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09
기수는 화양문 사람들과 사매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장원을 칠 것입니다.”
양호중과 두 자식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드러났다.
기수는 그들에게 한 가지 사항을 당부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면서 적을 점혈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항하는 적을 맞아 싸우다가 어떤 방식으로 제압하던지 그건 마음대로 하시되, 내가 먼저 쓰러트려 놓은 자들은 절대 죽이지 마십시오.”
양호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적을 죽이지 말라고요?”
“예. 저는 저들을 포로로 잡아 협상에 이용할 생각입니다. 화양문에 뇌옥은 충분히 있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집을 빼앗은 적을 살려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복수를 제대로 한다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들인 것이다.
기수는 그가 자기 말에 잘 따라주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화양문 문도들을 모아주십시오. 제가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20여명의 무리가 모이자 기수는 그들에게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양호중 때와는 달리 위압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만약 내 계획을 방해하는 사람이 보이면 어떻게 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들 저 쪽 숲을 봐주십시오.”
화양문 문도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파파파파팍!…. 하는 파공음과 함께 나무들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파천강기 발칸포가 발사된 것이다.
다들 놀라서 입을 쩍 벌린 사이, 원래 숲이었던 자리는 풀밭으로 변해버렸다.
문도들뿐만 아니라 양호중과 양화린, 양여옥도 안색이 굳었다.
기수가 무림맹 편이긴 하지만 엄연히 선을 긋고 있는 상태.
이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여주는 이유는 명확했다.
양호중과 화양문 문도들은 감히 사사로운 복수를 할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자기가 직접 상대하는 적은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 거기에나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사매들 중 춘매와 추매를 남겨 사인교를 지키도록 한 후 말했다.
“자! 그럼 나부터 출발합니다.”
기수는 장원을 향해 곧장 달리기 시작했고, 사매들과 화양문 문도들은 그를 바짝 따라붙었다.
장원을 지키던 수비병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경보를 울렸다.
기수는 그제서야 스피드를 본격적으로 올렸다.
장원 안의 적들이 전부 건물 밖으로 나오도록 한 뒤 손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마연합 무리는 전부 합해야 30명 남짓한 적을 우습게 봤다.
그러나 앞으로 툭 튀어나온 한 사람에게 무너졌다.
퓩! 퓨퓩!
잔백지의 짧은 파공음에 어김없이 한 명씩 쓰러졌다.
결국 담 밖을 지키던 병력은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기수는 담을 넘기 전에 돌아서서 한 차례 상황을 확인했다.
화양문 문도들은 쓰러진 적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부지런히 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수는 한 번 웃은 후 담을 넘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벌어진 일은 바깥과 다를 바 없었다.
기수가 지나가는 경로엔 점혈당해 쓰러진 적들로 가득했다.
기수는 기감을 끌어 올려 고수의 기척을 찾았다.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라면 적어도 마령 한 명쯤은 배정되어 지키고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 그 쪽에 있었구나.’
기수가 방향을 잡고 달려가자 양호중은 잠시 멈추었다가 문도들을 다른 쪽으로 이끌었다. 기수를 따라다녀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장원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았기 때문에 적이 어디를 지키고 있을지도 정확하게 짚어냈다.
양호중은 기수와 갈라서고 나서야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수의 기척을 따라간 기수는 큰 전각 앞마당에서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키다리 사내를 찾을 수 있었다.
“웬 놈이냐!”
키다리는 장창을 휘둘러 기수를 맞았다.
잔백지로 끝내려던 기수는 현현각주처럼 너무 장거리 무기에만 의존하는 건 좋지 않다 생각하고 분광권으로 그 창을 맞았다.
상대는 마령답게 제법 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창의 움직임 사이로 민첩하게 쑥! 파고드는 기수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으윽!….”
그가 마혈을 찍혀 쓰러지고 나니까 나머지는 쉬웠다.
사매들이 뒤처리를 하는 동안 기수는 비명을 듣고 몸을 날려 화양문 문도들의 먹잇감을 빼앗았다.
그렇게 두 시간 만에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다.
양호중은 기수와 혈매궁에 별채를 내어주어 지내게 하고 그동안 사마연합에 잡혀 부역하던 하인들을 모두 모아 피해상황을 파악했다.
건물이 부서지거나 불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창고는 전부 다 털린 상태.
그러나 다행히 비밀금고는 온전했다. 가주와 장남만 위치와 여는 법을 아는 곳이기에 사마연합이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호중은 돈을 내어 쌀과 부식을 사오도록 하고, 도망친 하인들이 돌아오도록 난주 시내에 소문도 퍼뜨리도록 지시했다.
그 사이 문도들은 점혈당한 포로들을 뇌옥으로 옮기고 시체를 치웠다.
기수는 별채로 마령을 데려다가 아혈만 풀어준 후 물었다.
“저기 앉아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암천제님!”
암천제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기수가 마령에게 물었다.
“후후… 이제 네가 처한 상황을 알겠지?”
“어, 어떻게…”
“이제 장원 주변의 병력 배치와 연락방법, 암호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내가 그걸 말할 줄 아느냐!”
“말하지 않아도 난 계속 물어볼 거야. 그러니까 집중하도록 해.”
“웃기지 마라. 난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상관없으니까 집중만 하라고… 주변에 혹시 제갈세가 사람이 있나?”
마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기수는 계속 질문을 했고, 몇 가지 사항은 종이에 적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령을 암천제 옆에 나란히 앉힌 뒤 양호중을 만나러 갔다.
자기가 알아낸 정보들을 무림맹에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난주에서 화양문 장원이 가지는 의미가 크기에 천마교의 마령까지 배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중요한 정보는 없었다.
양호중은 기수의 얘기를 경청하고, 적은 종이도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기수와 달리, 그의 입장에선 하나하나가 소중한 정보들이었다. 난주를 되찾는 것은 화양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주와 작별하고 자기 거처로 돌아가는 길.
중문을 지나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양소저…”
“우리 얘기 좀 해요.”
“그, 그럽시다.”
기수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의 심각한 표정을 보면 자기도 약간은 심각해야 할 것 같은데, 눈은 자꾸만 앞서 가는 그녀의 허리와 힙 라인에 집중되었다.
혼혈이라 그런지 중원 여인들과는 약간 다른 체형이 자꾸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자기를 위해서 지은 시가 없냐고 묻던 그녀, 색상의 삼위일체를 이룬 그녀의 나신, 머나먼 난주까지 찾아와서 결국 사과를 했건만 ‘말로만 하면 다냐.’고 탐탁지 않게 반응하던 일들이 차례로 생각났다.
도착한 곳은 인적 없는 후원의 정자.
막상 마주 서고 나니까 양여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수는 먼저 입을 열고 싶지 않았지만 마냥 서있기도 뻘쭘해서 물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 그러니까…. 그…”
양여옥은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당신의 화공은 어떻게 펼쳐내는 거죠?”
“그게 궁금해서 날 보자고 한 거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눈빛과 목소리, 행동을 보면 딱 견적이 나왔다.
자신에게 반한 게 분명했다. 한두 번 접하는 상황이 아니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알다시피 우리 화양문은 화종의 전인으로 폭약도 잘 다루지만 화공을 장기로 삼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의 화공은 특이하더군요.”
“삼매진화의 외부표출이란 점에선 동일할 거요. 세부 운기법은 다르겠지만.”
“그, 그렇군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기수는 ‘그럼 이만.’ 하고 돌아서고 싶었다.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까, 이제 다시 모른 척 해주면 고맙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그냥 가는 건 아무래도 너무 매정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는… 사과가 부족했던 것 같소.”
“아, 아뇨. 사과하지 마세요.”
사과하지 말라니. 그럼 그냥 마음 맞아서 동침한 거로 하자는 건가?
양여옥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둘러댔다.
“무림맹 사람들 모두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셨고, 또 우리 장원도 되찾아주셨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사과를 받아들이겠어요.”
기수는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녀에 대한 잘못과 화양문을 도운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라고 해야겠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사과를 받아주니까 오랜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럴 때 보면 난 참 소심한 면도 있는 것 같아.’
염정구심술을 사용한 일종의 강간.
경험이 부족하던 시절에 염정구심술이 마냥 신기해서 장난치다가 벌인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하게 남아 있었다.
그 족쇄를 풀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개운하고 상쾌했다.
양여옥이 다시 말했다.
“기소협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죠?”
“으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물론 빨간색 모발, 독특한 체형, 꿈꾸는 소녀 같은 취향의 연애관, 몹시 뜨겁던 속살 등 그녀에 대해 가진 생각은 많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기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양여옥은 흑!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귀찮게 해서… 살펴 가세요.”
그러더니 정자 밖으로 달려 나갔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잡았다.
“양소저!…”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아, 아니오. 난 양소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소.”
“저, 정말인가요?”
기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그렇소. 그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소.”
사실, 사매들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둘만 있었다면 양여옥은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섹스파트….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 친구 후보였다.
양여옥이 기쁨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그래서 그날도 저를 안아주셨던 거예요.”
뭔가 과거를 추억으로 포장해서 왜곡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내겐 문제가 좀 있소.”
“혈매궁의 제자들 때문인가요?”
역시 그녀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긴, 여자들끼리 살벌한 눈싸움을 벌였을 거라는 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제자가 아니라 사매들이오.”
“혹시 그녀들 중 누구와….?”
“하핫!… 그,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 하면…”
양여옥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어쨌거나 그녀 때문에 결국 나를 버리겠다는 뜻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매가 있으니 잊어 달라. 그런 말 아닌가요?”
“그런 뜻은 아니오….”
“그럼 무슨 의미죠?”
기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난 사매가 좋소. 짜이찌엔.’ 하고 돌아서는 게 정상이겠지만, 오래 묵엇던 사과를 받아준 양여옥에게 차마 그런 매정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때 양여옥이 뜻밖의 말을 했다.
“난 양보할 생각 없어요.”
“그게 무슨 뜻이오?”
“기소협의 속마음을 모를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양보할 수 없어요. 사매와 경쟁해서 기소협을 빼앗고 말 거예요.”
결의에 찬 어조였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눈빛까지 달라졌다.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우는 거 같다. 네가 확실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머리의 탁지연, 외모의 주예림, 목의 아투사를 이기겠다고? 그건 좀….’
그러나 양여옥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당장 지금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갑자기 달려들어 기수의 품으로 파고들어 와락 안겼다.
“야, 양소저….”
“안아주세요.”
별채에 눈을 시퍼렇게 뜬 여덟 명의 사매와 자영이 있지만 오는 여자 막지 말자는 신조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이 양여옥을 안아야만 했다.
기수의 팔에 힘이 들어가자 양여옥은 신음을 토했다.
기수 입장에서도 신음이 나왔다.
그녀와 잠자리를 한 게 워낙 오래전 일이다 보니 처음 만난 여자처럼 온몸의 세포들이 흥분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키 160 정도라 품에 쏙 들어왔고, 아투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새하얀 피부,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은 가슴의 팽팽한 압박감이 기수를 흔들었다.
기수는 그녀를 내려다 봤고, 양여옥은 그를 올려다 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술을 찾았다.
‘아, 놔…. 이러면 안 되는데…’
기수는 키스 한 번만 찐~하게 하고 그녀를 보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키스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고, 혀까지 엉키기 시작했다.
양여옥의 가빠지는 호흡이나 매달리는 밀착감을 통해 그녀가 상당히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쩌지? 그냥 확?… 아냐….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사매들이 눈치 챌 거야.’
기수가 망설이는 중에도 양여옥은 점점 더 뜨겁게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