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
제 46화
진천희가 보기에 유호는 이제 정말 한계였다.
아홉 개의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는 저놈도 이미 사람의 경지를 아득하게 넘었지만 그래도 무한하게 일을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쉬워.’
마치 하드디스크 용량 한계를 보는 기분이다.
10테라든, 100테라든 결국 집어넣다 보면 한계가 오는 법이다. 그런 기분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꼬드겨서 살살 시키면 될 것도 같은데?’
진천희 기준으로 유호는 사람 새끼가 아니었으므로 별다른 양심의 가책은 없다.
유호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과 저의 관계에 대해 물으셨죠.”
“오오, 말할 기분이 들었어?”
“허허, 그럴 리가요. 그냥 도련님이 귀찮아서 먹고 떨어지라고요.”
“그래서 뭔데?”
유호의 붓이 살짝 멈춘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미물의 은원을 풀어 주셨거든요.”
“미물?”
“사람들에게 있어 하찮은 미물이겠으나, 그 미물에게도 은원이란 게 있는 법입니다. 그것 하나를 풀어 주셨습니다.”
“미물이라 함은 동물이나 식물 같은 걸 뜻하는 말 아닌가? 어째서 유 총관은 자신을 미물이라 지칭하지?”
유호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쓰게 웃기만 했다.
“궁금하십니까?”
“당연하지.”
“잘됐습니다. 계속 궁금해하시다가 화병이나 나시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진천희는 손을 뻗어 유호의 양 뺨을 잡았다. 그러고는 좌우로 쭉 당겼다.
소년은 방긋 웃으면서 유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우리 유 총관 신수가 훤해졌어. 역시 관상학적으로 볼살이 좀 있어야 복스럽지.”
“그렇게 말씀하셔도 더는 말 안 합니다. 뭐, 나중에 도련님 죽일 때나 말씀드리죠.”
진천희는 유호의 양 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살인멸구, 뭐 그런 건가?”
“궁금하시면 주인님 치료 실패하시든가요.”
이 망할 여우 새끼가.
둘은 그렇게 한동안 옥신각신했다.
진천희가 손을 떼자 유호가 말했다.
“도련님을 위해서 말하지 않는 겁니다. 뭐, 이 말도 믿지 않으시겠지만요.”
“…….”
“그래도 신기하긴 합니다.”
“뭔데?”
“이렇게 저를 부려먹고, 이렇게 제 뒤를 캐내고 살아 있는 인간이 있다는 거요. 그런 의미에서 손톱 하나만 뽑아 가도 되겠습니까?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됐으니 일이나 해. 간 다음은 비장이야.”
“수술 순서대로 가는군요.”
“부술당에 지원한 의각원들 다수가 나와 함께 수술에 참여했던 자들이니까. 애초에 백린의각의 의원들이야 기초 하난 탄탄한 데다 애써 경험한 실전이잖아? 기억을 상기시키는 게 좋지.”
“호오, 그거 꽤 괜찮은 생각이군요. 무슨 순서로 목차를 이어가나 했더니……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오, 감탄했어? 그래서 안 죽이고 싶어진 거야?”
“그런데 그림은 제가 그려야 하잖습니까. 책자 편집도요.”
“응. 그건 그렇지.”
“도련님은 역시 사람 새끼가 아닙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는 유호를 갈았다.
의학 서적 제작 및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진천희의 지식을 전수받은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몇 년 정도면 적어도 진천희가 아는 지식을 서적화하여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 터다.
그리고 백린의각이 천하제일 의각이 되어 이 세계의 의료 체계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007. 외과 수술과 항생제
겨울이 본격적으로 더 깊어져 갔다.
진천희는 여전히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일과에 변화가 있었다.
외과 수술적 지식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유호의 도움으로 얼추 끝냈기 때문.
이제 본격적으로 부술당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백린의각의 본단이 자리한 지역의 인근에 한해서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을 받기로 했다.
그게 불과 며칠 전.
당연하지만, 그를 위해서 유호가 열심히 일해 주었다.
수술에 필요한 도구들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은 유호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20세기 초중반 수술실 정도는 된 거 같네. 유호 저놈. 진짜 정체가 궁금하다니까. 스승님은 웃기만 하고 말씀도 안 해 주시고. 당주님들은 뭔가 아는 눈치던데.’
진천희는 새하얀 겉옷을 입은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감탄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링거 통.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수액 줄과 카테터. 아주 예리한 작은 칼, 메스와 겸자 같은 도구까지 다양했다.
전부 유호를 닦달해서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이거까지 만들 수 있냐? 싶은 거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증류에 증류를 거듭한 소독액까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오늘.
왕각연 이후 처음으로 또 다른 외과 수술이 잡힌 날이다.
궁귀처럼 대뜸 쳐들어와 살려 달라고 하는 그런 게 아닌, 제대로 된 진료를 통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환자였다.
천하의 백린의선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고개를 내저을 환자이기도 했다.
병명은 급성충수염.
흔히 맹장이 터졌다고 알려진 환자다.
“환자 들어갑니다.”
밖에서 소리와 함께 환자가 실려 들어왔다.
환자가 누운 바퀴가 달린 의료용 침대 역시 유호를 갈궈서 만든 물건인데, 유용성을 인정받아 지금은 다른 인근의 장인들에게 제작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게 수술실이로군. 신기한걸…….”
“이제야 우리도 소문주의 부술을 견식할 수 있겠군그래.”
환자. 그리고 수술을 도울 의각원 외에도 스승인 제갈린과 다른 사 대 당주 중 무력당주를 뺀 세 명이 들어왔다.
과거 왕각연의 수술 때에는 각자 맡은 일과 씨름하느라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
오늘은 직접 참관하러 온 모양이었다.
당연하지만, 간호사인 유호도 함께다.
최근에는 유호를 통해서 간호사 인력도 교육 중이었지만 유호만큼 성에 차는 사람이 아직 없었다.
“그러면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의료 진단 기록은 다들 확인하셨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드디어 진천희가 칼을 들었다.
이번에는 유호가 간호사로서 보조하고, 제갈린이 옆에서 도왔다.
우선 손을 칼을 들지 않은 손으로 환자의 복부에 손을 대었다.
기를 움직여 안쪽을 느낀다.
과거 제갈린에게 배운 이후 꾸준히 연습을 거듭해 왔지만, 할 때마다 늘 새로웠다.
새로운 감각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걸로 내장을 확인한 진천희의 표정이 구겨졌다.
‘역시 엉망인데…… 보통 이 상태면 항생제 같은 약물 없이는 살기 어려워.’
맹장 수술. 본래 명칭은 급성충수염.
충수돌기라고 하는 부분이 막혀서 천공(구멍)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소화 기관인 내장에 있던 것들이 쏟아지는데, 이런 것들이 내부를 감염시키고 오염시킨다.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
‘진료 기록에 의하면 배가 아픈 게 닷새 전. 언제 충수돌기에 천공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고……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활력이 좋네. 진짜 기(氣) 만만세다.’
메스를 들었다. 날카로운 칼로 복부 위를 천천히 그어 나갔다.
능숙하게 배를 가르자 복막을 열 것도 없이 안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충수 돌기에 천공이 생겨서, 장 안에 있던 것들이 전부 쏟아져 나온 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혈! 흡입!”
진천희의 말에 제갈린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점혈한다.
피가 단번에 멈추고, 동시에 유호가 손을 뻗어 허공섭물로 배 안쪽의 오물들을 빨아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부는 엉망진창인 상태다.
“장기 적출! 물 준비됐죠?”
내장을 통으로 꺼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끓여 둔 물에 넣고 씻어냈다.
오염을 제거할 떄까지 반복하고, 반복한다, 그 이후 살을 꿰매서 터진 맹장을 바로잡는다.
손이 빠르고 신속했다. 이 과정에서 출혈은 없었다.
동맥 하나까지 건드리지 않고 봉합을 해냈다.
“주정!”
주정. 즉, 증류에 증류를 거듭해서 만든 고순도의 알코올.
그것으로 한 번 더 장기와 배 안쪽을 닦아내고 씻어냈다.
그러고는 다시 허공섭물로 빨아들이고 나서 그대로 장기를 안에 다시 밀어 넣었다.
“과연…….”
“허허…….”
사 대 당주 세 명이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악했다.
그들로서는 이런 식의 의료 처치는 생전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백린의각도 천하 삼 대 의각 중 하나이니 부술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부술은 그들 역시 본 적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놀라는 사이.
진천희는 재빠르게 배를 봉합해서 닫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모든 이들이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수술 끝났습니다. 환자를 환자실로 옮기시고, 수혈 처치 확실히 해 주세요.”
유리로 만든 수액 병을 유호를 갈궈서 만들어 두었기에 수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액 병에 들어갈 수액을 만드는 것은 아직 무리지만, 이것도 연구하면 어느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할 일이 많아…….’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진천희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진천희의 모습과 달리 다른 이들은 모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약재당주 만파곡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하네. 그 혈생노괴도 이런 식의 부술은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침구당주 사마병이 생각에 잠겼다.
“배를 열어서 내장을 씻어 봉합해서 도로 넣는다니. 보통은 배를 가르고 창자를 빼내는 순간 환자는 사망하지 않나? 빠르든 늦든 말일세.”
이 시대는 아직 감염과 염증에 대한 지식이 없다. 사마병의 의문은 당연했다.
추나당주 주단하가 말했다.
“내공으로 어느 정도 수명을 연장시키기는 하지만 절정 고수가 아니고서야 회복은 불가하지. 절정 고수가 된다 하더라도 상처가 깊다면 사망을 피할 길이 없고.”
그 말에 사마병이 이마를 찌푸렸다.
“보통은 극심한 고열 후 사망하게 되지. 거기다 내장에 천공이 생겨 먹는 것도 배설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니 죽는 건 시간문젤세.”
충수염 수술은 현대에는 비교적 쉬운 처치에 속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많은 이들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약재당주가 침구당주에게 물었다.
“침구당주, 저 환자는 어찌될 것 같소?”
“봉합이 완벽하고 출혈도 적으니 아마 그러진 않을 것 같다만…… 차후 경과를 지켜봐야겠군.”
발열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약재당주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기존 내상약만으로는 모든 열을 잡지 못했는데 가능할까?’
후덕한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생겼다.
‘소각주는 자신이 할 도리를 했다. 남은 건 내가 떠맡아야 할 터!’
그녀 역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내상약은 약 중에 가장 조제하기 어려운 약이다. 환자의 상처, 체질, 먹은 음식, 심지어 내상을 입은 원인까지 고려해야 했다.
항생제가 없는 시대에 이만큼 해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진천희가 수술실을 벗어났다. 사 대 당주들 모두 진천희를 향해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