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27
옥면공자가 기수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우리 교도 해친 데 대한 벌이나 받아라.”
“워우! 잠깐…. 내 제안 말고 여기서 빠져나갈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니지. 너희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 좋아!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 말이냐?”
“너와 내가 일 대 일로 겨루자. 그래서 이긴 사람 말에 따르는 거야.”
“하하하! 겨루자고? 나와?”
“그래. 어차피 무림은 강자존이잖아. 센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는 거지.”
옥면공자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와 겨룰 실력이 된다고 보느냐?”
“그럼 이겨. 이기면 교도를 해친 범인을 네 손으로 벌 준 게 되잖아.”
“그런 쓸데없는 짓을 내가 왜 해야 하나?”
“당연히 해야지. 부하들 앞에서 쫄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쫄았다고?”
“나한테 질까봐 못 나서는 거잖아? 안 그래?”
“하하하….! 진짜 어이가 없구나.”
“웃지만 말고 행동으로 증명해 봐. 네 부하들이 지금 전부 의심스런 표정으로 너를 보고 있잖아.”
옥면공자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교도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옥면공자는 화가 났다. 몇 마디 대꾸해주는 사이에 자기가 진짜 겁먹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가 이상하게 와전되었기 때문이다.
“오냐. 좋다! 네가 먼저 우리 교도를 건드렸으니 죽음으로 벌을 내리겠다.”
그리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기수는 씩 웃었다.
“잘 생각했어.”
탁지연이 기수에게 말했다.
“기소협. 조심하세요.”
“걱정 마.”
옥면공자와 마주 선 기수는 한 번 더 확인했다.
“내가 이기면 여기서 나갈 때까지 마교 전체가 나한테 협조하는 거다.”
“흥!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옥면공자는 느닷없이 쌍장을 뻗어 기수의 가슴을 후려쳤다.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경력이 무서운 속도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기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습에 당하지 않았다.
선풍비로 물러서면서 잔백지로 옥면공자의 요혈을 공략했다.
파파파팟…..!
옥면공자는 만만치 않았다. 기수의 지풍을 모두 튕겨냈다.
“호신강기인가? 제법인데?”
“닥쳐라!”
옥면공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움직임은 처음보다 신중해졌다.
기수의 보법과 지풍을 보고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마교 교도들도 두 사람의 눈부신 초식교환을 보고 다들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더 넓은 공간이 생기고, 기수와 옥면공자는 본격적으로 실력발휘를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끊임없는 격돌이 이어지면서 옥면공자는 차츰 상황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자는 나보다 강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 차이는 분명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백 명의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장렬하게 죽음을 택할 것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기수가 의외의 행동을 했다.
갑자기 뒤로 물러서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너의 뛰어난 무공에 감탄했다. 이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는 게 어떻겠는가?”
“뭐라고?”
옥면공자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승리가 분명한데 물러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힘을 모아 빠져나간다고 해도 동굴 밖에는 삼황맹과 제갈세가 놈들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 쪽 고수끼리 싸우다가 죽거나 다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명분은 그럴듯 했다. 그러나 옥면공자는 기수가 자기를 봐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세워주려고 일부러 끝장을 내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기수 입장에선 자신을 이긴다고 해서 마교도들이 말을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옥면공자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기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리지만 심지가 곧고 배려심이 있군.’
옥면공자가 말했다.
“좋다! 삼황맹과 제갈세가에게 좋은 일을 해줄 이유는 없지. 홍안산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때까지만 너와 동맹을 맺겠다.”
기수는 씩 웃었다. 옥면공자가 그래도 사내답게 응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기수는 그의 말을 정정했다.
“내가 아니라 무림맹과 휴전을 하는 거지.”
“아니. 무림맹은 믿지 못한다. 하지만 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너와 동맹을 맺는 거다.”
뒤에서 탁지연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기 정인이 무림맹보다 더 믿음직하다는 얘기는, 비록 마교도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듣기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마교도들도 기수와의 동맹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일단 방금 자기들 눈으로 기수의 실력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끔찍한 동굴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했다.
기수는 옥면공자와 함께 무림맹 진영을 찾아갔다.
동굴이 워낙 넓기도 하지만, 격벽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 격벽이 내려진 곳에선 2시간 동안 단 세 사람만 있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옥면공자가 기수에게 말을 걸었다.
“내 이름은 황운학이다.”
기수는 그가 한 마디 툭 던지듯 하는 말에 호감이 배어있음을 감지했다.
기수도 뭔가 자신에 대해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내 가명은 양일이야.’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20살 이상 많은 삼촌뻘 아저씨하고 친해지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다행히 황운학은 기수에게서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방금 전 대결에서 자기 체면 살려준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감사인사를 한 것에 불과했다.
2시간은 길었다. 결국 기수도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옥면이란 별명은 언제 생긴 거야?”
현대였다면 삼촌뻘 아저씨한테 이런 식으로 말할 일은 없겠지만, 이곳은 중원 무림. 힘이 곧 서열인 세계였다.
황운학은 피식 웃었다.
“내가 네 나이 때는 사람들이 뒤돌아볼 정도로 미남자였지. 저자의 처녀들이 전부 다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를 태웠으니까.”
기수는 피식 웃었다.
“바탕이 그리 쉽게 바뀌는 건 아닐 텐데….”
“내공연마 중 주화입마에 들면서 근골의 위치가 약간 바뀌었지. 키가 좀 커지기는 했지만 그때 얼굴과 손발의 형태가 바뀌었다.”
무슨 내공이기에 사람의 몸이 바뀌는 게 다 있나 궁금했다.
그러나 정파의 심법 중에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탈태환골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몸의 형태가 바뀌는 게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상당히 높은 경지의 내공을 익힌 건 분명해 보였다.
“주화입마라면…. 지금은 몸이 괜찮은 건가?”
“멸천제님이 내상을 모두 치료해주셨다. 그분의 진원지기를 소모하면서까지…. 내 목숨은 그분에게 빚진 거고, 어떻게든 은혜를 갚을 것이다.”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제까지 중원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정파 사람들보다는 마교 쪽 사람들이 자기하고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내 본래 성격이 사악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바른생활 사나이, 법 없이도 살 사람, 맨 오브 프린시플, 그런 수식어에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자기였다.
아무래도 고리타분한 관습에 얽매인 정파 사람들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고 감정 표현이 적극적인 마교 쪽이 현대에서 온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교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교회를 나가지.’
적어도 교회는 돈 많이 내면 천국에 간다는 약속이라도 해주지 않는가. 물론, 죽어 봐야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만….
황운학이 기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해서 그런 내공을 지니게 되었지?”
타 문파 사람에게 내력을 묻는 것이다 보니 어조가 조심스러웠다.
“말해줘도 못 믿을 거야.”
자매가 빨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진실을 얘기해봤자 이 세상 누가 믿겠는가.
황운학은 기수가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고 다시 묻지 않았다.
한 번 더 격벽을 지나 세 사람은 겨우 무림맹 진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무림맹 쪽엔 기수를 아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호운혜와 당운영이 매서운 눈으로 탁지연을 노려봤다.
남자 옷에 머리도 두건으로 묶은 차림새였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는 가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기수를 바라보는 사랑 듬뿍 담긴 눈길을 보고 이미 둘이 어떤 사이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수는 무림맹주 항마대사에게 말했다.
“맹주님. 지금 이곳에서 무림맹과 마교가 싸워봤자 좋아할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삼황맹과 제갈세가 밖엔 없습니다.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고 양측이 힘을 합쳐 우선 이 동굴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항마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노납도 그리 생각하오. 하지만 마교 측과 도무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그게 문제요.”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저쪽의 책임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책임자라니?”
기수는 황운학을 소개했다.
“이 사람은 마교 멸천제 휘하의 마령 옥면공자입니다.”
“무, 무엇이라고!”
항마대사를 비롯한 무림맹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마기가 느껴져서 뭔가 이상하다 했는데 정말 마교 고수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령이라고 했소?”
“그렇소.”
황운학은 항마대사에게 턱짓을 한 번 했다. 상당히 건방진 태도였다.
기수를 따라서 오긴 했지만 무림맹 쪽에 기가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림맹 사람들은 그런 황운학을 좋게 보지 않았다.
“잘 되었구나! 네놈을 죽이면 나머지 놈들 처치하기는 쉬워지겠구나!”
장검을 뽑아 들면서 나서는 자는 신주오룡으로 꼽히는 화산파의 청년 고수 나도성이었다. 그는 기수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언제 어디서나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도성 앞에 촌동네 무명 문파 출신의 기수가 마교 측 우두머리를 떡 하니 데리고 나타났으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고 샘이 났다.
무림맹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기수가 이곳에 온 줄도 몰랐었는데, 마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설쳐대는 꼴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지금 나서서 옥면공자를 죽이면 한 순간에 자기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도성의 원하는 바였다.
기수가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나소협. 징정하시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흥! 당장 비키지 않으면 네놈부터 죽이겠다. 마교도에게 죽고 다친 우리 화산파 제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느냐? 지금 원수를 갚아야겠다.”
그러자 황운학이 말했다.
“화산파따위가 우리 명교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곧 죽어도 절대 굽히지 않을 기세였다.
기수 입장에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성뿐만 아니라 화산파 제자들 모두 검을 뽑아 들었고, 다른 문파 사람들도 천천히 이동하여 옥면공자를 포위하고 있었다.
황운학은 좌우를 둘러본 후 냉소를 지었다.
“흥! 무림맹이란 게 고작 이런 정도일 줄 알았다. 오냐! 한 번 제대로 싸워보자.”
기수는 그들이 싸우도록 놔둘 수 없었다.
“모두 진정하시오! 우리가 싸우면 삼황맹만 웃을 것입니다.”
그러자 나도성이 말했다.
“그럼 그놈들도 죽이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기수의 말을 듣지 않고 옥면공자를 협공하기 위해 검진을 만들었다.
기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야! 이 씨발 놈들아! 귓구멍에다가 존슨을 박았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먹어야 할 것 아냐? 내가 하지 말라고 그랬지?”
무림맹 사람들은 기수의 흥분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기수는 고함만 지른 게 아니었다.
곧바로 몸을 날려 나도성의 뺨을 힘껏 한 차례 때렸다.
나도성은 명문가의 제자답게 기수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짝! 소리와 함께 제대로 얻어맞고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고 말았다.
기수의 손이 너무나 빨랐던 것이다.
“이, 이놈이 감히 암습을!……”
불같이 화가 난 나도성은 장검을 빙글 돌리면서 화산파의 24수 매화검법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살초가 뿜어져 나왔다.
파파팟!….
그러나 기수의 보법은 불가사의하게 빨랐고, 분광권을 시전하는 그의 손놀림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짝! 소리와 함께 나도성은 반대쪽 뺨을 다시 얻어맞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을 밀려났다가 다시 덤벼들었다.
“이놈! 비겁한 수작을 연거푸 쓰다니….”
누가 봐도 비겁하지 않았지만 나도성은 끝까지 우겼다.
그리고 한 대 더 맞았다.
뻘겋게 부어오른 손자국이 세 개 째 찍히자 나도성은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검법을 전부 다 사용해도 기수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고, 자기는 계속 뺨을 얻어맞고 있었다.
기수와 자신의 실력 차이는 분명했다.
그가 더 이상 덤벼들지 못하자 기수가 손바닥을 쫙 펴고 나도성에게 물었다.
“한 대 더 맞을래?”
나도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수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소림방장을 비롯해서 무림맹 사람들 모두 놀라고 질린 표정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신주오룡 중 하나인 나도성을 어린애 다루듯 가지고 노는 모습에 다들 기수의 능력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