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68
제 168화
지존천마의 무당은 적당히 썩어 있다.
물론 완전히 썩어 있는 것은 아니고, 위선적인 정파의 구실을 하나 내부 암투가 심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괜찮은 도인들도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뜻.
거기다가 아직은 천마가 직접 나서기 전이라 절정으로 썩어 있을 때는 아니니 괜찮은 수준.
이래저래 천우가 적당히 무공을 배우고 여차하면 산새처럼 날아가기에 좋은 시기긴 했다.
“고인의 유골을 수습하여 무당에 돌려 드리러 왔습니다.”
최대한 공손히 답하며 고인의 함자와 비급, 발견한 장소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 답변만은 그쪽도 예상 못 했는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이곳에서 쉬시지요!”
그리 말하며 가장 크고 좋은 다실로 진천희를 안내했다.
백린의각 소각주 소백룡의 이름과 이 상황이 크다는 뜻이었다.
진천희는 다실에 조용히 들어가 차를 받았다.
따뜻한 용정차로 두 손을 덥히며 생각했다.
‘천우는 얼마나 컸으려나.’
서신과 선물은 늘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내가 준 피풍의랑 목도리는 잘 썼으려나. 어림짐작으로 만든 장갑이랑 옥패도 깎아서 보냈는데.’
그 꼬마가 어떻게 컸을지 벌써 궁금해졌다.
‘흉터는 많이 사라졌다고 했는데…….’
그러나 사람의 몸이 참 잔혹한 게 한번 잃은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원래면 천우의 상황일 때 안구를 적출해서 의안을 삽입하는 경우도 많으나, 현대도 아니고 이 시대 방식으로 유리 의안을 제작하면 1~2년에 한 번씩은 계속 교체해야 한다.
거기다 그러고 끝이 아니다.
이 시대에 칼부림이라도 한번 터지면 정말 위험해지는 수가 있다.
차라리 적출보다는 보존할 수 있을 때 보존하는 게 좋았고, 무당파의 신공은 정파답게 양생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러모로 생각했을 때 안구를 보존하고 안대를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안대를 만들어서 보냈다.
‘서신에는 안대도 잘 쓰고 있다고 했지.’
성장 과정에 맞춰서 계속 보내줬다.
천우는 그때마다 무척 기뻐하며 답장했다.
후루룩-
‘기대된다.’
현대일 때도 그랬다.
치료했던 아이가 건강히 잘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의사로서 그만한 보람이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쳐서 서로 알아보기라도 하면 일주일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때보다 얼마나 컸으려나.’
그때 치료한 아이를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진천희는 벌써부터 기대감이 부풀었다.
* * *
불귀곡에서 사라진 무당파의 전전대 장로의 유골이 먼 시간을 지나 무당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 사실에 무당은 발칵 뒤집혔다.
“참이란 말이냐. 명덕 사숙이, 명덕 사숙이 돌아왔다고!”
무림인은 일반인보다 늦게 나이가 든다. 특히 깨달음이 심후한 무인일수록 더욱 그랬다.
팔순이 넘은 장문인이었으나 겉으로 봐서는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동자는 노인의 것.
또한 노인의 눈을 가진 장문인에게 있어서 고인은 여전히 사숙이었다.
“이제야 왔구나…….”
장문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자 장로들이 숨을 삼켰다.
명덕.
고인의 도명이다.
늘 밝고 덕이 있길 바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도명이 내려졌다.
명덕은 장문인과 함께 무당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불귀의 객이 되었다.
사고도 함께 치고, 가끔은 천덕꾸러기 짓도 해 왔던 사숙.
장문인은 사숙의 시신을 쥐 잡듯이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소백룡이라 하였느냐. 직접 만나야겠다.”
그 말에 정광 장로가 급히 막았다.
“장문인이 직접 나설 것은 없으십니다. 저희가 대신 만나도 됩니다.”
“아니……!”
정광은 무당파의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장문인 정형 도인을 막아서서 대신 적의 칼에 맞은 이후로 왼팔을 거의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 죄책감에 장문인은 정광의 말이면 어지간하면 들어주려 했고, 정광은 조금씩 무당파 안에서 세를 넓혀 갔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장문인도 달랐다.
“사숙을 직접 맞이하겠다.”
“사형께서 사숙을 맞이하려는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골을 인계하는 것도 절차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무당의 장문인은 핵심이 되는 자리. 무게를 지키시고 다른 것들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지요.”
“커험!”
정광의 말에 몇몇 장로들이 헛기침을 했다.
유골은 상관없으나 진천희가 들고 온 양의심공 비급이 문제다.
본디 양의심공이란 무당파 내에서도 소수의 도인들만 익힐 수 있게 허락된 신공.
그 비급을 허락되지 않은 다른 무당파 도인이 쥐게 될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정광은 그 허락되지 않은 존재였다.
선대 장문인이 정광에게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광이 장로가 되어 무당파 안에 자리를 잡았어도 양의심공만큼은 유언으로 묶여 있다.
정광의 성정을 일찍이 파악한 선대 장문인의 명이었다.
그런데 양의심공 비급을 대신 받으러 가겠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그럴 순 없다. 정광아…….”
장로가 아니고 장문인이 아니었을 때의 이름으로, 무당의 장문인 정형은 그리 불렀다.
그랬기에 정광도 젊을 적의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사형. 끝까지 제게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까.”
“양의심공은 분명 신공절학이나 자칫 잘못 익혔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게다. 선대께서 그것을 네게 주지 않고 유언으로 묶으신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
“…….”
정광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피가 났다.
‘이만큼…… 이만큼 세를 불렸는데도 내게 양의심공이 오지 않는 것인가!’
빈틈없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
애초에 그가 장문인 대신 칼을 맞은 건, 장문인 본인이 급박한 상황에서 그리 느낀 것뿐.
그저 정광은 적의 사각을 노리다 다친 것에 불과했다.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그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수많은 장로들과 아래 배분 아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었다.
양의심공을 얻기 위해서!
그것이라면 팔을 고쳐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을 노렸다.
그럼에도 정형은 요지부동이다.
죄책감이 배어나는 얼굴을 하고서 그것만은 안 되노라 막아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이번을 놓치면 양의심공을 익힐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깐만, 잠깐만 눈을 감아 주면 된다.
비급을 받아 정형에게 전달하는 그동안 정형이 그의 양심을 믿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믿어 주는 척이라도 해 주길 바랐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정광이 헛기침을 하자 장로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정광 장로를 못 믿으시는 겝니까.”
“정 그러시면 저와 다른 아이들도 함께해서 유골을 받는 동안 참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원래라면 그리 논란의 여지도 없을.
절박한 한 썩은 도인과 죄책감에 약해진 장문인의 싸움이었다.
* * *
무당파에서 회의가 열리는 동안 진천희는 멀뚱히 앉아 다과를 먹었다.
‘음, 무당의 다과는… 계피를 많이 넣는군. 호불호를 타겠는걸. 확실히 이건 어른 입맛이야. 그래도 숙수가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아. 도가의 검소함을 연기하는 X맛 다과군.’
엄연히 말해 도가 다과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그런 척이라고 한 이유는 이 다과에 들어간 재료들이 하나같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이 절편에 소기름이 들어가지 않았나? 일단 무당에서 고기를 먹는다는 건 확실하네.’
겉으로 보아서는 검소한 느낌의 채식 다과지만 튀긴 건 소기름이오, 돼지비계도 쓴 흔적이 보인다.
‘스승님 입맛은 아닌 것 같네. 이거.’
괜찮으면 한 수 배워서 스승님 다과상에 올려 드릴까 했는데 이건 제갈린이 세 입 먹고 버릴 맛이다.
‘스승님은 달면 확실히 달고, 쓰면 확실히 쓴 걸 좋아하지. 이런 도인인 척하는 애들 입맛은 또 안 좋아하니까.’
하지만 진천희의 입맛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진천희는 빠른 속도로 다과를 비우고 또 불러서 채우고, 비웠다.
먹는 동작 하나하나가 기품이 있었으나 그 속도는 가공할 만했다.
그때였다.
“형……!”
드르륵-
다실 문이 열리며 산처럼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들어왔다.
‘누……구……?’
전신 근육질에 백호 피풍의에 까만 가죽 장갑. 얼굴에는 새카만 안대.
분명 목소리는 상냥하기 그지없었으나 풍기는 인상이 험악하기 그지없어서 진천희는 3초간 사고가 정지했다.
그리고 목에는 흑백의 토끼 목도리가 걸려 있었다.
사내가 두르기에는 작고 앙증맞기까지 했다.
“설마 천……우……니?”
“형은 변한 게 없으시네요!”
얼굴은 훌륭한 미청년으로 성장했으나 안대와 체구가 주는 시너지가 무시무시하다.
무당의 도인이라기보다는 산전수전 겪으며 구른 사파의 명장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반면 예의범절은 또 명문 정파 그 자체다.
“많이 컸구나.”
“형, 한번만 안아 봐도 돼요?”
“그래. 한번 안아 보자.”
진천희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천우가 진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등을 두들겼다.
“제가 얼마나 형을 그리워했는지 모르시죠? 이렇게 봐서 얼마나 기쁜지.”
분명 천우는 당시 영양실조에 선천성 매독으로 생사를 오갔었다.
왜소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걱정되는 아이였다.
“무당파의 내공이 참 좋구나.”
“하하하. 관절이 너무 아파서 고생했는데 어느 순간 대나무처럼 크지 뭐예요.”
“잘됐다. 잘됐어. 건강하니 보기 좋네.”
의사로서 보람이 느껴졌다.
“토끼 목도리는 여전히 끼고 다니는구나.”
“형이 준 건데 당연하죠.”
“……내가 새로 해서 보내 줄게.”
저 덩치에 토끼 목도리는 말이 안 된다.
“아, 맞다. 형. 저 도명 받았어요.”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속가제자가 되어 적당한 시기에 나가는 것과 도명을 받아 뿌리를 내리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면 평생 혼인은 불가능할 텐데 괜찮겠어?”
무당파 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겠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품에 따라 조금씩 규율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평생 반려를 맞이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금과옥조처럼 전해지는 시대에 대를 잇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컸다.
“괜찮아요. 혼인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요.”
“…….”
천우가 말은 하지 않았으나 큰 결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차라리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래. 무(武)에만 일진하는 삶도 의미가 있는 법이지.”
진천희는 조금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