 부위가 뭉개져 있었다.
‘카트린느 황제가 이렇게 강하게 스태프를 휘두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강한 힘을 지닌 기사나 되어야 가능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해. 결정적인 단서가 필요해.’
레이몬드는 가장 중요한 부위.
손잡이 부위를 살폈다.
온갖 보석이 가득 박혀 있는 상징물답게 손잡이도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손으로 움켜쥐는 부위도 여러 형태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부위를 감싸는 원형의 고리 안쪽에도 보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이거 가져다 팔면 도대체 최고급 소고기가 몇 마리…… 아, 아니,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육안’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용, 매의 눈!’
마법 발동과 함께 그의 시야가 변하였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시야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보였다.
‘이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희미한 혈흔이 손잡이 부위에서 보인 것이다!
‘전력을 다해 휘두르다가 보석에 손이 긁혀 혈흔이 남게 된 거야!’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어! 이거면 증거로 삼을 수 있어!’
의아한 생각이었다.
고작 희미한 혈흔일 뿐이다.
그것도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혈흔.
이걸 어떻게 증거로 삼는단 말인가?
하지만 레이몬드라면, 의술의 힘이라면 가능했다.
레이몬드는 그 방법을 떠올렸다.
‘DNA 지문 분석을 하면 돼!’
DNA 지문 분석.
현대 지구 과학 수사의 결정체였다.
그 방법이면, 이 희미한 혈흔으로도 범인을 확정할 수 있었다.
* * *
“무죄를 밝히는 게 가능하다고요?”
카트린느의 눈동자가 커졌다.
레이몬드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카트린느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간 마음의 고생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황제가 보이기에는 지나친 과례인지라 레이몬드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전 그저 폐하께 도움이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역시. 듣던 대로군요.”
카트린느는 레이몬드의 겸양 어린 말에 커다랗게 감동한 얼굴을 하였다.
“당신은…… 정말 빛이 맞았어요.”
“…….”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황제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음. 뭔가 이상하게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카트린느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있었다.
카트린느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덕에 십자 연맹 제국을 위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무죄가 확정되면, 가난의 성자를 내 다음 대 황제인 황태자로 삼을 수 있어. 가난의 성자의 빛이 십자 연맹 제국을 환하게 비출 거야.’
그런 뜻의 말이었지만, 가련한 레이몬드는 그녀의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그래요. 폐하는 앞으로도 열심히 십자 연맹 제국을 위해주십시오. 전 돈을 벌고요. 흐흐.’
그렇게 둘은 서로 다른 꿈을 꾸었고, 과연 최종적으로 누구의 꿈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카트린느는 결연히 말하였다.
“일단, 제 측근들에게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음을 말해놔야겠어요.”
그런데 레이몬드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건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아예 제가 폐하의 무죄를 입증하는 걸 실패하는 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카트린느는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가 레이몬드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감탄하였다.
“이번 일로 기어스 왕국에 타격을 주려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내가 증거를 밝힐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면, 기어스 왕국은 꼬리를 자를 거야.’
가장 높은 가능성은 연루된 자를 모조리 죽여 입막음하는 것이다.
그러면 카트린느의 무죄를 입증하더라도 기어스 왕국의 잘못은 밝힐 수 없다.
‘그럴 수는 없지. 앞으로 내 돈벌이를 위해서는 황도에서 기어스 왕국의 입김을 줄여놔야 해.’
근위 기사단장, 치안대장 등이 모조리 기어스 왕국 일파이니 입김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었다.
향후 황도에서 원활한 돈벌이를 위해서는 기어스 왕국의 영향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일에 기어스 왕국이 엮였음을 밝혀내 타격을 주는 거야!’
한편, 카트린느는 그런 레이몬드의 계획에 크게 감탄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저분은 그저 몽상가가 아니야. 무서운 지략 또한 함께 가지고 있는 혁명가야.’
혁명가.
레이몬드를 겪은 여러 이가 한 생각이었다.
그는 단순히 백성을 위한 헛된 이상만 품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실천할 무서운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고.
지금도 보라.
기어스 왕국을 물어뜯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얼굴도 결연한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어스 왕국을 몰아내고 카트린느 황제 밑에서 꿀 빨며 돈 벌어야지!’
그런 다짐의 얼굴이었지만, 카트린느는 거듭 감탄할 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었다.
‘가난의 성자를 제국의 빛으로 만들겠어!’
‘카트린느 황제 누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흐흐.’
과연, 하늘이 둘의 꿈 중 누구의 꿈을 이루어 줄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
* * *
일단, 레이몬드는 DNA 분석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다.
‘분자 생물학 지식은 이미 충분하고. 추가로 필요한 스킬은 연금술!’
[스킬, 연금술의 숙련도가 A등급으로 상승합니다!]원래도 레이몬드는 연금술의 숙련도가 낮지 않았다.
현대 지구의 의약품을 레이펜타이나에서 구현하려면 연금학적 지식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약초에서 필요한 성분을 추출하는 걸 넘어서 연금술 지식을 통해 유기 화학 비슷하게 약제를 합성하는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아무래도 약초에서 비슷한 성분을 추출해 내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레이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연금술 설비 투자하느라 돈은 엄청나게 깨졌지만. 흑흑.’
연금술사를 고용하고, 약제 합성에 필요한 설비를 마련하느라 투자비가 많이 들었지만, 꼭 필요한 일이긴 했다.
‘어쨌든 A등급의 연금술을 갖추었으니, DNA 지문 분석도 가능하…… 지는 않구나.’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A등급의 연금술이면 대단한 수준의 지식이었다.
마탑에 가도 전문가 소리를 들을 정도?
그런데 이런 지식으로도 DNA 지문 분석을 구현해내는 건 쉽지 않았다.
‘PCR까지는 가능해. 문제는 커팅(Cutting)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