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16
0315 여름 캠핑(2)
“진짜 얼마 만에 마시는 맥주야?”
나와 누나는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에 기분 좋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 맥주를 마시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의 딸 소은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 딸이라지만, 이런 건 좀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바로, 누나를 워낙 많이 닮은 소은이가, 누나가 밟았던 길을 고스란히 밟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 ○ ◑ ● ◐ ○
“자네.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
“예? 주의할 거요?”
소은이가 태어난 직후,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한 가지 주의사항을 들을 수 있었다.
“아가 딱 생긴 거부터, 지 애미를 딱 빼닮았잖나. 처음 보고, 딱 지 닮은 거 낳았다고 생각했을 정도여.”
“어……. 그렇긴 하죠?”
소은이가 워낙 누나를 빼다 박은 듯한 모습이긴 했다.
“그러니께 꼭, 꼭. 주의해야 혀. 고 년을 닮았으믄 아주 호기심이 강할 거여.”
“그게 문제가 될까요?”
“하모! 자네는 모르제? 하은이 고것이, 열 살에 만취했던 기록이 있는 아여!”
“……예?”
내가 모르던 누나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고것이, 내가 마시던 소주에 호기심을 보이드마,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소주 병을 병나발 불었다는기여.”
“누나가요?”
“아주 그냥 순식간에 취해가꼬, 애비애미도 모르는 상태가 됐었제.”
아버님의 말에 나는 걱정보다도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늘 단정하고, 나보다 한 살이긴 하지만 연장자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누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웃기제? 근디, 직접 겪어보믄 진짜 웃길겨. 애비헌티, 아저씨 누구야? 하는 꼴을 보믄 웃기지 않고는 못 배길 기야.”
아빠도 못 알아보는 수준이 됐었다는 누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내 딸이 나를 보며 아저씨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냥 웃기는 애매했지만 말이다.
○ ◑ ● ◐ ○ ◑ ● ◐ ○
예전에, 소은이가 태어난 직후에 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떠올랐다.
누나를 닮았으면 호기심이 강해, 술을 마시는 것에도 무척 큰 호기심을 보일 거라는 말을 말이다.
그리고, 아버님의 그 예언 아닌 조언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소은이는 나와 누나가 맥주나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면, 그게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어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건가- 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만 주어지면 아주 제대로 마셔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본인이 놀만한 것이 있다면 신경도 쓰지 않지만, 할 것이 없이 심심한 상태에서 우리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척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맛까지 다시는 걸 보면, 조만간 한 모금 할 것 같기는 했다.
덕분에, 우리가 한동안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 소은이한테 술 주면 안 돼.”
“이게 다 누나 닮아서 그런 거잖아. 유전자가 어디 가겠어?”
“내 유전자만 있니? 네 유전자도 있거든?!”
“난 그래도 열 살에 술을 마시진 않았는데.”
“끄응…….”
내 말에 누나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맥주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며, 나 역시 맥주를 마셨다. 물론, 감자칩을 안주 삼아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캔, 두 캔. 맥주를 비워 나갔다. 내 초능력이 주량에도 아주 효과적이었는지, 우리는 세 캔을 연달아 비웠음에도 전혀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거나, 열감이 느껴지는 일조차 없었다.
“아, 좋다.”
모처럼 밖에 놀러 와서 마시는 맥주는 무척 좋았다. 톡 쏘는 탄산의 맛과, 알싸한 보리의 맛. 거기에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짜름한 감자칩의 맛은 아주 잘 어울렸다.
게다가 내리쬐는 햇볕도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타프 덕에 가려지고 있었으니, 이곳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캠핑장 바로 옆을 휘감으며 지나가는 계곡물소리까지 들려오니,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맥주는 그만 마시고, 물놀이나 잠깐 할까? 애들 데리고.”
이대로 있다간 앉은 채로 맥주 두 팩을 다 까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누나에게 물놀이를 제안했다. 이 더운 날,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힘든 것은 둘째 치고 말이다.
“그래, 모처럼 나왔으니까 시원한 계곡물에서 잠깐 놀자.”
“애들부터 데리러 갈까? 그대로 놀고 옷만 갈아입으면 되겠지.”
“응.”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와 나는 1/3쯤 남은 맥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소은이에게로 다가갔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캠핑장이란 것으로 홍보하는 곳이었기에, 반려동물과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환장하는 놀이터라는 소리였다.
아무튼, 그런 놀이터로 향한 우리는 해맑게 웃음을 터트리며 놀고 있는 소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은이가 웬 덩어리 하나 위에 올라간 채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데려온 동물들 중에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곰돌이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곰돌이는 지금 은수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덩어리가 소은이와 함께 있었다.
“은수야!”
당연한 말이지만, 그 소리는 은수가 혼자 있다는 것과 동일한 소리였다.
유치원에도 입학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혼자 있다는 생각에, 나와 누나는 정말 미친 듯이 은수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곰돌아?”
“응? 불렀슈?”
그런데, 은수가 있는 곳으로 향한 우리는 곰돌이가 멀쩡하게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나! 인나! 인나아아아!”
그것도 은수에게 꽃으로 후드려 맞고 있는 곰돌이를 말이다.
“꾸엉, 간지러워유.”
“이러나아!”
곰돌이가 몇 개의 꽃들을 깔아뭉갠 채로 바닥에 드러누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은수는 곰돌이가 꺾어버린 꽃을 들고 곰돌이를 패는 중이었다. 아주 열심히.
타악, 타악. 얇디얇은 꽃이 곰돌이의 두터운 털가죽에 부딪히며 꽃가루를 흩날렸다.
아무래도 꽃을 깔고 누운 곰돌이를 일으켜 세우려는 움직임 같았다.
“간지럽다니께유.”
하지만 곰돌이는 그렇게 제 몸을 두드리는 꽃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맞은 부위를 긁었다.
“악, 잘못 긁었시유.”
자기가 긁은 것을 더 아파하는 곰돌이였다.
“으아아앙!”
그리고, 제 공격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은수가 울음을 터트렸다. 곰돌이가 깔아뭉갠 꽃을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은수는 동물들과 말이 통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은수는 곰돌이에게 깔려 운명하게 된 꽃을 붙잡고 앙앙 울음을 터트렸다.
“으응, 곰돌이가 나빴다. 그치?”
“흐으으!”
동글동글한 눈매 끝에 눈물방울 하나를 콕- 찍어낸 듯한 은수가 누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곰돌이에 의해서 몇 개의 꽃이 비료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이 무척 안타까운 듯했다.
하지만 자연 전체를 보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기에, 은수는 가볍게 달래주는 것으로 금세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꽃으로도 때리면 안 돼. 은수야, 곰돌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할까?”
“우웅.”
은수는 곰돌이에게 미안했다는 듯이 자그마한 손으로 곰돌이의 두툼한 뱃살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꾸어엉, 괜찮아유.”
느긋한 곰돌이는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은수의 토닥임을 받았다.
“……근데, 아까 그 덩어리는 뭐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와 함께 놀고 있던 덩어리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또 무슨 동물을 불러들인 거야.”
동물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은이였기에, 나는 또 어떤 야생 동물이 소은이의 마성에 빠져 다가온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것 말고는 가능한 시나리오도 없었다.
나는 소은이에게 빠져든 동물이 온 것임을 확신한 채로,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다시금 찾아갔다.
“소은아, 걔는 누구야?”
“얘는 덩어리!”
“……덩어리?”
“웅! 떡진 털이 덩어리진 게 매력이야!”
“그, 그렇구나.”
도대체 어디가 매력이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은이는 반달가슴곰 한 마리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반달가슴곰 역시 우리를 향해 한쪽 앞발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래……. 안녕.”
처음 보는 녀석임에도 제법 살갑게 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저는 이 근처에서 도망쳐 나온 덩어리라고 해요!”
“……도망쳤다고?”
“네! 인간들이 제가 다른 곳에 가지 못하게 말리지 뭐예요? 그래서 열심히 도망쳤죠.”
덩어리는 다른 동물이 그러는 것처럼 소은이를 무척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꾸엉꾸엉- 울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이야기를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녀석이 말하는 대로라면, 녀석은 어딘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개체거나, 불법으로 곰을 사육하는 곳에서 탈출한 개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덩어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불법 곰 사육장 같은 곳에서 도망친 개체는 아니었다. 따로 반달가슴곰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도망친 개체였다. 일종의 동물원처럼 곰을 전문적으로 사육하면서 관람도 할 수 있도록 한 곳이 주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도망친 녀석이었다.
그것도 사육사가 청소를 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녀석이 이곳까지 도망치는 사이에 사람들에게 입힌 피해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연구소에 곰을 보호 중임을 알려준 다음, 덩어리가 소은이와 함께 놀 수 있도록 봐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물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흐악! 엄청 차가워요!”
연구소에서는 물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근 덩어리가 무척 신기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소은이도 차갑다며 난리였지만, 금세 적응하며 첨벙첨벙 물장구를 쳐댔다.
“은수야, 엄마 있는 곳으로 헤엄쳐 보자.”
그리고, 은수 역시 누나의 보호 아래, 아주 열심히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몸을 감싸는 튜브에 의지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누나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
“끽끽!”
물론, 원숭이 녀석도 더운 여름 날씨에 지쳐 있던 건지, 차가운 물에서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바로, 하늘다람쥐인 하늘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누렁이 녀석이야 차가운 물보다는 뜨끈뜨끈한 햇볕을 좋아해서 오지 않았지만, 하늘이는 이야기가 달랐다.