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3
0162 학계의 점심(1)
“맞다, 수환아. 오늘 오후에 어머님 오신다는데?”
“엥? 엄마가?”
소은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누나와 함께 점심을 먹던 도중, 누나가 잊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응. 너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
“뭐 때문이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정도가 되었음에도 엄마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 괜스레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요즘 전화를 좀 안 해서 그런가?”
“자주 좀 하지 그랬니.”
“거의 매번 주말에 가서 보잖아?”
“그래도 전화하는 건 또 다르니까.”
누나의 말에 나는 살짝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또 잔소리 듣겠군.
고개를 내저은 나는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라면을 후루룩- 흡입했다. 잔소리는 잔소리고, 일단 눈앞에 있는 매콤한 라면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라면 덕분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금세 까먹은 나는, 누나와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상황에서 엄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 엄마!”
“넌 애가 유치원에 다니는데 언제까지 엄마라고 부를 거야? 나도 아들한테 어머니 소리 좀 들어보자.”
“포기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누굴 닮아서 헛소리를 이렇게 하는지 몰라.”
“아빠 아니면 엄마겠지?”
“꼬옥, 매를 벌어요. 매를 벌어.”
“아아악! 잠만, 잠마아안!”
잠깐의 만담을 나눈 나는 결국 귀를 잡혀 적잖은 고통을 맛봐야 했다.
떨어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픈 귀를 꾹꾹 누르고 문지른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와서 잔소리나 하고 있냐는 의미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네가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하려던 말을 까먹었잖니.”
“아니, 그게 내 탓은 아닌 거 같은데.”
“잠자코 어머니- 하고 불렀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니니. 아무튼, 친척 중에 한 명이 너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하더라.”
“친척?”
친척이 부탁할 게 있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는 친척들이라면 대부분 내게 직접 연락하지, 이렇게 엄마에게 전화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한 번도 못 보긴 했을 거야. 아니, 결혼식에는 왔었으니까 보긴 했구나.”
“도대체 누구길래?”
“엄마의 고종사촌의 이종사촌의 아들.”
“……남 아냐?”
“말이 친척이지, 너한테는 남이야. 엄마도 그냥 조금 친한 지인인 수준이니까.”
태평하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황당함이 느껴졌다.
“아니, 그래서 그 사람이 나한테 뭘 부탁하겠다는 거야?”
“걔가 생물학인가 뭔가 한다고 하던데, 논문을 쓰려는데 네 도움이 필요하다네?”
“아.”
엄마의 말에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몇 다리 건너긴 해야 하지만,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었으니 일단 부탁해 본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을 유추하고 있으니, 엄마가 가방에서 곱게 접어둔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걸 정리한 목록이라고 하더라. 아, 엄마 친척이라고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편하게 봐. 사이 나빠진다고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니까.”
“……나한테 부탁할만하긴 하네.”
종이를 바라본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용이라면 내게 부탁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다. 이미 몇 번 정도 내게 비슷한 요청이 있기도 한 상태일 정도로 말이다.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동물들의 신비한 행동에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을 활용하여 증명하는 방안.]대충 요약하자면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동물들이 보이는 이상한 행동 같은 것들의 이유를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을 활용하여 증명하려는 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 드루이드라는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애니멀 커뮤니케이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보자……. 오, 이건 괜찮네.”
그 내용을 가볍게 훑어본 나는, 지금까지 들어온 비슷한 종류의 요청과 다르게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엄마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어온 대부분의 요청이 야생에 사는 개체를 직접 찾아가서 그 이유를 밝혀내자는 부류의 요청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들어온 요청은 국내나 가까운 중국, 일본의 동물원을 돌며 동물들의 행동을 밝혀내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할 거니?”
“뭐, 안 될 건 없지.”
“그럼 그렇게 전한다? 나중에 너한테 연락하라고 할게.”
“응.”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엄마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무어라 몇 마디 주고받던 엄마는 휴대폰을 가방에 쏙- 넣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소은이는?”
“아니 왜 다들 소은이만 찾아.”
“몰라서 묻니?”
“……소동물관.”
“소은이 보고 그냥 갈 거니까 나오지 말렴.”
엄마는 그렇게 휙- 가버렸다.
“히히, 압빠! 할무니가 사탕 줘써!”
한참 뒤 돌아온 소은이가 선물 받았다며 자그마한 막대사탕 하나를 물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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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통하여, 내게 논문 작성의 도움을 부탁한 사람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몇 번 전화를 주고받으며 일정을 조율한 다음, 김해 공항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나묵휘 입니다!”
엄마의 사촌의 사촌의 아들이자, 내게 논문 작성의 도움을 부탁한 사람인 나묵휘는 나를 보자마자 냅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아니, 인사를 박았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 말대로 결혼식 때 그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도 이렇게 인사를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 저번에 결혼식 때 본 것 같네요.”
“기억하시고 계시군요!”
나묵휘는 내가 아는 척을 해주니 기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님, 진짜 팬이라서 그런데 싸인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원하는 대로 싸인을 해주니 정말 소중하다는 듯 가방에 조심스레 밀어 넣고 있었다.
“크, 크흠. 묵휘군.”
“앗,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죠? 형님. 제 논문 작성을 도와주시기로 한 교수님이세요.”
나묵휘는 뒤편에 있던,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어르신을 소개해 주었다.
“저희 학계에서도 엄청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주인공을 이렇게 직접 만나니 무척 신기하군요. 묵휘군을 지도하는 이일생입니다.”
이일생 교수와 인사를 하고, 그 뒤에 추가로 있던 몇몇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나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일단, 저희는 일본의 홋카이도에 있는 동물원에 갈 예정입니다. 목록에 있는 동물들 중 꽤 많은 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죠.”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는 내용이었으나, 다시 한번 처음 목적지를 알려주는 나묵휘의 안내를 따라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니 금세 비행기가 착륙할 시간이 되었다.
준비된 차량을 타고 잠시 이동하니 꽤나 큰 규모의 동물원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는 동물원은 그 크기부터가 꽤나 거대했다.
“처음은 설표라고도 알려진 눈표범으로 가시죠.”
“눈표범이 하는 행동 중에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나요?”
“아는 사람들은 아는 차밍포인트라고 할까요? 눈표범들은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뭐…… 꼬리 끝이라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서 그렇다, 털이 부족한 입의 보온을 위해서다, 그냥 노는 거다- 하고 추측하고 있죠.”
나묵휘의 말에 휴대폰으로 눈표범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표범이라는 대형 고양이과 맹수 치고는 무척 귀여운 외모에, 꼬리를 물고 있는 사진이 무척 많았다. 나묵휘의 말대로 차밍포인트로 여겨도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절벽에서도 마구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강심장인 주제에, 의외로 겁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기 새끼가 폴짝 뛰어 나타났다고 놀란다거나, 동물원에 있는 개체가 관광객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바들바들 떨어대는 영상마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얘도 고양이과네요?”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고양이과 놈들이 워낙 제멋대로라서요. 얘들,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우리 동물원의 고양이과 녀석들도 다 지들 멋대로 사는 놈들이었다. 툭하면 고장 나고,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에이, 설마요. 그래도 뭔가 이유는 있지 않겠어요?”
“뭐……. 일단, 직접 물어보면 알겠죠.”
휴대폰을 다시금 주머니에 쑤셔 넣은 나는, 일행들과 함께 눈표범의 사육장으로 다가갔다.
미리 동물원 측에 협조를 구했기 때문인지, 일반 관람객들과 다르게 눈표범의 사육장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사육장 내부에는 몇 마리의 눈표범들이 서로 엉겨 붙어 놀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나를 보자마자 호다닥 달려들기 시작했다.
“멈춰!”
당연하게도 그 모습을 본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마법의 단어를 외치는 것이었다.
‘절대’라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동물들에게 공격받을 일이 없는 소은이와 다르게, 나는 놀자고 엉겨 붙는 녀석들에게 한 대 맞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멈춘 녀석들에게 공격하지 말 것을 요구한 나는 녀석들을 다시금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조금 전처럼 빠르게 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제법 빠른 속도로 다가온 녀석들은 내게 다가와 몸을 비벼댔다.
“못 보던 인간이네? 뭔가 느낌이 좋은 걸?”
“안녕.”
“흐아아아악!”
나를 보며 느낌이 좋다며 가까이 붙어 있던 녀석들은 내가 안녕- 하고 인사해 주니 비명을 내지르며 폴짝 뛰어올랐다.
“말이 통하는 인간은 처음이라서 깜짝 놀랐네.”
“너네 겁이 좀 많아 보인다?”
“흥, 우리가 겁이 많다고? 지금이야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내가 예전엔 설산의 지배자였어!”
“우왁!”
“후끼야아아악!”
“거 봐. 겁 많네.”
갑자기 만세를 하며 소리치니, 눈표범들이 또다시 폴짝 뛰어오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푸흐흐, 웃음을 터트리며 잠깐 놀리니 삐진 듯한 모습으로 내게서 몸을 돌렸다.
“미안미안.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
몸을 돌린 녀석들을 붙잡아 털을 쓰다듬으며 사과하고 나서야 삐진 녀석들을 달랠 수 있었다.
나는 이 기회에 눈표범들의 건강체크를 하고 싶다는 동물원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건강검진을 시작하는 녀석들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너네들 간혹 꼬리를 물고 있잖아? 그건 왜 그런 건지 알려줄래? 꼬리가 시려서 그런다던가, 아니면 입을 따듯하게 하려고 한다던가. 그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내 말에 눈표범 중 한 마리가 자기 꼬리 끝을 앙- 베어 물었다.
“그렇지. 왜 그러고 있는 건지 이유 좀 알려줄래?”
“이렇게 있으면…….”
“그렇게 있으면?”
“기부니 조크든요.”
“…….”
여전히 꼬리를 문 채, 괴상한 말투로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순간 할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