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74
공주는 바닥에 떨어진 철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기수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네가 가르쳐줬잖아. 운룡비결.”
공주는 어이가 없었다.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거지?”
“너 몰랐냐?”
“뭐를?”
“내가 천재라는 사실.”
공주는 좀 억울했다. 자기가 고생고생해서 익혔던 기억이 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수라면 상관없었다.
그의 전력이 상승하면 한귀비를 잡는 일도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주는 생글생글 웃으며 기수에게 다가갔다.
“안 때릴게. 도망치지 마.”
“어흠! 도망이라니. 강도들 때문에 지체된 시간을 따라잡을 뿐이야.”
공주는 바짝 다가가 기수에게 말했다.
“내가 하나 가르쳐줬으니까 너도 하나 가르쳐 줘.”
“무슨 소리야? 하나가 아니라 내가 아는 거 전부 다 가르쳐줬잖아?”
공주는 기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탱탱한 가슴을 밀착시켜 비비며 다시 졸랐다.
“이론적인 설명 말고, 금세 익혀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법 같은 거 없어?”
“하핫! 내 흉내를 내보겠다는 거지?”
“나라고 못 할 것 없잖아.”
“좋아. 단정홍을 실전적으로 가르쳐주지.”
아투사가 반대쪽 팔을 잡으며 여기 가슴을 누르며 문질렀다.
“저도 같이 배워도 되죠?”
“다,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 저 숲 속에 잠깐만 들어가서 쉬었다 갈까?”
좌우에서 경쟁하듯 문질러대니까 치마의 형태가 자꾸 변해서 걷기 힘들었다.
공주는 정색했다.
“벌건 대낮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런데 그녀의 발을 숲을 향해 걷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만난 강도들. 그들이 흘린 시뻘건 피 때문인지, 심장을 빨리 뛰게 한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아투사도 걸음 방향을 숲으로 잡았다.
기수는 양쪽 팔을 잡혀 거의 끌려가듯 숨으로 진입했다.
대낮에, 그것도 야외에서 벌이는 2:1 태그매치는 기수뿐만 아니라 공주와 아투사에게도 각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방이 열린 숲속, 파란 하늘 흰 구름 아래 자연을 벗 삼아 40분 정도 짧게 즐거움을 나눈 세 사람은 다시 길로 돌아왔다.
공주가 흡족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응. 단정홍이라는 건데, 한귀비도 쓸 줄 알더라. 그러니까 꼭 배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녀의 손에 닿으면 위험할 수도 있거든.”
기수는 자세히 설명해준 후 시범도 보였다.
공주와 아투사 모두 정신을 집중하고 그의 지도를 받았다.
공주는 놀라운 진전을 보였다.
저녁 무렵, 객잔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익혀버린 것이다.
기수는 그녀에게 시험해보도록 자신의 몸을 빌려주었다.
푸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10번 정도 맞은 뒤 반대로 그녀의 몸에 집어 넣는 연습도 해보았다.
공주는 몹시 고통스러워했지만, 세 번 네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익숙하게 풀어냈다.
기수는 맞은 10번을 돌려준 후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했다.
“좋아. 완전히 익혔다고 해도 되겠어.”
“호호호!…. 그럼 나도 천재인 건가?”
“그렇다고 봐도 될 것 같네.”
사실, 그녀가 단정홍을 빠르게 익힌 것은 운룡비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행류의 목, 화, 금, 수류에 모두 접점을 가질 정도로 유연성이 큰 운룡비결.
당연히 단정홍처럼 암경을 상대 몸에 밀어 넣는 기법과도 통했다.
반면, 아투사는 좀처럼 성공을 하지 못했다.
“전 아무래도 자질이 부족한가 봐요.”
기수는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아냐. 익힌 무공의 길이 달라서 그런 것뿐이니까 실망하지 마.”
저녁을 먹은 후에는 왕관의 보석으로 지도에 선을 그었다.
공주가 약간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주 쪽은 확실히 아니네. 재력을 가진 거부들과의 결탁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한귀비의 은신처가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되었을 뿐이야.”
세상을 뒤집는데 필요한 것이 무얼까?
권력의 정점인 황제를 찍어 내릴 자객과 천하의 혼란.
거기에 넉넉한 군자금은 필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도 동감하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진상을 알려면 한귀비를 최대한 빨리 잡아야 돼.”
“빨리보다 확실하게 잡아야지. 우리 쪽에 손실 없이.”
“그래 맞아. 그러려면 지금은 대법 연공이 중요해!”
바람직한 결론이었다.
복식조는 나날이 운용능력이 발전해서 기수를 기쁘게 했다.
기수는 그 보답으로 내공 증진에 최대한의 효율을 올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었다.
뭔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연공을 하는 것은 기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남은 네 사도의 무공이 적어도 한귀비 수준일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
기수는 방을 나가기 전 아투사에게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물었다.
“왜 그래? 무슨 걱정 있어?”
“아, 아뇨.”
“아니긴. 표정이 어두운데…”
“실은….어제 배운 단정홍이 아무리 해도 안 돼서요.”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것 같더라고.”
“저한테는 안 맞는다는 뜻인가요?”
기수는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사람마다 잘 되는 게 따로 있어. 너한테 맞는 것도 있을 거야.”
“하지만…. 저처럼 내공이 부족한 경우엔 단정홍이 딱 좋은데…”
사실, 아투사는 동창의 이인자인 조백호와 평수를 이룰 정도로 고수였다.
그러나 기수, 공주와 함께 지내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기수는 그녀를 위로했다.
“일단 기초에 집중해. 그건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알았어요.”
공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귀비가 토끼눈으로 변하면서 내공이 두세 배쯤 늘어나는 수법 썼잖아? 그걸 배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투사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것만 배울 수 있으면 저도 언니와 양소협을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그걸 익히면 두 사람 도움 없이 혼자서도 해치울 수 있을 걸.”
기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은혈대법이라는 건데, 순간적으로 내공이 증진되는 대신 몸에 심각한 후유증이 남아. 한 시진을 운용했다면 한 달, 반 시진을 운용했다면 보름. 그러니까 1각(15분) 당 4일 정도 내공 운용 없이 쉬어야 주화입마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어. 그렇게 쉬어도 정상 복구가 확실히 보장된 건 아니니까 정말 위험할 때 아니면 써선 안 되는 거야.”
“아! 그래서 한귀비가 경공을 쓰지 않고 걸어서 도망치는 거구나?”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우리가 경공을 쓰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공 운용을 못한다면 쉽게 잡을 수 있잖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잡혀 죽을 바엔 주화입마 각오하고 한 번 더 쓸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애초 계획대로 그녀가 멈춘 뒤에 기습하는 게 최고야.”
“아!….”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도 너와 함께 한귀비와 싸웠잖아.”
“아니. 어떻게 그 기술의 이름과 후유증까지 상세히 알고 있냐고.”
“어! 그러게…”
기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은혈대법이란 단어가 어디서 나온 거지? 스팀팩이면 몰라도…’
게다가 후유증에 대해 아는 것은 더 더욱 이상했다.
‘뭐야. 도대체 내가 왜 그걸 알고 있는 거야?’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 봐도 자기 입에서 그런 소리들이 나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짐을 챙기고 다시 길을 걷는 동안 기수는 계속 그 생각에 골몰했다.
‘은혈대법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얘기야?’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깨작거리던 점심때.
기수는 갑자기 젓가락을 딱! 내려놓으며 외쳤다.
“맞아! 청탑산의 사범.”
그가 죽기 직전에 어떻게든 주군이란 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염정구심술로 동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는 살아생전의 주마등이라는 게 무공비급들 뿐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수십 권은 됨직한 비급들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 기억 안에 은혈대법이 언급되어 있었다.
공주와 아투사는 놀란 얼굴로 기수를 쳐다봤다.
공주는 젓가락을 자루까지 삼켜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아, 아무 것도 아냐. 밥들 먹어. 넌 위험하게 자꾸 물지 말고 내려 놔.”
기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이제 보니까 적의 무공이 전부 다 내 안에 있었던 거잖아? 그럼 파해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는 얘긴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귀비의 무공을 보고 남은 4명을 어떻게 죽여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갑자기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억해내려고 하자 암담했다.
종이 위에 검은 글자가 적힌 영상까지만 생각날 뿐 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때 주군의 정체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기수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혈대법이란 단어가 떠오른 걸 보면 분명히 내 기억 안에 남아 있는 거야.’
기수는 양손 검지로 관자노리를 마사지하면서 눈을 감고 집중했다.
염정구심술로 상대의 기억을 읽는 것은 도서관에서 책장을 휙휙 넘기는 것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훨씬 깊게 각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참을 집중해도 비급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도 다 식었는데 슬슬 출발하자.”
“응?”
“방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일어설 시간이 지났어.”
“아, 알았어.”
기수는 두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한 페이지라도 기억해보려고 애썼지만 계속 실패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탐색기 열고 마우스로 염정구심술 폴더 클릭한 후에 청탑산사범.txt 파일 오른쪽 버튼 – 연결프로그램 – 노트패드 해서 쫙~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뇌는 컴퓨터식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게 아니었다.
‘아까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이 난 거지?’
대화하다가 무의식중에는 떠오른 걸 보면 그 파일이 존재하는 건 분명했다.
‘그래. 무의식. 그게 포인트야.’
생각해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정신을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안 될 것 같았다.
‘무심코 떠올려보자!’
그러나 ‘무의식’을 ‘의식’하면서 무심한 상태가 될 수는 없었다.
기수는 공주에게 말했다.
“오늘 객잔에 도착하면 조백호한테 얘기해. 내일은 이동하지 않고 하루 쉰다고.”
“어머! 하루 종일 대법 하려고?”
공주와 아투사 모두 반색을 했다.
“으으… 그게 아니라 명상을 좀 해야 되겠어.”
“갑자기 웬 명상? 그거 하기엔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그녀들이야 온종일 대법을 펼치고 싶겠지만 기수는 목적이 따로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면 무의식이 약간은 열려줄 것 같았다.
뜨거운 태그매치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기수는 방을 하나 따로 얻어서 혼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무의식으로 떠나는 명상은 운기조식보다 어려웠다.
운기조식은 진기운용에 집중하면 되지만, 명상은 어디에도 집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잡생각이 떠오르면 실패.
공주나 아투사가 가까이 있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기수는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적을 수 있도록 종이와 먹, 벼루, 붓을 준비한 후 명상에 돌입했다.
잡념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게다가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
“아흥….”
“아아… 언니… 거긴, 거긴… 아아..”
두 마녀가 문 바로 앞에 와서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기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저리 안 가?”
“우리가 뭘…”
“자꾸 방해하면 너희들 앞으로 혼내주지 않고 가만히 놔둘 거다!”
그러자 문밖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공주가 물었다.
“그래도 저녁 먹은 뒤엔 늘 하던 대로 대법 연마할 거지?”
“응. 그때까지 나 좀 가만히 놔 둬. 중요한 일이라고.”
“혹시 지금 배 안 고파?”
“경고했다.”
“아, 알았어.”
“점심 먹을 때도 부르러 오지 마. 저녁 때 내가 알아서 나갈 테니까.”
“그렇게 할게.”
비로소 사방이 고요해졌고 기수는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잡념을 버리는 것은 공주와 아투사를 물리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았다.
잠깐씩 고요한 상태에 돌입할 때마다 그토록 원하던 청탑산 사범의 기억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 이거야!’
기수는 종이에 그 내용을 조금씩 옮겨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