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40
0139 고래 투어
수 많은 동물들은 물론이고, 자연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찾아온 무수한 사람들 덕분에 묘목의 식목은 금세 끝이 났다. 점심 즈음에 시작한 식목이 해가 지기도 전에 끝나버린 것이었다.
주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 많은 묘목이 넓게 펼쳐지니, 처음 도착했던 그 때와는 무척 다른 느낌이 풍겨왔다.
아직 소은이보다도 작은 묘목인지라 울창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휑하던 그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생명 하나 없을 것 같던 잿빛 세상에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느낌으로 바뀐 것이었다.
잿빛보다는 초록색과 나무의 색이 더 많아진 상황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무척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레이스 역시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고, 사진까지 찍어대고 있을 정도였다.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기뻐하는 이들을 뒤로한 나는 숙소를 향해 이동했다.
“마니마니 자라야대!”
그리고, 숙소 주변으로 다가간 나는, 숙소 입구 부근에서 소은이가 캥거루와 손을 잡고 폴짝 폴짝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제 막 심어준 나무의 뿌리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도록 땅을 다지고 있는 것이었다.
자그마한 묘목을 사이에 두고 소은이와 캥거루가 손을 잡고 뛰어대는 모습을 촬영하는 듯한 누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심은 거야?”
“응. 소은이가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이름까지 지어줄 거라고 하길래, 여기 근처에 하라고 했지.”
어느새 뛰는 것을 멈춘 소은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묘목에서 가장 굵은 부분에 팻말을 다는 것이 보여졌다. 소은이 특유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소은이 나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가가니, 소은이가 묘목을 쓰다듬으면서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소은이 나무야?”
“웅! 내꺼!”
자기가 열심히 쓴 팻말을 가리키는 모습에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소은이 나무면 아주 잘 자라겠다. 그치?”
“대따 크게!”
자기가 펼칠 수 있는 한계까지 팔을 펼치며 폴짝 뛰어오르는 소은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소은이를 안아들고 누나와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어느새 어둑하게 해가 지고 있었으니, 더 이상 밖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이나 작업을 위해 찾아온 이들까지 모두 하나씩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 준비를 시작하려 하니, 그레이스가 들어왔다. 자원봉사자들과 작업자들이 철수하는 걸 관리한 다음 찾아온 것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루이드님.”
찾아온 그레이스는 냅다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무리 보수를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연을 복원해주는 것이 그렇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전부터 복원하려 애썼지만, 도통 진척이 없었는데……. 드루이드님 덕분에 벌써 이렇게 묘목까지 심고 있네요. 씨앗들에서 싹이 나는 것도 그렇고요.”
예전에는 씨앗을 뿌려도 금방 다 썩어버렸다는 소리를 한 그레이스는 무척 감동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나는 별 일 아니라고 가볍게 대답해주며, 저녁을 권했다. 누나도 얼마든지 저녁을 먹고 가도 된다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염치 없지만, 그럼 신세질게요.”
그렇지만 마냥 앉아있긴 눈치 보였던 건지, 그레이스는 누나를 도와 저녁을 준비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저녁을 먹게 된 우리는 금세 식사를 마무리하고, 가벼운 티타임을 가졌다.
“드루이드님. 혹시, 내일 일정을 미리 정해두신 게 있나요?”
일을 했으니 쉴 타이밍이라는 걸 아는 그레이스가 내일의 일정을 물어왔다.
“쇼핑이나 가볼까 했는데, 왜요?”
호주에서 꼭 사야할 것- 이라는 제목의 쇼핑 리스트까지 가지고 있는 누나에게 맞춰 내일은 쇼핑을 생각하고 있었다. 양털 이불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물건들이 그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혹시, 내일 고래 투어를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고래 투어요?”
“호주에는 고래 중에서도 혹등 고래가 유명해요. 남극을 오가는 혹등고래가 자주 들르는 곳이거든요. 특히, 미갈루라는 알비노 혹등고래가 가장 유명하죠.”
그레이스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들어, 새하얀 고래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늘 시드니 근해 부근에서 고래 무리를 포착했다고 해요. 내일 시드니 쪽에서 고래를 볼 확률이 무척 높다고 하니, 한 번 보시는 게 어떨까요? 시드니쪽이니 일정이 끝난 다음 쇼핑을 하기에도 좋을 거예요. 게다가 따로 대형 요트를 빌려서 드루이드님의 가족들만 이용하실 수 있게 해드릴 거예요!”
정말 추천한다며 말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나는 누나를 바라보았다. 내일의 쇼핑을 가장 기대하던 사람이 누나였기 때문이다.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이 끝난 다음 충분히 쇼핑할 수 있다고 하니, 괜찮은 듯했다. 게다가 요트까지 탈 수 있다는 것에 혹한 부분도 없진 않은 거 같았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올게요. 꼭 필수적인 부분은 제가 다 준비해둘테니, 걱정마세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봬요!”
그레이스는 참고하라며 고래 투어의 팜플렛 하나를 남겨놓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누나가 팜플렛을 들고 내용을 주르륵- 훑어보기 시작했다.
“와! 수환아, 여기 좀 봐. 고래 말고도 돌고래 같은 애들도 볼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돌고래!”
누나의 말에 소은이가 누나에게 들러붙어, 함께 팜플렛을 보았다. 슬쩍 다가가서 보니, 돌고래나 고래들이 수면 위로 점프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두 사람이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비치 월드에서 돌고래 쇼를 보기도 하고, 돌고래와 직접 대면하기도 했던 소은이가 무척 기대하는 듯했다.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팜플렛에 들어갈 듯이 얼굴을 들이밀며 바라보는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 ○ ◑ ● ◐ ○
“요뚜!”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그레이스와 시드니의 한 요트 정박지에 도착한 우리는 커다란 요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요트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요트였는데, 그레이스가 우리를 그 요트로 안내했다.
내부는 정말 호화롭다 해도 좋을 정도의 요트였다. 갑판 부근에는 조그마하지만 수영장이 달려 있었고, 선수와 선미에는 그물망이 트램펄린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내부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스테이크, 랍스터 같이 비싸고 맛있는 음식들은 물론이고 한국인인 우리 가족을 배려한 건지 한식까지 차려져 있는 상태였다.
“오…….”
조금 있으면 식사 시간인지라, 그 음식들이 꽤나 반가웠다. 특히, 불고기 같은 한식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음식에 반가움을 느낀 나와 다르게, 누나와 소은이는 요트 투어를 시작했다.
갑판에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선수와 선미에 있는 트램펄린 같은 그물망에도 올라가보는 등 요트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특히, 선수의 그물망에 엎어져서 바닷물이 파도치는 모습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좋아?”
“응!”
“웅!”
똑 닮은 두 사람이 똑같이 대답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누나와 소은이가 그물망에서 뒹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출발한 요트는 순식간에 도시에서 멀어지며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잠시동안 항해를 한 다음, 고래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도착할 거예요. 조금 걸리니, 편하게 쉬시면 돼요.”
그레이스의 말에 편하게 의자에 몸을 눕히니, 누나와 소은이가 즐겁게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은 차게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며 햇살을 즐기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태로 어느정도 있으니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들었다.
“압빠! 고래!”
“엉……?”
“고래!”
“고래?”
“고래!”
내 몸을 흔들며 말하는 소은이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래 투어를 위해 요트에 타고 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소은이가 따라오라는 듯이 손을 잡아끄는 것에 이끌려 요트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그렇게 가장자리로 가니 파도와는 다르게 물이 부서지고 있는 물이 보였다.
“끄르으우우웅-!”
이내 그곳에서 거대한 몸체를 가진 고래 한 마리가 솟아오르며 고래 특유의 고주파음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제 그레이스가 주고 간 팜플렛을 보니 혹등 고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녀석의 울음소리가 정말 사람이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소리로 들려온 것이었다.
“고래 안녕!”
내가 그런 감상을 느끼고 있을 때 소은이는 고래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이변이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거대한 몸체를 수면으로 뛰어올라 부딪히던 혹등고래가 천천히 우리 요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등이라고 할 부분에 나있는 숨구멍을 통해서 분수를 뿜어내듯 물을 뿜어내며 다가온 것이었다.
“부른다면 가는 것이 인지상정!”
요트 주변으로 다가온 녀석은 몸을 반쯤 수면 위로 드러내면서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손을 흔드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더니 따라하기 시작했다. 몸을 눕혀, 오르쪽 지느러미를 수면 위로 들어올리며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는 거지!”
묘하게 쾌활한 듯한 느낌의 혹등고래는 지느러미를 파닥파닥 흔들며 소은이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압빠! 쟤가 인사해써!”
“쟤도 소은이가 반갑다고 하네.”
“히히, 안녀어어엉!”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다 써가며 혹등고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귀여운 모습은 혹등고래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듯했다.
“동네고래들 여기 좀 와보세요! 겁나 귀여운 인간이 있어요!”
혹등고래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더니, 그대로 제 동족들을 호출했다. 그리 먼 곳에 있던 건 아닌지, 순식간에 우리 요트 주위로 여러 마리의 혹등고래들이 몰려왔다.
수면을 치는 거대한 고래의 꼬리나, 분수같은 물줄기가 수면 곳곳에 솟구쳤다.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네요.”
호주 관광청 소속으로 고래를 자주 봤다는 그레이스마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내 초능력에 더불어, 소은이의 초능력이 이루어낸 광경이었다.
심지어,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돌고래들까지 은근슬쩍 합류하여 소은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딸 초능력은 정말, 동물원이든 야생이든 가리질 않네.”
그 모습을 함께 바라본 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도, 신기한 구경인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근데……. 그레이스. 고래 투어는 이렇게 고래만 보는 게 전부인가요?”
고래들의 재롱도 잠깐 신기할 뿐, 계속 보고 있으니 조금 지루했다. 녀석들이 수면으로 뛰어오르거나 분수쇼를 하고, 노랫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한 것도 잠시였다.
“……네. 원래는 조금 긴 시간 항해를 하면서 항해 자체를 잠시 즐기다가 고래를 보고 마무리하는 투어거든요.”
설마 이렇게 빨리, 많은 고래와 마주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말하는 그레이스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요트에 준비된 요리를 먹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소은이에게 푹 빠진 고래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며 우리가 귀항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배의 스크류 등으로 인해, 주변에 쫙 깔린 고래들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희 좀 나와봐! 저리 좀 가라고!”
“너나 나와라! 귀여운 인간이 안 보인다!”
결국, 나는 귀항하기 위하여 선수에 서서 고래들에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협조라는 단어를 모르듯, 내 말을 개무시하는 고래들을 향해서 한참동안 고래고래 소리치고 나서야 출발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수 많은 고래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며 해안 일부가 소란스러워졌지만, 목이 칼칼하고 따끔거리는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쇼핑가기 전에 따뜻한 차나 한 잔 해야겠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따끔거리는 목을 쉬게해줄 것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