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5
0244 탈것(1)
“압빠.”
“응? 오늘은 치킨이 데려갈 거야?”
“으으응.”
등교를 준비하는 아침. 소은이가 쪼르르- 다가와 나를 바라보았다.
품에 치킨이를 안고 있었기에 치킨이를 데려가도 되냐고 물어보려는 건 줄 알았더니, 소은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오늘, 나 태워조! 학교까지 차 타고 갈래!”
“차?”
소은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를 타는 것보다 뽀니나 루돌프를 타는 걸 더 좋아하는 소은이가 먼저 차를 태워달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못할 것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차를 타면 따듯한 커피가 식기도 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소은이가 왜 갑자기 차를 타고 싶다고 할까?”
“우움. 그게!”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소은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소은이가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이유를 듣고서,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반에 남자 애가 있는데, 걔가 나보고 집에 차가 없어서 동물이나 타고 다니냐고 해써! 우리 집에도 차 있는데! 자기 아빠 차가 엄청 좋은 거라고 막 그래!”
“뭐……?”
이제 8살, 초등학교 1학년이 했다고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에 그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황당함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럼 오늘 아빠가 데려다주고, 학교 마칠 때 데리러 갈게. 뽀니는 동물원에 있으라고 하자.”
“웅!”
소은이는 내 말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챙기러 갔다.
“소은아! 삼기토가 아니라 책을 넣어야지!”
도중에 삼기토가 가방에 들어가기 애매할 것 같자, 가방에 있던 책을 빼려는 소은이를 말려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침 준비를 끝마친 나는 소은이를 데리고 학교로 향했다. 오랜만에 차에 탄 소은이는 다리를 흔들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에 분식집 있는데, 엄청 맛있었어! 지여니랑 같이 가서 먹었는데, 언니야가 엄청 마니 줘써! 그리구 쩌어기 문방구에 엄청 신기한 거 많이 판다?!”
소은이의 등하굣길에 접어드니 학교를 오가며 들렀던 몇몇 가게들을 가리키며 열심히 이야기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이어진, 이제는 같은 반으로 매일 붙어 다니는 지연이와 돌아다닌 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초등학교 앞으로 차를 몰고 가니, 이미 많은 수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차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리는 걸 보면, 다들 학부모인 것 같았다.
많은 차들이 빠져나가고, 교문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세워주니 소은이가 알아서 안전벨트를 착 풀고 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씀미다!”
“나중에 마칠 때 데리러 올게. 마치면 전화 해!”
“웅!”
소은이는 빠빠이- 하고 외치며 문을 탁, 닫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뭐야, 신소은. 너네 집 차 있었어?”
“그래! 차 없어서 동물친구들 타고 다닌 거 아니거든! 바보야!”
“흥, 그래봐야 똥차지. 우리 아빠 차가 뭔 줄 알아? 저런 똥차는 몇 개나 살 수 있다고!”
“이익!”
열린 창문으로 소은이와, 한 꼬맹이가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사이드미러를 바라보니, 고급 외제차에서 내린 꼬맹이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씩씩거리던 소은이가, 어느새 다가온 친구들과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걸어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참나…….”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조금 싸가지가 많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뒤에서 기다리는 듯한 차량들의 모습에 차를 몰고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상황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똥차라…….”
소은이를 씩씩거리게 만든 그 꼬맹이가 했던 말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차도 오래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은이가 태어나기 전에 구매한 차량이었으니 말이다. 이곳저곳 자주 다닌 덕에 주행거리도 제법 높았다.
“이참에 바꿀까.”
“뭘 바꿔?”
“으히약!”
혼자 중얼거리며 고민하고 있으니, 누나가 갑자기 튀어나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뭐 사게?”
하지만 배시시 웃는 누나는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목과 어깨를 감싸는 누나의 팔을 가볍게 쓸어준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소은이와, 그 발칙한 꼬맹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말? 예전에도 어린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더 심하네.”
“이게 세대차이인가 싶다, 진짜. 그래도 소은이가 그 꼬맹이는 별로 안 좋아해도, 다른 애들이랑은 친해 보여서 다행이지.”
“그래서, 그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어? 예전에, 재민이처럼?”
누나가 내 볼을 살며시 콕- 누르며 이야기했다. 소은이가 유치원 다닐 때 있던 일도 꺼냈다. 파충류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동물원보다 자기 집이 좋다고 평가했던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려 누렁이를 비롯한 여러 파충류들을 들여왔던 일을 말이다.
“그래야지. 별 것도 아닌 걸로 우리 딸이 무시당하게 할 수는 없잖아?”
나는 씩- 미소 지었다. 그래, 별 것도 아닌 걸로 소은이나 은수가 무시당하는 일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휴, 어련하시겠어. 알아서 해.”
누나는 나를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한 미소를 짓더니, 내 코 끝을 톡 건드리고 일어났다.
“난 영지 연애 상담이나 해주러 갈래. 얼마 전에 남자친구 사귀었다더라.”
누나의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누나를 바라보았다. 법적으로는 처제의 위치에 있는 영지였지만, 내게는 거진 여동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상대는? 우리도 아는 사람이야?”
“응. 여우 담당 사육사, 여강지 씨.”
“강지? 음, 걔라면 뭐.”
우리 동물원 소속 사육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취직 경쟁이 치열한 우리 동물원 특성상, 인성검사까지 하면서 채용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물원 소속이라면 최소한의 검증은 마친 인물이라는 소리였으니 영지의 남자친구로 손색이 없었다.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판단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지에게 가는 누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방송을 켰다.
[ㅅㅎ!] [신수하이!(ㅅㅎ라는 뜻)]인사말이 빠르게 채워지는 채팅창을 바라본 나는 곧장 방송을 켠 이유를 물었다.
“여러분. 딱 보면 아, 개쩌는 차네. 할만한 차가 뭐 있을까요?”
[차 살 거임?] [하긴 신수님 차 이제는 구구구형이긴 하지? 3년 만에 또 풀체하고 있으니까 ㅋㅋㅋㅋ] [GB9900 ㄱㄱ 이제 전기차가 답임!] [개쩌는 차라고 하잖아. 그럼 람라리-라람라리e 가야지.] [화성슬라 모델섹시] [이젠 비행 가능한 차량이 답이다. 루가티 라루돌프 ㄱㄱ]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차량의 이름들을 언급했다.
적당한 국산 차량부터 수입 외제차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돈으로는 구매할 수도 없는 슈퍼카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의 채팅을 하나씩 확인하며 검색하던 도중, 한 차량이 눈에 띄었다. 그 발칙한 꼬맹이가 내렸던 차량과 똑같이 생긴 차량이었다.
“최소한 이거보단 좋아야 돼요.”
[최소? 그거 수입 중에서도 상위권인데?] [뭔 일 있음? 왜 그거만 콕 찝어여?] [그러면 답은 플라잉카지. 라루돌프!] [맞음 라루돌프 가자. 4인승이라 신수님 가족 안성맞춤이네.] [동물들은?] [날아오라 그래. 청호쯤 되면 스카이워크도 하겠지.]최소선을 정해주니, 채팅창에 마구 올라오던 채팅들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대신, 어느 차가 좋고, 어느 차가 안 좋고- 하는 이야기로 토론이 펼쳐졌다.
그런 채팅들을 막아버리고, 채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차량을 검색했다.
“오……. 이거 비행도 되네요?”
[ㅇㅇ 비행됨. 대신 개인비행체 소유 허가 있어야 함.] [수직이착륙도 안 돼서 활주로도 있어야 하잖아 ㅋㅋㅋ] [그게 문제냐고 무려 비행이 가능한데!]사람들이 추천한 차량은 무려 비행이 가능한 차량이었다. 하지만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기에, 실제 운행에는 지장이 많은 편이었다.
결국, 그 차량을 선택지에서 지워버린 다음, 여러 차량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부분 속도에 치중된 차량들답게 낮게 깔린 형태의 2인승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소은이의 기를 세워준다고 해도 그 차를 1회용으로 쓸 생각은 없었기에, 여러 조건들을 추가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거 좋네.”
[람라리 푸로산? 그것도 개쩔긴 하지!] [4인승 suv 중에선 최고지. 모터 4개라서 속도도 개쩔고.]그러던 도중 내 마음에 쏙 드는 차 하나를 발견했다. 수억 원이나 하는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크게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쿠아리움을 건설 중이 아니었더라면 무리도 아니었을 금액이었다.
나는 곧바로 국내에서 해당 차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차량을 주문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수제작을 하고 해외에서 배송을 하다 보니 최소 한 달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길어지면 2달, 3달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어쩌지.”
당장이라도 그 발칙한 꼬맹이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걸린다니 무척 아쉬웠다.
그러던 도중,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비싼 차가 있다고 우쭐대는 녀석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서 한 마리의 동물과 함께 진화의 섬으로 향했다. 물론, 진화의 섬으로 출발하기 전, 하교 시간에 맞춰 소은이를 집에 데려오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