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4
0243 프로
할 일이 없어, 오전부터 방송을 켰더니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원래라면 은수를 돌보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오늘따라 은수가 엄마에게서 떨어지려 하질 않아서 누나가 데리고 나간 상태였다.
당근이나 브로콜리 한 송이만 쥐여준다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이라서 사무실에 데려간다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빠르게 몰려오는 시청자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나는 곧바로 게임을 켰다. 따로 방송할 컨텐츠가 있어서 켠 것도 아니었고,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랑할 것도 있었다.
“아, 맞다. 여러분. 저 플래 찍었어요.”
바로 만년 브론즈, 실버 소리를 듣던 나의 티어가 드디어 몇 단계나 상승했다는 것이었다. 브론즈, 실버, 골드를 넘어 플래티넘에 도달한 것이었다.
[ㅈㄹㄴㄴ] [신수님이 플래? 어디 이세계 다녀오셨나요?] [만년 브론즈인 내가 이세계에선 플래티넘?] [대리받았어요?] [드루이드/논란/대리게임] [혹시 잠이 덜 깼어요? 꿈이란 현실 구분해야죠!]하지만 내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조금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게임 전적을 보여주는 사이트에 접속해, 내 계정을 보여주었다.
누나의 이름인 하은부터 시작해, 소은, 은수, 수환을 적당히 합친, 내 닉네임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티어가 플래티넘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아이콘이 그려져 있었다.
“자, 봐요. 제 닉네임에, 플래티넘.”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입꼬리까지 쓱- 말아 올리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채팅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왜진?] [진짜 대리받음?] [형 그 실력으로 어케 플래 됐어?] [혹시 상대팀 매수했나요?] [나 어제까진 실버였는데, 앞으론 다이아라고 불러라.]사람들은 결과를 보여주었음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그 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시청자들 뿐이 아니었다.
[파이엇코리아 님이 10만 원 후원!] [“신수님. 이건 좀 해명을 해주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찐이야?] [찐인데?] [찐이다!] [ㅋㅋㅋㅋㅋㅋㅋ게임사도 의심하는 실력 ㅋㅋㅋㅋ]바로, 해당 게임 제작사의 한국 지부에서도 내가 플래티넘이 된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뭘 해명을 해요?”
[해] [신수님이 플래? 절대 못 믿지] [대리해명 하세욧!] [명] [전설의 천년정지 가나요?] [해]사람들은 내가 대리를 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증명을 하기로 했다. 잠시 준비를 하고, 곧장 게임을 시작한 것이었다.
“자 봐요. 이 구간에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요.”
나는 화면에 떠오른 문구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羔 잘하지? 아무리 플래라고는 해도 넘 잘하는데?] [근데 갑자기 캠은 왜 껐을까? 현실 대리?] [캠 켜! 주인장 나와!]물론, 내가 숨기고자 하는 것을 파악한 이들이 하나둘씩 있었다. 내가 조금 전까지 얼굴을 보여주던 캠 화면을 껐다는 것으로 눈치챈 이들이 있는 것이었다.
“에이, 들켰네요.”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닫아두었던 캠 화면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캠 화면이 켜지는 것과 동시에 채팅창이 터져나갔다.
[???원숭이??????] [대리… 맞나?] [원숭이가 거기서 왜 나와?] [지금 원숭이가 스킬 날린 거야?]다름이 아니라, 캠 화면의 정중앙. 컴퓨터를 조작하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원숭이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놀람에도, 원숭이 녀석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게임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끽! 끼기기긱!”
“숭아, 수고했다.”
“별 거 아니다 끽!”
수고했다는 의미로 오렌지 하나를 턱, 던져 주니 녀석이 순식간에 껍질을 벗겨내어 과육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대리라는 건가?] [근데 대리는 ‘타인’이 해주는 거잖아. 원숭이가 인에 포함될까?] [뭐가 어떻게 됐든 원숭이가 나보다 잘한다는 게 충격이다.] [정보) 플래티넘은 상위 약 17%다. 원숭이보다 게임 못하는 인간이 83%라는 뜻.] [나 원숭이보다 게임 못하네…]“대리라뇨. 원숭이가 제 초능력 덕분에 이런 실력을 가지게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것도 제 실력인 거죠.”
나는 원숭이가 하나 먹겠냐고 내미는 오렌지 과육 일부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당당하게 말하니, 사람들이 조금씩 ‘그런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
[파이엇코리아 님이 10만 원 후원!] [“대리인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로다.”]“아니, 또 정지하려고?! 난 무죄야! 무죄!”
나는 예전에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게임 이용이 정지된 적이 있었다. 그 기억 때문에, 반사적으로 조금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트롤러(아님)] [아, 저 심판! 정지 카드를 만지고 있어요!] [한 계정으로 2번 정지 먹는 법.] [정지시키자! 신수는 심해를 심해로 만드는 원흉이다!] [저 드루이드는 해로운 드루이드다…]당연하지만 내가 예전에도 고의적 트롤링이라며 게임이용이 정지된 것을 아는 시청자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번에 또 정지될 건지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 계정을 지키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약관! 약관에 타인이라고 적혀 있었잖아! 얘는 원숭이라고! 타인이 아니라 타숭……. 아니, 원숭이 원 자를 써서 타원이잖아! 난 약관 어긴 적 없어!”
또 정지될 수는 없었다. 괜히 대리 게임이라는 명목으로 정지되면, 트롤 오해때와 다르게 정지를 풀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다급함을 느꼈는지, 게임사 한국 지부에서도 나름 나쁘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파이엇코리아 님이 10만 원 후원!] [“확실히 약관에는 타인이긴 하죠. 그래도, 앞으로는 원숭이 전용으로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써주세요.”]“휴…….”
정지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후원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에 안도한 나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원숭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게임은 나중에 또 시켜줄게.”
“그럼 가보겠다 끽!”
원숭이는 게임을 더 하지 않으면 여기 있을 생각이 없다는 듯, 의자에서 스르륵 내려와 사라졌다. 동물원을 찾는 어린아이들에게 풍선아트로 여러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주는 것이, 게임을 하는 것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휴. 또 정지당하는 줄 알았네.”
[ㅋㅋㅋㅋㅋㅋㅋ] [ㄲㅂ] [정지의 문턱을 밟고 있었지 ㅋㅋㅋ] [정지이력 : 트롤링(안 함), 대리(안 함)]“까비 나와.”
[돔황챠] [((] [((] [))] [((]정지를 피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를 찾으려 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채팅 하나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고개를 내저으며 찾기를 포기한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에이씨. 또 브론즈로 떨어지겠네.”
처음으로 플래티넘이란 티어에 올라봤는데, 다시 브론즈로 갈 생각을 하니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내 실력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쉬움을 떨쳐내고, 게임을 종료하고 있으니 후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반_지 님이 100만 원 후원!] [“안녕하세요. 반_지의 감독입니다! 신수님께 메일 하나를 보냈는데, 확인해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후원 메시지를 보냅니다.”]“반지면 프로팀 아닌가?”
[찐 맞는 거 같은데?] [파이엇코리아로 모자라서 반지도 오네 ㅋㅋㅋ] [반지 이놈아 신수는 안된다! 어디 브론즈를!] [메일? 우리도 보여줘! 왜 혼자만 봐!]메일을 보냈다는 소리에, 휴대폰으로 메일을 확인하려던 나는 같이 보자는 시청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컴퓨터로 메일을 확인했다.
반_지의 감독입니다- 라는 문구로 시작한 메일에는 꽤나 신박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긴 방금 그 실력이면 충분하긴 하지?] [게다가 신수의 동물이면 이슈도 될 거고.] [나쁜 선택은 아닌 거 같은데.]다름이 아니라, 원숭이 녀석을 영입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물론, 프로 선수로서 영입하는 것은 아니었다. 팀의 마스코트를 겸해서 간간히 생기는 이벤트전에 참여해 이슈 몰이를 해줄 목적으로 영입하려는 생각이었다.
반지 팀의 감독이라는 사람은 원숭이의 피지컬이 무척 좋고 재능마저 보인다고, 조금만 가르치고 다듬게 되면 어지간한 프로 수준의 실력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프로 원숭이? 개쩐다 당장 하자!] [반지한테 지면 원숭이 보다 못하는 팀이 되는 건가…] [이젠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게 욕으로 쓰긴 힘들 거 같지 않냐?] [짐승만도 못한 놈!(사실이라 타격 없음)]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나는 채팅창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고서 입을 열었다.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자세한 건 따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적당히 방송을 조금 더 이어간 이후, 프로게임단 반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나 원숭이에게 해가 될 조건이 없는 데다 원숭이 녀석도 한 번 해보겠다며 의견을 피력했기에, 반지와 원숭이의 영입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약을 체결한 다음, 원숭이는 동물원과 서울을 오가며 게임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간중간 전화 통화로 통역을 해주거나, 자신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손짓 같은 것들을 미리 정해두며 연습하고 있는 것이었다.
꽤 똑똑한 녀석 답게, 게임의 감정표현 기능이나 신호를 주는 기능까지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다음부터 실력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며 시간이 흘렀을 때, 원숭이 녀석이 드디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반_지, 2군 리그 우승의 주역은 원숭이!]게다가 반지의 감독이 본 것처럼 원숭이에게는 재능이 있었는지, 2군 리그이기는 해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이게 진짜 왜 되는 거지?”
나는 원숭이를 중심에 놓고, 양 옆에 사람들이 서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는 사진을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