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48
#닥터 플레이어 448화
그때, 확 시야가 변하였다.
무기질의 딱딱한 공간이 아닌, 화려한 방이 나타난 것이다.
온갖 진귀한 보석이 가득한 모습에 일행 모두 당황한 얼굴을 하였다.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인류를 구원할 도전자의 ‘능력’을 평가합니다!] [세상은 늘 환란이 가득한 법!] [방의 재료를 이용해 현재 도전자가 맞닥뜨린 환란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마도구를 만들어내십시오!]‘이게 무슨?’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갑자기 수많은 생명을 구할 마도구를 만들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시험이야?’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의 내용이 바뀌진 않을 테니, 레이몬드는 곰곰이 시험의 내용을 곱씹었다.
‘내가 맞닥뜨린 환란의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할 마도구라고 했어.’
무작정 사람을 구할 마도구를 만들어내라는 게 아니다.
현재 그의 상황에 맞추어, 수많은 사람을 구할 마도구를 만들어내야 했다.
‘즉, 난 이번 전쟁에서 사람들을 구할 마도구를 만들어내야 해.’
시험의 의도를 캐치해 내긴 했지만,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슨 수로 전쟁에서 사람들을 구할 마도구를 만든단 말인가?
‘기어스 왕국을 압도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마도 병기? 하지만 그런 병기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무엇보다 레이몬드는 마도구를 만들어내는 데 전문인 인챈터도 아니었다.
‘시험을 낼 거면, 좀 내 전공을 고려해서 내달라고! 난 힐러인데!’
버럭 화를 내는 순간이었다.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잠깐. 하나 있잖아. 마도구로 전쟁에서 수 없는 사람을 구할 방법이.’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노르기언을 치료할 마도구를 만들어내면 돼! 인공 심장을 구현하는 거야!’
노르기언을 살려내어서 전쟁을 막으면, 셀 수 없는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마도구를 개발하는 것보다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도 유적의 시험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가?’
의문을 품자 대답을 하듯 음성이 들려왔다.
[이 시험은 도전자가 자신이 맞닥뜨린 환란에 맞서는 능력을 보는 것!] [마도구의 종류, 방식은 상관없습니다.] [도전자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마도구를 개발해 내십시오!]‘어쨌든 된다는 거지?’
레이몬드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노르기언의 심장을 대체할 마도구를 만들어내자!’
노르기언의 진단명은 심부전이다.
현대 지구의 초음파 진단 도구로 검사해 보면, 심박출량(EF)이 10%도 되지 않을 최악의 중증 심부전.
심장이 완전히 망가져 기능을 잃었으니, 대체할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가장 정석은 아까 생각했듯, 심장 이식이지만.’
하지만 불가능하다.
다른 수를 내야 했다.
다행히 레이몬드는 한가지 알고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인공 심장을 만들어내면 돼!’
정확히는 엘바드(L-VAD)를 뜻한다.
망가진 심장을 대신해 기계가 대신 혈액을 순환하는 펌핑 기능을 수행해 주는 것이다.
‘마법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해. 문제는 동력이 될 마정석인데.’
레이몬드는 시선을 돌렸다.
원래는 그런 역할을 할 마정석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오죽하면, 이전 소피아의 경우 드래곤 하트를 구하려고 온갖 고생을 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하늘이 도운 걸까?
시험을 위해 수 없는 마정석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할 수 있어.’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인공 심장, 엘바드(L-VAD)의 원리는 간단하다.
심장에 관을 넣어 대정맥에서 피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대동맥 쪽에도 관을 넣어, 빨아들인 피를 체내로 쏴 준다.
체내의 혈액을 순환시키는 심장의 기능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다.
‘마도구에 새길 마법 자체는 어렵지 않아. 수(水)계 마법과 풍(風)계 마법을 새기면 되니까.’
이래 뵈어도 이제 웬만한 마법사 뺨치게 마법을 잘 다루는 레이몬드였다.
그 정도 마법은 메디컬 메지션의 능력을 사용해 조합해 ‘창조’해 낼 수 있었다.
최소 반영구적인 마나를 지닌 마정석을 구하는 게 문제였는데, 그 문제도 유적 덕에 손쉽게 해결되었다.
라이나와 함께 어렵지 않게 엘바드 마도구를 만들어낸 레이몬드는 곧바로 엘바드 이식 수술을 시작하였다.
“오픈하겠습니다!”
수술을 시행하기 쾌적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레이몬드와 크리스틴, 린든은 이것보다 훨씬 험한 험지에서도 온갖 어려운 수술을 해왔다.
익숙했다.
능숙한 손놀림이 이어졌다.
엘바드 이식에는 흉부 절개 수술이 필요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수술 도구로 가슴을 열었고, 좌심실에 혈액을 받아들일 유입부를, 상행 대동맥 쪽에 혈액을 뿜어낼 유출부를 삽입했다.
이후 다른 필요한 조처들을 하였고, 마법을 발동하였다.
“온(On)!”
시동어를 내뱉자 심장 밖에 자리한 마정석의 핵이 빛을 내었다.
혈액을 순환시키는 마법이 발현된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혀, 혈압 오릅니다! 90, 아니, 110까지 올랐어요!”
린든이 외쳤다.
원래 노르기언은 혈압이 너무 낮아 혈압기로 수치가 측정되지 않았다. 희미한 맥만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엘바드 마도구가 심장의 기능을 대체해 주며, 혈압이 회복한 것이다.
‘됐어. 성공적이야.’
나머지 몸의 상한 부분은 심장의 문제로 인했던 거니,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될 것이다.
과연 곧바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으…… 으…….”
노르기언이 희미한 신음을 흘린 것이다!
원래 루드비히는 노르기언의 의식이 깨지 못하게 하려고, 심장의 기능을 보조하는 도부타민과 더불어 수면 약을 계속해서 투입했다.
하지만 탈주하면서 수면 약이 끊겼지만, 심장 기능이 떨어져 계속해서 의식을 차리지 못했는데, 엘바드 마도구로 혈액 순환이 원활히 재개되며 희미하게 의식을 차린 것이다.
“전하!”
노르기언을 모시던 기어스 왕국의 기사들이 왈칵 무릎을 꿇었다.
“이게…… 도대체……? 루드비히, 그 간악한 놈의 손에서 무사히 탈주하는 데 성공한 건가?”
노르기언은 대략적인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루드비히 놈이 투약하던 약이 끊겼는데?”
“레이몬드 황제 폐하 덕분입니다!”
기어스 왕국의 기사들이 답했다.
“레이몬드 황제 폐하? 레이몬드…… 라면 페닌슐라 왕국의 가난의 성자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분이 날 도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날?”
노르기언은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노르기언은 루드비히의 손에 유폐되어 있는 동안, 계속해서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 수면 약이 끊길 때 의식이 돌아왔고, 몸의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수하들에 의해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는 했다.
‘우리 기어스 왕국은 가난의 성자를 적대했는데?’
물론 정확히는 루드비히가 적대한 것이지만, 레이몬드의 입장에서 기어스 왕국은 자신을 핍박한 적국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구해주다니?
“그건…….”
“아니, 내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그 전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노르기언 국왕, 당신은 루드비히와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까?”
기어스 왕국은 지금껏 일어났던 끔찍한 일의 흑막.
국왕인 노르기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루드비히와 한패였다가 배신당한 건지.
아니면 진정한 흑막은 루드비히였고, 노르기언은 뒤에서 이용만 당한 것인지.
‘만약 루드비히와 한 패였다면, 손을 잡을 수 없어.’
다행히 노르기언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난 주로 철의 제국과의 전선에서 활약하고, 내정은 동생인 루드비히를 믿고 맡겼지요. 설마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광휘의 성자를 황위에 세우려는 것도 당신의 뜻이 아니었다고요?”
“아니, 그건 제 재가를 받은 일이 맞습니다. 황위를 본 왕국의 손에 넣으면, 커다란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해 광휘의 성자를 황위에 올리려 하였지요. 하지만 루드비히가 뒤에서 끔찍한 일들을 벌인 건 모르고 있었습니다.”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루드비히가 고대의 치료술을 손에 얻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요?”
노르기언은 허탈한 얼굴을 하였다.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비술을 활용할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 비술을 이용해 뒤에서 이런 일을 획책하고 있었음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이런 꼴이 되었습니다.”
‘정말인가?’
레이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광휘의 성자를 황위로 세우려고 한 건, 사실 할 수 있는 일이니.’
황위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게 어디 기어스 왕국뿐이겠는가?
3강의 국가들은 황위를 손에 넣기 위해 필사적인 밑 작업을 하였다.
문제는 루드비히가 지금껏 뒤에서 벌인 반인륜적인 행위에 노르기언이 동참했냐는 건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노르기언은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말하였다.
“절대, 절대 루드비히 놈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산산이 토막 내 죽이고 말 겁니다.”
그 원한에 가득한 음성을 들은 레이몬드는 생각했다.
‘노르기언은 루드비히와 한패가 아니야.’
그렇다면 노르기언과 손을 잡아야 했다.
‘아니, 그냥 손을 잡는 것으로는 안 돼. 내 호구로 만들어야 해.’
마침 상황이 좋았다.
노르기언이 막 의식을 차린 지금, 심리적으로 가장 약해져 있을 때이니 자신을 향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절호의 기회였다.
‘노르기언을 호구로 만들면, 나중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야.’
레이몬드는 전쟁을 무혈로 끝내고,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내 황제를 때려치우고 골든 로드를 걸을 생각이다.
지금 패왕 노르기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기어스 왕국에서 얼마나 파격적으로 그를 밀어주겠는가?
그러니 이 기회를 이용해 반드시 호구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노르기언은 순수한(?) 면이 있는 편이라 하니.’
패왕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노르기언은 전선에서 맹위를 떨치는 군주였다.
국경을 맞댄 철의 제국과 성국과의 분쟁에서 일평생을 바쳤다.
반면 내정은 유능한 휘하들, 정확히는 동생 루드비히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맡겼는데, 덕분에 이번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알 수 있듯, 뱀 같은 교활한 스타일의 군주가 아니라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 형 군주였다.
지금 간신히 살아나 마음이 약해진 기회를 이용하면 그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당신을 구하러 온 것은 노르기언 국왕 당신과 힘을 합쳐 제국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을 수 있는 가장 가식적…… 아니, 숭고한 표정을 지으며 레이몬드는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말하였다.
“그, 그런…….”
노르기언은 충격을 받은 건지 말문이 막히는 얼굴이었다.
“백성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날 구하러 사지에 찾아왔단 말입니까? 도대체, 세상에 어떻게 당신 같은 이가…… 이럴 수가.”
역시 예상대로 노르기언은 전쟁 군주답게 순박한(?) 면이 있는 듯했다.
손쉽게 레이몬드에게 감동했다.
‘좋았어. 더욱 감동하게 해 이대로 완벽한 호구로 만드는 거야.’
쐐기를 박으려는데, 갑자기 생각지 않은 방해가 있었다.
[시험을 판정합니다!] [당신은 환자를 살려, 환란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위대한 구원자로서 환란에 맞설 당신의 ‘능력’을 인정합니다!]다행히 합격인 것 같았다.
‘이전 시험들에 비해 쉽네. 아니, 운이 좋았던 건가?’
만약 그가 노르기언 없이 쌩으로 이 시험을 맞닥뜨렸으면 보통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르기언이 유적의 음성을 듣고, 예상 밖에 떨리는 음성을 내었다.
“이게 무슨? 위대한 구원자라니? 설마 가난의 성자, 당신이 전설이 내정한 위대한 구원자란 말입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