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89
589화
“뭐? 지크를 미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나부가 이반을 돌아봤다.
그러자 이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왕의 그릇으로서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존재는 지크 드레이커, 그밖에 없다.”
설마 했지만, 수장이 정말로 지크를 이용하려 들 줄은 몰랐다.
그때 수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크 드레이커를 단순히 미끼라고 표현하기는 부족하다. 그는 운명을 거스르는 자. 유일하게 수레바퀴를 부술 수 있는 변수를 지닌 존재다.”
그가 나이젤과 나부를 보며 말했다.
“마왕의 유일한 육체가 될 지크 드레이커에게 아서 드레이커는 물론이고, 천계의 성좌들 역시 주목할 수밖에 없지. 마왕이 그의 육신에 강림하는 틈을 노려 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부술 것이다.”
수장의 말에 나이젤이 검을 꾹 움켜쥐었다.
“네 녀석!”
그녀는 수장을 향해 강한 살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설마 지크가 회귀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이냐!”
지크와 영혼이 접속한 뒤로 나이젤은 전생의 기억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녀는 전생에서 지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강해지고자 했는지, 얼마나 큰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비참한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을 얻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지크였다. 그런데 또다시 다른 이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려 하자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킨 것이었다.
수장은 로브에 얼굴을 감춘 채 말을 이었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그의 말에 나부 역시 이를 갈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임무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지크 드레이커를 희생시켜야 하는 거라면 나는 결코 거기에 동조하지 않을 거다.”
나이젤과 나부가 적개심을 드러내자 수장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지직!
그러자 두 사람의 몸에서 카르마의 재제에 의한 인과성의 후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부가 수장을 향해 소리쳤다.
“하! 설마 지금 나와 나이젤을 우화등선시키겠다고? 수장, 당신 진짜 미친 거 아냐!”
의문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의도가 선하다는 것에는 의심을 하지 않았던 나부였다.
하지만 지금 수장이 하는 행동은 명백히 선을 넘어섰다.
이반이 수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드레이커를 막기 위해서는 저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를 말리는 말에 수장의 로브에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술 균열을 방해할 것이라면 지금 배제하는 것이 낫다. 이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안배이니.”
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현상계의 균형을 지켜 온 이들입니다. 진심으로 설득한다면 분명 당신의 뜻을 이해할 겁니다.”
수장과 나이젤, 나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만히 있던 만나가 천천히 눈을 뜨고서는 말했다.
“일단 지금은 소승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겠소이까.”
그가 염주를 돌리며 말했다.
“이곳을 향해 강한 적의를 지닌 존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외다.”
나부는 만나의 말에 퍼뜩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서 드레이커! 놈이 오고 있는 거다!”
만나의 말을 들은 이반이 수장에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닙니다.”
수장은 이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제야 나이젤과 나부의 몸에서 일어나던 인과성의 후폭풍이 가라앉았다.
이반이 나이젤과 나부, 만나에게 말했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성을 정비해야 한다. 하이테이블이 줄어든 만큼 해야 할 일이 많아. 나를 도와다오.”
만나는 조용히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고, 나부는 수장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남은 나이젤은 수장에게 겨눈 칼을 천천히 납검한 뒤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상황이 급하니 따르도록 하겠다. 하지만 지크를 이용하려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쿠구구구구구!
나이젤의 몸에서 혼신기의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녀가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영혼의 힘을 다해서라도 네놈을 막을 것이다.”
* * *
“으으으으윽!”
릴리스가 괴로운 듯 침음을 흘리며 지크를 바라봤다.
그녀의 인장을 해제해 영혼체의 강제 실행 권리를 획득한 지크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릴리스를 보며 말했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건 내 영혼을 흡수하기 위함이었군.”
릴리스는 지크가 오만한 구원자의 계승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를 유혹해 영혼을 흡수할 계획을 미리 세워 둔 것이었다.
하지만 릴리스는 상황을 모두 파악한 지크를 애처로운 얼굴로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위대한 군주시여. 오, 오해십니다. 저는 절대 그런 짓을 계획한 적이 없습니다.”
방금까지 지크에게서 영혼의 힘을 흡수했음에도 릴리스는 뻔뻔하게 자신이 한 일을 부정했다.
그녀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고유 권능 ‘매혹’ 덕분이었다.
마계에서 대상자를 유혹하거나 조종하는 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들은 상당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강제로 대상자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릴리스의 권능은 대상자의 영혼에 작용 함으로써 그녀에게 호감을 갖도록 하는 힘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조절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감정이었는데 이는 신격을 갖춘 성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성좌들이 릴리스의 뻔뻔하고 극악무도한 악행들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눈감아 주고 오히려 더 그녀에게 빠져들고는 했다.
그런 그녀의 매혹을 유일하게 견뎌 내고 유폐를 시킨 성좌가 바로 오만한 구원자였다.
그 역시 릴리스를 자신의 반려로 받아들일 만큼 빠져들었지만, 악행과 탐욕이 점차 심해지는 것을 보고 최후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굳건한 자였다.
지크는 릴리스를 보며 말했다.
“네가 어떤 짓을 했었는지는 이미 오만한 구원자의 기억을 통해 인상 깊게 봤다.”
릴리스는 지크의 말을 듣고 이내 표정을 바꿨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 내려왔다는 것이냐.”
“오만한 구원자의 기억이 온전치는 않아서 긴가민가했지.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일단은 부딪쳐 봐야 알 것 같아서 말이야.”
지크는 릴리스를 통해 오만한 구원자의 기억과 그녀의 몸속에 깃든 신격을 되찾기 위해 일부러 함정에 빠져든 것이었다.
릴리스가 지크의 힘을 흡수할 때, 지크는 역으로 시스템을 이용해 그녀의 인장에 강제 접속해 그 영혼체를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릴리스의 영혼체에 오만한 구원자의 영혼 일부가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지크는 릴리스의 인장을 해석할 수 있었고 영혼체 역시 복속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지크는 펼쳐져 있는 문자열 중 자신의 앞으로 끌어온 구문을 살폈다.
그 구문은 다름 아닌 릴리스와 오만한 구원자의 권속들 간 이뤄진 강제 계약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크가 그 부분을 읽는 것을 본 릴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대로라면 나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그녀는 고유 권능인 매혹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켰다.
정신이나 육체가 아닌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그녀의 권능은 그 어떤 성좌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지크의 힘을 흡수해 권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매혹의 힘을 담아 지크에게 말했다.
“위대한 군주시여!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릴리스가 간절함을 담아 호소의 말을 건넸지만, 지크는 그녀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구문을 읽는 데 집중했다.
릴리스는 자신의 권능을 최대로 발휘했는데도 지크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당황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지크는 그런 릴리스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는 샤모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샤모스에게 말했다.
“샤모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샤모스가 당황하며 지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위, 위대한 군주시여.”
“자네가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지.”
샤모스는 지크의 말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릴리스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지만 지크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지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변명치 않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 온 이 비루한 목숨을 부디 군주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영혼의 소멸을 각오한 샤모스는 지크에게 목숨을 맡겼다.
지크는 그런 샤모스를 내려다보더니 눈앞에 있는 문자열을 향해 손을 올렸다.
우우우우우웅!
그의 손짓에 따라 문자열의 문구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릴리스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 안 돼!”
오만한 구원자의 권속들을 맹약으로 붙들고 있었기에 그나마 유폐 장소에서도 미약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들을 구속하던 맹약이 사라지면 그녀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길이 영영 막힐 수밖에 없었다.
릴리스가 지크를 향해 달려들려 할 때였다.
촤라라라라락!
바닥에서 솔로몬의 사슬이 튀어나와 릴리스를 휘감았다.
릴리스는 자신을 구속한 사슬을 보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군주시여! 어찌 저에게 이러시나이까!”
지크는 그 목소리를 무시한 채, 릴리스의 맹약에서 풀려난 샤모스를 향해 말했다.
“내게 목숨을 맡긴다 했으니 거두어 가겠다. 샤모스, 마계에 흩어져 있는 오만한 구원자의 옛 권속들을 찾아라. 내가 그들 위에 군림할 것이다.”
쿠구구구구!
지크에게서 솟구치는 절대 군림자의 기세에 샤모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주인이시다!’
샤모스는 지크에게 다가가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서는 충성을 맹세했다.
지크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사슬에 구속된 릴리스를 바라봤다.
릴리스가 애처로운 눈빛과 목소리로 지크에게 호소했다.
“위대한 군주시여…… 제발…….”
그는 감정이 전혀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릴리스에게 말했다.
“웬만하면 너를 수하로 쓰려 했었다. 하지만 오만한 구원자의 기억 속에서 네가 망쳐 놓은 수많은 일들을 보니 그럴 수가 없겠더군.”
“제게 맡겨 주십시오! 위대한 군주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할 테니, 제발!”
지크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 영혼을 흡수하려 했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했었어야지.”
스르르르르―
지크의 발밑에서부터 그림자가 솟구쳤다.
사슬에 묶인 릴리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며 소리쳤다.
“아, 안 돼! 안 돼!”
그림자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릴리스를 단숨에 삼켰다.
츠츠츠츠츠―
릴리스가 그림자에 흡수되자 지크는 그녀의 몸속에 깃들어 있던 오만한 구원자의 신격이 다시 자신에게로 옮겨짐을 느꼈다.
우우우우웅!
본래 릴리스가 갖고 있던 힘까지 흡수한 지크는 이전보다 오만한 구원자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의 권능과 영역을 사용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것을 느낀 지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그리고…….’
지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하나의 형상이 이뤄졌다.
쿠그그그그그―
검은 날개를 등 뒤에 달고 있는 릴리스를 닮은 그림자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크가 릴리스의 영혼을 이용해 그림자 소환수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 릴리스의 타락한 영혼이 그림자 정령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림자 정령 ‘릴리스’가 불사신에게 굴복합니다.] [굴복한 그림자 정령의 격이 높아 그림자 정령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림자 정령 ‘릴리스’가 그림자 수호령 ‘릴리스’가 되어 사용자의 가디언으로 등록됩니다.]릴리스가 사악한 존재기는 했지만, 신격을 부여받을 만큼 강한 영혼의 힘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기에, 칼리귤라처럼 그림자 수호령이 된 것이었다.
릴리스가 지크를 향해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위대한 군주께 귀속되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나이다. 수호령으로서 오로지 군주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지크는 그에게 완전히 복속된 가디언 릴리스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뒤로 샤모스와 가디언이 된 릴리스가 뒤를 따랐다.
문을 열고 나가자 놀랍게도 이 성의 모든 고용인들이 모여 고개를 숙인 채 지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크의 예상처럼 샤모스뿐만 아니라 이 성에 존재하는 모든 고용인들이 오만한 구원자의 권속들이었다.
방금의 일로 릴리스와의 맹약에서 벗어난 이들이 자신들을 구원한 지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자 모인 것이었다.
지크가 이들 사이를 지나가자 고용인들이 그의 걸음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복도를 걸어가는 지크의 발을 향해 엎드려 머리를 숙이며 충성을 맹세했다.
오만한 구원자의 모든 것을 흡수한 지크는 이들의 충성 맹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모든 고용인들이 지크의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충성을 바쳤을 때, 복도 저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짝!
어둠 속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