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EPISODE.18
그런 이유로, 휴버트의 마차에 옮겨 탄 러셀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입을 쩍- 벌렸다.
“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
단색에 크기만 커다란.
그리 특별할 것도 없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외형과는 달리, 드러난 내부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고급스러웠다.
앞뒤로 위치한 좌석은 무슨 재질로 되어 있는 것인지 푹신하기 그지없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마치 뛰어난 장인이 만든 침대를 연상케 할 정도다.
‘아니, 실제로 침대라고 불러도 무방할지도.’
형태만 좌석의 그것을 하고 있을 뿐.
그 폭은 장신인 러셀이 몸을 누이고도 한 뼘가량이나 남을 만큼 길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상정이라도 한 듯, 좌석 한 켠에는 침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염탑 소속 마도사의 재력이라는 거겠지.’
하긴, 수도에 번듯한 저택까지 소유하고 있을 정도니, 이 정도는 그리 대단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새삼 휴버트의 재력에 감탄하며 러셀이 좌석에 앉았다.
전투의 피로감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자신의 몸을 푹신하게 감싸는 촉감이란.
척-.
그런 그의 반대편에 휴버트가 다리를 꼬며 앉았고, 러셀이 물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 계셔야 할 사형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하니 자신을 좇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굳이 좇아오는 게 아니라 동행을 했더라도 충분했을 테니.
‘나에게 말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던 상황. 게다가 이런 밤중에 급하게 이동을 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긴급한 호출이 있었다는 거겠지, 그리고-.
‘사형을 이렇게 급하게 호출할 만한 이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휴버트의 대답은 러셀이 추측했던 것과 대동소이했다.
“갑작스럽게 스승님의 호출이 떨어져서 말일세.”
조금만 일찍 연락을 주셨더라면 자네와 함께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을.
아니, 뭐 이렇게 함께 가게 되었으니 상관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휴버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긴급하게 떨어진 호출인 만큼, 혹시 모를 상황을 상정해 모습을 숨기고 왕도로 향하는 중이었다네.”
“그럼 메시지 마법을 사용하신 것과 로브로 얼굴을 가리셨던 건 그래서…….”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지.”
무심하게 답변한 그가 러셀을 향해 상체를 조금 기울였다.
걱정스러운 기색을 담아 그의 전신을 가볍게 살피더니 말했다.
“일단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만. 사제가 방금 그 사교도 놈의 습격 말일세-.”
“알고 있습니다.”
“……?”
“아마도 저를 노린 거겠죠. 확신은 아니지만, 확률은 칠 할. 아니 그거보다 조금 더 높은 팔 할…….”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라는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휴버트를 향해 러셀은 자신이 추측한 바를 설명해주었다.
그리 길지 않은 설명이 모두 끝나고.
“음.”
잠시 침음을 흘린 그가 기울였던 몸을 바로 세운다.
“타당한 추측이로군.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지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요?”
“놈이 왜 사제를 습격했는지, 그에 대한 동기 말일세.”
덧붙여진 휴버트의 말에 러셀이 몸을 움찔, 떨었다.
마치 그가 놈의 동기를 알고 있다는 듯 말했기 때문이라.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십중팔구는 스승님 때문일 걸세.”
“스승님이라면…….”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와 관련된 내용을 떠올리던 러셀이 오래지 않아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회귀 전, 그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에서 읽었던 어느 구절이 떠올랐다.
-젊었을 적의 다리아 스노우화이트는,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어둠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교도들과 맞서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고, 근거지를 찾아냈으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모조리 박살냈다.’
그때 박살난 사교도.
놈들의 원한이 그녀의 제자인 자신에게까지 뻗친 상황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사교도라곤 하지만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닐 걸세.”
“……?”
“진짜 거물급의 사교도였다면 이런 식으로 경거망동하여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지.”
아마도 놈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잔챙이의 소행일 것이야.
휴버트가 덧붙인 말대로, 언데드들은 수만 많았을 뿐.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하위급 언데드들이었고, 그 소재라고 해봐야 평범한 사람들의 뼈나 하급 몬스터들의 사체.’
만약 승객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만 아니라면, 진즉에 돌파하여 자리를 벗어났을 것이다.
놈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승객들을 잡아두는 방식으로 물량전을 걸어온 것이고.
“실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손속은 잔혹하고 수를 좀 굴릴 줄 아는 놈이라는 거군요.”
“대게 사교도들이라는 것이 그렇지. 비열하면서도 저열해.”
그가 콧방귀를 뀌며 경멸과 함께 냉소했다.
이미 몇 번이나 사교도들과 붙어본 적이 있는 듯한 태도라.
“문제는 사제의 행적이 어디서 누설되었느냐라는 점이로군.”
말꼬리를 흐리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졸업 이후의 행적에 대해 아카데미 내에서 따로 말을 한 적이 있는가?”
그 물음에 러셀은 일말의 고민조차 가지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없습니다. 사형.”
아카데미 내에서 딱히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이도 없었다. 그런데 행적을 노출했을 리가.
행적을 알린 것이라면-.
“졸업 이후에 올라가겠노라고 염탑에 회신을 한 것 말고는…….”
러셀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선 염탑 내에서 정보가 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다행히도, 휴버트는 그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군.”
오히려 긍정하며 덧붙였다.
“그 외에 가능성을 논하자면- 졸업식에서부터 따라붙었다 정도의 가정인가?”
염탑 내의 정보 누설자.
상황에 따라선, 아니 몇 번을 고려해보더라도 후자의 경우가 훨씬 나으리라.
어쨌건 간에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인 것만은 분명했다.
“대놓고 움직였다 한 번 실패를 맛봤으니, 놈들도 한동안은 경거망동하여 움직이지는 않을 걸세. 하지만 조심하시게나.”
사교도라는 것들은 집요하여 언제든지 다시금 마각을 뻗쳐 올 수 있다는 경고.
“새겨두겠습니다.”
러셀이 표정을 굳히며 답했고,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언제까지고 마냥 조심하면서 움직일 수는 없을 거야.’
자신을 아무리 숨긴다고 하더라도분명 한계는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확실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나았다.
여기서 말하는 확실한 방법이란-.
‘실력을 키우는 거겠지. 좀 더 명확하게 하자면 5써클, 마도사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겠고.’
4써클이 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5, 6써클. 마도사의 경지는 상품의 재능에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일말의 운마저 따라주어야 가능한 경지.’
하지만 그렇기에 걸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운과 재능을 대체할 만한 미션과 그에 대한 보상이 있었으므로.
‘남는 것은 뼈를 깎는 노력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을 사교도 놈들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보다는 훨씬 걸어볼 만하다.
그런 각오가 러셀의 두 눈을 따라 출렁거렸다.
‘피하기보다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한 것인가?’
자신의 천형에 절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던 러셀의 집념과 끈기를 몇 년간이나 봐왔기에 읽어 낼 있었던 기색.
그 변화의 전조를 읽어내며 휴버트가 기껍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휴식을 취할 때겠지.’
이어 러셀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사제. 몇 시간이나 쉬지 않고 마법을 사용한 경험은 적을 테니, 분명 정신에 피로가 쌓였을 게야.”
마부에게도, 산길을 벗어나는 즉시. 잠깐 마차를 멈추고 잠을 청하도록 하라는 말을 전해둔 후.
그 역시 잠자리에 들려는 듯, 한켠에 있던 침구류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러셀 역시 잘 준비를 마쳤고, 이불 안쪽에 몸을 밀어 넣었다.
잠들기 전, 잠깐의 시간.
‘그런데, 그건 도대체 뭐였던 거지?’
전투 도중 겪었던 기현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무리해서 마법을 사용하려는 찰나, 갑자기 마력 양이…….’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집히는 것은 없었던바.
만약 그때와 비슷하게 상황을 재현해 본다면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습격이나 인질들까지 같을 필요는 없었다.
러셀이 하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지 트레이닝.
상상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집중력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을 통해 그때의 일을 재현하고 이해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것 역시도 비장의 한수로 사용할 수 있겠지.’
블레이즈 랜스와, 콜 라이트닝.
써클의 규격을 한껏 벗어난 두 마법 외에도, 그 위로 내놓을 수 있는 패가 하나 더 더해지는 셈이라.
물론 그걸 당장 시도해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휴버트와 같은 마차를 타고 있는 상황.
만에 하나라도 성공이라도 해버리면 마땅히 할 변명이 없었다.
‘시도를 해보는 건, 혼자가 된 후에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눈을 감았다.
확실히 정신에 쌓인 피로가 있긴 했던 것인지, 빠르게 졸음이 올라오고.
‘장시간 전투를 대비해……, 정신력의 용량을 늘리는 연습도 꾸준하게 해둬야겠어.’
몰려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한 러셀의 두 눈이, 몇 차롄가 끔뻑이더니 천천히 감겼다.
* * *
다그닥, 다그닥-.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성벽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서고, 창밖으로 왕도의 풍경이 비쳤다.
‘몇 년 후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건 없네.’
한번 봤기 때문인지, 처음 왕도에 올라왔을 때보다는 감회가 덜한 모습.
그런 그를 향해 옷매무새를 다듬고, 로브를 뒤집어쓰며 휴버트가 물었다.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바로 염탑으로 갈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먼저 짐을 풀 것인지를 묻는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일단 오늘은 사형께서 내주신 집엘 먼저 가볼 생각입니다.”
그가 왕도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은 이틀 정도 후.
하지만 고급마차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그 기간이 하루 반나절 정도 당겨진 것이다.
“그럼 일단은 여기서 이별이군.”
그렇게 말하며 휴버트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밖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며 말했다.
“나는 이대로 염탑으로 가볼 테니, 자네는 마차를 타고 저택에 가 있도록 하게.”
휴버트와는 그렇게 이별했다.
“이럇!”
직후 마부가 방향을 트는 소리가 들려온다.
휴버트에게 고용된 마부인 만큼, 이미 저택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오래지 않아 휴버트의 저택에 당도할 것인즉.
하지만.
‘그 전에 가볼 곳이 있지.’
그렇기에 러셀이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열었다.
말을 몰던 마부를 향해 물었다.
“저택으로 가기 전에, 한 군데 먼저 들릴 수 있겠습니까?”
“방향을 바꾸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어디를…….”
마부의 물음에, 러셀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한쪽 방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사각뿔의 형태를 한 건축물.
“루브리엄 박물관으로 먼저 부탁드립니다.”
왕도 루브리엄 박물관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