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9
0248 동물 번역기
“동물말 번역기요? 그런 게 나왔어요?”
방송을 하며 화단을 가꾸던 나는, 모종삽을 바닥에 콕 찍어 내려놓고서 의문을 표했다.
보통 반려동물들을 위한 용품 같은 것들의 리뷰를 하며, 동물들의 생생한 반응을 리뷰해 준 것은 자주 있긴 했지만 번역기를 리뷰해 달라는 소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번역기가 나왔다는 소리 자체를 처음 듣는 상황이었다.
“잠깐, 그거 내 컨텐츠 날아가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물말 번역기라니! 그 말은 곧, 내가 간간이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진행하는 컨텐츠 하나가 날아간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팬들이 자신들의 동물들이 소리를 내는 것을 찍어, 내게 보내주면 그것들을 한 번씩 번역해 주는 컨텐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번역기가 생긴다면 그런 컨텐츠가 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다급히 그 번역기라는 것을 찾아보았다.
[99%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최신형 동물말 번역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의 말을 99% 정확하게 번역해 드립니다!] [번역기 본체 1ea 300,000 원] [번역기 + 악세서리 350,000 원] [번역기 본체 1+1 550,000 원]휴대폰으로 검색을 하니, 관련 쇼핑 목록 최상단에 해당 번역기가 나와 있었다. 무려 99%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문구까지 있었다.
“와, 생각보다 가격대가 높네요?”
따로 내게 광고가 들어온 제품이 아니니, 제품명 같은 것들을 가리고 방송에 보여주니 사람들의 반응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아무리 동물들의 말을 번역해 주는 물건이라고 해도 30만 원은 비싸다는 사람들과, 실제 99%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제품이라면 30만 원 정도는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었다.
“일단 그럼 주문할게요. 빠르게 받아야 하니까 드론 배송도 신청하고……. 그럼 이건 배송을 받고 나면 바로 리뷰하도록 할게요.”
나는 곧바로 해당 번역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드론 배송의 힘으로,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저녁 시간 즈음 해당 제품의 리뷰를 할 수 있었다.
“드론 배송 덕분에 바로 리뷰를 할 수 있겠네요.”
[ㅃㄹㅃㄹㅃㄹㅃㄹ] [진짜 동물들 말을 번역해 줄 수 있을까?] [저거 찾아보니까, 미국에서 초능력자들 협조로 만들었다던데.] [99%면 진심 바로 산다. 주문 대기 중!]“참고로, 이 제품은 따로 협찬받은 것도 아니고, 광고가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저를 믿고 샀는데 아닌 거 같다고 하시면 안 돼요. 그래서 제품명도 안 보여 드리는 거고요.”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밑밥을 깔아놓고, 미리 개봉해 둔 제품을 가져왔다.
리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리뷰를 하긴 하는데, 광고비도 받지 않고 광고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미리 제품명이 음각된 부분도 모두 알록달록한 색상의 테이프로 가려놓은 상태였다.
“음, 정면에는 디스플레이가 있고, 앞 쪽으로 마이크가 있네요. 여기로 동물들의 소리를 들려주면 번역을 해주는 것 같네요.”
가볍게 외형을 이야기하고, 곧바로 작동을 시작했다.
화면이 빠르게 켜지더니, 두 개의 사각형 버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와 고양이가 캐리커쳐로 그려진 버튼들이었다.
“개랑 고양이의 말만 번역이 되나 보네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반려동물 시장이 커진 만큼, 개와 고양이 말고도 다른 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전히 개와 고양이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 방송 컨텐츠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약간 안도한 나는 곧바로 개와 고양이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도 동물원 수백 바퀴를 도는 마루였다. 십 분 정도라도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100% 만날 수 있는 녀석이었다.
“마루야, 잠깐만.”
마루를 불러내니, 녀석이 호다닥 달려왔다. 헥헥 거리며 혓바닥을 늘어트리는 녀석을 바라보던 나는, 녀석에게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개 모양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버튼을 누르니 곧바로 작동되었다.
“이거 뭐예요? 먹어요?”
“아니, 먹으란 건 아니고. 잠깐만.”
나는 번역기 화면에 떠오르는 문구를 바라보았다.
“음…….”
그 문구를 바라본 나는, 조금 애매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루가 이게 뭐냐고 묻긴 했지만, 그다음에 먹으라는 거냐는 물음도 했었기 때문이다.
[아 몬데 빨리!] [되는겨?] [반응 보면 아닌 거 같은데.] [님 스겜요;]결과를 바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어서 결과를 말해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애매해요. 이게 뭐냐고 물어본 건 사실이긴 한데, 뒤에 먹으라는 거냐는 말은 포함되지도 않았으니까요.”
[1%의 확률을 뚫은 건가?] [ㄹㅇ 애매하긴 하다] [반만 해주면 50%잖아 ㅋㅋ]내 말에 사람들 역시 애매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마루야. 아무 말이나 해볼래?”
“아무 말!”
“……아니, 하고 싶은 말 같은 거 있잖아. 아무 말이나 하라 했다고, 아무 말이라고 하면 안 되지.”
“으으음! 뛰러 가요!”
잠시 고민하던 마루가,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던 건지 뛰러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소리를 번역하길 기다리니, 화면에 다시금 문구가 떠올랐다.
“……이것도 좀 애매하긴 하네요. 산책 가자고 한 게 아니라, 뛰러 가자고 했거든요.”
뛰러 가자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산책이라고 할 수는 있었기에, 마냥 틀렸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확한 번역이냐 하면 또 그것은 아니었다. 정말 애매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루야, 산책은 나중에 같이 가자. 지금은 내가 할 게 있거든.”
“네! 다음에 꼭 같이 가요!”
마루는 내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선 호다닥 달려 나갔다.
나는 곧바로 다른 동물들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녀석은 나태였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람객들에게 안겨서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인 녀석이었기에, 타이밍이 잘 맞지 않으면 보기 힘든 녀석이기도 했다.
“나태야.”
“………………………………….”
“이젠 대답도 안 하냐.”
나태는 말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 꼬리만 까딱였다. 그것도 끝 부분이 1cm 정도만 움직인 수준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하겠거니- 해서 번역기를 녀석의 주둥이 앞에 들이밀었다. 아무 말이나 하길 기다리면서 잠시 있으니, 녀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귀찮아.”
[귀찮음.]1분 정도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신경 쓰였던 건지 나태가 드디어 말을 하며 번역기가 작동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생각보다 번역의 품질이 좋았다.
[이건 진짜 제대로 번역한 느낌인데?] [나태가 할 말이 귀찮다는 거 말고 뭐가 있겠어] [정확도 급상승 ㅋㅋㅋㅋㅋㅋ]심지어, 사람들이 내가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결과를 예측하고 있을 정도였다.
“맞아요. 나태가 한 말은 잘 번역해 주네요.”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태를 대충 쓰다듬어 주고서, 다른 녀석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조금 움직이고 있으니, 동물원 곳곳에 있는 캣타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남캣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곧장 고양이용 번역기를 작동하며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남캣아.”
“꺼져.”
“이 냥아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보자마자 꺼지라 말하며 몸을 돌리는 남캣을 보며 골치가 아파왔다.
하지만 내가 골치가 아프건 말건, 번역기는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번역하는 듯한 화면이 보이다가, 문구가 나타났다.
[저리 가.]번역기에 보이는 것은 순화된 말이었다. 꽤나 많이.
“음, 이번에도 좀 애매하긴 하네요. 저 냥아치가 얌전하게 저리 가라고 한 게 아니라, 꺼지라고 했거든요.”
[역시 ㅈ냥이; 먹여주고 재워준 사람도 못 알아 보네.] [뭔데? 욕설 필터링이야?] [이건 남캣이 문제야? 아님 번역기가 문제야?]필터링된 것 같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츄르 하나를 꺼냈다. 식탐이 제법 많은 남캣이었기에, 츄르를 꺼내자마자 녀석의 꼬리가 하늘 높게 치솟았다.
“내놔!”
츄르를 달라며 남캣이 앞발 하나를 쭈욱 내뻗었다. 나는 츄르를 주는 대신, 다시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저리 치워!”
번역기에 냥냥펀치를 한 대 갈긴 남캣은 내 손에 들린 츄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번역기가 열심히 그 말을 번역했다.
[배고파.]“음, 이건 좀 많이 다르네요. 저리 치우라는 게 어떻게 배고프다는 걸로 바뀐 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수준으로 번역을 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동떨어진 수준으로 번역을 하고 있었다.
“떠들지 말고, 츄르나 내놔.”
[저리 가.]“이젠 아예 맞출 생각도 없는 것 같네요.”
츄르를 달란 이야기를 저리 가라는 것으로 번역하는 모습에, 고개를 다시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인내심이 완전 바닥나기 직전인 듯한 남캣의 모습에, 츄르를 짜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게, 완전히 번역을 못하는 건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99% 수준의 정확도는 아닌 거 같아요. 어느 정도는 때려 맞추는 느낌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좀 더 확인해 볼까요?”
츄르 하나를 순식간에 다 핥아먹고서, 더 이상 볼 일은 없다는 듯 떠나간 남캣을 뒤로하고 다른 녀석들을 찾아 나섰다.
고양이들을 담당하는 사육사에게 쓰다듬받던 쌍둥이 녀석은 쓰다듬어 달라는 말을 했고, 번역기도 그 말은 꽤 정확히 번역했다. 쓰다듬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만져 달라는 내용으로 바뀌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개와 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번역기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심지어, 주변 주택가까지 나가서 길고양이들을 상대로 시험까지 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99%의 정확성을 자랑한다는 동물말 번역기의 실제 정확도는 30%에 불과했다. 몇몇 종의 개나 고양이들에 대한 부분은 조금 정확도가 높긴 했지만, 정말 몇 종에 지나지 않았다. 기준으로 삼은 종에 대해서 높다- 라는 느낌이었다.
[나오는 문구 보니까 어느 정도는 진짜 때려 맞추는 느낌인데?] [이게 좀 낑낑거리면 아프다나 배고프다 같은 거 나오고, 좋다고 짖으면 만져 달라, 산책 가자 같은 게 나오나 본데.] [난 그래도 하나 살래! 울집 댕댕이 뭐라고 하는지 진짜 궁금함ㅋㅋ] [그래도 30% 정도 맞추는 거면… 그래도 대단하진 않나?]사람들이 번역기에 대해 여러 말을 해댔다. 대부분이 과대 광고니, 이상한 제품이니 하는 말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그래도 대단하다거나 구매를 할 생각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뭐, 그래도 완전 사기 제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을 완벽하게 번역해 주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원하는 걸 알 수 있는 정도는 되어 보여요. 정말 기초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얘가 배가 고픈지, 아픈지, 놀고 싶은지 알기 위한 목적으로는 알맞아요. 물론 그것도 정확도가 80% 수준이지만요.”
큰 기대를 갖고 제품을 쓰면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기대 없이 간단한 용도로만 쓸 생각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을 말해주니, 사람들 중 일부가 구매를 고려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간단하게 사용하기에 30만 원이란 비용은 무척 비싼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개와 고양이만 되는 제품이니 더더욱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동물들이 하는 말을 너무 궁금해서 미쳐 죽겠다 하시면 구매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완전히 번역을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번역기를 대충 창고에 던져 놓았다. 동물들과 완벽한 대화가 가능한 내가 이 번역기를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과 대화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누나가 써도 되긴 하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며 아이들은 물론이고 누나 역시 동물들이 원하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채는 편이었기에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그 번역기에 대한 리뷰를 하고 며칠 정도가 지났을 때, 동물 번역기의 상품 설명이 바뀌었다. 99%의 정확도라는 내용은 싹 사라지고, 정확도가 괜찮다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확도가 괜찮은 동물 번역기!] [번역기 본체 1ea 200,000 원]심지어, 내 리뷰로 인해서 비싸다는 인식이 박혔기 때문인지, 순식간에 가격의 1/3을 줄어버렸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보는 방송으로 리뷰한 것 때문에 많은 것들이 바뀐 느낌이었다. 전 세계에 몇 없는 애니멀커뮤니케이터들이 번역기의 성능을 증명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그 정확도를 증명해 버리면서 급하게 수정한 티가 났다.
하지만 딱히 내가 신경 쓸 것은 없었기에, 휴대폰을 집어넣고서 소은이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었다.
“백 원짜리 사탕 다섯 개랑 이백 원짜리 초콜릿을 두 개 사는데 천 원을 냈어. 그럼 얼마를 거스름돈으로 받아야 할까?”
“팔십 원! 봉지는 이십 원이니까!”
“……그, 그렇긴 한데. 이번에는 주머니에 넣고 갈 거라서 봉지는 안 살 거야.”
“그럼 백 원!”
소은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다 보니, 어느새 번역기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