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5
제 215화
‘하나는 딱 봐도 사파스러운 사람이군.’
액면가만 보면 삼십 대 후반의 얼굴이나 그래도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기품이 있었다.
‘……후기지수가…… 맞아?’
젊은 애들 사이에서 홀로 연장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혼란스럽다.
기세만 봐서는 최소 절정 고수급.
보통 무인의 등급을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화경으로 따지기 때문에 후기지수에 들어가는 연배면 절정 고수인 경우가 대다수.
‘일단 저 노안의 검객은 특출 난 사람은 아닌 것 같군.’
후기지수 연배에서 특출 나게 천재 소리를 들으려면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서야 할 터.
적어도 현재 강호에서 공식적으로 그 정도 경지에 들어선 이를 꼽으라면 혈편왕 당아와 창룡검 남궁운 정도겠지.
실제로 둘 모두 용봉지회에서 우승한 전적이 있는 강호 중의 강호!
지금도 혈편왕과 창룡검 중 누가 더 강한가로 호사가들 사이에서 싸움이 나곤 한다.
하필 다니는 것도 같이 다니는 터라 더 그렇다.
사실 두 세가 어르신들의 사정으로 남궁운이 일방적으로 갈리는 중이지만.
‘나야 약빨이니까…….’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또 다른 한 명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한 명은 느낌이 묘했다. 눈에 띌 만큼 굉장한 미공자인데, 청색의 수수한 무복을 입었다.
이 사람도 허리에 검 한 자루 차고 있어서 검객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기도가 사특한 느낌은 아니니…….
‘묘하게 도가의 향이 나는걸?’
도교와 불교는 무림의 대표적인 양대 종교로, 이 종교에서 파생된 문파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구파일방이 도교와 불교를 망라해 가장 강성한 문파로 손꼽히지만, 세는 약해도 신공절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진 자들은 늘 존재한다.
‘당장 내가 쓰고 있는 탄지천통도 전진교에서 비롯된 거고.’
그런 진천희가 보기에 눈앞의 청의무복 미공자는 정확한 무위를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경지를 인위적으로 감추고 있는 건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무공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단순히 관측자보다 경지가 높은 게 아니더라도 기도를 숨기고 경지를 감추는 종류의 것도 있었으니.
‘보통 그런 건 신비 문파 같은 곳 출신 주인공스러운 놈들이 익히는 것 아니었나? 그게 무협 소설 국룰인데.’
무협 아재는 3초간 저놈이 주인공감인지 아닌지 고민했다.
국룰은 언제나 통하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노안의 검객과 미공자, 두 명 모두 진천희를 바라보았고.
“…….”
그들의 눈에서도 호승심이 엿보였다.
‘저쪽도 나를 알아차린 모양이네.’
현원전단신공을 사용하는 진천희만큼 빠르지는 않으나, 풍겨 오는 기도로 그쪽도 파악을 얼추 끝낸 모양.
그사이 진행 무사가 징을 쳤다.
지이이잉!
“창선문의 천이문! 백린의각의 진천희! 살검루의 두가휘! 백검파의 조전! 후권문의 후윤! 금탑문의 금전상! 연류검파의 부무헌! 예선 시자아아악!”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일제히 터졌다. 아주 귀가 멍멍할 지경.
예선전이라 그런지 서로 통성명을 하거나 소개도 하지 않았고, 대신 진행자가 한꺼번에 문파와 성명을 호명했다.
‘우와…… 이거 직접 보니까 또 감동이네…….’
소설에서나 보던 장면의 한가운데.
그저 상상만 하고 막연히 동경만 하던 그곳에 서 있다. 그 느낌은 제법 묘한 감흥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그런 감흥에도 오래 취할 시간은 없다.
“흥!”
살검루의 두가휘. 노안의 검객이 다른 한 명을 향해 바로 검을 뻗어냈다.
그가 공격한 상대는 백검파의 조전!
평범하게 생긴 스무 살 청년인 조전은 그 문파 명에 걸맞게 검을 들고 맞대응했다.
카앙!
동시에 연류검파의 부무헌이 후권문의 후윤이라는 무인을 향해 낭창하게 휘어지는 연검으로 공격에 들어갔으며.
키가 팔 척에 가까운 근육질의 거구인 금탑문의 금전상은 청의무복의 미공자, 창선문의 천이문을 공격했다.
즉.
진천희를 제외한 여섯이 서로를 향해 무공을 날리고 있는 것!
‘아니…… 왜 나는 빼고 너희들끼리 난전해?’
끼어들어야 하나?
나도 상대해 달라고 도발기라도 날려야 하나?
진천희의 동공이 지진하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악!”
일격에 두가휘가 조전의 어깨를 베어냈다. 그의 검의 속도가 너무 빨라, 조전이라는 사내가 채 대응하기도 전에 이미 피를 본 것.
그것은 창선문의 천이문도 마찬가지.
거대한 거구에 근육질인 금전상이 내지른 일권을 아주 가벼이 흘려내더니, 그 몸의 안쪽으로 들어가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펑!
가죽 북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찰나, 금전상의 큰 몸이 부웅 떠서 무대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조전 탈락! 금전상 탈락!”
‘오… 두가휘는 쾌검. 천이문은 유권에 내가중수법인가? 역시… 둘이 제일 세네. 일단 두 쪽 모두 전치 3주 안에서는 끊은 것 같고. ER에서 오래 잡을 것도 없이 침구방에서 해도 되겠다.’
현원전단신공과 양의심공이 더해져 진천희의 관찰력도 늘어났다.
그 말인즉슨, 진단 실력도 늘었다는 것.
정확하게 보려면 진기진맥을 해야 하나 지금은 어떻게 공격이 들어갔고, 얼마만큼의 힘이 들어갔으며.
맞은 놈은 어느 정도 외공을 익혔는지, 낙법은 취했는지 등이 보이니 자연스럽게 진단도 정확해져 갔다.
즉, 강호 의원으로서 짬이 늘었다.
그러나 과거 주왕야께서 꾀병을 부리는지 아닌지 한 번에 알아보시던 스승님에 비하면 아직은 멀었지만.
‘끼어들어도 되나, 안 되나.’
무인간의 전투에서 제삼자가 끼어드는 것은 실례가 맞다. 그러나 예선 난투전도 거기에 포함이 되나?
‘아마 포함이 안 될 것 같은데…… 난투전 중간에 끼어들었다고 ‘비겁자다!’라고 외치는 무협지도 있었지.’
이건 또 신무협 버전마다 다르다.
스승님이 들으면 또 웃으시겠지. 내 제자는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알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것은 헷갈린다고.
‘일단 치명상이 터질 것 같으면 끼어들자.’
결국 ER이 우선인 진 교수.
그렇게 연류검파의 부무헌과 후권문의 후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쪽은 다른 쪽과는 다르게 제법 치열했다.
부무헌은 키가 길쭉하고 마른 사내였는데, 종이처럼 휘는 연검을 뱀처럼 움직이며 공격했고 꽤 보는 맛이 좋았다.
반면 후윤이라는 여성은 두 개의 팔을 마치 원숭이처럼 휘두르며 칼을 쳐내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후권문(猴拳門)이라더니. 원숭이의 모습을 흉내 낸 권법인가 보네. 제법 야성적인걸.’
거기다가 후권문은 외공의 고수.
연검과 외공. 거기다 둘은 모두 절정 고수를 밑도는 정도의 수준.
이런 상황이면 승부는 큰 외상 없이 끝난다.
진 교수는 흐뭇해졌다.
‘좋은 비무다.’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에 안심하며 지켜보고 있자니.
천이문과 두가휘가 천천히 진천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자신들보다 하수인 자들의 싸움이기 때문인 걸까.
둘 모두 저쪽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살검루의 두가휘다. 소백룡 진천희, 네 녀석의 무명을 들었는데 정파의 위선자들을 가볍게 눌렀다고 하더군. 오늘 여기서 내 검의 제물이 되어 주어야겠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천이문이라고 합니다.”
‘사파 형님(?)은 사파스러운 인사다만. 천이문, 이 녀석은 뭐지?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창선문도 처음 들어 보고.’
진천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이 저를 상대해 주실 생각이신지? 두 분이 모두 한꺼번에 덤비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진천희는 웃는 얼굴로 도발기를 박았다.
“내가 먼저다.”
두가휘가 나서자 천이문은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이거 참… 사파라고 하는데 어째 방심하는 모양새가 영 오만방자한걸. 아니면 내가 꽤 얕보였나……?’
일단 난전이라고는 해도 일대일로 싸우는 게 이 동네 국룰인 모양. 안 끼어들길 잘했네.
거기다 사람이 한 우물만 파랬다고. 의술과 무예, 두 개의 우물을 파고 있다 보니 얕보이는 모양이다.
무명도 진천희에게 치료받은 이들이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면…… 가겠다.”
두가휘가 검을 뽑은 채로 재빠르게 다가왔다.
고작 이보(二步)를 내디뎠을 뿐인데 이미 진천희의 목젖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그는 상대를 내심 얕보았기에, 그가 일보를 내딛기 전부터 이미 진천희가 현원전단신공으로 생각을 가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의 검이 목젖에 닿는 것과 동시에 기탄이 칼날을 튕겼다.
탕!
‘대체 어디서……?’
천이문의 난입인가! 당황하는 순간, 두 번째 기탄이 그를 후려쳤다.
빠악!
어깻죽지를 때려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탄지천통.
진천희식 응용 연탄(連彈).
오행기탄(五行氣彈)–!
다섯 발의 연탄이 일제히 날아가 그의 손목, 가슴, 다리를 동시에 후려쳤다.
퍼퍼퍼퍽!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그는 보았다. 진천희는 검을 뽑지 않았음을.
대신 그저 탄지공만으로 자신을 허공에 뜨게 만들었음을!
‘아직이다. 아직이야!’
그는 낙법을 취하고는 곧바로 진천희에게 덤벼들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진천희 손에서 나온 것은 검지에서 폭발하는 단 한 발.
탄지천통.
진천희식 연계 폭탄(爆彈).
약화유탄(弱化誘彈)–!
다른 탄지공과 달리 폭탄(爆彈)은 잘못 쓰면 중원에서 알라의 요술봉을 영접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기탄을 쓰는 것도 모자라 수생공을 넣어 위력을 한 번 더 반감시켰다.
까앙!
기탄이 폭발하며 검기가 깃든 칼날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있던 그의 몸이 또 날았다.
“장외 탈락!”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진천희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음, 저 정도면 금창약 선에서 끝낼 수 있겠군.’
그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이게 무슨 미친……!’
콰앙!
그는 낙법을 펼쳐 장외에 착지했다.
탈락은 하였으나 수치심이 들지 않은 것은 방금 상대했던 자가 무인이 아니라, 무인의 탈을 쓴 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대체 난 무엇을 상대한 것인가.
와아아아아!
“세상에, 방금 봤어!? 사람을 허공으로 띄우네.”
“뭘 한 거지? 왜 사람이 난 거야?”
관객들은 진천희의 압도적인 무력에 환호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그가 뭘 당한 것인지.
남은 건 천이문.
“무명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 드리지요.”
천이문의 검에서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이윽고, 흡사 실처럼 가늘게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검사(劍絲)!
‘초절정의 고수?! 놀라운데?’
과연 수수한 청의무복에 어딘지 모를 신비 문파, 거기다 미청년!
‘무협지 국룰은 아직 살아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