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28
#닥터 플레이어 428화
감금되었던 소공작 카림이 풀려나며, 시넬 공작이 그간 저지른 부정에 대한 증거를 내밀었다!
정의감에 넘치는 카림은 아버지가 그동안 은밀히 저질렀던 부정에 대해 증거를 수집해 놓았고, 이번 빈민가 비리 사건과 겹쳐 시넬 공작은 죄인의 신세가 되었다.
그 결과?
소공작이었던 카림이 공작 위를 물려받기로 하였다.
카림은 감격에 찬 얼굴로 레이몬드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들었습니다! 리머튼 형님께 저를 도우라 하였다고. 아아, 그레이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당신의 빛 덕분에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레이몬드는 멍하니 생각했다.
‘왜…… 왜 이렇게.’
세상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특히 카림을 구하는 데 성공한 리머튼이 제일 미웠다.
‘……리머튼, 이놈은 이번엔 왜 이렇게 일을 잘한 거야. 헛똑똑이 바보 주제에.’
레이몬드는 리머튼이 일을 말아 먹을 거라 예상했다.
휴스톤 왕국에서 본 리머튼은 바보였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리머튼은 이번에 카림을 구하며 대단한 수완을 보였다.
리머튼은 노블레스 푸어에 가입된 회원들을 십분 이용하며 시넬 공작에게 강력한 압박을 넣었다.
과거, 리머튼이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교묘한 정치 압박이었다.
약소국의 끈 떨어진 왕족으로 황도에서 이리저리 눈치받으며 구르며 오만함을 버리고, 성장한 덕이었다.
“황태자 전하를 위해 공을 세워 기쁩니다!”
리머튼은 의기양양해 으스대었다.
차후 황제가 될 레이몬드에게 도움을 주어 나중에 떨어질 콩고물이 기대되는 눈치였다.
‘……시끄러워. 하나도 안 고마우니까.’
레이몬드는 팍팍 한숨을 내쉬었다.
속 터지는 건 리머튼뿐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반응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역시, 가난의 성자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시는군.”
“숭고한 빛과 군주로서의 대쪽같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니. 그야말로 최고의 황제가 될 분 아닌가?”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유가 있었다.
시넬 공작은 황위 선출에 캐스팅보트를 쥔 이였다.
그런데 레이몬드는 그런 정치적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를 위해 나선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알기에 이렇게나 크게 감탄하는 것이다.
한편, 이번 일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네. 어쩌면 가난의 성자님은 도리어 황위 선출을 자신 쪽으로 굳히려고 이번 일을 벌인 것일 수도 있어.”
“무슨 말인가?”
“커다란 중죄를 저지를 경우, 해당 선제후의 선출권이 중지되며, 후계자에게 선출권이 넘어가는 조항이 있지 않은가? 시넬 공작을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고, 대신 자신을 강력히 지지할 카림 소공작을 위로 올린 거지.”
“허어,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군. 그게 사실이면, 가난의 성자님의 심계에 소름이 돋는군.”
“가난의 성자님은 숭고할 뿐 아니라, 백성을 위한 깊은 심계, 독심도 가지고 계신 게 분명해.”
그렇게 사람들은 이번 일에 떠들었다.
‘……다들 시끄러워. 그만해.’
레이몬드는 울고 싶었다.
그의 마음도 모르고 카림은 열혈 소년처럼 외쳤다.
“나 카림! 목숨을 바쳐 전하의 앞날을 보필하겠습니다! 십자연맹제국에 전하의 빛이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금번 대에 와서 변질되었지만, 원래 시넬 공작가는 황제를 보필하는 충신 가문이다.
그리고 카림은 그런 가문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올곧은 이였다.
카림은 그런 자신이 레이몬드를 만나게 된 건,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나와 시넬 공작가는 오로지 레이몬드 폐하를 모실 거야! 이분이야말로 내가 모실 진정한 주군이야!’
카림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레이몬드가 황제가 된 다음이었다.
아니, 카림뿐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황위 선출은 끝났군. 시넬 공작가가 완전히 가난의 성자님을 지지하게 되었으니, 이제 어떤 변수도 없어졌어.”
“그러게 말이야. 다음 대 황제는 가난의 성자님이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레이몬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내가 황제라니! 황제라니!’
현실을 부정하려 하였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대로라면 정말로 황제 당첨이었다.
‘황제가 되면, 내 인생 망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결연히 생각하였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 안에 상황을 역전(?)해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황이 너무 불리(?)했다.
‘으으. 도대체 어떻게?’
레이몬드의 천재적인 머리로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왜 하늘은 날 이렇게 자꾸 괴롭히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
“마스터, 큰일이에요!”
“제자님?”
크리스틴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빈민 중 갑자기 원인 불명의 사망자가 나타났어요.”
“원인 불명이요?”
“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벌써 확인된 이들만 다섯 명이에요.”
레이몬드도 얼굴을 굳혔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뭐지?’
“혹시 사망한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습니까?”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데…….”
크리스틴이 말끝을 흐리자,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망자 모두 마스터의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에요.”
레이몬드의 눈이 커졌다.
크리스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스터께 치료받은 이후, 갑작스레 사망하였어요. 원인 미상으로.”
“…….”
레이몬드는 침묵했다.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황위 선출에든, 메디컬 학파의 위상에든 상당한 충격을 줄 사건이었다.
* * *
“뭐? 가난의 성자에게 치료받은 환자가 대거 사망하였다고?”
보고를 받은 기어스 왕국의 재상 루드비히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수하는 기쁜 얼굴로 말하였다.
“네, 덕분에 황도가 수군수군합니다. 놈의 명성도 크게 흔들릴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루드비히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누구의 소행이지?”
“네?”
“이런 일이 그냥 생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상대는 그 가난의 성자인데.”
루드비히는 이게 절대 레이몬드의 실책일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몬드이니까.
‘물론 치료가 잘못되어 환자가 잘못될 수는 있어. 하지만 한 명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숫자가? 그것도 그 가난의 성자가?’
루드비히는 레이몬드에게 두려움에 가까운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간 그가 획책했던 모든 일이 레이몬드 때문에 파훼되었으니 당연했다.
그 대단한 레이몬드가 이런 커다란 실책을 저질렀을 것 같지가 않다.
‘특히 시기도 공교로워. 하필 이럴 때?’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루드비히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 이번 일? 우리 측에서 저지른 일은 아니겠지?”
“네? 아닙니다.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수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멸망의 추종자의 배후가 기어스 왕국이란 게 밝혀진 이후, 그들은 바짝 엎드려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저런 수준 낮은 수작질을 시도할 리가?
하지만 루드비히는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광휘의 성자 쪽 말이야! 광휘의 성자가 벌인 일인 것 아니냐고!”
“……!”
수하들은 흠칫하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건…….”
광휘의 성자는 기어스 왕국 출신 왕족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루드비히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황제가 될 이었으니, 나름대로 동원 가능한 역량이 많아 충분히 이런 음모를 꾸밀 수 있었다.
“당장 확인해 봐! 아니, 광휘의 성자를 직접 내게 불러와!”
루드비히는 날카롭게 외쳤다.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병신 같은! 가난의 성자가 이런 한심한 수작에 넘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바로 레이몬드의 어마어마한 능력 때문에.
레이몬드가 누구인데, 이런 저급한 수작에 당하겠는가?
그가 아는 레이몬드라면, 자신의 누명을 벗는 것은 물론 이걸 빌미로 도리어 역공을 펼치고도 남을 이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사망 환자가 생긴 곳이 어디라고? 하필 빈민가라고?’
루드비히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떠올랐다.
‘빈민가면…… 그곳이지 않은가?’
루드비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광휘의 성자가 유희를 즐기던 곳이잖아.’
유희.
어린 시절부터 황제가 되기 위해 자라온 광휘의 성자는 속으로 끔찍이 삐뚤어진 면모를 가지게 되었고, 그 삐뚤어진 심성은 최악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바로 힘없는 이들을 상대로 끔찍한 유희를 즐기게 된 것이다.
물론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빈민들을 상대로만 벌인 일이라 일이 밖으로 흘러나온 적은 없었다.
뒤처리도 완벽하게 했고.
광휘의 성자가 그런 끔찍한 일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알 수 없게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야. 괜한 불안감이야. 희생자들 모두 완벽히 처리했으니, 아무리 놈이라도 광휘의 성자가 벌인 일을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어.’
루드비히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 * *
루드비히의 짐작대로 레이몬드는 어렵지 않게 누명을 벗었다.
예상대로 누군가 수작질을 벌인 거였다.
‘약물 부작용처럼 보이게 독을 썼어.’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한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날 노린 수작이 분명해.’
문제는 배후가 누구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희생자들에게 독을 쓴 이를 잡아야 하는데, 이미 행방이 묘연했다.
몇몇 의심 가는 이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긴 했는데, 온갖 정체 모를 이들이 오가는 빈민가의 특성상 용의자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짐작 가는 배후가 몇몇 있긴 한데.’
첫째는 지금껏 온갖 흉악한 수작을 펼쳤던 ‘놈들’.
즉, 기어스 왕국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 놈들의 수작은 아닌 것 같아. 그러기에는 수준이 너무 떨어져.’
지금껏 놈들은 온갖 흉악한 일을 벌이긴 했지만, 이처럼 저급한 수준의 일을 벌인 적은 없었다.
‘아니면 치유의 탑 놈들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그가 훗날 황도에서 떼돈을 벌면, 치유의 탑은 큰 곤경에 처할 테니까.
무엇보다 욕심에 눈이 먼 치유의 탑의 돼지들이라면, 이런 끔찍할 일을 벌이고도 남았다.
‘……그것도 아니면, 광휘의 성자일 수도 있어.’
지금 광휘의 성자는 레이몬드 때문에 황위 선출에서 탈락할 위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