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17
03121 3121화
태수는 그 점을 일부러 강조했다.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포지션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네.”
“우리의 고된 하루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렁찬 인사가 수술실을 울렸다.
그리고.
번쩍!
모두의 눈빛이 동시에 빛났다.
이어서 각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 선생, 오래 기다렸지? 바로 가자. 신장하고 비장!”
“역시 거기였나? 좋아. 이 혈전 덩어리들아, 한국의 특급 외과 의사 유병태 손이 얼마나 매운지 기대해!”
“기대는 나중에 하라고 하고, 이쪽!”
“에라이, 폼 좀 잡나 했더니. 그래. 이게 우리 스타일이지. 간다고, 가!”
휙휙.
태수와 유병태가 오랜만에 마주 보고 움직였다.
적극적이다 못해 저돌적이었다.
“여기, 썩션!”
“이쪽도 출혈. 거즈 먼저. 지혈제는 나중에!”
“썩션 위치 좋고. 더, 더, 더 흡입하세요. 옆으로 살짝 틀고……. 유 선생, 가운데 혈전부터 제거해!”
“와우, 씨! 진짜 커도 너무 크다. 그런데 여기 신장 살릴 수 있겠지?”
“나도 몰라. 그냥 앞만 봐.”
“에라이. 그래, 앞만 보자!”
태수와 유병태는 더 거칠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몸이 지쳤단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시작부터 이 순간만 살아간단 심정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수술대 전역에 가득했다.
특히 흉부에 자리 잡은 박성민이 후배들을 몰아쳤다.
“나보다 손 느린 놈들은 끝나고 내 손에 죽는다!”
박성민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정민수가 거칠게 한 소리 했다.
“선배, 거기 붙들고 있지 말고 옆으로 좀 옮기세요!”
“이 자식, 합당한 오더 접수. 이쪽?”
“네, 거기요. 그리고 어시스던트 하시려면 수술 도구를 바꾸시고요.”
“……그건 아니거든? 내가 순순히 밀려날 성싶으냐? 좋아. 그래! 오늘 아주 날 한번 잡아 보자!”
휙휙.
박성민의 손길이 눈빛만큼 거칠어졌다.
그만큼 정민수도 힘을 냈다.
완전히 불이 붙어 버린 두 사람의 손놀림은 마치 싸우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팀은 이기준과 도성민, 두 사람이었다.
조용하지만 의외의 한 방을 보여 주는 조합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도 선생, 거긴 나중에 하고 이쪽으로 와.”
“딱 봐도 여기가 먼저잖아.”
“……안경 쓰자.”
촌철살인을 날린 순간 도성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여기 봐 봐. 자,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중이니까 여기서…….”
“조용히 말해도 들려……. 여기부터라고?”
스윽.
이기준은 자연스럽게 수술 도구를 옮겨 갔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더 옳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도성민은 분명 원하는 대로 진행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얼굴은 시뻘겠다.
“와, 이 팀장 진짜 뻔뻔하다!”
“지금 내 낯짝 두께보다 여기 폐를 찌른 뼈 두께하고 깊이가 더 중요한 거 같은데?”
“푸우우! 나 얘랑 안 맞는다니까 왜 자꾸 얘랑 붙여!”
“나도 좋아서 붙어 있는 거 아니라니까. 뭐 해? 내가 잡았으면 빨리 도와줘야지.”
이기준의 목소리는 한 번도 높아진 적이 없었다.
거기에 쏟을 에너지를 아껴 손을 한 번 더 움직이겠단 각오였다.
도성민은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응급에 있어선 마음껏 화를 내고 감정을 표현할수록 손길이 빨라진다.
어쩌면 그런 자신의 장점을 위해 일부러 화를 내는지도 모른다.
김혁권과 보조하는 간호사들은 무신경했다.
“자, 여기 받으시고.”
“당길게요.”
“여기 썩션하고, 거즈요.”
“식염수 뿌려요.”
의사들 움직임에 맞춰 재깍 보조했다.
그런 간호사들의 얼굴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이젠 달관한 모습들이었다.
수술실 내부는 수술 시작과 동시에 순식간에 목소리가 가득해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출혈이 시작되자 ECG와 수술 기계들 수치가 출렁거렸다.
서영우와 공우혁, 노지연 간호사의 신경은 급속도로 날카로워졌다.
공우혁이 참다 못해 버럭 소리쳤다.
“거기 수술대, 좀 조용히 합시다. 서 선생님이 옆에서 말씀하시는데 안 들린다고요!”
“그럼 더 가까이 다가가든가!”
박성민이 울컥한 반응을 보이자 바로 서영우가 나섰다.
“박 팀장, 뭐라고요?”
“지금 여기 상황이 조용히 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는 온갖 소리 때문에 환장……. 젠장! 공 선생, IV 확인해 줘. 노 간호사, 준비한 거 빨리!”
서영우는 나무라지도 못하고 오더로 전환했다.
삐비비빅!
ECG의 소리가 다급함을 넘어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까지 빨라진 탓이다.
원인은 결국 출혈이다.
방어해야 할 입장인 서영우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 인간들은 평생동안 피랑 무슨 원수를 졌나!”
그런데 그 정도로 끝이 아니었다.
울컥한 짜증도 길게 이어 갈 수 없었다.
각종 수치들이 비정상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젠장!”
휙휙!
그는 빠르게 수술 기계들을 사이드 스텝으로 오가며 환자에게 힘이 되어 줄 약을 투여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얼마나 흘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도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해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거기 잡아!”
“이쪽에선 안 돼! 병태!”
“난 몸이 두개냐!”
“일단 지원부터 와!”
우당탕.
좋게 말해 자유로운 모습이었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난리법석이었다.
처음엔 흉부와 복부의 경계가 선명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자리가 뒤섞이고, 손이 여기저기 뻗어 갔다.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도 응급수술이 이뤄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분명히 있었다.
춤을 추던 카테리아나의 바이탈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난 후.
수술실 분위기가 한결 안정적으로 변했다.
중간에 뒤섞였던 의료진들은 어느새 처음과 같은 포지션상에 서 있었다.
다급한 일들이 해결되자 원래 자리로 돌아가 마무리하는 거였다.
“진짜 황당해.”
공우혁이 지켜본 소감을 뇌까렸다.
험담이 아닌 가장 진솔한 소감이었다.
그사이 달라진 카테리아나의 바이탈은?
삐비빅. 삐비빅.
ECG의 소리와 그래프가 알려 주고 있었다.
처음보다 상당히 좋아졌지만 완전히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한 건 한 고비를 넘었단 점이다.
그런데 이 순간 기분 좋아야 할 태수와 유병태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유병태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왼쪽 신장은 그 난리를 쳤는데도 결국 못 살렸네……. 빌어먹을.”
“대신 비장은 살렸잖아. 반대쪽 신장도 살아 있고.”
“나도 알지. 아는데 기분이 그러네.”
유병태의 시선이 밧드로 옮겨 담은 왼쪽 신장으로 향했다.
시야를 어지럽히던 혈전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내부에서 패혈증으로 괴사가 일어나 기능이 정지됐다.
“젠장.”
꽉!
유병태가 빨갛게 물든 양손에 주먹을 꽉 쥔 채 무겁게 부딪쳤다.
태수는 그런 유병태를 쓴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혈질에 감정 변화도 심하지만,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팀 내 최고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지금 유병태는 감성적으로 접근한 거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평가는 180도 달라진다.
태수는 그 반대급부에 대해 말했다.
“들어낸 신장이 패혈증을 정통으로 얻어맞으면서 다른 장기들은 무사할 수 있었어.”
“나도 알지. 그런데…….”
“그래. 나도 살리고 싶었어. 같이 노력도 했고. 그런데 이번엔 도리가 없는 걸 어째.”
“팀장한테 뭐라는 거 아니잖아.”
“알아.”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 주둥이가 싫어서 그런 거지……. 됐어. 이쯤 하자.”
유병태는 안타까움을 털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태수도 더는 여러 말 하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를 계속 언급해 봐야 마음만 쓰렸다.
그래서 흉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과 두 뼘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라 등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밀한 부분까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두 팀에게 물었다.
“다들 어떻습니까?”
태수의 물음과 동시에 옆에서 박성민이 말했다.
“끊어진 관상동맥은 보다시피 우선 인공혈관으로 연결해 놨어.”
“폐도 굵직한 뼛조각은 다 빼냈……. 흐음, 빼냈고.”
정민수가 보고하는 도중 잠깐 숨을 골랐다.
스윽.
의아함에 바라본 태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괜찮아?”
“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훗, 그럼 정상이겠냐?”
휙휙.
정민수는 별거 아니란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런데 그 손길에도 썩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반대편에서 도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도 얼추 비슷한데 문제가 하나 있어.”
“어떤 문제?”
“횡격막 근처 대동맥에 대동맥류가 발견됐어.”
그 소리에 태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언제 생긴 거야?”
“모르지.”
“그럼 크기는?”
“아직 작아. 계속 출혈이 있어서 커질 틈이 없었겠지.”
“그렇겠네. 그건 어떻게 할까?”
태수는 차분하게 물었다.
대동맥류 자체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응급처치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걸 알면서도 달려들지 않고 의향을 묻기부터 했다.
그때 서영우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최 팀장, 그거 건드리지 마. 지금은 건드리면 안 돼!”
“……역시 그렇죠?”
“그래! 진짜 폭탄이야. 지금 터트리면 수습 못해. 내가 직접 보고 하는 말이니까 절대로 건드리지 마.”
서영우의 목소리가 얼마나 빠른지 랩하는 듯했다.
그만큼 강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태수는 반대로 무척 차분하고 묵직하게 말했다.
“네. 안 건드립니다. 진정하세요.”
“후우……. 건드리려면 최소 1시간은 있어야 해. 그 전엔 환자가 못 버텨.”
“그럼 다음 팀에게 인계해야겠네요.”
“그래. 그래야 되니까 아예 신경 쓰지 마. 진심이야.”
서영우는 누차 강조했다.
대동맥류를 본 태수의 반응이 어떨지 훤히 그려지는 모양이었다.
정작 태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처음 패킹한 간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도 지금은 놔두는 게 좋을 거 같아.”
“역시 그렇겠죠?”
“그래. 우리가 너무 들쑤셔 놨어. 물론 그래서 좋아지고 있지만, 계속 자극을 줘서 좋을 상황이 아니야.”
서영우는 한결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수술도 밀당이 중요하다.
무조건 몰아붙이면 환자가 이겨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게 진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마취의 역할이 중요한 거였다.
태수는 물론 팀원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껏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듯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응급수술을 진행하는 내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른 쪽 진행 상황을 보며 자신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함이었다.
수술팀의 호흡은 그 강약 조절이 얼마나 유동적으로 이뤄지는지가 관건이었다.
VWD 수술팀이 의학계에서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이유도 같았다.
천천히 둘러보자 팀원들 모두 같은 의견인 듯했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체력과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그래도 다들 서 있긴 했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까지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정신력들이었다.
하지만 그 정신력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