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지크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리치몬드, 내가 배 수리 해 놓으랬지 언제 이런 마계 군선 같은 걸 만들어 놓으랬냐.”
리치몬드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헤헤,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주인님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눈치 없는 리치몬드와 달리, 베인은 일그러지는 지크의 표정을 포착하고 곧장 옆으로 가서 말했다.
“주인님! 제가 어떻게든 선배를 말려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해야 주인님이 좋아하실 거라며…….”
혼자 살겠다고 리치몬드를 버리고 변명을 하는 베인이었다.
지크는 배 옆구리에 촘촘히 박혀 있는 얼음 칼날과 배 앞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얼음 뿔을 가리키며 말했다.
“베인, 배에 저런 건 왜 달아 놓은 거냐.”
그러자 베인이 해골 입을 덜컥덜컥 움직이며 말했다.
“그나마 저런 게 붙어 있어야 리치몬드 선배의 흉물스러운 뼈들을 가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멋있게 달아 봤습니다!”
이상한 취향을 역시나 이상한 취향으로 가려 보려다가 이 참사가 일어난 듯했다.
‘상식과 거리가 먼 니르바나 출신들에게 맡긴 내 잘못이지.’
지크는 한숨을 쉰 채 배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생각보다 안쪽은 평범한 갑판이었다.
‘그래, 뭐 나룻배보다는 큰 배가 낫겠지.’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은 지크는 풍력의 장을 펼쳐 배를 바다 쪽으로 움직였다.
촤아아악!
바람을 타고 배가 바다로 나아갔다.
어부들의 말대로 해안가 쪽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파도가 거칠게 치면서 배가 흔들렸다.
폭풍 해역이라는 이름답게 배를 뒤집을 듯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반대로 불어서 배가 나아가지를 않는군.’
지크는 돛을 접은 뒤 오랜만에 나후엘을 소환했다.
꾸루루루루―
소환된 나후엘이 지크를 향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나후엘, 소환하자마자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 이 폭풍을 뚫기 위해서는 네 도움이 필요하구나.”
지크의 말을 들은 나후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끌어 파도와 바람을 뚫고 움직였다.
그때 지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칭호 해신의 영광으로 거친 바다를 안정화시킵니다.] [칭호 신수의 은혜가 영수 나후엘과 연동됩니다. 해신의 영광의 범위가 더 넓어집니다.] [칭호 요정의 축복으로 해당 안정화 범위가 확장됩니다.]지크가 지닌 칭호의 능력으로 그의 배 주변은 파도가 잦아들고 바람도 세게 불지 않았다.
덕분에 나후엘이 좀 더 쉽게 배를 끌 수 있었다.
‘다행이군. 칭호가 이런 데서 효과를 발휘할 줄이야.’
예상보다는 수월하게 폭풍성까지 도착할 수 있을 듯싶었다.
나후엘이 이끄는 배는 이후 빠르게 폭풍 해역 쪽으로 나아갔다.
지크는 폭풍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선실에서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실마리를 찾던 지크는 어느 순간 느껴지는 이상한 낌새에 무아지경 속에서 빠져나와 눈을 번쩍 떴다.
‘뭐지?’
그는 곧장 갑판 위로 올라갔다.
시간상으로는 날이 넘어가 아침 해가 떠야 했는데 하늘에 두꺼운 먹구름이 깔려 있어서 주변은 여전히 캄캄할 뿐이었다.
칭호 덕분에 폭풍 해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크의 배 주변 바깥은 거친 파도와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
지크는 주변을 유심히 살피다가, 거친 파도 너머에 있는 섬 하나를 발견했다.
‘저기가 폭풍성인가?’
나후엘이 이끄는 배는 점차 보이는 섬 가까이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
거친 바다 밑에서 뭔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뭔가가 올라온다.’
지크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바하무트를 꺼내 들었다.
고오오오오오!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끔찍한 괴성이었다.
그와 함께 수면 위로 거대한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문어?”
바닷속에서 떠오른 것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문어 다리였다.
하나하나가 마치 탑처럼 길게 위로 뻗은 문어 다리가 지크가 탄 배 주변의 사방을 점하며 꼿꼿이 솟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저 다리들이 배를 향해 내리꽂힌다면 아무리 칭호로 보호받는다 하더라고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지크는 탑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문어 다리를 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설마 이게 이야기 속의 폭풍성 괴물은 아니겠지.’
영웅왕에게 쫓겨 섬에 틀어박힌 채 약속을 어기고 거친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괴물.
지크는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괴물의 다리를 보며 긴장했다.
그때 지크의 눈앞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심해의 도시 르뤼에라.’
지크는 하데스가 갇혀 있던 황금도시 블랑카를 떠올렸다.
블랑카와 마찬가지로 성좌가 보호하던 고대의 도시가 폭풍성의 정체였던 것이다.
메시지와 함께 섬 앞에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우우우우웅!
지크 옆에서 이를 바라보던 리치몬드와 베인이 두려운 듯 거대한 문어 다리와 포탈을 번갈아 쳐다봤다.
“주, 주인님. 여기 뭔가 이상합니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입니다. 다시 돌아가시는 것이…….”
지크는 겁 많은 리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대로 포탈 안으로 배를 몰았다.
“으아악! 주, 주인님!”
“이, 이렇게 죽는 건가!”
이미 죽어서 리치가 된 베인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
포탈 안으로 들어간 지크의 배가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던 거대한 문어 다리도 다시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 * *
‘어?’
포탈을 통과한 지크는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눈을 떴다.
타고 있던 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바깥은 놀랍게도 바닷속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오색 찬란한 해양 생물들과 아름다운 산호초들이 환상적이면서도 낯선 놀라운 광경을 자아냈다.
‘여기가 어디지.’
지크는 일단 소환수인 리치몬드와 베인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전혀 감지가 되지 않았다.
나후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는 이곳이 일반적인 공간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정신세계로 들어온 건가. 아니면…… 뒤집힌 탑의 경우처럼 고유 영역인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때 지크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크 드레이커, 이 먼 곳까지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하네.”
잿빛 로브를 입고 나타난 키가 큰 사내.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말투였다.
“자, 이쪽으로 앉지.”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테이블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금속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처음 보는 재질의 테이블이었기에, 지크로서는 여전히 이곳의 정체를 추정해 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하이랜더의 수장입니까.”
그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부, 아니 이야기의 은자를 통해 자네와 만나 보고 싶다고 말한 그자가 나네.”
지크는 수장을 통해 이야기의 은자의 이름을 처음 들었지만,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수장이 손을 뻗자 테이블 위해 찻잔과 찻주전자가 나타났다.
그가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따랐다.
차가 다 따라지자 찻잔이 저절로 지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지크는 차가 담긴 찻잔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향을 맡고 음미하며 한 모금 마셨다.
“차 맛이 아주 좋군요.”
지크의 말에 수장 역시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차종이지.”
“이 시대라…… 설마 지금 이 공간은 과거의 시간대입니까?”
그 말에 수장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크로노스의 고유한 권능이야. 나로서도 그걸 건드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지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하이랜더의 수장은 놀랍게도 시간을 다루는 크로노스의 권능까지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수장이 찻잔을 내려놓고 지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직접 보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지금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함께 막고자 협조를 구하기 위함일세.”
지크는 수장을 보며 말했다.
“하이랜더는 마수를 사냥하는 조직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수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수 사냥만이 우리의 일은 아닐세. 하이랜더의 목적은 현상계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지.”
“현상계의 균형? 어째서 하이랜더가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딱히 어떤 이득을 얻으면서 조직을 꾸리는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득이라. 그건 매우 상대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개념이야.”
수장이 손을 휘젓자 테이블 위에 대륙 전도가 떠올랐다.
중앙대륙과 북부대륙, 남부대륙뿐 아니라 바다 건너의 동방 대륙까지 나타났다.
수장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락을 쫓아왔네. 마왕이 봉인된 이후로 추종자들은 세계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자신들의 때가 오기를 기다려 왔지.”
수장의 말을 들은 지크가 깜짝 놀랐다.
‘마왕의 봉인 때부터 쭉 하이랜더가 존재해 왔다는 건가.’
지크는 하이랜더의 역사가 그 정도로 오래되었을 줄은 몰랐었다.
하지만 그의 스승이었던 나이젤의 초월적인 강함을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했다.
수장이 다시 손을 휘젓자 대륙 곳곳에 검은 반점들이 생겨났다.
“나락의 무리는 세계의 빈틈을 찾아내서 그 안을 파고들지. 욕심과 욕망, 질투, 나태함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들에게는 좋은 원동력이야. 나락은 이를 이용해 세계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키지.”
“하이랜더는 그런 나락의 음모까지 막아 내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우리는 아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 그중 하나는 자네 어머니인 로라 아가멤논과도 연관이 있어.”
지크는 수장의 말을 듣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여명회도 하이랜더의 조직이었습니까?”
“말했잖나. 우리의 목적은 현상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 여명회의 활동 역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한 부분일 뿐. 마수 사냥이나 금지 수호도 같은 맥락이지.”
여명회가 하이랜더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크였다.
그가 수장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하이랜더의 최종적인 목적은 마왕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입니까.”
그 말에 수장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그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마왕의 완전한 소멸이라. 현상계의 균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는 어떻게 보면 그럴 수 있겠군.”
지크는 수장의 선문답 같은 대화 방식에 살짝 피로감을 느꼈다.
지크의 그런 기색을 읽은 건지, 수장이 지크를 보며 말했다.
“지크 드레이커, 내가 봐 온 자네는 목표가 확실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정확하며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그건 내가 가지지 못한 자네의 장점이라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와서 그런지 항상 생각이 많아.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지.”
그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네.”
“어떤 일 말입니까.”
수장이 다시 손을 휘젓자 테이블 위에 어떤 한 인물의 모습이 입체 형상으로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사내.
지크는 그 형상을 보며 수장에게 물었다.
“이게 누굽니까?”
수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락의 제사장일세.”
지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체 형상으로 만들어진 나락의 제사장을 노려봤다.
수장이 말을 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나락을 이끌며 지금의 세력을 만들어 냈지. 나를 비롯한 하이테이블의 은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 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어서 놈을 제대로 막지 못했네.”
“지멘스와 손을 잡고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이 제사장이라는 겁니까?”
“그래. 놈은 오래전부터 불멸의 힘에 집착해 왔지. 마왕의 힘이 봉인된 사자의 서를 손에 넣어 불멸자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어.”
수장의 말을 들은 지크의 머릿속을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불멸자? 불멸자 제작 실험…….’
금기에 가까운 인체 연성술이 나와 있던 불멸자 제작 실험 보고서.
니르바나의 시스템 정보에서 봤던 내용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수장이 입을 열었다.
“나락의 제사장의 정체는 하비 웨스트. 한때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의사이자 니르바나의 네크로멘서 중 하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