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8
0207 유부남들의 여행(1)
저녁 늦은 시간, 갑자기 몇 번이나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하니 한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것도, 뭔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듯한 메시지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뚜르르- 울리기도 전에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 왜 이렇게 다급하게 톡을 보내?”
“어, 급한 일이 있지. 엄청 급한 일이.”
“급한 일? 무슨 일인데?”
“여행 가야 돼.”
“……?”
나는 여행 가는 거랑 급한 일이랑 무슨 상관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여행이랑 급한 일이랑 무슨 연관이 있냐고.
“여행이랑 급한 일이랑 무슨 상관……. 아니, 것보다 여행 가는 건데 나한테 다급하게 톡을 한 이유가 뭐야?”
“너도 같이 가야 하니까?”
“나? 내가? 왜?”
친구 녀석의 화법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급한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내가 같이 가야 한다고 하니 평범한 정신 상태로는 그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와이프한테 친구들이랑 여행 가도 된다고 허락은 받았는데, 꼭 너랑 같이 가래.”
“……아니, 왜?”
“네 팬이라고, 싸인 좀 받아오란다.”
“그냥 해주면 되는 거 아냐?”
“지 남편이 유명인이랑 여행도 다닌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라는데……. 좀 도와줘.”
친구 녀석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헛소리나 해대는 것 같으면서도, 자기 가족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마냥 미친놈 같았는데 결혼까지 한 지금은 제정신이 박혀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언제 갈 건데? 며칠이나?”
“3박 4일로, 내일.”
“미친놈아!”
아니, 그냥 미친놈이 맞았다.
“장난이고, 이번 달 말에 갈 거야. 지금은 같이 갈 멤버 모집 중.”
미친놈이 맞긴 했지만, 그래도 상식은 있는 듯해서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달 말에 여행을 간다는 소리에, 나는 조금씩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섬에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그건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모처럼 여행을 한 번 다녀오고 싶었다.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우리 동창 중에서 모으는 거지? 누구누구 모았냐?”
“나, 너. 그리고 우리.”
“……진짜 미친놈이네.”
“일단 너한테 확답부터 받고 모으려고 했지. 우리 중에 자영업 하는 건 너밖에 없잖아. 자영업자들이 마음대로 쉬는 게 힘들다면서?”
이 녀석은 생각이 없는 건지, 있는 건지 자꾸 헷갈리게 만드네. 배려하는 건지, 골탕을 먹이려는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난 괜찮아. 내가 며칠 없다고 안 돌아가는 동물원도 아니니까. 뮤튜브는…… 뭐, 여행 가서 브이로그 형식으로 영상만 찍어서 보내주면 되는 거고.”
“오, 그럼 가는 걸로 할 거지?”
“……나도 누나한테 좀 물어보고.”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나에게 붙잡혀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가족이니 이야기는 나눠야 했다. 내가 없으면 소은이와 은수를 혼자 돌봐야 했으니 말이다.
“그럼 허락받고 전화해.”
“어.”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누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받아냈다.
“잘 다녀와. 요즘 너무 일만 했잖아. 너도 쉬어야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말에, 나는 다음 관문인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소은이에게도 쉽게 허락받을 수 있었다. 나 혼자 가는 거면 몰라도, 내 친구들과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사이에 껴서 노느니,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놀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모처럼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생각에 들뜬 나는, 곧바로 여행을 계획한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을 포함하여 3박 4일간의 유부남 여행이 확정되었다.
○ ◑ ● ◐ ○ ◑ ● ◐ ○
“요! 솬쓰!”
“치광이 왔냐.”
여행을 갈 때, 편안함을 위해 내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이른 아침부터 내 친구들이 동물원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온 녀석은 여행을 계획한 녀석이자, 내 딸의 팬이기도한 미친노……가 아니라 마치광이었다. 미치광이가 아니라, ‘마치광’이다.
“공주님은?”
“……내 딸을 네가 왜 자꾸 찾는 거야.”
“당연히 팬이니까!”
슬쩍 내 뒤편을 바라본 치광이었지만, 녀석에겐 아쉽게도 소은이는 집에서 쿨쿨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내가 간다고 인사를 해주고선 고스란히 침대에 파묻힌 상태였다.
무척 실망한 듯한 치광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얘도 가?”
그런데, 차 문을 열어주니 치광이가 순간 흠칫하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차에는 미리 탑승해 있던 녀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말이다.
“어. 데려가려고.”
“하긴, 얘도 유부남은 유부남이지. 음.”
뒷좌석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남캣과 구박이를 바라본 치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얘들 엄청 얌전하다? 구박이는 몰라도 남캣 얘는 좀 사납지 않아?”
“얌전히 있어야 데려간다고 했거든.”
“아.”
내 말에 치광이가 두 녀석의 심정을 100% 이해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묘하게 유대감을 가진 듯한 모습으로 한곳에 모여들었다.
폭신이에게 꼼짝 못 하는 남캣, 지은 죄가 있어 여전히 미호에게 설설 기는 구박이는 치광이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모습에 황당해 하고 있으니, 여행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다른 두 명이 도착했다.
“오랜만!”
영원한 반장과, 성휘가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두 녀석은 치광이가 그러했듯, 차량에 올라타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묘하게 서로 유대감을 가진 듯한 모습을 보이며 엉겨 붙고 있었다.
“얘들 마음에 드네. 좋아. 심심하진 않겠어.”
심지어,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남캣 녀석마저도 내 친구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남캣은 내 친구들이 꼬리마저 슬금슬금 터치하고 있음에도, 냥냥펀치를 날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츄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손으로 쓰다듬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로서는 무척 신기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서 출발하자는 친구들의 재촉에, 나는 곧바로 차를 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친구들이 여행에 동참한 것은 일상에서 탈출해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우리의 여행지였다.
경남 쪽으로 숙소를 잡은 우리는 그곳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즐기기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음악을 틀고, 차가 둥둥 흔들릴 정도로 흥겹게 몸을 흔들어대며 이동한 우리는 점심 즈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보다 좀 빨리 도착해서, 시간이 남는데 뭐 할래?”
“볼링이나 치러 갈래? 요 앞에 있던 거 같은데.”
“볼링? 좋지.”
숙소를 나선 우리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볼링장으로 향했다.
외진 곳에 위치해서 장사가 잘 안되는 건지, 시설이 조금 노후화되었지만 단순히 즐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평일에, 그것도 낮이다 보니 볼링장은 사람 하나 없었기에 여유로이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다.
우리는 팀을 나눠 게임을 진행했는데, 때마침 동물도 두 마리가 있다 보니 녀석들도 한 팀에 한 마리씩 포함되어 있었다.
“조아쓰! 스트롸?”
“돌아! 돌라고! 좀만 더 왼쪽! 으아아악! 저렇게 남으면 안 되는데!”
게임을 시작한 우리는, 내가 포함된 팀이 압도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스트라이크에 성공했지만, 상대 팀은 스페어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쪽 끝의 핀 단 두 개가 남아 있는, 스네이크 아이라고도 불리는 상황을 직면한 상태였다.
“하……. 조졌네. 이제 믿을 건 남캣 너뿐이다! 부탁한다!”
상대팀인 반장 녀석이, 자신의 팀원이기도 한 남캣의 앞발을 잡고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해당 핀들을 쳐낼 수 없으니, 남캣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볼링의 볼도 모르는 남캣이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라는 정신승리를 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내 친구지만, 참 가슴이 옹졸해지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 팀의 승리였기 때문에 나는 너그럽게 녀석들의 수작질을 용납해 주기로 했다.
“남캣아, 구박아. 조금 전에 우리가 하는 거 봤지? 이 공을 저쪽으로 굴려서, 서있는 막대기를 쓰러트리면 돼. 양옆으로 빠지면 막대를 쓰러트릴 수 없고.”
볼링에 대해 매우 간단하게 남캣과 구박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내 설명을 들은 남캣이 움직였다. 반장이 공을 내려주니, 남캣이 그 공을 향해 다가간 것이었다.
“이걸 저쪽으로 굴리면 된다는 거지? 재밌네.”
볼링에 흥미를 가진 건지, 남캣이 볼링공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묵직한 공이 녀석의 앞발에 슬쩍 움직였다. 평범한, 고양이들의 장난감 공과 다르게 묵직한 그 느낌이 좋은 듯, 좌우로 타격하며 공을 굴렸다.
공을 몇 번 치며 감각을 익힌 듯, 남캣은 곧이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핀을 바라보았다.
양쪽 라인 끝에 서있는 핀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남캣은 그런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흡!”
남캣은 핀을 응시하더니, 그대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치 네 발을 모두 이용해서 걷어차는 것처럼, 볼링공을 걷어차버렸다.
쿠르르륵! 소리를 내며 볼링공이 쏘아지듯 나아갔다.
“어, 어! 어!”
빠르게 쏘아지는 공은 그대로 거터라고 불리는 구덩이에 근접했다. 그 모습에 반장이 벌떡 일어나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은 거터에 빠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회전하며 굴러갔다.
거터의 끝부분을 타고 굴러간 볼링공은 이윽고 강한 회전이 걸리듯 거터에 반쯤 걸쳤다. 당장이라도 빠질 것처럼 거터에 걸친 볼링공이었지만, 어느덧 레인의 끝부분에 도달한 상태였다.
티잉!
레인의 끝부분. 양쪽 끝에 남아 있던 볼링핀 중 하나가 있는 위치까지 도달한 볼링공은 그대로 볼링핀을 가볍게 두드렸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볼링핀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다시 한번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볼링공에 얻어맞은 볼링핀이 튕겨나가며 반대편에 있던 볼링핀을 쓰러트린 것이었다.
뒤이어 쿵! 하고 들려오는, 볼링공이 레인의 끝을 강타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핀들이 자동으로 정리되었다.
“……와, 와아아아아악!”
“와아아! 이걸 해내네!”
“이게 된다고?!”
“내가 뭘 키운 거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지간한 프로 선수들도 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도 아닌 고양이가 쳐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제수씨가 원하는 대로 치광이와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녹화를 하고 있던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남캣은 영웅이야!”
나는 반장과 성휘가 남캣을 헹가래 치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