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69
기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조금씩 앉는 설매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너. 진짜 예쁘다.”
진심이었다. 요괴분장을 하고 간을 먹는다드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악녀, 마녀로만 보였는데, 자기 존슨에 앉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겼다.
“너처럼 예쁜 애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
“자꾸 말 시키지 마! 아아….”
기수는 그녀의 움직임이 솔직히 감질났다.
어제의 기억 때문인지 거의 1cm씩 끊어서 조금씩, 조금씩 삼키고 있었다.
원래 이런 상황이라면 지그시~ 꾸욱~! 눌러서 도와주는 게 정상인데 마음뿐이고 힙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꼼짝 못하고 설매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다 보니까 뭔가 다른 느낌이 왔다.
정말 1cm씩 파고드는 그 감촉이 의외로 꽤 자극적이었다.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햐! 몸을 못 움직이니까 좋은 점도 있네. 우선, 입술과 혀의 사용법을 훈련하면서 다음부터는 상대를 좀 더 배려해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고.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혈천제의 저주도 풀게 되었고, 또 이런 식의 느린 전진에도 각별한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잖아. 굉장한데?’
기수는 갑자기 어디선가 읽은 동양고전의 내용을 떠올렸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육체를 단련시키고, 육신을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을 뜻에 어긋나게 만들어서 무서운 역경에 빠뜨린다는 내용이었다.
‘하늘이 내게 큰일을 시키려고 이런 역경에 빠트린 건가?’
유소진을 만나 내공을 빼앗긴 이후엔 정말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떤 큰일을 맡기시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홍익미녀의 큰 사명 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기수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제 입도 열심히 쓰고, 1cm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도 항상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보고 발전의 계기로 삼는 인간 양기수가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뿌듯했다.
결합 심도가 깊어지자 설매의 이마 주름이 더 깊어졌다.
“아야! 오늘도 아파!…. 아야….”
“때리지 마! 때리지 마!”
다행히 오늘은 뺨을 안 맞았다. 그리고 설매의 움직임도 첫날보다는 원활했다.
그녀는 10분 정도의 라이딩을 마치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수건으로 뒤처리를 한 후 생긋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내일은 더 나을 거야. 오빠 믿어!”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설매가 떠난 뒤 또다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무엇보다도 몸을 못 움직이니까 여기저기 저리고 아팠다.
시간은 또 어찌나 느리게 가는지 지겨워서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동굴 안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이다.
기수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이거 재미있네.”
놀랍게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 나이가 든 것처럼 느껴졌고, 탁한 허스키에 갈라져서 듣기에 몹시 거북한 음성이었다.
‘허걱! 좆 됐다!’
기수는 설매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사부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남자라면 자신의 마력을 발휘해 볼 여지가 없었다.
‘아! 조심 좀 하지. 그걸 들켜가지고….’
기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흐흐흐……누가 요런 깜찍한 짓을 했을까?”
설매가 들킨 것은 아닌 듯 했다.
어쨌거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기수는 그저 처분에 따를 뿐이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수는 질끈 감았던 두 눈 중에서 한 쪽만 살그머니 떴다.
의문의 사내는 떠난 듯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동굴 안엔 은은한 향수 냄새 같은 것만 남아 있었다.
‘왜 날 죽이지 않았지?’
기수는 사내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기 제자 중 누구의 짓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현장을 잡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날 밤.
설매가 나타나자 기수는 그녀에게 경고했다.
“낮에 너 없을 때…..으읍!”
말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설매가 2루로 도루하는 주자처럼 헤드퍼스트로 몸을 날리더니 기수의 몸 위로 체중을 실어 덮쳤다.
기수는 갈비뼈와 등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보고 싶었어! 오빠!”
설매는 기수의 입술을 탐하느라 기수의 경고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수는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설매의 입술과 혀가 계속 말문을 막았다.
결국 기수는 포기해버렸다. 어차피 들켜봤자 자기에겐 더 해가 될 일도 없었다.
입맞춤이 끝나자 설매는 상의를 풀어 젖히고 가슴을 기수 입에 갖다 댔다.
기수는 ‘너 이제 사부한테 죽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모터보트 ‘푸르르~!’를 해주었다. 설매는 간지럽다면서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그리고 치마를 벗고 기수 위로 올라타고 앉으면서 말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하루 종일 오빠 생각만 나더라.”
“후후…. 원래 그런 거야. 배울수록 재미있지?”
“응…. 느낌이 자꾸만 생각나고 또 하고 싶어져.”
설매는 존슨을 쥐고 머리 부분으로 꽃잎 주변을 비벼댔다.
“하핫! 오빠를 믿으면 다 좋은 일만 있다니까…. 이제 날 죽이겠다는 생각은 슬슬 접어도 되지 않을까?”
설매는 결합 과정에 잠시 이마를 찡그렸지만 지난 이틀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게 힙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안 돼. 5일 채우고 나면 죽일 거야.”
“너…. 끔찍한 말을 참 쉽게도 한다.”
“어쩔 수 없어. 만약 오빠가 여기 있는 걸 들키면 나부터 죽을걸? 아아… 아아…”
“나 말고 다른 남자한테서 그런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다 비슷한 거 아닌가? 아아…. 아아…..”
“남자도 남자 나름이야. 어쨌거나 네가 날 죽이려는 건 사부한테 들킬까봐 겁이 나서 그러는 거지? 만약 사부한테 이미 들켰다면?”
“아아…. 아아….. 무슨 소리야? 그건.”
바로 그때 설매의 등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매 엉덩이 다 보인다! 히히히…..”
“꺄아악!….. 사숙!”
설매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빼고, 일어나서 벗어던진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그녀를 놀렸다.
“난 다 봤다! 설매 엉덩이 봤다!”
기수는 그 남자가 약간 좀 모자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숙이라면 사부의 사형제라는 얘긴데, 어른인 남자가 여자 사질의 정사장면을 봐놓고 놀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매는 옷을 대충 챙겨 입자마자 사내에게 빌었다.
“사숙! 제발 부탁드려요. 오늘 있었던 일은 사부님께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흐흐흐…..싫다면?”
“제발 부탁드려요. 제가 매일 매일 맛있는 요리 해드릴게요.”
“네가 만드는 음식은 늘 싱거워.”
“그, 그럼 앞으로는 소금 잔뜩 넣어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짠 건 싫어! 그리고 난 이 남자하고 얘기하고 싶어.”
그리고 곧바로, 기수는 혈도가 풀린 것을 느꼈다.
일단 아래부터 가리고,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맞은편의 사내를 본 기수는 그의 기괴한 몰골에 깜짝 놀랐다.
나이는 60 정도 되는 깡마른 노인이었는데 머리를 갈래갈래 땋아서 묶고 얼굴엔 화장을 하고 있었으며 몸엔 색색 비단옷을 걸치고 낮에 맡았던 향수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미친놈!’
딱 보는 순간 그 단어가 떠올랐다.
머리에 꽃만 안 꽂았지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남자가 얼굴에 화장 떡칠을 했으니 머리에 꽃 꽂은 것보다 더 미친놈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가 기수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왜 여기 온 거지?”
“저는…. 양칠이라고 합니다. 근처를 지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여기 있는 설매 소저가 구해줬습니다.”
슬쩍 설매 눈치를 보니까 그럭저럭 잘 둘러댄 것 같았다.
“흐음…. 그렇다면 내 기문진이 뚫린 건 아니었군….”
노인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매와 히히덕거릴 때와는 달리, 지금은 또 굉장히 날카롭고 이지적인 모습이었다.
기수는 노인이 기문진을 만들었다는 얘기에 어쩌면 머리는 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높은 아이큐에 또라이라…. 절대 좋은 조합이 아닌데…. 아냐! 어쩌면 단순한 복장 도착자일지도 몰라.’
그 조합도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일단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이 설매에게서 그에게로 넘어갔다고 봐야 하니 인간적인 채널을 열어둘 필요가 있었다.
“입술 연지 색하고 상의 색이 잘 어울리네요.”
그러자 노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색 맞춘 걸 알아보네?”
“당연하죠.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걸요.”
“그럴 줄 알았어! 하하하!…. 역시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 사제하고 사질들은 도무지 안목이 없어. 하하하!”
기수는 노인의 기분을 맞춰주긴 했지만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너희 사제하고 사질들이 정상인 거야. 누가 남자의 패션 감각에 신경이나 쓰겠냐. 그것도 그 나이에…. 화장까지 하고…. 나야 살아남으려니 어쩔 수 없지만.’
그러고 보니까 혹시 게이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60살 노인이 덮치면 그건 악몽일 것 같았다.
설매에게 당하는 건 참았지만, 만약 이 노인이 덤빈다면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다.
‘다시 제압당한다면 자살할 기회조차 없을 거야. 지금 혈도가 풀린 김에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해둬야겠어.’
그러면서 곁눈질로 검의 위치를 확인했다.
내공이 없으니까 무기를 들고 초식을 펼쳐내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걸로 설매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증명되기도 했다.
노인은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고나서 말했다.
“나.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데리고 살 거다.”
기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절대 안 돼! 데리고 살다니….’
기수가 검을 향해 몸을 날리려 하는 순간, 노인이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검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노인의 손으로 날아가 손에 턱! 잡혔다.
기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씨발!…..초, 초, 초능력자였어!’
이건 더 끔찍한 조합이었다. 허공섭물이라는 기술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노인은 검을 뽑아들고 허공에 한두 번 휘저어 보더니 말했다.
“이거 좀 무겁군. 하수들이 쓸 무기가 아냐.”
그러더니 기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실력을 좀 볼까?”
기수는 노인이 허공섭물 쓰는 것을 보는 순간 탈출이니 저항이니 하는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싹 다 지워버린 상태였다.
“저, 저는 실력이랄 게 없습니다. 그냥 항복하겠습니다.”
“그럴 수야 없지.”
노인의 눈빛은 차갑고 냉정했다. 게다가 엄청 똑똑해 보였다.
적과 마주서서 무공을 펼칠 때는 제정신이 똑바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한 순간, 바람이 화! 불어온다 싶더니 어느새 노인이 검 끝을 기수의 목에 갖다 대고 있었다. 기수는 한 박자 늦게 뒤로 물러섰다.
‘빠르다! 내가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과연 막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야.’
명석한 두뇌 + 또라이 + 복장도착자 + 초능력 + 엄청 고수.
노인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60대 남자가 화장하고 헬렐레하는 건 솔직히 꼴불견이지만 무공만큼은 진짜배기였다.
노인은 기수의 반응에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뭐야? 이거.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그러더니 다시 검을 휘둘러 기수를 공격했다.
기수는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했지만 모든 방위가 동시에 차단되는 엄청난 압박감 때문에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목을 움츠리는 게 전부였다.
순간, 기수는 노인에게 완맥을 잡혔다.
깡마른 손가락이지만 힘이 엄청나게 세서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으으….. 놔주십시오.”
완맥을 통해 노인의 내공이 기수의 몸으로 파고들어와 한 바탕 훑고 지나갔다.
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놨다.
“이 검은 훔친 게 분명하군. 제대로 휘두를 능력이 없어. 이제야 겨우 내가심법에 입문한 수준이라니… 쯧…쯧….”
기수는 해명했다.
“훔친 게 아닙니다. 어떤 선배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검과 검법을 남기면서 후인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해 봐.”
그러더니 대뜸 검을 던져주었다.
엉겁결에 검을 받아든 기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보라니요? 무엇을요?”
“후세에 남기라는 검법 말야. 난 무공에 관심이 많거든.”
옆에서 설매가 빨리 하라고 눈짓과 입 모양으로 재촉했다.
기수는 노인이 검을 들었을 때 눈빛이 변한 것을 기억했다.
미친 화장과 알록달록한 옷 다음으로 무공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검을 들고 심호흡을 한 뒤 동굴에서 익힌 검초를 하나씩 펼쳐보였다.
노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기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춤 없이 모든 초식을 최대한 성의껏 펼쳤다.
원래 자기 무공이 아니니까 낱낱이 드러나도 상관없었다.
다 보고 난 노인은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훔쳤다는 말은 사과하지. 이제 보니 검과 검술을 모두 이어받은 게 분명하구나. 그리고 내공은 이제 시작단계지만 무공의 기초가 몹시 튼튼하구나.”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그 정도 검술이라면 후세에 남길 만 하다. 비록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힘을 중시하는 사나이의 기개가 느껴진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수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기수는 초식 하나를 펼쳐 보인 후 말했다.
“여기서 이 각도로 찌르는 건 좀 마음에 안 듭니다. 뭐, 물론 다른 초식들과의 연결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호오!……”
노인이 감탄한 표정으로 기수를 봤다.
기수는 아차 싶었다. 자기가 너무 아는 척을 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