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09
03113 3113화
그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걸 뻔히 보면서도 태수는 닥터 이작손에게 요청했다.
“이작손, 5분만 주십시오.”
“내가 부탁하고 싶은 말이야. SO2가 떨어지는 걸 보니까 폐 속의 혈전이 굳어지는 거 같아.”
“걷어야 합니까?”
태수가 눈빛을 번뜩이며 묻자 닥터 이작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일단 와파린을 투여해서 반응부터 확인하자고. 지금 폐를 열자는 건 다 죽자는 소리니까.”
“알겠습니다. 수치 변화 확인되면 사인 주십시오.”
“콜. 자, 그럼…….”
스윽.
닥터 이작손은 아예 등을 돌리고 각 기계 수치들에만 집중했다.
태수의 시선은 다시 닥터 오즈마에게로 향했다.
빤히 바라보자 닥터 오즈마는 시선을 마주하다 슬쩍 피했다.
그걸 본 태수가 먼저 말했다.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신 건 아닐 겁니다.”
“도착 시간이 각각 달랐어. 이렇게 다 모인 건 3시간도 되지 않아.”
“가장 먼저 누가 도착했습니까?”
태수가 조금 심도 깊게 묻었다.
의료에 있어선 서로 진실만을 말하는 성격들이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믿음이다.
그 신뢰대로 닥터 오즈마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
“그때부터 심정지가 몇 번 왔습니까?”
“……안 세어 봤어.”
닥터 오즈마의 말이 끝나자 루미에 간호사가 대신 말했다.
“제가 30분 후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최가 도착하기 전까지 20번 정도 심정지가 있었어요.”
“대략 30분마다 한 번씩 심정지가 왔다고요?”
“시간이 갈수록 잦아졌어요.”
셈법이 잘못됐단 소리다.
그녀도 거짓말을 할 성격이 아닌지라 태수의 눈은 더욱 크게 떠졌다.
심정지를 되살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도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도가 엄청날 터였다.
거기다 교대할 인원도 없다.
20번이 넘는 심정지를 되돌리고 또 되돌려 지금까지 버텨 온 건 순수 이들의 노력이었다.
태수는 그제야 뭔가 이상했던 부분의 정체를 직감했다.
그때 정민수도 눈치챘는지 먼저 말해 왔다.
“어쩐지 수술 진도가 너무 더디다 싶더니…….”
“나갈 수가 없었던 거였어. 맞죠?”
태수가 뒷말을 덧붙여 묻자 닥터 오즈마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거지.”
“……푸우.”
태수의 입에서 진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시간을 심장과 실랑이를 했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때 닥터 오즈마가 조용히 덧붙여 말했다.
“닥터 보스만이 심장 쪽에 조예가 있어서 가능했어. 피는 못 속인다더니, 그의 아버지인 닥터 말디니 같단 소리도 들었고.”
“듣다니요? 그리고 오즈마하고 닥터 말디니는 활동 시대가 전혀 다를 텐데…….”
태수의 말이 끝나기 직전 친숙한 목소리가 마취의 쪽에서 들려왔다.
-닥터 최가 그걸 어떻게 알지?
헉!
깜짝 놀란 태수는 번개같이 TV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제임스의 얼굴이었다.
그럼?
“여기 상황만 중계하는 게 아니라 음성 지원도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겠지.
“아…… 그랬네요.”
그제야 태수는 흐트러진 퍼즐을 모두 맞출 수 있었다.
제임스와 스미스가 실시간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면 여러 변칙적인 상황들을 대처한 게 무리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나가 더 필요했다.
그들의 조언을 두 손으로 풀어내 환자에게 적용할 의사였다.
닥터 오즈마는 아니다.
그는 외과에 특화되어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왔다. 갑작스러운 흉부외과적 응급처치는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낸 인물은 다른 의사가 분명했다.
자연스럽게 태수의 시선은 닥터 보스만에게로 향했다.
그때 스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닥터 보스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어. 어딘가 익숙하다 싶은 움직임이 보여서 물으니 닥터 말디니 아들이었을 줄이야…….
스미스는 닥터 보스만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듯했다.
앞서 제임스도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카프레네의 기억 속에도 있는 인물이었다.
오래전에 작고한 인물인데도 모두가 기억하는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한 실력자였다고 추측됐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태수는 닥터 보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20여 번의 심정지를 이겨 낸 의사.
그의 노력이 카테리아나를 지금까지 숨 쉴 수 있게 했다.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의무감으로는 해낼 수 없다.
심정지가 두어 번 반복적으로 일어나도 대부분 절망하기 마련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았단 건 환자를 향한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단 뜻과 같았다.
태수는 진심으로 존경 어린 시선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 자세히 대화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는 전했다.
“그때 약속 확실히 지키셨습니다.”
“닥터 최가 이뤄 온 일들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그럼 그 내기는 진행형으로 놔두죠.”
“진행 중입니다. 쉽게 결정이 날 수가 없죠.”
그 약속이란?
서로 더 뛰어난 의사가 되겠단 경쟁을 의미했다.
닥터 보스만은 평생 경쟁하잔 의미를 은연중에 내비쳤다.
무엇보다 진솔하고 겸손하게 변한 모습이 좋았다. 확실히 밀라노에서 만났을 때와 많은 게 변했다.
선의의 경쟁 상대라면 태수는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경쟁에 목을 맬 때는 아니었다.
확실한 건 카테리아나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명을 유지했는지 그 과정을 알게 됐단 거였다.
이건 무척 중요했다.
모든 일은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시작이 어디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확실히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카테리아나의 상처는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마음이 급하다고 무턱대고 진행할 수 없었다.
태수가 갑자기 수술을 멈춘 이유도 같았다.
‘확실히 짚고 가자.’
그 마음은 태수만 가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태수와 여기 의사들, 그리고 TV 속 제임스와 스미스까지 서로 짧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현재 상황으로는…….”
-그건 닥터 최 말이 옳아. 그쪽으로 접근해서…….
“두 분 말씀도 동의합니다만, 제 생각엔…….”
“오즈마, 그건…….”
각자 머릿속에 그린 그림들을 엎치락뒤치락 내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수술대엔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만 서 있었다.
“결국 우리끼리입니다.”
“억지로 끌고 갈 순 없으니까요.”
“우리끼리는 아니지. 이작손은 있잖아요.”
한국어로 작게 대화를 나눴다.
수술실은 텅텅 빈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른 의료진들은 모두 밖으로 밀려났다. 수술 도구를 쥔 손이 떨릴 정도로 지친 상태라 밀어내는 게 옳았다.
닥터 이작손과 보조해 줄 간호사는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구성이 갖춰진 건 아니었다.
닥터 오즈마가 닥터 브란트 등 EU에서 선별한 의사들에게 한 번 더 참여 의향을 물었다.
역시 그들은 부담스럽단 입장이었다.
그 소리에 닥터 오즈마가 대노해 펄쩍 뛰기도 했다.
그러나 태수와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예 관심을 접었다.
지금 정신을 분산시키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사실 이들의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건 세 사람 말고 아무도 몰랐다.
수송기로 이동 중인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진 무조건 감춰야 할 비밀이다.
“…….”
“…….”
끄덕.
고요한 가운데 고갯짓으로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시작할 때를 기다렸다.
그 시간은 짧았다.
삐비빅! 삑삑삑, 삑!
ECG의 소리가 달라졌다.
이어서 닥터 이작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SO2 올라갔으니까 시작해도 돼!”
기다렸던 사인이다.
그 순간 태수와 정민수의 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견갑골부터!”
“알고 있어.”
“메스, 가릅니다!”
스윽!
날카로운 메스가 울퉁불퉁하게 굴곡이 생긴 부분을 순식간에 갈랐다.
뭉쳐 있던 출혈이 흘러나왔다.
와파린의 영향 탓일까?
주르륵.
점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힘없이 흘러나왔다.
그걸 본 태수가 닥터 이작손에게 요청했다.
“혈액 응고제!”
“그럼 폐가 막혀!”
“그럼 뚫으면 됩니다. 지혈이 우선입니다!”
“으음…… 일단 알았어!”
닥터 이작손은 얼른 간호사와 함께 손을 움직였다.
수술대는?
콰륵콰륵. 척, 척!
썩션 등을 이용해 출혈을 빠르게 걷어냈다.
그런데 태수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이유를 정민수가 한국어로 말했다.
“이작손은 확실히 자기주장이 심해.”
“나도 이럴 땐 닥터 서가 더 보고 싶네요.”
김혁권이 한마디 거들었다.
태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닥터 이작손은 분명 훌륭한 마취의다. 그러나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던 게 역시 화근으로 작용했다.
이제 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대타가 없다는 건 나중 문제다.
닥터 이작손만큼 유동적으로 전신 관리를 할 실력자를 이제 와 수배할 수가 없었다.
태수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일단 어느 정도 맞춰 가도록 하겠습니다.”
“후발대 도착 전까지만.”
“물론.”
태수는 그 부분에 적극 동의했다.
현실적으로 이작손이 서영우보다 실력은 낫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서영우가 훨씬 더 신뢰가 가는 건 당연했다.
결론을 내리자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의 손길이 더 빨라졌다.
어떤 변수도 지금 이들의 앞길을 막을 순 없었다.
세 사람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동시에 서로를 향해 강한 어조로 오더했다.
“민수, 거기 걸고 당겨!”
“끙, 당겼어!”
“그대로 유지. 김 간호사!”
“알아서 움직인다니까!”
휙, 척.
수술 도구가 쉼 없이 교체됐다.
견갑골이 완전히 부서져 조각이 난 상태였다.
그 아래는 바로 폐다.
폐는 조직이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약하다. 무엇보다 이미 갈비뼈 조각이 파고들어 상처가 난 상태였다.
그러니 더욱 뼈 한 조각을 빼내는 일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런 수술대보다 닥터 이작손의 반응이 더 예민했다.
하나씩 뼛조각을 빼내는 사이 갑자기 막아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스톱!”
“네?”
“기다려. 혈압이 내려갔어.”
“……알겠습니다.”
태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멈췄다.
흥이 오르는 도중 막혀서 그런지 기운이 살짝 빠지는 느낌이었다.
정민수와 김혁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도 없는데…….”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선 웬만한 문제는 넘어가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강하게 당긴 텐션이 언제 느슨해질지 모른 탓이다.
그렇다고 닥터 이작손의 문제 제기를 가볍게 여길 순 없었다.
이 수술에서 이미 여러 번 심정지를 경험한 마취의였다.
예민함은 이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달아오르려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건 살짝 맥이 풀리는 일이었다.
TV는 꺼져 있었다.
그건 수술에 더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중계가 종료된 건 아니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수술실에 설치된 카메라로 이쪽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걸 잘 아는 김혁권이 한국어로 물었다.
“제임스와 스미스 눈엔 어떻게 보일까요?”
“닥터 이작손이 좋아서 멈추게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기다려보세요.”
태수가 차분하게 조언했다.
김혁권은 고개만 끄덕이며 답답한 마음을 쓴 미소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