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로라 아가멤논의 수첩에 왜 캡틴 키드의 항로가 끼워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걸 궁금해하기보다는, 일단 항로를 보고 시스템에게 명령했다.
‘시스템 이 항로 분석해서 저장해 줘.’
[해도를 감지합니다.] [스캔 및 분석합니다.] [해도에 표기된 항로를 맵에 표기합니다.]지크는 캡틴 키드가 암흑해를 건널 때 썼다는 부서지지 않는 배인 트라이앵글과 그 항로를 모두 손에 쥔 셈이었다.
‘이것이 있다면 암흑해를 건너 최후의 탑으로 갈 수 있겠군.’
성왕은 최후의 탑에 마왕의 영혼이 봉인된 사자의 서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봉인된 상황에서도 마왕의 영혼은 끊임없이 사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마수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이 대체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스승인 듀크는 임무로 버려진 대륙에 갔다가 큰 트라우마를 겪고 흑색 기사의 경지를 잃을 정도였다.
듀크 같은 강인한 흑색 기사가 그 정도의 충격을 받은 곳이라면 상상 이상의 위험이 도사린 곳이라는 뜻이었다.
되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싶어 하지 않는 지크였지만 마왕의 영혼이 봉인된 사자의 서가 그곳에 있는 이상 미리 준비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지크는 캡틴 키드의 해도를 접어 둔 뒤 그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볼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그때 지크의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그는 진동을 일으키는 물건이 다름 아닌 이야기의 은자가 준 거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크는 품에서 거울을 꺼내 들고 얼굴을 비췄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안에서 이야기의 은자가 나타났다.
―“오! 다행히 받았네!”
설마 이런 식으로 연락이 되는 줄은 몰랐던 지크였기에 신기한 듯 거울을 바라봤다.
“그냥 말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그냥 편하게 말하면 된다. 너 이번에도 연락 안 받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말씀하신 대로 계속 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 우리 쪽 수장에게 연락이 왔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너를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하이랜더의 수장이 직접 만남을 요청한 것이었다.
‘마수들이 이전보다 더 난리를 칠 테니 하이랜더의 수장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유리할 것이다.’
하이랜더들은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한 명, 한 명이 마수 사냥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면 훨씬 유리할 터였다.
지크는 은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디서 만나면 되겠습니까.”
―“우리 수장이 좀 특수한 상황이라서 말이지. 번거롭겠지만 네가 직접 가서 봐야겠다.”
은자의 말을 들은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위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폭풍성이라고 혹시 아나?”
지크는 이야기의 은자의 말을 듣고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지금 폭풍성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폭풍성. 알고 있나 보네. 다행이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말씀하시는 폭풍성이 금역 지대 중 하나인 폭풍 해역 가운데 있는 바로 거기 말입니까?”
―“아주 잘 알고 있네. 맞아 거기야.”
은자의 말에 지크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제가 알기로는 그곳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금지 중의 금지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말했잖아. 우리 수장이 좀 특수한 상황이라고.”
아무리 봐도 ‘좀 특수한 상황’이라는 말로 표현될 정도가 아니었다.
지크는 이야기의 은자의 말에 어금니를 꽉 물고 말했다.
“……일단 그렇다 치고. 거기 어떻게 가면 됩니까. 폭풍 해역은 가는 배편도 없잖습니까.”
―“맞아. 배편이 없어서 우리도 갈 때 각자 나룻배 하나씩 빌려서 그거 타고 들어가.”
“예? 나룻배요?”
―“파도가 좀 치긴 하는데 어떻게든 가긴 가더라고. 너 정도면 별로 어렵지 않을걸?”
최대 금역지 중 하나를 마치 소풍 가듯이 말하는 은자였다.
지크는 더 말해 봐야 자신의 머리만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보죠.”
―“아, 그리고 반드시 일주일 안에 가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양반 못 봐.”
여러 가지로 조건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일주일이라.’
바로 출발한다고 해도 상당히 빡빡한 시간이었다.
지크는 은자와의 연락을 끊은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히 쉴 시간이 없군.’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새벽이 오기도 전에 곧바로 히모나스로 향했다.
* * *
히모나스로 돌아가니 대부분의 뒤처리는 끝난 상황이었다.
지크는 대기시켜 둔 적기사들을 삼지안의 권능으로 복속시킨 뒤 잡아 놓은 몽마들과 함께 뱀파이어들 쪽으로 보냈다.
마기를 풍기는 적기사들을 미케네에 둘 수는 없었기에 카르밀라에게 보내 은밀하게 숨겨 둔 뒤 필요할 때 불러서 적의 뒤를 칠 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당장은 비숍 캐스틱에 대한 문제도 천천히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지크는 알리시아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히모나스에 남아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라도 그녀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그를 편하게 놔두지 않았다.
“지크 드레이커, 그대는 히모나스의 친우이니 언제든 이곳에 오라. 북부는 그대와의 우정을 기억할 것이다.”
알리시아가 떠나는 지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크는 그런 알리시아의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어 맞잡았다.
서로 건틀렛과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지크는 살아 있는 알리시아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가 알리시아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맙군. 대공은…… 항상 몸을 조심했으면 좋겠어.”
그 말에 알리시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쓸모없는 말이로군.”
대력사의 혈통을 타고난 알리시아는 몸을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평생 느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크는 알리시아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꼭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알리시아 앞에서는 유독 감정적이 되는 지크였다.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히모나스를 떠났다.
길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옆으로 다가온 레이나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북부 대륙까지 구원했으니 구원의 기사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겠군.”
“소식지들은 그보다 나와 너의 혼인 소식을 더 궁금해할 것 같은데 말이지.”
지크의 느닷없는 말에 레이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호, 혼인이라니. 무, 무슨…….”
“투른의 가주님께 못 들었나? 가문에서는 나와 레이나 네가 혼인하기를 바란다더군. 아무래도 나이대가 맞는 순혈 드레이커는 드물 테니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혼인에 대해 말하는 지크의 말에 레이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알고는 있다. 하, 하지만…… 나는 아직 혼인 생각이 없다!”
“그런가. 다행이로군. 나도 그러니까 말이야.”
지크의 말에 레이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서운함을 느꼈다.
‘나랑 혼인하는 게 싫다는 건가? 아니면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레이나의 속마음은 모른 채, 지크는 폭풍성으로 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지크는 뒤를 돌아 펠릭스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펠릭스!”
지크의 부름에 펠릭스가 곧장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가 펠릭스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나는 여기서 곧장 아텐으로 갈 것이다. 네가 부대를 이끌고 미케네로 복귀해라.”
“아텐은 무슨 일로 말입니까?”
“그건 말할 수 없다. 미케네로 돌아가면 성의 방어에 집중해라. 혹여 적들이 우리의 본진을 칠 수도 있으니까 대비를 철저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지크는 펠릭스에게 명령을 내린 뒤 곧장 부케팔로스를 몰고 아텐 쪽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레이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펠릭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지크 경은 갑자기 어딜 가는 건가.”
“아텐으로 가신다 하셨습니다.”
“아텐? 갑자기 무슨 일로.”
“그건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주군의 명하신 대로 이제 미케네로 갈 생각입니다. 레이나 경께서는 투른으로 복귀하실 예정입니까?”
갑작스러운 지크의 이탈로 레이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예정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아니, 나도 미케네로 간다.”
“예? 레이나 경께서 미케네는 무슨 일로……?”
“그, 그러니까. 합동 훈련! 이번 기회에 흑검 기사단원과 함께 합동 훈련을 받으면서 나도 기량을 키울 생각이었다!”
레이나의 말에 펠릭스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미케네로 가시죠.”
흑검 기사단의 지옥 훈련을 함께하고 싶다는데 굳이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았다.
‘분명 후회할 텐데. 본인이 원하니 어쩔 수 없지.’
레이나가 행선지를 미케네로 정하자 그녀를 따르던 투른 기사들은 흑검 기사단과의 합동 훈련이라는 말에 자신들도 따르겠다며 나섰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결국 레이나와 투른 기사단은 흑령대와 함께 아가멤논 성으로 향했다.
* * *
일행과 어느 정도 떨어진 뒤 지크는 부케팔로스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북부대륙의 매서운 한기가 지크를 향해 휘몰아쳤지만, 제롬의 망토가 끔찍한 한기를 막아 줬기에 지크는 어려움 없이 날아갈 수 있었다.
지크는 그렇게 부케팔로스를 타고 하늘길을 이용해 곧장 아텐으로 향했다.
그는 아텐의 중심부가 아닌 해안가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를 구해 곧장 폭풍 해역을 건너 하이랜더의 수장이 있는 폭풍성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폭풍성이라. 그건 이야기책 속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 존재할 줄이야.’
영웅왕 카이시르의 모험 시리즈 중 하얀 마녀 이야기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가 바로 폭풍성의 괴물이었다.
본래 폭풍 해역은 아주 잔잔하고 맑은 바다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심술 맞은 괴물이 나타나 입김을 불어 고깃배를 뒤집고, 큰 입으로 물고기들을 모두 먹고는 도망치는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괴물 때문에 잔잔했던 바다는 물이 흐려졌고, 고기를 잡던 사람들도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계탑의 기사들과 근처를 지나가던 영웅왕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에 대해 듣고 단숨에 바다로 나아갔다.
그는 괴물을 쫓아가서 혼내 주고는 다시는 사람들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런데 괴물이 영웅왕과의 약속을 어기고는 섬에 틀어박힌 채 심술을 부리며 강한 폭풍을 불러와 다른 사람들이 바다에 아예 접근도 못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폭풍성 이야기였다.
지크는 카이시르 연대기 영상 속에서 이 폭풍성에 대한 내용을 찾아봤지만, 폭풍 해역이나 괴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인 건가.’
사실 괴물이 살고 있다는 폭풍성에 하이랜더의 수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폭풍성에 대한 정보들을 떠올리며 아텐 반도의 해안가에 도착한 지크는 근처 민가로 들어가서 폭풍 해역을 건너갈 배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지크의 말을 들은 어부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폭풍 해역을 건너간다굽쇼? 어이쿠! 기사님! 큰일 날 소리입니다요. 여기서 평생을 살아온 저희들도 요 앞에 인근 해안가 정도만 나가지 바다가 거칠어서 더 나가는 건 꿈도 못 꿉니다요.”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웬걸요. 죽음의 해역보다 더 거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괜히 이곳이 대륙 금지라고 하겠습니까요.”
잊혀진 자들의 숲과 함께 대륙 금지로 불리는 폭풍 해역에 일부러 접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안가 근처에서만 가서 봐도 바다가 얼마나 거친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야기의 은자는 어떻게 여길 나룻배를 타고 갔다는 거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하이테이블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상황을 살피다, 폭군을 소환해 타고 날아갈까 생각해 본 지크는 폭풍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날아가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
지크는 어쩔 수 없이 고민 끝에, 낡은 나룻배 하나를 얻어서 어떻게든 가 보기로 했다.
그는 인가와 동떨어진 해안가로 가, 베인과 리치몬드를 소환해서 나룻배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이것 좀 고쳐 봐라.”
지크의 명령에 따라 니르바나 출신 천재 네크로멘서이자 빙결 마법 8서클 마법사 리치 둘이서 열심히 낡은 나룻배를 고쳤다.
리치몬드가 뼈를 소환해 부서진 부분을 대고 그사이를 베인이 단단한 얼음으로 메웠다.
몇 시간 뒤 리치몬드와 베인이 뿌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다 했습니다요, 주인님.”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던 지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리치 수리한 배를 확인하러 갔다.
“……이게 뭐냐.”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배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낡은 나룻배는 온데간데없고, 흉물스러운 몬스터 뼈와 날카로운 얼음 칼로 장식된 무시무시한 대형 범선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