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49
#닥터 플레이어 449화
레이몬드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내가 전설이라니?
갑자기 무슨?
하지만 노르기언은 흥분해 말했다.
“우리 십자연맹제국에는 전설이 내려오지 않습니까! 위대한 구원자가 와서, 십자연맹제국을 환란에서 구하고는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이라고!”
“아니, 아니. 잠깐만요.”
십자연맹제국 건국과 관련해 대충 비슷한 전설이 있다고 듣기는 했다.
‘원래 성 로제트 왕국이 십자연맹제국을 건국한 게 나중에 올 구원자를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나간 건국 전설일 뿐, 작금에 와서는 누구도 그 전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십자연맹제국을 건국한 건국 시조께서는 하나의 단서를 남겼습니다. 후대에 나타날 구원자는 고대 유적에서 위대한 구원자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그, 그럴 리가?!”
레이몬드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였다.
전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 건, 구원자에 대한 단서가 성 로제트 왕국의 왕족들 사이에서만 구전되어 내려왔고, 다른 왕국에는 전해지지 않았던 탓이다.
노르기언은 같은 3강의 왕으로서 풍문으로 전해 들은 거고.
그 전설이 사실이면, 유적에서 위대한 구원자로 인정받으면 십자연맹제국의 진정한 황제가 되는 것이다!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절대 그럴 리가…….”
레이몬드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젓는데, 유적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
그 말에 레이몬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탈락해야 해!’
유적은 이게 마지막 시험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전설의 주인공이 될 판이었다.
‘전설의 주인공이 되면 황위도 때려치우지 못한다고!’
십자연맹제국의 황위가 선출직인 건, 추후 나타날 진정한 주인, 구원자가 나타날 때까지 대신 황위를 맡는 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주인, 구원자가 나타나면, 그자가 진정한 제국의 황제가 된다고 제국법에 명시되어 있다.
‘심지어 제국법 1조 1항이잖아!’
1조 1항인 건, 이 내용이 제국의 정체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 최악은.
‘제국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했어.’
현재 황제는 제국의 ‘대표’이다.
하지만 구원자의 경우 제국의 ‘주인’이 된다.
대표와 주인의 차이.
딱 단어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느껴지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대표는 물러설 수 있다.
대표에 불과할 뿐이니까.
하지만 주인은?
물러설 수 없다.
자신의 것이니까.
즉, 종신직인 것이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못 때려치운다.
‘절대 안 돼! 탈락해야 해. 아악, 하지만 탈락해도 기어스 왕국 놈들 손에 죽을 위기잖아!’
유적의 시험에 불합격하면 구원자는 되지 않을 수 있는 대신,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기어스 왕국군에게 죽을 것이다.
놈들은 루드비히 일파라 노르기언이 나서도 소용없었다.
‘으아아! 왜 맨날 내 인생은 이런 거야!’
머리를 쥐어뜯는데, 유적의 음성이 이어서 울려 퍼졌다.
[두 번째 시험은 ‘이타심’입니다!] [위대한 구원자에게 남을 위한 ‘이타심’은 필수 덕목!] [도전자가 어떤 ‘이타심’을 가졌는지 판단합니다!]‘……왜 하필 이타심이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이타심이거든?’
레이몬드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막상 정말로 시험에서 탈락할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시험 내용이 뜻밖이었다.
[이타심은 과거의 행적에서 판단할 수 있는 법!] [도전자의 진실한 이타심을 확인하기 위해, 과거 행적을 분석합니다!]파아앗!
유적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레이몬드를 비추었다.
일전 자유 도시 연합에서 했던 것처럼 레이몬드의 과거 행적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설마?’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도전자의 과거 행적을 차례로 파악합니다!]영상이 떠올랐다.
과거 처음 플레이어가 되어 빈민가에 갔을 때였다.
[도전자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빈민들을 위해 봉사를 선택하였습니다!]레이몬드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 아니, 그건 내 이득을 위해서 그런 건데.’
딱히 빈민을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유적은 계속해서 레이몬드가 해온 일을 영상으로 비추며 ‘해석’하였다.
레이몬드가 지금껏 해온 일이 파노라마처럼 모두의 앞에 비추어졌다.
‘구, 굳이 이렇게 비추면서 분석할 필요는 없잖아!’
민망했다.
[도전자의 남을 위한 이타심은 빈민을 향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힐러들의 횡포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반 백성을 위해 치료원을 확장하였습니다!] [그 과정 중, 스스로의 탐욕을 포기함은 물론, 기존의 권력과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쟁 중 병사들을 위해 봉사했으며, 패전의 위기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자국과 적국의 백성을 위해 타국의 왕을 구하러 향했습니다!] [이후, 영주가 된 이후에는 여전히 오로지 타인을 위한 행보를 보였으며, 현재 도전자의 영지는 대륙에서 가장 행복한 백성들이 사는 영지가 되었습니다.]그렇게 유적은 차례차례 휴스톤 왕국 수도에서 드로튼 왕국과의 전쟁, 또한 라팔드 지방에서의 행적을 비추며 레이몬드의 행동을 ‘분석’하였다.
아무리 고대 유적이라도 과거 속마음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으니, 레이몬드의 과거 행적을 보며 저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내장된 인공 지능에 따라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적의 행동은 예상 밖의 효과를 낳았다.
일행을 울컥 감동하게 한 것이다.
“……마스터. 나…… 당신을 따르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크리스틴은 눈시울을 붉혔다.
과거 레이몬드가 쌓아온 행적을 돌이켜 보니 새삼스레 감동이 몰아쳤던 것이다.
엘무드, 미엔도 마찬가지였다.
꾀쟁이 린든조차 감동인 눈치.
‘아, 아니,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나, 난…… 도, 돈만…….’
레이몬드는 입을 뻐금거렸다.
저 바보 고대 유적.
그의 행동을 모조리 오해해서 해석하고 있었다!
심지어 감동한 것은 제자들뿐이 아니었다.
“저, 저런 바보 같은…….”
패왕 노르기언이었다.
“당신 같은 이가 세상에 있다니.”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레이몬드가 과거 행한 업적(?) 영상을 바라보았다.
“빛이라더니. 정말…… 저런 바보 같은 빛이.”
노르기언은 하나의 단어만 떠올랐다.
위대한 바보.
사실 노르기언은 과거 레이몬드 소문을 들었을 때 냉소했다.
성자의 이름을 쓰고 위선적인 본심을 지닌 이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아니었다.
정말 오로지 남들만을 위하는 이였다.
바보 같을 정도로.
이후 유적은 카탈 왕국, 페닌슐라 왕국, 황도에서 레이몬드가 저질렀던 숭고한 일들을 모조리 회고하였고, 판결을 내렸다.
[도전자가 오로지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합격’입니다!]“…….”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라고. 그런 게.’
하지만 유적은 인공 지능 주제에 레이몬드의 삶에 감동을 느꼈는지 이런 사족을 달았다.
[이토록 남을 위하는 이타의 삶을 실천한 이는 본 시설이 건설된 이후 처음입니다!] [당신의 위대한 숭고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레이몬드는 멍한 얼굴을 하였다.
뭘 어쩔 새도 없이 합격해 버렸다.
옆에서 노르기언이 복장을 긁었다.
“위대한 구원자…… 진정으로.”
노르기언은 패왕 주제에 진심으로 감동한 눈빛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당신에게 바란 건 이런 식의 호구가 아니라고요.’
호구가 아니라, 열렬 추종자가 될 듯한 분위기였다.
바로, 황제 레이몬드에게 충성하는 군왕으로 말이다.
‘아니,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설마 이게 시험의 끝은 아닐 거야.’
과연 유적의 음성이 들렸다.
[세 번째 시험이 시작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구원자로서의 ‘지도력’!] [지금껏 살아오며, 어떤 지도력을 발휘했는지를 파악합니다!] [이미 온 제국이 도전자를 따르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숭고한 따뜻함으로 모두를 감화시키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확인하였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합격’입니다!]“…….”
순식간에 합격해 버렸다.
‘……뭐야. 도대체. 뭐가 이렇게 허술해?’
하지만 레이몬드의 불만(?)과 다르게 허술한 게 아니었다.
시험장에서 치러지는 ‘시험’은 실제로 대상의 진실된 자질을 확인하지 못한다.
당연했다. 어떤 어려운 시험도 실제가 아닌, ‘시험’일 뿐이니까.
대상이 진실로 어떤 자질을 지녔는지 확인하기 위한 가장 정확한 방법은 과거 행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이몬드가 과거 행적에서 보인 ‘이타심’과 ‘지도력’은 최고 만점이었다.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기에 레이몬드가 보인 행적은 그 누구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지금껏, 최고의 점수를 받은 도전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최종 시험은 ‘희생’입니다!] [위대한 구원자에게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희생심’은 필수 덕목!]희생심.
레이몬드가 가장 싫어하는 또 다른 단어가 나왔다.
‘나 그런 것 진짜 싫거든?’
레이몬드는 초조히 생각했다.
‘어쨌든 어쩌지? 합격? 아니면, 탈락?’
최종 시험이라고 했다.
만약 여기서 합격하면 정말 위대한 구원자가 되어, 진정한 황제가 되어야 한다.
모른 척하면 안 되냐고?
목격자가 있으니 안 된다.
‘으아아. 하필 노르기언이 목격자이니, 입막음할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탈락할 수도 없고.’
플레이어가 된 이후, 한시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지만 이번은 정말 최악이었다.
합격해 황제가 되냐, 아니면 저 위에 기다리고 있는 기어스 왕국군의 손에 죽음을 맞느냐.
‘살아서 황제로서 지옥의 삶을 살 거냐, 아니면, 죽을 거냐의 선택이잖아! 왜 선택 사항이 이래!’
[최종 시험이 시작합니다!] [지금, 남들을 위해 도전자가 가진 모든 걸 바치겠다고 맹세하십시오!]“……!”
레이몬드는 눈을 크게 떴다.
생각지도 않은 시험이었다.
[이 맹세는 차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맹세를 따르지 않을 시, 강력한 저주가 임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남을 위해 스스로의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게 위대한 구원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시험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대단히 어려운 선택.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내가 포기할 게 어디 있어?’
레이몬드는 눈을 끔뻑거렸다.
‘빚밖에 없는데?’
가진 걸 포기하고 싶어도 가진 게 없는 레이몬드였다!
과연 유적이 인공 지능 주제에 당황한 음성을 뱉었다.
[삐익! 삐익! 돌발 상황을 확인합니다!] [도전자는 남들을 위해 이미 막대한 빚더미에 오른 상태!] [이미 남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상태임을 확인합니다!]“…….”
레이몬드는 침묵했다.
당황한 유적의 음성이 마치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