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8
기수와 장무검이 마주 서자 공주와 사매들은 황제 옆으로 가서 그를 호위했고 혈천제와 조민, 조현 등은 뒤로 물러서서 각자 내공을 끌어올리고 대기했다.
기수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언제라도 뛰어들 각오였다.
수로맹 수적들은 멀찍이 뒤로 비켜섰는데, 수로맹 배들 중 가장 큰 배라고 해도 갑판 위 공간이 충분히 넓지는 않았다.
돛대와 각종 밧줄들이 얽혀 있어서 더욱 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장소 제약의 불편함은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
기수와 장무검은 서로를 노려보며 집중할 뿐 주변 여건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장무검의 장검이 웅웅~ 거리며 울고, 기수의 대도가 찌이잉~ 거리며 우는 굉음이 구경꾼들의 귀를 자극했고,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기수는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전율을 만끽하며 내공 흐름을 한 차례 조율했다.
그리고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지에 집중했다.
이 정도 레벨의 대결에선 기술적인 면보다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대 천마교 교주로부터 배운 바 있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장무검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적의 고수들이 총 집결된 배 위에 올라왔으니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끌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는 대도를 휘둘러 그를 맞았고, 쌍방의 무기가 격돌했다.
진기 머금은 도와 검은 불꽃을 튕기면서, 정말 천둥 같은 굉음을 쏟아냈다.
수로맹 수적들 중엔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누각 위에서 대결을 구경하던 황제와 대신들도 낯빛이 창백해졌다.
단지 소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0합, 20합… 격돌이 반복될수록 뿜어져 나온 검기와 도기 때문에 갑판과 돛대 등의 구조물에 베인 자국들이 생겨났다.
공주는 황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켜 황제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라도 부황이 검기에 베일까봐서였다.
기수는 손바닥에 전해지는 강력한 충격을 통해 자신의 내공 증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싸울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는 정말 암담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상대의 놀라는 표정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민아, 현아. 고마워!’
자신에게 오행류 상생순환보다 효율 좋은 음양대법을 제공해줄 수 있는 파트너는 그들 뿐이었다.
“으아아아!….”
대결이 뜻한 대로 전개되지 않자 장무검이 괴성을 지르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기수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나의 내공이 더 깊다는 사실은 잊어야 한다. 그건 도움이 안 돼.’
기수는 좀 더 침착하게, 좀 더 치밀하게 초식을 전개했다.
그리고 한 순간.
쨍! 소리와 함께 부러진 검 조각이 하늘로 날아올라 한참을 날아가더니 강물에 풍덩! 빠져버렸다.
수적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장무검이 반 토막 난 검을 든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던 것이다.
기수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이겼다!’
벅찬 환희에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장무검이 억눌린 어조로 말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후후… 인정하기 어렵겠지.”
“어떻게 내 검이 부러질 수 있지? 그 칼에 무슨 장치라도 한 건가?”
기수는 피식 웃었다.
진기가 잔뜩 주입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기 자체의 강도나 예리함은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파워와 파워의 대결에서 우열이 갈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떼쓰듯 딴소리를 하는 장무검이 가소로웠다.
기수는 대도를 옆으로 던져놓고 양손을 깍지 껴 우드득! 소리를 낸 후 말했다.
“무기 탓하는 걸 보니 너도 아직 멀었구나.”
장무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와 맨손으로 싸우겠다고?”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반 토막 난 검이지만 진기를 잔뜩 주입한 후 망설임 없이 기수를 공격했다.
기수는 냉소를 지은 후 양손에서 파천강기를 발출하여 장무검의 검을 맞았다.
대도를 사용할 때에 비해 내력소모가 급격히 많아졌지만, 기분은 오히려 업되서 의욕이 넘쳐흘렀다.
“미안하지만, 넌 상대를 잘못 만났다.”
기수의 말에 장무검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웃기지 마라!”
“모짜르트를 만난 살리에리의 좌절이라고나 할까?”
“무슨 헛소리냐!”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데, 네가 만난 적은 잠깐 못 본 사이에도 일취월장하는 천재이면서 동시에 노력하고 즐기기까지 하니 어떻게 상대가 되겠냐?”
“개수작 마라!”
장무검의 공격이 파상적으로 이어졌다.
기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초식에 집중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대의 강함을 알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행류 기술들은 쓰지 않고 파천강기 끌어올린 양손으로 분광권만을 펼쳐냈는데도 장무검의 검초들을 모두 막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50여 초를 교환한 이후.
마침내 기수의 손이 장무검의 손목을 찔렀다.
“크악!…..”
손목에 구멍이 난 장무검은 검을 놓치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넌 내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으으…. 어서 날 죽여라!”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살려두기엔 너무 불안정해. 검종의 후인이면서 다른 무공에 욕심을 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러나 기수는 선뜻 손을 쓰지 못했다.
사도였다면 이렇게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죽이고 봤겠지만, 그가 환우구종 중 하나인 검종의 전인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검술만큼은 꽤 괜찮은데…’
무학에 깊은 성취를 이룬 입장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기수가 망설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자 장무검은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기수조차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뭐야. 이놈 음공도 익혔나?’
그러나 어떤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음량이 클 뿐이었다.
장무검의 광소는 걱정이 될 정도의 볼륨으로 계속 이어지다가 돌연 뚝!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가 쿵! 소리를 내며 갑판에 쓰러졌다.
기수는 비로소 그의 웃음이 자살의 한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울분과 분노로 기혈이 역류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광소로 역주행을 더욱 가속시켜 스스로 주화입마에 들어간 것이다.
“죽을 때도 성질대로 더럽게 죽는군.”
자기가 패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는 장무검의 시신을 발로 한 대 툭! 차줬다.
척회왕은 고수로 인정하면서 자기한테 진 건 자존심의 상처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기분이 살짝 나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답게 죽는 방식이란 생각도 들었다.
“와아아!…..”
수로맹 식구들이 한 템포 늦게 함성을 질렀다.
기수의 승리를 축하해 주는 환호성이었다.
황제가 누각 아래까지 내려와 기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과연 대단하군! 정말 믿음직스럽네.”
“부끄럽사옵니다.”
기수는 겸양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승리의 쾌감을 모두 감추지는 못하고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황제뿐만 아니라 수로맹주와 문무 관원들도 다들 한 마디씩 했다. 기수와 장무검의 대결은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경천동지할 대격돌이었던 것이다.
황제가 물었다.
“경이 있으니 바로 북경까지 가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척회왕이 나선다면 얼마든지 맞아 싸워주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과인이 듣고 싶던 말이로다.”
황제는 기분 좋게 웃었다.
기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장무검과의 대결은 그에게 든든한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분명한 힘의 차이를 느꼈는데,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짧은 기간에 그것을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기세라면 척회왕이라도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모하게 도전할 이유는 없겠지만, 만약 그가 덤빈다면 기꺼이 나서서 싸워줄 생각이었다.
황제 및 대신들에 둘러싸여 한참을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기수는 따로 사매들과 천마교, 태무신궁 여인들을 만났다.
공주가 기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예전과 달라졌어.”
그러자 탁지연이 말했다.
“맞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굉장한 기세였어요. 궁주.”
사매들도 다들 동감을 표했다.
그녀들은 기수의 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무공에 대해서도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못 본 사이에 갑자기 한 단계 더 강해진 고수가 된 것이다.
기수는 미소 지으며 조민, 조현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비종 덕분이야.”
“아! 그렇다면… 그…. 대법…”
“맞아. 내가 원래 비종으로부터 배운 거라서 진짜 정통으로 연공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러자 공주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도 열심히….”
“그건 그렇기는 한데… 비종의 대법 중엔 5대5인 효율을 9대1로 바꾸는 비법이 있거든. 그 덕분에 내 내공이 딘기간에 깊어진 거야.”
“아! 그, 그런 비법이…”
물론 그것은 비종의 비결이 아닌 기수 본인의 북궁심법이지만 비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기수는 양측의 표정을 살핀 후 물었다.
“나 내보내고 한 얘기는 어떻게 됐어?”
“뭐, 그냥….”
공주는 머뭇거렸다.
원래 그녀는 비종을 쫓아내고 싶어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사매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제국의 공주인 그녀라면 좀 치사하긴 하지만 신분과 지위로 눌러서 그 일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수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 쓰러트린 게 척회왕이었다면 몰라도, 그가 아직 건재한 이상 기수를 고수로 만드는 음양대법의 원조를 내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얘기했어.”
기수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정말이야! 아! 잘 됐다. 나 앞으로 열심히 할게. 절대로 부족함을 느끼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나를 믿어. 하하하!…”
노골적인 얘기라 여인들 모두 볼이 붉어졌다.
기수는 슬그머니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오랫동안 못 만났지? 진무한테 배를 마련하라고 할 테니까 잠시 옮겨 타는 게 어때?”
지난번에 남경에서 파양호까지 가는 동안 사매들이 황제 때문에 긴장해서 전혀 기회가 없었던 사실이 기억났다.
다른 배로 가자는 제안에 과연 사매들 눈빛이 변했다.
혈천제와 조민, 조현은 자기들 있는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게 살짝 기분 나빴지만 어쩌겠는가. 기린궁 궁주가 자기네 사매들과 만난 것이고, 숫자도 저쪽이 많고, 또 공주까지 있는데…
공주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안 돼! 부황폐하를 옆에서 지켜야 돼.”
“2교대 하면 돼지. 어때? 콜?”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아투사가 뒤쪽에서 수줍게 한 마디 했다.
“나. 1조.”
그러자 사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저마다 자기가 1조에 속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결국은 탁지연이 제비를 만들어서 2개조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1시진씩 맞교대.
기수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조민과 조현을 보고 긴장한 그녀들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매들도 자극을 받았기 때문인지, 오래 굶었기 때문인지, 전에 없이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대쉬해 왔다.
특히 2위 자리에 욕심이 많은 아투사는 자신의 특기를 너무 심하게 어필해서 호흡 곤란 상태로 잠시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기수도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공주와 탁지연이 조민, 조현과 비교해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무인도 질문을 한 번 더 꺼내보았다.
‘민아, 현아, 예림, 지연, 혈천제의 다섯 명과 아투사는 도저히 한 명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 여섯 명이라…’
무림맹 쪽에도 고르고 싶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무인도에 너무 많이 데려가면 식량 문제도 있을 것 같고, 하느님도 7일 째는 쉬었다는데 여섯 명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 줄일 수도 있을까?’
그건 진짜 힘들 것 같았다.
물론, 그런 것들은 상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8명 맞교대조와 5명 마종, 비종 통합조 사이를 오가며 모두가 만족하도록 공평한 사랑을 베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