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13
제 313화
칠무단의 육 조를 격파한 이후.
더 이상 진천희에게 시비를 거는 인간은 없었다.
화경이 되었다는 소문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기 때문이리라.
대신 비동이 발견되었다는 지역까지 가는 와중에 수많은 시체를 만나야 했다.
“아, 형. 이 사람 아직 살았어요.”
“……다행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하나둘 정도 어딘가에 널브러져 죽어 있는 무인은 예사고, 여럿이서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허다했다.
‘혈풍이 괜히 혈풍이 아니구나.’
그저 시합을 하기 위해 용봉지회에 무인들이 모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진천희는 시신을 수습하거나 아직 명줄이 붙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구조하여 인근 의방으로 보냈다.
거대해진 황구는 환자를 수송하기에 무척이나 편하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간 끝에.
드디어.
비동이 자리한, 그리고 세 개의 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산서성의 항산(恒山)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중원오악(中元五嶽).
제국 내에서 가장 크고 수려한 다섯 개의 산을 뜻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항산.
‘나머지 네 개가 각각 화산, 숭산, 형산, 태산이던가?’
이 산들에 전부 강호의 대문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화산에는 화산파가, 숭산에는 소림사, 형산에는 형산파, 태산에는 태산파가 존재하는 것.
이들 중에서 화산파와 소림사는 구파일방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문파이니, 그만큼 명산지에는 수행자들이 자리 잡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허나 항산에는 이름난 문파가 없지.’
그리고 지금. 이 인적 드문 명산에 거의 수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이게 다 강호인이야? 기가 차네…….”
전철도 비행기도 없는 이 세계에서 이 많은 자들이 모두 팔대절학을 노리고 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천우가 담담히 답했다.
“무공 비급에 대한 욕망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니까요.”
“하긴…… 비급을 어떻게 요행으로라도 손에 넣으면 인생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아니지.”
진천희는 바로 즉답했다.
“강한 무공일수록 어렵고, 어려운 무공은 사람을 가린다. 천우야, 결국 비급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를 묻힌 채로 강호를 떠돌다가 누군가의 손에 가겠지. 그건 그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의 손일 테고. 그 전까지는 계속해서 주인이 바뀔 뿐이야.”
“형은 흔들림이 없군요.”
“응. 이건 확실해.”
황궁 비고를 열어서, 아득하게 많은 무공서를 삼킨 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
오히려 간단하기까지 했다.
“내가 그 책을 익힐 오성이 있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겠어.”
없다면 죽는다.
그게 바로 강호의 요행이다. 모든 요행에는 피가 따른다.
진천희는 혀를 찼다.
‘결국 혈풍은 막을 수 없겠구나.’
이 많은 무인들이 단 하나를 구하고자 모였는데 평화로운 결과를 바랄 수는 없을 터.
항산이 높고 큰 산이라고는 하지만, 수만여 명이 산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으니 조금만 이동해도 강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숲이나 산의 아무데나 자리를 깔고 앉아 모닥불을 피워 뭔가를 해 먹는 이들부터.
시비가 붙었는지 칼부림을 하고 있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은 소속 없는 무인들이군.’
강호의 낭인들이나 중소 문파 끝자락에 속한 무인들.
가장 절박한 자들.
진천희는 곧바로 무림맹의 진영으로 향했다.
뇌진을 통해 길을 안내받는 법도 없이 곧장 걸어가는 모습이 자못 신기하여 천우가 물어보니, 진천희가 이렇게 답했다.
“백린의각은 일단 무림맹과 사도련, 둘 다 거래를 하고 있지만. 이번에 사도련이 나를 공격했으니 스승님은 무림맹의 진영에 있겠지. 그리고 무림맹은 아마 비동과 최대한 가까이 진영을 짜야 했을 거야.”
“왜죠?”
“사도련과 마교가 그럴 거거든.”
허나 그것을 추측하는 것과 추측을 확인하는 법도 없이 곧바로 걸어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천우는 그런 형이 역시나 신기했다.
그렇게 이동하고 보니, 세 개의 세력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제법 큰 동굴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디가 무림맹인지는 깃발만 봐도 알 수 있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백의신룡이시군요!”
진천희를 알아본 무림맹 무인이 곧바로 백린의각 진영으로 그를 안내했다.
막사에 들어가니 스승님과 유호, 둘 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왔구나. 희야.”
“네, 스승님.”
“제자의 무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스승은 10년은 늙은 기분이구나.”
“헤헤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바로 타박을 하시는 게 스승님답다.
그 또한 걱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모를 진천희가 아니었다.
“그래도 제자가 화경에 올라 무공을 대성한 것은 기쁜 일이지.”
하나도 안 기쁘신 표정이다.
‘끄응, 역시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닌 걸 다 아시는군…….’
이럴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게 제일이다.
“헐, 유호! 이렇게 와도 돼? 집에서 둘째 봐야지.”
“……쯧.”
유호는 대답 대신 혀를 찼다.
스승님이 그런 유호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지 않나. 말해 주는 게 어떤가.”
제갈린의 말에 유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연구 성공했습니다.”
“뭐?”
“원하시는 걸 이루셨다고요. 가기 전에 지시 내리신 대로 전부 따랐더니 결국 성공했습니다. 세외에서 가져온 토양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 순간, 진천희의 숨이 막혔다.
사람이 너무 기뻐도 숨이 멈추는구나.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두피가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소리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러다가 숨이 막혔는지 쿨럭쿨럭 기침을 내뱉는다.
“뭐 하시는 겁니까.”
“너무 좋아서! 아니, 너무 좋아서 그래! 근데 숨이…… 쿨럭!”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유호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진천희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스승님이 말했다.
“천우 도장은 이제 본파로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나?”
명백한 축객령.
허나, 그게 이치에 맞는 말이었기에 천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형, 다녀올게요.”
“그래. 가 봐.”
천우는 예를 표하고는 곧장 무당의 막사로 향했다.
그렇게 막사에는 진천희와 스승님, 유호만이 남았다.
스승님은 유호에게 차를 부탁했다.
이 또한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유호가 막사를 나서자마자 스승님이 말했다.
“화경에 다다르다니 장하구나.”
기쁨을 애써 숨기며 스승님은 자못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황궁 비고에서 무공서를 보다 보니 깨달음이 왔습니다.”
허나, 스승님께 응룡의 이야기를 드려야 할까.
죽었다가 깨어났다는 응룡의 말을 전한다면 필히 빙의자임까지 밝혀야 했다.
또한 ‘복희의 후손’.
만약 스승님이 모든 걸 알게 되어도 지금의 진천희를 가만히 둘까.
제자의 안부가 걱정된다며 유폐란 이름의 감금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진천희는 보옥을 황궁 비고 숨겨진 곳에서 얻었다는 것 정도만 우선 이야기를 꺼냈다.
“흠…….”
스승님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마 제자 말에서 빈 곳을 찾으신 거겠지.
허나, 부러 되묻지는 않으셨다.
이것을 천우가 보았다면 참으로 기묘한 사제 관계라고 할 터.
틀린 말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는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오면서 봤듯이 현재 세 개의 세력이 팽팽하게 대치 중이지. 무림맹은 표면적으로는 인명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입장이고. 사파는 이해득실을 따져 이득을 얻고 싶어 하고 있고.”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는 힘의 논리를 원하겠지만 자칫 나섰다가는 사파와 정파가 연합을 맺게 될 터이니 그건 부담스럽겠군요.”
“그렇지.”
가위, 바위, 보처럼 맞물리는 상황이다. 서로 견제만 하되 대놓고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저희 백린의각은요?”
그 말에 스승님이 피식 웃으셨다.
“그냥 치료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 우리는 딱히 무림맹 소속도 아니니까. 화주의각이 무림맹 소속 아니더냐.”
허나, 이런 외상을 치료하는 건 백린의각의 주특기.
무림맹에서도 셈이 복잡할 거다.
“뭐, 제가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이네요. 스승님.”
“무사히뿐이더냐. 거액도 뜯어냈더구나.”
“헤헤헤헤.”
스승님은 한숨을 쉬시더니 커다란 손으로 제자의 머리를 쓸었다.
아마 제자의 몸에 상처라도 났다가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셨으리라.
결국 제자가 괜찮은 명분으로 사도련을 등쳐먹은 형국이 되어 스승님도 다음 수를 냉정히 놓을 수 있는 것일 터.
“엄연히 말해 외주 형태이다 보니 꽤 막대한 후원금을 양쪽 모두에게서 받을 수 있었단다. 중립은 이럴 때 좋은 것이지. 그만큼 위태하기도 하고.”
“그걸 가만히 놔두실 스승님이 아니시잖아요.”
“그래. 우리는 비동에 관심이 없다고 확실히 못을 박은 상태란다. 거기다가 일천여 명의 의각 소속 무인을 데려왔으니 결코 무시할 수 없겠지.”
“우와…….”
스승님이 위험 변수를 줄이기 위해 많은 수의 무인들을 움직이게 할 것은 예상하고 있었으나 천여 명이나 끌고 오셨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림맹의 총 전력은 숫자만 따지면 적어도 오천. 사파에서는 칠천. 마교는 삼천.”
스승님의 푸른 안광을 제자 역시 같은 빛으로 화답했다.
“정예 순으로 따진다면 마교, 무림맹, 그다음이 사파겠군요. 저희가 무림맹에 붙으면 균형이 어느 정도 깨지긴 하겠으나. 그렇게까지 해 줄 의리는 없을 테니까요.”
“스승의 심계를 제대로 짚었구나.”
“헤헤헷.”
제갈린은 제자가 대견하여 머리를 계속 쓸어주었다.
“이 무력은 어디에도 붙지 않아야 이득이 있는 거란다. 만약 어딘가에 붙게 된다면 그 후부터는 득보다는 실이 커지겠지.”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았다.
아주 어린아이일 때부터 있었던 제자의 버릇이다.
커서도 그런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 아이가 어찌 자랐는지 제갈린은 모두 기억했다.
크면서 점차 없어진 버릇도.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버릇들도.
스승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결과는 대략 세 개겠구나. 세 가지 변수를 짚어 보련?”
“하나는 전면전. 셋 중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우겠죠. 두 번째는 협상 후에 비동에서 비급을 얻을 수 있는 소수의 힘 있는 세력이 사본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나누어 갖는 결말. 이건 확률이 가장 낮을 거고요. 마지막은 가장 확률이 높은 건데.”
진천희가 눈을 떴다.
청광이 스민 눈동자로 청년이 말했다.
“협상 후에 뒤통수를 치는 방식. 아마 이게 정파에게도 사파에게도 가장 무난하겠죠.”
“그렇단다. 전례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지.”
제갈린은 그리 말했으나, 무림의 혈사를 일일이 기록하고 대조하며 가장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 소수의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세상에서는 ‘책사’라고 불렀다.
“우리는 비동에 들어가지 않는군요.”
“그래. 그냥 지켜만 보고, 돈이나 벌 생각이란다. 애초에 저 안에 있는 것이 진품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스승님의 의견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했다. 목격자의 말이나 전설만 믿고 비동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
비록 비동 형태의 인위적인 굴이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앞에 선객이 왔다 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혈선교의 함정일 수도 있는 일이니.
하지만 진천희는 그러한 책사의 이지를 초월한 것을 알고 있다.
미래다. 단순히 글자 몇 줄의 미래.
“진품이에요.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