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7
#닥터 플레이어 7화
병실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치료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치료사님, 덕분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당분간은 안심할 수 없으니, 조심하시도록 하고요.”
“허어. 이렇게 친절하기까지 하시다니. 하늘이 절 축복해 치료사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였나 봅니다.”
그때 토혈로 실려 왔던 환자였다!
아직 안색이 창백하긴 했지만, 멀쩡히 눈을 뜨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랑스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했다.
“벅스 원장님이 치료한 겁니까?”
“수석 치료사님?”
“선배가 이런 안 좋은 환자를 치료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누가 이 환자를 치료한 겁니까?”
레이몬드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한 것 맞는데.’
랑스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고 있었다.
“저…… 제가 치료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선배의 치유력으로 무슨…….”
“힐로 치료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요?”
레이몬드는 숨을 들이켰다.
언제고 한 번은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고대에 사용하던 치료술인 의술로 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의…… 뭐라고요?”
랑스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의술? 그런 건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흔들리지 않고 뻔뻔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그는 랑스의 눈치를 살피면서, 준비해 둔 시나리오를 늘어놓았다.
“얼마 전 북부 지방으로 심부름을 갔을 때 실수로 발을 잘못 디뎌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고대의 유적에 들어가게 되어, 고대의 치료술, 의술을 익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절벽 기연 시나리오!
종종 여러 소설에서 써먹는 레퍼토리이니, 아예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슨! 나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으라고……!”
그때였다.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던 환자가 입을 열었다.
“아, 거참 시끄럽네. 이보쇼, 치료사 양반.”
“……!”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저 잘생긴 치료사님이 날 살려준 건 거짓말이 아니오. 저 치료사님이 날 살리려고 발을 동동 굴리던 게 분명히 기억이 난단 말이지.”
환자, 벤트는 수술을 받을 때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환각 효과가 있는 약초를 쓰긴 했지만, 완벽한 마취제는 아니었기에 중간중간 의식을 차렸던 것이다.
“이게 저 치료사님이 날 치료한 증거요. 보쇼.”
벤트는 옷을 들어 자신의 배를 보여주었다.
선명한 절개 자국이 확 드러났다.
“……!”
랑스가 아무런 말도 못 하자, 벤트는 비웃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얼굴도 기억이 나는군. 저 치료사님과 다르게 워낙 못생긴 얼굴이어서 의식이 흐릿한 상태인데도 확 기억이 나.”
못생긴 얼굴.
쥐처럼 흉하게 생긴 랑스의 콤플렉스였다.
랑스가 레이몬드를 유독 괴롭히는 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사생아지만, 워낙 고귀한 혈통이 섞여서일까? 레이몬드는 누가 봐도 확 눈에 띄는 미남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망발을…….”
랑스는 환자에게 버럭 화를 내려 했지만,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날 보고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지.”
“……!”
“저 잘생긴 치료사님이 아니었다면 난 정말 죽을 뻔했어. 네놈 때문에 말이야. 엉?”
벤트는 삿대질을 하였다.
“부끄러운 줄 알면 당장 꺼져! 네놈 같이 형편없는 놈보다 이 치료사님이 백만 배는 훌륭한 분이니까 말이야!”
“화, 환자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레이몬드는 짐짓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아,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치료사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벤트는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들어 화악 뿌렸다.
요강이었다.
촤악!
오줌 벼락이 랑스에게 날아갔다.
“으아악! 이, 이게 무슨!”
오줌에 흠뻑 젖은 랑스의 팔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렸다.
하지만 뭐라고 더 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벤트가 똥물이 들어 있는 요강을 들었기 때문이다.
“똥물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히익!”
랑스는 발바닥에 불이 붙은 듯 도망쳐 버렸다.
병실에는 벤트와 레이몬드만 남게 되었는데, 둘은 놀라운 대화를 하였다.
“치료사님이 시킨 대로 했습니다. 저 잘했죠?”
레이몬드는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네, 훌륭합니다.”
도망친 랑스가 들었으면 뒷머리를 잡고 쓰러질 대화였다.
방금 벤트가 벌인 일이 사실은 레이몬드와 작당한 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오줌을 뿌린 것까지 말이다!
레이몬드는 속닥거리며 말했다.
“저런 나쁜 놈은 치료사도 아니죠. 다음에 또 오면 정말 똥물을 부어버리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똥물을 퍼붓겠습니다.”
레이몬드는 씨익 웃었다.
랑스 놈이 오줌에 쫄딱 젖은 모습을 보니, 참 속이 후련했다.
* * *
그 뒤로도 레이몬드의 일상은 큰 변화는 없었다.
중환자를 치료해 냈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고대의 비술? 의술이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어떻게 운 좋게 피가 멎었나 보지.”
버젓한 증거가 눈앞에 있었지만, 제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들에게 레이몬드는 더러운 오물, 한심한 쓰레기였으니까.
단 한 명.
눈앞에서 기적을 목도한 한슨만이 이전과 다른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봤다.
“……선배.”
“응?”
“……아니에요.”
한슨은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몇 번이고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했다.
“……앞으로 청소는 제가 할게요.”
“응? 하지만.”
“아니에요. 이거 원래 막내인 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어어, 하는 사이 한슨은 레이몬드의 손에서 걸레를 뺏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랑스였다.
이전에는 비웃음과 경멸을 담아 바라봤다면…….
‘이제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군.’
레이몬드는 뒤통수가 따가워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이전처럼 주눅이 들지는 않았다.
‘예전에 저런 눈빛을 받았다면 어쩔 줄을 몰라 했을 텐데.’
레이몬드는 자신의 변화가 신기했다.
‘토혈 환자를 치료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어. 그래서 이전처럼 주눅이 들지 않는 거야.’
이제 그는 한심한 자격 미달 치료사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치료사가 될 잠재력을 가진 치료사였다. 아직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두고 봐라. 내가 언젠가 최고의 치료사가 되면 벨런드 치료원에 온갖 갑질을 다 해줄 테니.’
그렇게 레이몬드가 머릿속으로 꿈과 희망(?)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랑스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꺼내었다.
“시킬 일이 있습니다, 선배.”
“무엇입니까?”
랑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뭘 시키려는 거지?’
레이몬드는 순간 불안감이 들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이제 나에게는 플레이어의 능력이 있잖아.’
하지만 랑스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레이몬드는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곧 있을 왕궁 탄신제 때 치료사로 파견 나가주십시오.”
“……!”
레이몬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왕궁 축제 때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왜? 굉장히 영광된 일 아닙니까?”
탄신제.
건국 왕의 출생을 기념하는 연회로 수도의 모든 귀족이 모이는 대규모 왕궁 축제였다.
워낙 많은 이가 모이는 축제라 왕궁 치료사만으로는 손이 모자라, 각각의 치료원들에서 치료사를 파견한다.
랑스의 말처럼, 왕궁 축제 때 파견된다는 건 치료사로서 굉장히 영광된 일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도제 신분으로 참석하는 건 더더욱 그러하죠. 정말 촉망받는 도제가 아니면 이런 기회를 받지 못하니까요.”
“…….”
“토혈 환자를 치료해 낸 선배라면 충분히 참석할 자격이 될 것 같습니다.”
레이몬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랑스는 레이몬드에게 좋은 기회를 주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레이몬드를 최악의 궁지로 몰아놓기 위해서였다.
왕궁은 레이몬드에게 지옥과도 같은 장소였으니까.
귓가에 환청처럼 과거의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더러운 놈.’
‘왜 네놈같이 더러운 놈이 태어나서!’
‘차라리 죽어버려. 어? 이래도 안 죽네?’
과거.
레이몬드는 왕궁에서 정말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벨런드 치료원에서의 생활도 괴롭긴 했지만, 나름대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이전 지옥 같은 삶 때문이었다.
왕궁에서 보내던 과거에 비하면, 이곳 벨런드 치료원의 생활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괴롭다 못해 참혹한 시간이었다.
레이몬드가 그렇게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너 때문에 아바마마의 위엄이 손상되었어.’
그가 왕의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그림자 왕자(Shadow prince).
레이몬드의 과거 별명이었다.
* * *
레이몬드가 왕의 자식임에도 이렇듯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휴스톤 왕국의 전통 때문이었다.
대부분 나라가 사생아에게 가혹하지만, 휴스톤 왕국은 그 정도가 무척이나 심했다.
건국왕의 정신에 따라 휴스톤 왕국은 기사도를 숭상한다. 그 기사도에 따르면 사생아는 절대 용납받지 못할 존재다.
따라서 휴스톤 왕국은 사생아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히 상속권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정확히는 존재하지 않았어야 하는 부정한 존재로 여겨 핍박하고 괴롭혔다. 마치 더러운 괴물을 핍박하듯.
특히 레이몬드는 가장 고귀한 왕의 사생아였기 때문에 더욱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왕의 존엄을 더럽힌 흉측한 오물.
그게 바로 레이몬드였다.
물론 국왕이 그를 보호해 주었다면 조금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낳은 국왕은 그에게 어떤 호의도 베풀지 않았다.
실제로 처음 치료원에 왔을 때만 해도 치료원의 사람들은 레이몬드를 어렵게 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레이몬드가 계속 못난 모습만 보이고 왕가에서 정말 티끌만큼도 그를 신경 쓰지 않는 걸 알고 점차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의 더러운 사생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위대한 왕의 유일한 오점.
그게 레이몬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왕성 축제에 파견을 가라고?’
그의 가슴이 착 가라앉았다.
늘 윗사람에게 굽실거리는 레이몬드이지만, 감정의 동요가 커서일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꼭 저를 보내셔야겠습니까?”
“왜? 싫습니까?”
랑스는 빙긋 웃었다.
네깟놈이 싫어해 봤자 어쩔 거냐는 투였다.
“알고 있겠지만, 선배의 도제 수료는 수석 치료사인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천년만년 도제로 머물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
단단히 작정한 투였다.
레이몬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대로 주먹을 날려 저 야비한 면상을 묵사발로 만들어놓고 싶었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돌발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연회의 수호자](의술 퀘스트)
등급 : 하프 메스
난이도 : 상
퀘스트 설명 : 연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입니다. 어떤 돌발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니, 치료사로서 어떤 희생자도 없이 연회를 마무리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사망자 발생 없이 연회 종료
보상 : 보너스 레벨 업×3, 스킬 포인트 30점
특전 : 누군가(?)의 호의, 약간의 명성
레이몬드는 눈을 깜빡했다.
‘왜 이렇게 보상이 후하지?’
무려 3단계 레벨 업에 스킬 포인트 30점!
이전 퀘스트인 ‘첫 환자 치료하기’와 비교해 3배의 보상이었다.
‘혹시 연회 때 심각한 환자라도 발생하는 걸까?’
모른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퀘스트 난이도가 ‘상’인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런 환자도 발생하지 않는 평온한 연회면 난이도가 ‘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